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의 4세 경영 승계가 본격화된 2025년 9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장남 정창철 씨(28)가 부친 명의의 차량으로 일으킨 과거 음주운전 사고와 관련해, 그룹 차원의 전방위적인 ‘기사 삭제 요청’과 ‘기사 밀어내기’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 음주운전 범죄 이력을 둘러싼 대응 과정이 언론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로 비쳐지면서, 후계자 승계를 앞둔 그룹의 평판 관리 전략 자체가 도마 위에 올랐다. ‘무결점 승계’를 염두에 둔 행보가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이하 민실위)는 이번 사안을 ‘재벌 봐주기 기사 삭제’ 문제로 규정하며, 광고주인 대기업의 민원을 이유로 언론사가 보도 원칙을 훼손했다는 점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11일 C사 계열 방송사는 “[단독] 현대차 정의선 회장 장남, 일본 법인 입사…경영 수업 ‘첫 발’”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정 씨가 현대자동차그룹 일본 법인인 현대 모빌리티 재팬(HMJ)에 입사했음을 보도했다. 이는 정 씨의 경영 참여를 공식화한 사실상의 ‘4세 경영 데뷔’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이 시점이다. 지난 24일 미디어오늘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 씨의 경영 승계 소식이 알려진 지난 9월을 기점으로 과거 음주운전 관련 기사들이 주요 포털과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잇따라 삭제되거나 수정된 것으로 파악됐다. 경영 수업이라는 ‘미래’를 위해 음주운전이라는 ‘과거’를 급하게 지우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 매체별 조직적 삭제·수정 경위
A 지상파(9월 중 삭제)
해당 방송사 디지털뉴스총괄은 현대차 임원의 요청을 받고 관련 기사 3건을 삭제했다고 내부적으로 인정했다. 그는 “보도 가치가 소멸했고 개인이 겪는 고통과 ‘잊혀질 권리’를 고려했다”고 설명했으나, 보도본부나 취재기자와의 사전 협의 없이 결정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내부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B 보도전문채널(9월 18일 삭제)
이 매체에서는 마케팅국장의 요청으로 기사 2건이 삭제됐다. 해당 국장은 “현대차 측으로부터 ‘일부 매체들이 해당 사건을 언급하며 광고·협찬을 요구해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삭제를 추진했다”고 해명했다. 영업 부서가 편집 영역에 개입한 사례로, 언론 윤리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C 뉴스통신사(10월 수정·12월 복구)
정 씨의 2021년 음주운전 사건을 단독 보도했던 기사에서 ‘현대차’, ‘정의선’ 등 실명이 익명 처리됐다가, 이후 원문이 복구됐다. 해당 통신사 편집총국장은 “기업 측의 2~3차례 요청을 받고 판단했다”며, 취재기자와 상의 없이 수정한 점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 삭제 안 되면 덮어라?… 참고자료 ‘기사 밀어내기’ 의혹
지난 24일 오후 3시 39분 미디어오늘이 정의선 회장의 장남 정창철 씨의 음주운전 기사 삭제 정황을 폭로한 직후, 현대차그룹이 이번에는 포털 뉴스 알고리즘을 역이용해 부정적 기사를 은폐하려 한다는 ‘기사 밀어내기’ 의혹이 기자들 사이에 제기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관련 내용을 연속 보도하며 의혹에 불을 지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만 140여 명에 이르는 현대차그룹 커뮤니케이션 조직은 최근 국내 주요 언론사들에 이른바 ‘참고자료’라는 명목으로 기사 작성을 집중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자료가 내세운 핵심 키워드는 ‘정의선 회장’으로 알려졌다.
분석 결과, 삭제 논란이 불거진 24일 오후부터 집중적으로 배포된 기사들의 주제는 ▲사회공헌(CSR) ▲글로벌 수상 ▲미래 비전 등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실제로 24일 오후, ‘현대차그룹, 이웃돕기 성금 350억 쾌척’과 ‘정의선 회장, 글로벌 자동차 리더 선정’ 등의 보도자료가 약 1시간 간격으로 배포됐다. 이 기사들은 수십 개 언론사를 통해 재생산되며 포털 뉴스 페이지의 상단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이로 인해 네이버 모바일 뉴스 검색창에서 ‘정의선’을 입력했을 때, 상위에 노출되던 ‘장남 음주운전’ 및 ‘기사 삭제 논란’ 관련 뉴스는 2~3페이지 뒤로 밀려나거나 쏟아진 홍보성 기사 사이에 파묻혀 가시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결과가 초래됐다.
현대차그룹 측은 기사 삭제 등 현대차그룹의 조직적 개입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일체 답변을 거부하고 있어, 대기업의 여론 조작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 ‘정석 경영인’ 정의선 vs ‘전과·언론 통제 논란’ 장남… 4세 승계의 딜레마
1970년 10월 18일 태어난 정의선 회장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외아들이자 정주영 선대회장의 장손으로, 엄격한 교육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휘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MBA 과정을 거치고, 일본 이토추상사에서 약 2년간 근무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재계에서는 비교적 준비된 경영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정 회장의 장남 정창철 씨 역시 일본을 경영 수업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부친의 행보를 잇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현지 법인 HMJ 입사는 이러한 ‘장남 승계’ 행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됐다.
다만 정 씨는 2021년 7월 음주운전 사고로 적발돼 같은 해 10월 벌금 900만 원의 약식명령이 확정된 전력이 있다. 혈중알코올농도는 0.164%로 알려졌다. 승계 국면에서 이 같은 범죄 이력이 다시 주목받는 상황에서, 관련 보도를 둘러싼 기사 삭제·수정 논란까지 불거지며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승계 서막’ 시점과 맞물린 기사 삭제란… 누구의 기획?
뉴스필드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현대자동차그룹에 공식 질의서를 보내 구체적인 해명을 요청했다. 질의 내용에는 △기사 삭제 요청의 주체가 정의선 회장이었는지 △일본 법인 입사 시점과 기사 삭제 시점의 연관성 △광고주로서의 지위를 활용해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현재까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는 이번 사태를 “재벌 봐주기 기사 삭제”로 규정하며, 광고주인 대기업의 민원을 이유로 언론이 원칙을 훼손한 중대한 편집권 침해 사례라고 밝혔다. 민실위는 삭제·수정된 기사의 원상 복구를 모든 언론사에 촉구하고, 현대차그룹에는 언론에 대한 직·간접적 압박 중단과 사회적 책임 이행을 요구했다.
민실위는 “이번 사례는 자본 권력이 언론 편집권에 개입한 명백한 사례”라며, 공정보도를 가로막는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맞서 민주언론을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