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죽음이 없는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하여
작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사고가 발생했고 만 19살이었던 청년이 세상을 떠난 것을 기억하시나요? 공구 가방에 고스란히 남은 컵라면을 두고 청년의 어머니는 “차라리 컵라면이라도 배불리 먹고 가지!”라며 펑펑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 1년이 지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작업현장에서 다쳤거나 세상을 떠나야만 했을까요?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68%가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처리를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인권위는 2015년 5월부터 11월까지 법무부 산하 IOM이민정책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겨 조사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면서, “이주노동자 중 약 17%는 산재보험으로 치료·보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총 1천777명 중 31.2%(554명)가 건설업 종사자였습니다.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자 총 88명 중에서는 45.5%(40명)가 건설업에 종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비단 건설업 만에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5월 12일, 경상북도 군위에 있는 양돈장에서 정화조를 청소하는 일을 하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2명이 질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사건 당일 오전에 양돈장에서는 축사의 돼지를 이송하는 작업을 했고 사업주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이송 후 돼지의 분뇨가 쌓여있는 정화조를 청소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분뇨정화조의 경우 원래 기계와 호스를 동원하여 분뇨를 흡입 및 제거해야하는데 사건 당일 기계가 고장이 나서 직접 이주노동자들이 수작업을 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심지어 아주 기초적인 장비인 마스크 등 안전보호도구가 지급되지 않았고 결국 이주노동자 2명이 작업도중 황화수소로 추정되는 유독가스에 질식하여 사망하였습니다. 실제로 현장에 찾아간 지역 활동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역겨운 냄새로 인하여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경찰조사과정에서 사장은 네팔이주노동자에게 마스크를 착용했다고 거짓진술을 강요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망사고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돼지의 생존유지를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일을 계속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구지방노동청에서는 자체적인 현장조사를 마친 이후 양돈장에서 밀폐공간 작업시 준수사항 및 안전교육 미준수 등 19개 산업안전법을 위반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한편 대구경북지역에 있는 이주단체들로 이루어진 대경이주연대회의에서는 발 빠르게 대책회의를 열고 노동청관계자 면담 추진 및 유가족 초청, 장례절차, 보상문제 등에 관해 논의를 하였습니다. 이후 돌아가신 네팔 이주노동자의 친형이 입국하여 장례식을 치르고 시신을 네팔로 송환하였지만 어처구니없이 사업주는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변호사를 선임하여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어깃장을 놓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이 비단 이 양돈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의 양돈장이 속해있는 대구경북지역의 이주노동자 중 27.9%가 산업재해 경험이 있으며, 이들 중 37.9%가 본인이 알아서 치료비를 부담했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 절반 가까이는 일하다가 다치면 산재를 인정받고 무료로 치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일하러 들어오는 대표적인 제도인 고용허가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03년 이후 지금까지 30여명 이상의 이주노동자가 단속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단속과정뿐만이 아니라 산업재해 등 작업현장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은 한해 평균 1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자살, 교통사고, 질병 등 다양한 이유로 사망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숫자는 더욱 많을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에 대해 법무부, 노동부 등 어느 정부부처에서도 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실태조사나 통계조차 없는 현실에서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은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인 셈일 수밖에 없습니다.
글을 쓰는 도중에 충북 충주에서는 27살 네팔이주노동자가 기숙사 옥상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 채 기숙사 룸메이트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궂은 일과 스트레스로 몸이 많이 아파 회사를 바꾸거나 잠시 네팔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여러 차례 요청 했지만 회사 외국인 관리팀에서는 고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내용의 유서도 발견이 되었습니다.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단체들과 노동조합에서 사업장을 방문하고 진위를 확인하고 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노동자의 억울함은 누가 들어줄 수 있을까요? 그들은 한국에 일을 하러 온 것인지 죽으러 온 것이 아닐지 언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을까요?
이번에 경북군위에서 사고로 세상을 달리한 이주노동자들의 나이는 각각 92년생,93년생이었고 작년에 구의역에서 사망한 청년노동자는 불과 97년생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젊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꿈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땀 흘리며 일하던 작업현장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더불어 하루 빨리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을 제정하여 노동자들의 산재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죽음들이 늘 그렇듯 그 당시에는 충격과 슬픔으로 다가오다가도 어느새 일상 속에서 잊고 살다가 이렇게 문득 다시 떠오르곤 합니다. 고인에 대한 추모와 슬픔을 담아서 더 이상 죽음이 없는 안전한 노동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한 발짝 더 나가는 것이야말로 구의역 1주기를 맞이했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