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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사건 첫 판결, 국가·경기도 책임 인정… 전체 피해자 4700여명 중 4.9%만 인정 “재판부 판결 유감”

선감학원 사건 첫 판결, 국가·경기도 책임 인정… 전체 피해자 4700여명 중 4.9%만 인정은 "재판부 판결 유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선감학원 치유와 화해를 위한 안산시민네트워크’가 20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선감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첫 판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선감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사건에 대한 첫 판결이 선고됐다. 이번 판결은 국가와 경기도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조선총독부는 안산시 선감동에서 ‘불량행동을 한 소년들 감화 목적’이라는 명분으로 미성년자들을 강제동원했다. 해방 이후에도 군사정부는 부랑아를 청소의 대상으로 여겨 주요 도시에서 미성년자들을 엄격한 군대식 규율과 통제 속에 강제노역 및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선감학원은 아동 교화 시설이라는 명목으로 설립됐으나, 실제 목적은 도유지 관리를 위한 아동들의 노동력 착취였다. 선감학원은 아동복리시설 설치기준령을 위반하여 아동에게 고강도의 강제노역을 자행하고, 의무교육의 기회를 박탈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트라우마, 우울증, 수면장애, 알코올 중독 등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선감학원 피해 대리인단과 피해자들은 국가의 위법적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2022년 12월 선감학원 피해자 약 170명을 모집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대한민국과 경기도가 선감학원 제도에 따른 피해 발생에 대해 모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한민국 특정 공무원이 직접적으로 선감학원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법원은 1인당 1년 기준 5천만 원의 위자료만을 인용하여, 청구금액 1억 5천만 원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의 손해만을 인정했다. 이는 유사 과거사 사건인 형제복지원, 삼청교육 피해 사건보다도 현저히 낮은 금액이라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판결이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와 선감학원 치유와 화해를 위한 안산시민네트워크는 1심 판결 선고 결과에 따른 기자회견을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진행했다. 강신하 대리인단 단장, 김영배 선감학원 피해자 센터 회장, 김현주 선감학원 치유와 화해를 위한 안산시민네트워크 집행위원, 김진희 전 진화위 조사팀장이 이번 사건의 의의 및 판결의 취지, 사법·입법·행정적 과제에 대해 발언했다.

선감학원 사건 첫 판결, 국가·경기도 책임 인정… 전체 피해자 4700여명 중 4.9%만 인정은 "재판부 판결 유감"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선감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사건에 대한 첫 판결이 선고됐다. 이번 판결은 국가와 경기도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KBS 캡처.

법무법인 상록의 강신하 변호사 “선감학원 피해자 4.9%만 인정, 진실 규명과 피해 회복 계속해야”

강신하 변호사(선감학원 피해자 대리인단 단장)는 “법원이 대한민국과 경기도의 책임을 모두 인정한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구한 1억 2천만원 중 5천만원만 인용되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선감학원은 1942년부터 1982년까지 부랑아라는 이유로 법적 근거 없이 어린이를 강제로 수용하여 도유지 관리 사업에 이용한 사건이다. 수용된 어린이들 중 4689명 중 824명이 탈출을 시도했으며, 상당수는 바다에서 익사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와 경기도는 이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았고, 암매장된 아동들의 유해 발굴 사업을 조속히 시행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화위)를 통해 선감학원 피해자 중 230명만이 피해자로 인정받아 전체 인원의 4.9%에 불과하다. 경기도와 정부는 진화위를 통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피해회복 조치를 촉구하고 있으며, 특히 원아대장에 누락된 피해자들에 대한 신속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배 선감학원 피해자 센터 회장, “정부의 책임있는 조치 촉구”

김영배 회장은 “선감학원은 1942년부터 1982년까지 40년 동안 5,759명이 넘는 아동들을 감금하고 강제노역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며 인권을 짓밟은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22년 10월 진화위의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무분별한 단속을 주도했던 법무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와 경찰, 경기도에 피해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정부 기관들의 무대응과는 달리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진화위 발표 직후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하여 공식 사과와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치유와 생활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경기도 외 지역에 거주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보상과 진실규명을 위한 대책 마련이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거주 지역에 상관없이 동일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선감학원 치유와 화해를 위한 안산시민네트워크 집행위원, “재판부 판결 유감”

김현주 집행위원은 “선감학원에서 강제 노동과 구타, 배고픔과 학대에 시달렸던 피해사실을 인정하고 정부와 경기도의 책임을 묻는 판결이 나왔으나, 피해보상 내용은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책임은 인정하지만 그 책임이 너무 가볍다”고 지적하며, 재판부의 판결에 유감을 표했다.

김 위원은 “선감학원 문제 해결은 우리 사회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사람의 생명과 인권이 존중받지 못했던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와 경기도는 피해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진희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팀장, “국가의 인권침해 인정”

김진희 전 조사팀장은 “2020년 12월 10일 재출범한 진실화해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삼청교육대 등 집단수용시설 피해 신청에 대해 국가의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국가는 이러한 불법적 행태를 자행하고, 집단수용시설 내 심각한 인권침해를 묵인하거나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김 전 팀장은 “집단수용시설 피해는 아동 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에서 일어났으며, 전체 수용시설에 대한 직권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22대 국회는 ‘집단수용시설 피해 조사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응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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