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랜드그룹이 중국 패션사업에서 다시 이익을 내기 시작했지만 4조4000억원이 넘는 빚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돈을 빌리는 값이 더 비싸졌다.
1년짜리 회사채 이자는 넉 달 만에 연 6%대에서 7%대로 올랐고, 길어야 반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 빚을 상반기에만 28번 새로 냈다. 이 회사를 사실상 혼자 지배하는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은 정작 빚을 내고 빌려주는 일을 결정하는 이사회에 들어가 있지 않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그룹 지주사 격인 이랜드월드는 지난 8월 1년 만기 회사채 200억원을 연 7.341% 이자로 발행했다. 지난 4월 같은 1년짜리 회사채 500억원을 연 6.31%에 발행했는데, 넉 달 새 이자가 1%포인트 넘게 올랐다.
이 회사채 이자는 채권시장이 매기는 이랜드월드의 금리 수준에 0.3%포인트를 더해 정한다. 시장이 이랜드월드에 돈을 빌려주면서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됐다는 뜻이다. 이랜드월드의 신용등급은 투자적격 등급의 끝자락에 가까운 BBB다.
급하게 쓰는 짧은 빚도 늘었다. 이랜드월드는 올해 상반기 석 달짜리 전자단기사채 19건(1250억원)과 3~6개월짜리 기업어음 9건(460억원)을 발행했다. 엿새 반에 한 번꼴로 단기 빚을 새로 낸 셈이다.
그 결과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빚이 크게 불었다. 6월 말 이랜드월드의 전체 차입금 4조4395억원 가운데 2조8586억원이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온다. 전체 빚의 64%로, 지난해 말(58%)보다 비중이 높아졌다.
반면 1년 안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은 2조3278억원으로, 1년 안에 갚아야 할 부채(4조1815억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3년짜리 장기 자금 750억원은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연 4.5%대로 마련했다.
중국 사업은 살아나고 있다. 중국 패션법인 3곳은 상반기 합산 56억원의 순이익을 내 지난해 같은 기간 39억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다만 현지 통화인 위안화 기준 매출은 11%가량 줄었다. 원화 가치가 떨어져 원화 기준 감소 폭(2.5%)이 작아 보였을 뿐 현지 매출은 뚜렷하게 줄었다. 이랜드 측은 매장을 늘리기보다 핵심 점포와 생산·물류 효율에 집중해 이익을 냈다고 설명한다.
번 돈이 빚을 줄이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상반기 이랜드월드의 현금은 1100억원 넘게 늘었지만 전체 차입금은 오히려 343억원 많아졌다.
비싸게 빌린 돈은 계열사로도 나간다. 이랜드월드는 이달 7일 계열사 이랜드글로벌스포츠에 연 9.52% 이자로 최대 250억원을 빌려주기로 했다. 지난 7월에는 호텔·리조트 계열사 이랜드파크에 200억원을 연 6% 이자로 계속 빌려주기로 했다. 두 공시 모두 사외이사가 참석했다는 기록은 없다.
■ 의결권 74% 쥔 회장, 빚 결정하는 이사회엔 없어
박 회장은 이랜드월드 지분 40.68%를 가진 최대주주다. 회사가 자기 주식 44.76%를 들고 있는데, 이 주식에는 의결권이 없다. 이를 빼고 계산하면 박 회장 혼자 주주총회 의결권의 73.6%를 행사한다. 부인 곽숙재 씨와 이랜드복지재단·이랜드재단 몫까지 더하면 99.5%다.

그런데 박 회장은 이랜드월드의 등기이사가 아니다. 공시상 직책은 미등기·비상근 임원이고, 맡은 일은 ‘인재육성교육’으로 적혀 있다.
등기이사가 아니면 회사 빚과 대여를 결정하는 이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다. 경영 판단이 잘못돼 회사나 제3자가 손해를 입었을 때 이사에게 배상책임을 묻는 상법 조항(제399조·제401조)도 적용되지 않는다. 회사를 좌우할 의결권은 쥐고 있지만 법적 책임을 지는 자리에는 없는 셈이다. 이랜드월드 대표이사는 최종양·조동주 두 사람이다.
이랜드 측은 상하이 ‘E-이노베이션 밸리’ 건립 등 큰 투자가 마무리된 만큼 앞으로 빚을 줄이는 데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하반기에도 비싼 이자의 짧은 빚으로 만기를 이어가야 하는 만큼, 중국에서 번 돈이 실제 빚 감소로 이어지는지가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