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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우리나라 장애인 이동권 현실과 독일 사례가 주는 교훈

이주영(독일 마부르크대학교 법학 박사과정,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회원)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동조 후단에 행복추구권을 규정하고 있다. 행복추구권은 추상적으로는 행복을 실현 또는 추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 내릴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행복한 사회·경제적 생활을 할 권리,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할 권리 등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겠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가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을 실제로 보장받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한국의 장애인들은 이동권 제한과 같은 높은 장벽에 부딪혀 제대로 된 행복추구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장애인 이동권 수준은 어디까지 와있고,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장애인 이동권의 발전 방향에 대한 고민의 과정에서 독일의 사례가 어떤 힌트나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인지, 이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장애인의 행복한 삶을 가로막는 교통 장벽

지난해 6월 14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서울시 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서 시청역까지 휠체어로 승하차 시위를 하였다. 2017년 10월 20일에 고(故) 한 모씨가 신길역 휠체어리프트에서 추락하여 결국 사망에까지 이른 사건을 상기시키고, 지하철 이용 시 엘리베이터가 없어 위험에 노출된 장애인들의 안전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하여 열린 시위였다. 지하철 휠체어 승·하차 시위가 열린 지 약 10개월이 지난, 그리고 고(故) 한 모씨가 휠체어리프트 추락 사고로 사망한 지 햇수로 2년이 지난 현재에는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유감스럽게도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고인의 사고가 있었던 신길역의 경우, 사고 후 1년이나 지나고서야 엘리베이터 설치를 시작하여 현재도 공사 중이므로 장애인 승객들은 아직 목숨을 위협하는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엘리베이터가 설치될 때까지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휠체어리프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되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이다. 사고 이후에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이용해야 했던 휠체어리프트 역시 노후로 인한 잦은 고장으로 이용이 어려웠고, 결국 지난 3월 “수리로 인하여 3월 말까지 운영이 중단”된다는 고장 안내문이 장애인들을 두 번 울게 만들었다.

서울시는 이미 2015년 12월 3일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에서 2022년까지 “서울메트로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가 관리하고 운영하는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19년 1월 기준으로 엘리베이터 ‘1역 1동선’이 아직 확보되지 않은 역은 277개 역 중 26개 역사이며, 그 중에서 16개 역사는 환기실 설비 위치 등 때문에 구조적으로 엘리베이터 설치가 어려워 아직까지 해결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까지가 지하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한국 장애인들의 현 주소이다. 그렇다면 장애인들은 지상에서는 자유롭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을까?

“바쁜 시간에 뭣 하러 휠체어를 끌고 나와?”

믿기 어렵겠지만 이는 저상버스를 이용하려던 한 장애인 승객이 저상버스 기사에게 들은 말이다. 

이 부분은 다음의 기사에서 발췌하고 해당 내용을 참고한 것이다.

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90418010008433

이 한 문장으로 우리는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장애인 승객의 탑승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하는 저상버스 기사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다면, 이러한 의무가 없는 몇몇 비장애인 승객들의 마음 속 반응이 어땠을지는 굳이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장애인 승객뿐만 아니라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다른 장애인 승객들도 버스 기사와 다른 비장애인 승객들의 눈치가 보여서 저상버스가 있어도 잘 이용할 수 없는 실정을 토로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버스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이용하는 장애인은 25.9%로 지하철을 대중교통 수단으로 이용하는 장애인 보다 5.4%포인트 많은 수치를 보였다. 그래서 서울시는 현재 서울 시내버스 7,160대 중 3112대(43.5%)인 저상버스를 2023년까지 100% 늘리기로 약속하였다. 이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비장애인 시민들과 특히 저상버스 기사들의 인식 개선과 함께 증차가 이루어져야만 장애인 승객이 마음 놓고 저상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과 장애인 외출의 허들

대중교통을 혼자서 이용하기 어려운 뇌병변, 지체 1·2급 장애인, 그리고 1·2급 휠체어 장애인들은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 콜택시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제16조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 제5조 1항에 따르면, 특별교통수단의 운행 대수는 장애인복지법 제32조에 따라 등록한 제1급 및 제2급 장애인 200명당 1대를 말한다. 그렇다면,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서 외출하려는 장애인이 실제 차량에 탑승하기까지 기다려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답은 ‘평균 2시간 이상’이다.

평균이 2시간이라지만 차량이나 교통사정 등이 좋지 못하면 4~5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인터넷 기사나 커뮤니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병원이나 특수학교 등을 방문해야 하는 장애인들의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결국 예약시간이나 수업시간에 맞춰가지 못해 도로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에 서울시는 올해 장애인 콜택시를 전년 대비 45대 증차한 482대까지 운영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682대로 확대·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재 뇌병변, 지체 1·2급 장애인, 휠체어 장애인 1·2급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는 장애인 콜택시가 올해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정부의 장애인 등급제 폐지로 인하여 모든 장애인들에게 확대 적용되면서, 서울시가 장애인 콜택시를 증차한다고 해서 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장애인에게 제대로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여기까지 한국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지, 그 현황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독일 장애인들의 삶은 어떠한지, 그들의 이동권은 잘 보장되고 있는지, 이제부터 이런 내용을 좀 알아보도록 하자.

2022년까지 독일 전역에서 100%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실현

독일에서는 2022년 1월 1일까지 독일의 모든 지자체들이 대중교통(시내, 시외버스, 트램/지상철, 연방 주 내에서 운영되는 단거리 기차)의 완전한 ‘배리어 프리’를 구현할 것을 의무로 하는 여객운송법 제8조 1항을 이미 2013년에 실행하였다. 교통 인프라가 잘 세워져 있는 서울이나 경기 수도권을 중심으로 구상되고 있는 한국의 배리어 프리와 달리 독일에서는 대도시뿐만 아니라 소도시들도 100% 배리어 프리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지자체에서 경제적 또는 기술적 문제로 인하여 정해진 기간까지 100% 배리어 프리를 실현할 수 없다면, 해당 지자체는 그 이유를 상세하게 밝혀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수학하고 있는 대학교가 위치한 인구 약 8만 명의 작은 도시인 마부르크(Marburg)에서는 대중교통의 배리어 프리 계획을 2020년까지 실현할 것을 구상하고 있는데, 이는 2022년을 넘기지 않고 확실하고 완전한 배리어 프리를 구현하겠다는 마부르크 시 당국의 의지를 보여준다. 또 마부르크에는 현재 24개의 시내버스 노선이 존재하는데, 2016년에 쓰여진 ‘마부르크 대중교통 계획서‘를 보면 이미 2016년 당시에 모든 시내버스가 100% 저상화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부르크 시가 계속해서 배리어 프리를 좇는 이유는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는 완성되었지만 시각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부르크 시의 계획서에 따르면, 운영되는 시내버스의 차종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서 차 내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손잡이의 위치 등이 달라 시각 장애인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지금도 마부르크 시는 모든 장애인을 위한 대중교통의 배리어 프리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는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을 살펴볼 수 있다. 베를린은 대도시인 만큼 시내버스, 지하철, 지상철을 전부 운영하고 있는데, 베를린의 경우 시내버스는 이미 2009년, 지상철은 2017년에 모두 저상화되어 휠체어 장애인이 혼자 이용할 수 있도록 배리어 프리가 완성되었다. 반면, 지하철은 아직 미완성 상태이지만 베를린의 경우도 2020년까지 휠체어 장애인뿐만 아니라 시각 장애인을 위해서도 완전한 배리어 프리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

공동의 삶, 그리고 문화가 있는 삶

독일에도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와 같이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든 중증장애인의 이동편의를 위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복지국가 독일의 사회법전 제12권 제54조 1항과 사회법전 제9권 제55조 2항 7호 및 제58조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어우러져 공동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이를 통하여 장애인들이 그들의 일상이나 여가시간 등을 장애에 의한 이동 제한에 제약 받지 않고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이동 장소나 이동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자 하였다. 장애인들에게 공동의 삶과 문화가 있는 삶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 맞게끔, 장애인들은 장애인 운송 서비스를 병원 혹은 재활시설 방문과 같은 의료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출·퇴근 및 등·하교, 행사 또는 축제 방문, 장보기, 친척 방문, 소풍 등과 같이 비의료 목적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중증장애인의 이동편의를 위한 비용은 이동 목적에 따라 세 기관(공보험사, 노동청, 지자체)에서 비용을 일부 나누어 부담한다. 공보험에 가입된 중증장애인이 병원 혹은 재활시설을 치료 목적으로 방문할 경우에는 공보험에서 비용을 일정 부분 부담한다. 독일 공보험사 중의 하나인 ‘아오카 헤센 (AOK Hessen)’을 예로 들자면, 만약 ‘아오카 헤센’에 가입한 중증장애인이 입원 치료를 목적으로 앰뷸런스나 다른 특수 차량을 이용할 경우 본인 부담금은 전체 차량 이용비용 중의 10%로 최소 5유로에서 최대 10유로 사이의 금액을 내야 한다. 입원 치료가 아닌 외래 진료를 목적으로 병원을 방문할 때 차량 이용료를 변제 받고 싶다면, 미리 공보험사와 상의해서 허가를 받아야만 이후에 영수증으로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중증장애인이 출퇴근이나 등·하교를 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대게 노동청이나 보험사로부터(여기서 보험사마다 규정이 다름) 차량 이용비를 일부 변제 받을 수 있다. 중증장애인이 여가시간에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거나, 친척을 방문하거나 또는 장을 보러 갈 때 특수차량이나 택시 등을 이용할 경우, 그 비용은 지자체에서 일부 부담한다(다만, 출·퇴근 또는 병원 방문 목적으로 차량을 이용할 시,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비용 지원해주지 않음). 이때, 지자체마다 규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사는 곳의 규정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마부르크 시의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이동 서비스를 38년 전인 1981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장애인 이동지원 서비스를 신청한 마부르크 거주 중증장애인들은 매달 12장의 차량이용쿠폰을 받는다. 만약 중증장애인이 실업급여나 기초생활비 수급자라면, 그 중증장애인은 차량이용쿠폰만을 사용하여 마부르크 시에서 지정한 두 개의 운송회사가 운영하는 택시나 장애인 특수차량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차량을 이용할 때마다 차량이용쿠폰+2.5유로(한화 약 3000원)를 기사에게 내야 한다. 몇 학기 전에 같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에 장애인 특수차량을 이용하여 등교하는 휠체어 장애인이 있었는데, 그 학생의 경우 지각없이 항상 수업시간 전후로 휠체어 전용 택시를 타고 등·하교를 하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함께 어우러지는 삶

마부르크 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통학하면 굉장히 많은 휠체어 장애인과 시각 장애인들을 마주할 수 있다. 처음에는 버스에서 자주 장애인들을 마주하는 것이 어색했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에서 단 한 번도 버스에서 휠체어 장애인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지만 택시를 제외하고는 버스가 유일한 대중교통인 고향 울산에서 살 때도, 그리고 서울에서 5년을 사는 동안에도 나는 버스 안에서 정말로 단 한 번도 휠체어 장애인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버스에서 장애인을 마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버스기사의 바로 뒤에 있는 좌석이 암묵적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좌석이라는 것도, 휠체어 장애인이 승·하차를 할 때 어떻게 발판을 내리고 올리는 지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여기에 살면서 사람들이 버스를 많이 이용하는 시간대에 휠체어 장애인이 버스에 탑승하려고 해도 폭언을 하거나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도리어 몇몇 승객들이 다른 승객들에게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도록 뒤로 조금씩 물러나 휠체어 장애인이 탈 자리를 만들어주자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곳의 비장애인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 때문에 짜증을 내지 않는다. 설사 그 장애인 승객의 탑승으로 인해 시간이 지연되어 약속에 몇 분 늦게 되는 난감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탑승한 장애인을 째려보거나 ‘바빠 죽겠는데 왜 휠체어로 버스를 타느냐’는 몰상식한 말을 하지도 않는다. 독일의 비장애인 대중교통 승객들은 그저 장애인 승객의 이동권을 존중해 줄 뿐이다. 이제는 이런 성숙한 시민의식이 한국에도 필요한 때이다.

복지국가의 길: 장애인 이동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

우선은 한국도 독일처럼 배리어 프리를 전국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현재 서울시에서 2023년까지 모든 시내버스의 저상화,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장애인 콜택시 증차를 약속한 것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서울시에만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모든 장애인 승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한국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진정으로 보장하고자 한다면, 배리어 프리의 빠른 전국적 확대가 답이다.

그 다음으로는 비장애인 시민들의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장애인 차별/인식 실태조사 현황에 따르면,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장애인의 주관적인 평가는 2014년 실태조사에 비해 소폭 증가하였다. 실제로도 장애인 이동권 시위 때 몇몇 비장애인 시민들이 내뱉는 무례한 발언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장애인 국민들의 인식이 개선되어 장애인 국민들의 이동권 보장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아갈 때라야 비로소 빠른 정책적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런 포용적 흐름이 경제·복지의 통합적 발전과 함께 갈 때라야 우리나라도 진짜 복지국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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