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거운 책임을 통감합니다.” 박창훈 신한카드 사장은 고개를 숙였지만, 정작 신한카드의 지분을 100% 보유한 ‘실질적 주인’ 신한금융지주 진옥동 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한금융지주가 진옥동 회장의 연임을 확정하며 ‘2기 체제’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자본시장에서는 이번 연임 결정을 두고, 이사회의 ‘긍정적 평가’와는 별개로 지난 2017년부터 지주 부사장, 은행장, 회장을 거치며 8년여간 그룹의 중추를 맡아온 진 회장 체제 전반에 대한 시장의 냉정한 중간 평가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외형적 성장 이면에 장기간 누적된 내부통제 거버넌스의 구조적 피로도와 리스크 관리 비용(Cost of Risk)의 급증이 향후 기업 가치를 결정할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 [Contrast] 자회사 대표의 사과문 vs 지주 회장의 침묵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카드는 가맹점주 19만 2,000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고와 관련해 박창훈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박 대표는 내부 직원을 통한 정보 유출을 시인하며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본시장은 이번 사과의 ‘주체’와 ‘시기’에 주목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신한지주가 지분 100.0%를 보유한 완전자회사다. 자회사의 내부통제 실패에 따른 평판 리스크와 재무적 타격은 연결재무제표를 통해 지주사 주주에게 100% 전이된다. 그럼에도 1,300억 원대 증권 손실과 19만 명 카드 정보 유출이라는 초대형 악재 속에서,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진옥동 회장은 직접적인 해명이나 입장 표명 없이 연임 가도를 확정 지었다.
한 거버넌스 전문가는 “재무적 이익은 100% 지주사로 연결(Consolidated)하면서, 경영 책임은 계열사 사장 선에서 꼬리 자르기 식으로 분리(Separate)하는 것은 지주회사 경영 원리에 어긋나는 ‘책임의 외주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 [Risk] 36개월간의 ‘감시 공백’… 8년 권력의 역설
이번 신한카드 사고의 본질은 외부 해킹이 아닌 ‘내부 통제 시스템의 장기 마비’에 있다. 조사 결과 직원 12명은 2022년 3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약 36개월(1,095일) 동안 정보를 무단 반출했다.
주목할 점은 이 시기가 진 회장이 신한은행장(2019~2022)을 거쳐 지주 회장(2023~)으로 재임하며 그룹의 내부통제 고도화를 진두지휘하던 기간과 정확히 겹친다는 것이다.
진 회장은 2017년 지주 부사장 시절부터 그룹 운영(Operation)의 핵심을 담당해왔다. 8년 가까이 그룹의 의사결정 정점에 있었음에도 모니터 촬영이나 수기 기록 같은 원시적 유출 수법을 3년간 탐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리스크 관리 체계의 총체적 부실을 방증한다.
◇ [Cost] 확정된 손실 1,658억 상회… 주주는 ‘비용’을 치르고 있다
침묵 속에서도 주주가치는 구체적인 재무적 손실(Cost of Risk)로 훼손되고 있다. 공시 및 제재 현황에 따르면 진 회장 체제 하에서 발생하거나 확정된 주요 손실액은 다음과 같다.
▲신한투자증권의 ETF 선물 매매 사고 손실액 약 1,300억 원(2024) ▲아메리카신한은행(SHBA)의 자금세탁방지 미흡 제재금 2,500만 달러(약 337억 원, 2023.09) ▲신한은행의 과거 불건전 영업행위 관련 과태료 21억 3,110만 원(2021.02) 등을 합산하면, 내부통제 실패로 증발한 직접 비용만 1,658억 원을 상회한다.
이는 신한지주 분기 순익의 상당 부분을 갉아먹는 규모이며, 모두 진 회장이 지주 부사장, 은행장 또는 회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발생하거나 확정된 사안들이다.
◇ [Duration] 부실의 만기는 ‘2030년’… 끝나지 않은 우발채무
연임의 근거가 된 실적 이면에는 여전히 장부상 잔존하는 ‘잠재적 부실(Legacy Risk)’이 도사리고 있다. 신한지주 제25기 3분기 보고서의 파생상품 현황에 따르면, 과거 라임 사태와 연계된 ‘웰브릿지새턴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제1호’ 관련 TRS 계약의 만기일은 2030년 12월 20일로 명시되어 있다.
진 회장이 은행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불거진 사모펀드 이슈가 향후 5년 이상 그룹의 리스크 요인으로 남게 된 셈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공시된 장부는 리스크가 ‘현재진행형’임을 가리키고 있다”며 “부실의 꼬리가 2030년까지 이어진 상황에서 최고경영진이 리스크 관리 책임을 다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인물 분석] ‘8년의 권력’… 시험대 오른 진옥동의 리스크 관리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확정은 그가 쌓아온 ‘금융 전문가’로서의 이력과 최근의 ‘내부통제 실패’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 지주 부사장·행장·회장 거친 ‘핵심 라인’
진 회장은 1961년 전북 임실 출신으로 덕수상고와 방통대를 거쳐 신한은행 오사카지점장과 SBJ은행 법인장을 역임했다. 주목할 점은 그의 지주사 내 경력이다. 그는 2017년 3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운영담당)으로 발탁되어 그룹의 기틀을 닦았다. 이후 신한은행장(2019~2022)을 거쳐 지주 회장(2023~)에 오르기까지, 그는 지난 8년간 단 한 차례의 공백 없이 그룹의 핵심 의사결정 라인에 머물렀다. 이는 최근 불거진 사태들이 그의 리스크 관리 체계 아래에서 발생했음을 시사하는 객관적 지표다.
▲ ‘장기 집권’의 그림자… 누적된 통제 부실
그가 그룹 경영 전반을 조율하는 위치에 있는 동안 발생한 사고들은 특정 시점에 국한되지 않는다. 2017년 지주 부사장 재임 시기부터 누적된 내부통제의 결함이 은행장 시절의 대규모 과태료 부과(21.3억, 2021)를 거쳐, 회장 재임기인 현재의 증권사 손실(2024)과 카드사 정보 유출(2022~2024)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내부 시스템의 ‘암’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방치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대목이다.
▲ 연임, 면죄부 아닌 ‘가혹한 시험대’
금융권에서는 이번 연임을 성과에 대한 보상이 아닌, 지난 8년간 누적된 내부통제 부실을 해결해야 할 ‘최후의 시험대’로 보고 있다. 이사회 안건 찬성률 100%에 가까운 우호적 지배구조 속에서 연임에 성공했지만, 주주들은 이제 실적 수치보다 ‘제재 현황’과 ‘손실 공시’를 경영 능력의 우선순위 잣대로 삼기 시작했다. 결국 진 회장의 2기 체제는 100% 지배력을 가진 지주 회장으로서 계열사 뒤에 숨지 않고, 1,650억 원의 손실 앞에 얼마나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