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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노중기 교수] 민주노조운동, 교수노조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민주노조운동, 교수노조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한신대학교 노중기 교수 현) 민주노총 정책자문위원 전)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우리 사회에는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오해가 널리 퍼져있다. 오해나 비판 정도가 아니라 사실과 전혀 다른 왜곡, 비난과 비방이 판을 친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민주노총이 ‘귀족노조’라거나 ‘불법 폭력 세력’이라는 터무니없는 편견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이런 편견을 부추기기 위해 자본과 언론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일부러 민주노총을 ‘민노총’이라고 폄하하고 비웃기도 한다. 전면적 지하철 파업에도 노조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70%를 넘는 영국, 프랑스 등 서구 나라와 크게 다른 우리 사회의 비참한 현실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노동조합, 심지어 민주노총에 소속된 조합원들 사이에도 퍼져있다는 점이다. 최근 비로소 노동기본권을 회복한 우리 교수 노동자들의 경우는 조금 더 심각한 것처럼 보인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이 민주노총 소속이기 때문에 가입하기 곤란하다거나 다른 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이상한 논리들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왜곡과 더불어 노동조합에 대한 일면적이고 잘못된 상식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노동조합은 조합비를 낸 ‘진성 조합원’을 위해 봉사하고 서비스하는 조직이라는 오해다. 일견 그럴듯한 면이 있으므로 이런 오류는 바로잡기도 쉽지 않다. 노동조합이 가입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위한 조직이라는 점에서 일면 정당하나 그것만 강조하면 노동운동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는 오류로 나아가는 탓이다.

쉽지 않은 이런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운동, 노동조합의 뿌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노동운동은 근대 자본주의사회(체제 혹은 구조)가 낳은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전근대 사회와 달리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람들 대부분은 (자본, 기업에) 고용되어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때 노동자는 겉으로는 합법적이고 자발적이며 대등한 고용계약을 맺으나 실상은 크게 다르다. 생계 수단이 없는 노동자는 약자인 을이 되어 갑인 사용자의 억압과 착취, 그리고 저임금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관계가 만들어내는 이런 착취나 억압에 저항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자구 노력이 바로 노동운동, 노동조합이었다. 19세기 초반 영국의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이나 차티스트운동(Chartist movement)은 자본주의가 가한 엄청난 체제 폭력에 저항한 노동자의 몸부림이었다. 누가 시켜서 하거나 법이 허용해서 한 일이 전혀 아니었다. 자본가와 국가의 엄청난 억압도 노동자들은 단결하고 투쟁하는 이런 노력을 멈출 수는 없었다. 결국 합법적인 노동기본권을 얻는 데에는 100년 이상의 불법 투쟁과 국가의 가혹한 처벌, 그리고 수많은 죽음이 필요하였다.

200년에 걸친 서구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은 오늘날 복지국가의 역사적 기초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의 고통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고 자본주의 시장 거래가 만들어내는 억압과 착취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서로 단결하였다. 그런 연대와 단결, 그리고 투쟁은 전국적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곧 노동자 정당 결성으로 발전하였다.

2차 대전 이후 집권에 성공한 노동자들은 자본가와 시장의 횡포로부터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어막,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착수했다. 대학 등록금이 없고,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받아 청년이 결혼할 수 있으며 비정규직도 전혀 차별받지 않는 서구 복지국가의 진정한 동력은 노동조합, 노동운동이었다. 나아가 지난 세기 노동조합은 시민들의 시민권, 정치적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방어했던 가장 중요한 사회 제도였으며 현재도 그러하다.

한국의 경험도 서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은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역사적 외침’이었고 민주노조운동의 출발점이었다. 그 정신을 이어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억압을 딛고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일어난 것이 민주노조운동이었다. 1995년 민주노총을 결성하기까지 수천, 수만의 노동자가 해고와 구속의 고초를 겪었고 일부는 생명을 잃어야 했다. ‘민주’는 그냥 민주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일으키고 40년간 지켜온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귀족’이나 ‘불법 폭력’이란 말은 사실의 완전한 왜곡이다. 세계 최장 시간 노동하며 저임금에 시달리는 그런 귀족은 없기 때문이다. OECD 최악의 노동 지옥에서 귀족의 자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귀족노조’ 민주노총 조합원의 1/3, 약 40만 명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다른 한편 국가와 자본이 양산한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돈을 내고 힘을 모아 싸운 이는 거꾸로 정규직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다.

또 국가와 자본의 폭력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탄압받는 과정에서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행동을 불법 폭력이라 부를 수는 없다. 2016년 경찰의 물대포 살인에 항거하며 촛불 투쟁을 불러일으킨 민주노총 위원장은 3년 투옥되었다. 그의 투쟁은 불법이 아니라 국가 폭력에 정당하게 저항한 방어 행동일 뿐이었다. 수백, 수천의 노동자들이 잔혹한 반헌법적 국가 폭력에 희생되어 온 것이 우리 노동의 역사였다. 이 역사와 현실에 ‘귀족’은 없다. 또 그런 ‘불법 폭력’은 지금도 꼭 필요하다.

관련해서 이 점을 오해하는 교수 노동자, 조합원을 위해 한 가지 지적해 둘 점이 있다. 민주노조의 활동은 반드시 과격하거나 전투적(폭력적)이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때로 폭력적일 수 있으나 그것은 우리의 요구와 활동 목표가 정당하고 상대가 폭력적으로 억압할 때만, 즉 방어적 폭력일 때만 제한적으로 타당하다.

또 불법 쟁의도 마찬가지이다. 법이 현실을 잘 반영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할 때 불법은 불필요하고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법이 현실에서 착취나 탄압의 수단일 때는 불법도 필요한 일이 된다. 군사 정부나 반민주 권력 치하에서 노동자 투쟁이 대개 불법일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도 일부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는 그 ‘불법’을 민주화운동으로 기리고 교과서로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러다이트 운동처럼.

다른 한편에서 노동조합은 단순한 서비스 기관, 공제 및 상호부조 기관이 아니라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흔히 노동조합 결성 초기에 조합원들은 자신이 낸 조합비가 자신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현하기도 한다. 민주노총, 산별노조 등 상급 단체 활동에 쓰이는 비용이나 비조합원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이런 생각은 일견 그럴듯하나 실제로는 매우 위험하다.

‘노조의 생명은 연대와 단결, 그것도 계급적 연대’라는 말이 있다. 노조에 상호부조의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며 필요하다. 내가 어려운 처지에 빠질 때를 대비해 여러 사람이 참여해 서로 돕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조합비를 낸 사람들 사이에서만 타당한 것은 아니다. 설령 조합비를 내지 않은 비정규직과 실업(해고) 노동자를 위한 노력과 재정 사용은 자신과 동료, 내 가족이 비정규직이나 해고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는 중요한 연대 활동이기 때문이다. 또 이들을 방치하게 되면 자본의 구조조정이나 칼날이 언제라도 정규직, 고용 노동자인 나에게도 닥치기 때문이다.

우리 민주노조운동이 반세기를 넘도록 1970년의 전태일을 되살리는 이유는 그의 이 연대 정신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그는 밤중에 세 시간을 걸어 귀가하면서도 굶는 어린 여공들을 위해 버스 차비를 내놓았던 이다. 지난 50년 민주노조운동에는 착취당하는 다른 노동자를 위해 싸우다 해고, 투옥되고 죽은 민주노조운동 열사들이 부지기수다. 앞서 말했던 3년의 투옥을 마다하지 않은 정규직 출신 민주노총 위원장도 그런 사례 중 작은 일부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남성 중심 노동조합에서 시작했으나 늘 비정규직, 여성을 포괄하는 계급적 연대를 지향했다. 1970, 80년대 전태일을 따른 노학연대는 이제 역사가 되었다. 또 외환위기 이후 사반세기의 본격적 활동으로 지금은 비정규직, 여성들이 조직의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또 그것은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었던 비정규직의 법적 보호를 위해 정규직들이 불법을 무릅쓰고 광화문에서, 국회 거리에서 싸운 결과였다. 이들을 귀족이라 부를 수는 없다.

늦게 출발했으나 교수 노동자의 노동운동이 전태일과 민주노조운동의 길을 걷는 것은 너무도 마땅한 일이다. 당장 일반 교수들이 민주노총, 교수노조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더라도 우리는 그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길게 보아 더 빠른 길이고 이기는 길이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좌경 불법 폭력, 철밥통, 귀족노조라고 수많은 비난을 받았던 민주노총이 한국을 대표하는 제1노총이 된 것은 그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것이다. 나아가 미래에 우리 사회가 노숙자가 들끓는 미국 자본주의가 아니라 비정규직 차별이 없는 유럽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 그 길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이 여름에 뒤늦게 민주노조의 길에 나선 우리 전국교수노동조합이 ‘안락하고 시원한 호텔에서 여름 워크숍을 할 수는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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