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부인 정지선 씨의 인연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애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은 현대차그룹이 세계 3위 완성차 기업으로 성장하는 31년을 함께했다. 그러나 정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과 장인 정도원 회장의 삼표그룹이 마주한 현실은 사뭇 다르다. 한쪽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쌓아온 반면, 다른 한쪽은 환경 문제와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 등으로 사회적 검증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결혼에는 재계에서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정 회장은 친구의 사촌 여동생이었던 정씨를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 같은 정씨라는 이유로 집안에서 반대했지만,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본관이 다르다며 결혼을 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간 혼맥이 중요한 의미를 갖던 시절, 두 사람은 연애결혼을 선택했다.
정씨는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녀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했다. 정 회장과 결혼한 이후 1남 2녀를 뒀으며, 2022년 장녀 정진희 씨의 결혼식에서는 부부가 함께 하객들을 맞았다.
현대차그룹의 성장사는 정주영 창업주에서 정몽구 명예회장, 정의선 회장으로 이어진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자동차 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면 정몽구 명예회장은 품질경영과 해외 생산 확대를 이끌었다. 정의선 회장은 제네시스와 전기차, 자율주행, 로보틱스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 세계 3위 현대차의 성장과 과제…정의선·정지선 부부의 동행
정 회장은 2020년 10월 14일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오는 14일이면 취임 6주년이다. 현대차·기아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글로벌 완성차 판매 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두 회사의 연결 영업이익은 합계 20조546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성장의 이면에는 부담도 있다. 현대차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2조850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0.8% 감소했다. 미국의 관세 정책과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추격, 미래사업 투자 부담에 더해 국내 산업재해와 불법파견 논란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정씨는 이러한 변화의 시간을 함께했지만 대외 활동은 상대적으로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다만 지난해 2월 미국에서 열린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프로암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 골프 스타 로리 매킬로이와 같은 조에서 경기를 했다. 정 회장도 라운드에 나서지 않은 채 이들과 동행했다.
최근에는 정씨가 오래전부터 현대차 고문 자격으로 정 회장의 주요 해외 일정에 동행해왔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다만 현대차와 주요 계열사의 공시상 임원 명단에서 정씨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았다.
■ 현대차의 성장과 삼표그룹의 논란, 두 기업가문의 명암
정씨의 친정인 삼표그룹은 고 정인욱 창업주가 일군 사업을 토대로 성장해 레미콘과 골재, 시멘트 등 건설 기초소재 분야로 영역을 확대했다. 정도원 회장이 경영을 이어받았고 현재는 장남 정대현 수석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승계 구도가 형성돼 있다.
승계의 흐름은 지분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정대현 부회장은 계열사 에스피네이처 지분 71.95%를 보유하고 있다. 2023년 삼표와 삼표산업의 합병 과정에서는 그룹 지배구조가 재편되면서 정 부회장과 에스피네이처의 영향력에도 관심이 쏠렸다.
삼표시멘트의 경영 구조에서도 금융 부담을 엿볼 수 있다. 지난 9월 공시에 따르면 최대주주 삼표산업은 보유한 삼표시멘트 주식 5900만주, 지분율 54.68%에 해당하는 주식 전량을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했다. 관련 채무액은 1650억원이다. 다만 주식 담보 제공 자체가 곧바로 재무 부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삼표그룹은 잇따른 논란에도 직면했다. 정도원 회장은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의 다이옥신 배출 문제와 관련해 지난 6일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해외출장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국회는 오는 15일 다시 출석을 요구했다. 삼표시멘트는 당시 측정 조건에 문제가 있었으며 재측정에서는 다이옥신이 검출한계 미만으로 나타났다는 입장이다.
정 회장은 경영권 승계 관련 형사재판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삼표산업이 장남 정대현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에스피네이처를 약 74억원 부당 지원했다고 보고 정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과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다만 이는 검찰의 혐의 판단으로 유무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현대차그룹과 삼표그룹은 각기 다른 산업에서 성장해왔지만, 최근 두 기업이 마주한 과제는 경영 성과만으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판매 확대에도 노동과 안전 문제, 미래사업의 수익성 확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삼표그룹 역시 환경관리 논란과 총수 일가의 부당지원 혐의 재판을 통해 경영 투명성과 책임을 검증받고 있다.
31년 전 사랑으로 시작한 정의선 회장과 정지선 씨의 결혼은 두 사람의 역사다. 부부의 오랜 신뢰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기업의 공식 직함과 경영 책임은 별개의 문제다.
현대차의 글로벌 성과가 노동과 안전 문제를 덮을 수 없듯, 삼표그룹의 오랜 역사도 환경과 지배구조에 대한 질문을 대신할 수 없다. 두 기업가문의 명암은 결국 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뿐 아니라 그 성장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