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이행관리원 활성화가 중요한 이유
최근 여성가족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있었다. 다른 상임위원회와 겸직할 수 있는 겸임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는 전체 국정감사가 끝난 후 별도로 날을 잡아 하루 동안 추가로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및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등 5개 기관을 감사하다 보니 일정상 다루는 양이나 깊이에서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민주당 박경미 의원의 양육비 이행관리원에 대한 참신한 문제 제기가 주목을 받았다.
양육비 이행관리원이란?
얼마 전 광역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에서 양육비 이행관리원을 홍보하는 광고를 보았다. 내 주변에서도 이혼을 한 분들이 적지 않고, 가정법원에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았어도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사는 경우가 꽤 있다. 어렵게 법적 절차를 진행해 법원으로부터 양육비 지급 결정문을 받아 급여 압류를 했으나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3년마다 하도록 되어 있는 ‘한 부모 가족 실태조사’ 중 가장 최근에 시행된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약 56만 가구의 한 부모 가족이 있는데 이 중에서 11만 명이 아버지와 자녀가 같이 사는 부자(父子) 가구이고, 아버지와 자녀뿐만 아니라 할머니 등 기타 가족이 동거하는 부자 기타 가구는 85천 명으로 전체적으로 약 19만 가구다. 그런데 엄마와 자녀가 같이 사는 모자(母子) 가구는 26.4만 가구이고, 어머니와 할머니 등이 같이 지내는 모자 기타 가구가 9만9천 명으로 약 35만 가구가 실질적으로 여성이 가장인 한 부모 가구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들 여성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가구 중 77%가 이혼한 가구이며, 연령별로도 40대 이상이 61.2%이고, 50대 이상은 13.5%로 취업이 용이하지 않은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가구의 가장인 여성들의 87.4%가 양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직접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 부모 가정의 62.5%가 200만 원 이하의 낮은 소득으로 대다수가 경제적 상황이 어렵다.
실제로 자산이 거의 없고 이혼과 경제적 어려움이 중복된 상태에서 자녀를 키워야하고 그런 와중에 유일한 경제활동 참가자인 여성이 아플 경우 전체 가족이 엄청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양육비 이행관리원이 국가기관으로 만들어진 것은 한 부모 가족 실태조사에서 이혼 후 ‘양육비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한 가구가 83%(39만 가구 추정)에 달했고, 혼자 양육과 생업을 같이 하면서 법적으로 양육비 소송을 직접 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한 부모가족 지원’을 위해 대통령 국정과제로 직접 나섰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전통과 문화적 특징으로 인해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양산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한 부모 가족 실태조사에서 보듯이 양육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의 경우 87.4%가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하고 소득 또한 매우 낮다. 또, 조모나 조부 등 보조 양육자가 있어야만 실제로 양육이 가능한 상태가 대부분이다. 한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사실 온 가족이 총 출동하거나 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다수의 가정이 200만 원 이하의 소득으로 삶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이런 열악한 상황인데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83%아 된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제도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우리 주변에도 이혼 후에 자녀의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로 인한 피해는 아동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그러므로 아이에 대한 양육은 부모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부모의 이혼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의 양육 환경은 제대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양육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기관이라고 해도 국민을 위해 필요한 곳이라면 잘 활용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경미 의원이 이번 국감에서 보여준 정책적 노력은 유능한 의정활동의 모범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양육비 이행관리원은 생계와 자녀 양육의 이중고로 고생하는 한 부모들이 비양육 부모로부터 원활하게 양육비를 받도록 지원해주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로 2015년 3월에 설치됐다.
양육부모와 비양육부모 간의 양육비 상담, 양육비 청구 및 이행 확보 법률 지원, 합의 또는 판결로 확정된 양육비 채권 추심 지원 등의 종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이다. 또 ‘양육비 협의 조정 자문단’ 및 ‘법률 전문 자문단’을 법조계·학계·민간전문가 등으로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양육비 협의 조정 자문단’은 협의 조정 사례와 노하우를 공유하여 협의 성립 과정의 개선방안을 도출하고 조정기법을 전수하며, ‘법률 전문 자문단’은 양육비 이행의 공공성을 제고하고 국내외 가족 관계 개선 지원 사례의 수집 등을 통해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곳이다.
양육비 이행관리원의 현황과 문제점
양육비 이행관리원은 설립 첫 해에 3만 6천 건이나 신청이 폭주했는데도 불구하고 2015년 개원 이후 올해 9월까지 양육비 이행 의무 확정 건수는 총 5,937건인데, 이 중에서 실제로 이행된 건은 2,397건(40.4%)으로 절반도 되지 않았다. 2015년에는 양육비 이행 의무가 확정된 건수 중 무려 72.7%, 2016년에는 65.7%가 확정 이후에도 양육비 지급을 이행하지 않아 실제로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또 ‘채무 불이행자 명부 등재 신청’이 2015년 174건에서 2016년 208건으로 늘었고, 올해 9월까지 이미 344건이나 됐다. ‘감치(監置) 명령 신청’ 역시 1년 새 2.5배 이상 많아졌다. ‘세금 환급금 압류 및 추심 명령 신청’ 및 ‘과태료 부과 신청’도 증가해서 해가 거듭될수록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조치는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법원이 판결을 해도 양육비 지급을 회피하는 경우 강제로 받아내도록 하는 방안이 거의 없다는 것이 큰 문제다. 심지어 밀린 양육비를 받기 위해 다시 변호사를 선임하고 월급이나 재산을 압류하는 방법이 있으나 여기에 드는 비용이 크다 보니 엄두를 내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해 판결 집행권원을 받거나 신청인과 비양육자 간의 합의를 이끌어낸 2,837건 가운데 실제 양육 한 부모에게 총 844건의 양육비 38억3600만 원이 이행되었고, 양육비를 받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양육비 이행 지원 신청 가정에 한시적으로 양육비를 긴급 지원(월 20만 원, 최장 9개월)해서 그 동안 64가구(자녀수102명)만 지원이 확정되었다.
이에 대해 박경미 의원은 “한 부모 가정이든 미혼모 가정이든 간에 양육하지 않는 한쪽 부모 역시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를 부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법원 판결과 각종 강제 이행 조치에도 불복하며 부모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권미혁 의원 등이 발의한 4개의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이 중에는 양육비 지급 의무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재산에 대한 조회를 하지 못하는 조항을 바로잡는 항목이 들어 있는 등 여러 가지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실효성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는 않고 있는 상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부의 정책적 의지이다. 박근혜 정부는 기관을 만들었지만 실제로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한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환영할 일이고, 여야의 정쟁 사안도 아니므로 조속히 법안이 통과되길 바란다.
양육비 이행관리원의 역할 강화 방안
굳이 법률 개정을 하지 않아도 몇 가지 행정 조치만으로도 매우 강도 높게 양육비 지급을 하도록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중대 범죄를 저지른 형사범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기범의 경우도 법무부 출입국 사무소에서 출국 금지 조치를 하고 있는데, 비슷한 수준의 악성 피의자인 양육비 장기 채납자의 경우에도 동일한 조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상 보장된 신체의 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구속하기 위해서는 법률적 근거가 필요하지만, 기존의 법률을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따라 양육비 지급 불이행자에게도 동일한 제제를 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출국 금지 조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출국을 위해서는 ‘자신이 양육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거나 재산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하는 조치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으로 양육비 지급 이행률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조치는 어렵게 사는 자녀에게 양육비도 주지 않으면서 해외로 골프 여행을 떠나거나 놀러 다니는 경우가 많아 속이 터지는 경험을 했던 당사자들에게서 나온 요청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당초 양육비 이행관리원이 기안됐을 때의 목표대로 한 부모의 양육비를 국가가 우선 지급하고 책임이 있는 상대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양육비 대지급 제도’를 확대해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다. 남인순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양육비 긴급지원은 월 20만 원씩 최장 9개월간 한시적으로 양육비를 긴급 지원하는 제도인데, 2016년 예산액은 2억4,000만 원이지만 집행 금액은 6,200만 원으로 실집행률은 25.8%에 불과했다. 실제로 긴급지원 신청 건수는 341건이나 지원 건수는 83건뿐이었다.
이렇게 지원율이 저조한 것은 긴급지원 지원 요건으로 △법률 지원을 먼저 또는 동시에 신청할 것, △양육비 집행권원에 양육비 채권자로 명시되어 있을 것, △긴급복지 지원법에 따른 생계 지원을 받은 후에도 위기 상황이 지속될 것, △양육비 채권자가 속한 가구의 소득이 중위소득의 100분의 50 이하인 경우, △한 부모가족 지원 대상자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를 받고 있지 않을 것 등의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출연금뿐만 아니라 복권기금 전입금 등에서 만들어지며, 누계로 1조2683억 원이나 되고 2017년 한 해 동안 2,151억 원을 사용하는 “양성 평등 기금”이 있다. 또 400조 원 넘게 쌓여 있는 국민연금 기금을 정부가 적정 이자를 주고 빌려와 양육비 선 지급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개인에게 지급되어야 할 양육비를 국가의 재정으로 직접 지급하는 것은 논리와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기금 등을 활용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즉, 한 부모 가족에게 생활비를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정부가 양육비 지급 의무자에게 구상권(求償權)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채권자가 되면 그 자체로서 재산을 은닉하거나 고의로 지급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압박이 된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재산에 대한 조사를 용이하게 할 수 있어 양육비 구상권의 추심(推尋)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 실제로 경제상황이 어려워 양육비를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양육비 지급 의무자가 수입이 없어 양육비를 지원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복지 제도를 통해 실질적인 지원을 받도록 하는 연결 사업도 정부가 선 지급을 하고 구상권을 가질 경우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원안 처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양육비 이행관리원의 운영 방식도 변화가 필요하다. 출범 때는 정원이 56명밖에 되지 않아 활동의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규직 임직원 150명, 비정규직 직원 162명 등 300여 명이 넘는 큰 조직이 되었다. 그러니 직원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구성과 운영 문제가 더 큰 것이다. 이 기관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한 곳이 아니라 전국 광역단위로 17개 정도가 필요하고, 지역별로 지부를 운영해 서울까지 오지 않아도 양육비 이행 관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인터넷 신청이 가능하도록 돼 있지만,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분들 중에 저소득층이나 저학력층이 많고, 또 신청을 인터넷으로 하더라도 개별 상담을 온라인으로 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적정한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의 방법은 이 기관에서 직접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사무처를 운영하지 않더라도 250개 정도의 기초 지자체별로 좋은 변호사를 선정해 양육비 이행과 관련된 자문을 국비로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필요한 경우 소송을 지원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변호사들의 입장에서는 일거리가 늘어서 좋고, 민원인들의 입장에서는 가까운 곳에서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변호사가 개입할 경우 은닉 재산이나 노출되지 않은 수입에 대한 조사의 실효성이 상당히 높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성을 위한 실질적인 복지국가 정책이 필요하다
진정한 성 평등이나 호주제의 실질적 폐지는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평등이 실제의 정책으로 구체화돼야 구현이 가능하다. 앞으로 각종 복지 정책의 단위를 점차 가족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나, 국민연금의 유족연금 등에서 여성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 등 실제로 여성의 경제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실질적인 성 평등의 전제 조건이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혼을 했던 사별을 했던, 모두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혼을 하는 순간 갑자기 이혼녀와 동시에 미혼모가 되고, 사별을 하면 모든 경제적인 어려움을 남은 사람이 짊어져야만 한다. 경제활동에서 남녀 간의 임금격차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이 갑자기 가중되고, 여성의 혼자 힘으로 양육을 감당하는 것은 대부분의 가정에는 부담이 된다. 아이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부모의 이혼 여부나 미혼모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양육비 이행관리원 같은 기관에 힘을 실어주어 쉽고 간단하게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 범죄로 인식될 수 있도록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임신하면 임신 출산카드가 제공되듯 이혼가정이나 미혼모·미혼부 가정이라면 한 부모 가정의 양육자들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지원과 함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상담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생활환경이 갑자기 바뀌면서 받게 될 아이들의 심리 치료를 위해 상담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양육비 이행관리원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여성 정책 공약에는 좋은 내용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 중의 상당 부분은 국회에서 챙겨야 할 내용들이다. 성 평등 임금 공시 제도나 성별 임금격차의 해소, 직장 내 성차별 해소 등은 여성가족부에서 하는 것보다는 주로 노동부의 영역이다. 이제는 국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회 여가위에서는 노동부 장관을 불러 이들 사업의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사업에서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낮은 여성 일자리를 우선 배정하는 방안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를 질문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넘어 제도적으로 국가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하며,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미래의 국가 경제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남녀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고 양육자 본인도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복지국가이다. 결국, 복지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이고,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복지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