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의 돌봄, 지속 가능한 해법 찾아야!
우리는 생로병사의 인간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수발이 필요한 노인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들 노인을 돌봤다. 역사적으로 흉노 같은 유목 민족의 경우에는 노인보다 청·장년이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우대를 받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만, 농경문화를 가진 나라들, 중국의 역대 왕조 시대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역사에서도 유교적 질서가 사회 운영 원리의 근간을 이루었기 때문에 노인은 늘 존중받는 존재였고 노인 돌봄은 청·장년의 의무였다.
본격적인 산업화와 도시화의 길로 접어들기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역사적으로 이어져온 농경사회의 대가족 중심적 노인 돌봄은 당시엔 사회적 문제가 아니었다. 국민 대부분은 농·어업 등의 자영업에 종사했고, 자연적 대가족을 이루며 지역사회에서 안정적 삶을 영위했다. 농경사회에서 남성 가장을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은 협업적 생산 활동을 영위했고, 여성은 자녀를 양육하고 노인을 수발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세상은 사라지고, 앞으로는 흔적만 남게 될 전망이다. 노인의 기간은 연장되고, 100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지속 가능한 노인 돌봄, 우리는 그 해법을 지금부터 준비해야만 한다.
돌봄 노동의 세대 간 선순환이 작동했던 이유들
농경사회에서 여성 대부분은 생산 활동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가사와 돌봄의 책임을 전적으로 떠맡았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가부장적 농경사회라는 긴 역사적 시기 동안 계속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돌봄을 둘러싼 선순환의 고리가 작동했다. 대가족 체제의 중심인 장년 세대는 자기를 키워주고 생산수단인 논과 밭을 물려준 후 거동이 불편해진 부모를 기꺼이 수발했다. 그리고 돌봄의 과정에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던 형제들이 기꺼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농경사회에서 이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또, 당대의 장년 세대는 자녀를 양육하는 데도 열중했다. 농경사회에서 농지 등 생산수단의 제약이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녀의 수는 많을수록 생산 활동에 유리했다. 그리고 이들 자녀는 노후의 부양과 돌봄을 담보해줄 든든한 보장책이 됐기 때문이다. 돌봄의 선순환 체계가 자연적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농경사회의 대가족 체제에서 다수의 자녀가 태어나고, 장년 세대는 이들에게 돌봄 노동을 제공하며, 이후 이들 자녀들이 청·장년이 됐을 때 이들로부터 부양과 돌봄 노동을 제공받게 된다.
이런 식으로 돌봄 노동의 세대 간 선순환은 긴 역사적 시기 동안 지속적으로 작동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장년 세대의 여성이 감당했던 희생과 헌신이다. 여성들은 일상의 가사 노동뿐만 아니라 자녀를 돌보고 거동이 불편한 시부모 등을 수발했다. 당대의 여성들은 농경사회의 생산 활동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가사·육아·돌봄·수발 노동을 제공하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둘째, 다산다사(多産多死)의 피라미드형 인구구조로 인해 노인 돌봄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많이 태어났기 때문에 생산과 돌봄·수발 노동을 제공할 장년 세대의 수는 많았고, 짧은 수명 때문에 노인 수발의 기간은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지역사회의 자연적 연대가 작동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가족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에 대한 수발은 지역사회의 혈연·지연 공동체가 상부상조의 연대를 통해 해결했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으로 돌봄의 선순환 붕괴돼!
그런데 전통적 농경사회의 해체와 함께 상황이 달라졌다. 이런 변화는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짧은 기간 동안 너무나 급속하게 진행됐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전됐다. 이런 추세에 따라 가족과 지역사회에 구조적 변화가 생겼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가족은 거의 해체의 위기를 맞았고, 지역사회는 사실상 공동체성을 상실했다. 농경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긴 세월 동안 작동해오던 자연적 연대의 질서가 급속하게 해체된 것이다.
전통적 농경사회와 달리 산업·탈산업사회의 노동은 매우 경쟁적이다. 목가적 노동은 사라지고 생존을 위한 노동시장의 경쟁은 산업과 경제가 고도화될수록 더 치열해졌다. 산업과 경제 구조의 변화, 그리고 양성평등의 진전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남성의 노동력뿐만 아니라 여성의 노동력도 노동시장의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서 가족 내부의 자연적 돌봄 기능은 위축되거나 해체되고 말았다.
자녀 양육은 청·장년 세대의 노동시장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걸림돌로 간주되는 경향이 해가 갈수록 더 강화됐다. 많은 경우에서 결혼과 출산은 연기되거나 포기됐다. 또, 노인 돌봄과 수발을 기꺼이 담당하려는 여성의 수는 크게 줄었다. 무엇보다 장기간 계속된 저출산은 돌봄 노동의 선순환 구조를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여기에 더해 고령화는 급속하게 진행됐고, 수발을 필요로 하는 후기 노인의 비중은 갈수록 커졌다. 대가족 체제에서 돌봄의 자연적 선순환을 가능케 했던 피라미드형 인구구조는 완전히 무너졌던 것이다.
전체 인구 중 노인인구의 비율이 7% 이상일 경우를 고령화사회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2000년 노인인구 비율이 7.3%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된 데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작동했다. 하나는 저출산이고 다른 하나는 수명의 연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했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저출산이다. 우리나라의 1985년도 합계출산율은 1.66명이었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이미 이때부터 OECD의 저출산 기준선인 1.7명 이하로 떨어졌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02년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OECD의 초저출산 기준선인 1.3명 이하를 유지했다. 2018년엔 합계출산율이 0.98명이었고, 2019년엔 이보다 더 낮아질 것이 확실하다. 그야말로 태어나야 할 아이들이 매년 수만 명씩 출생하지 않는 ‘집단 자살 사회’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2017년 9월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총재는 대한민국을 집단 자살(collective suicide) 사회라고 지칭했다. 그녀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모습에 아마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후 17년 만인 2017년엔 노인인구 비율 14.2%로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리고 2025년이면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단지 8년만이다. 이 정도의 초저출산은 세계 최초이고,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그리고 농경사회에서 유래한 ‘오래된 자연적 연대’의 질서마저 파탄이 났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가족복지 대신에 당장 누가 노인을 수발할 것인가, 이 문제가 제기될 상황이었다. 가족 중심의 돌봄 선순환을 대체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2002년 노무현 후보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적절한 시점에서 적절한 정책적 개입을 공약했던 것이다.
적절한 시점에 출범한 노인장기요양보험과 장차 예견되는 문제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추진기획단을 설치했고, 2005년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2007년 4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정부 입법으로 국회를 통과했고,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7월 시행됐다. 2008년 당시의 노인인구 비중은 10.3%였다. 고령사회가 임박하게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노인 돌봄과 수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해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정착되도록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첫 출발은 초라하고 미약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수발 대상과 재정의 크기가 지나치게 작았다. 제도 도입 첫 해인 2008년 7월의 노인장기요양보험료율은 건강보험료의 4.05%에 불과했다. 이는 당시 재정 당국의 ‘재정적 보수주의’ 탓이었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돌봄·수발 수요가 급증할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양질의 노인장기요양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머지않은 장래에 분출할 것이 충분히 예견됐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최소 규모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출범했다는 비판은 당시에도 거세게 일었다.
2017년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는 전체 노인의 8%이다. OECD 평균은 10%를 넘고, 독일은 13.4%, 그리고 일본은 18.6%이다. 우리나라도 2020년엔 대상자가 약 87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고, 2022년까지 대상자를 전체 노인의 9.6%로 늘리겠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노인장기요양보장 계획이다. 2022년이면 우리나라도 노인인구의 비중이 거의 20%에 근접해 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할 전망이다. 결국, 2022년이면 우리나라도 OECD 평균인 10% 수준까지 노인 돌봄·수발 대상자를 확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 수년 내에 바로 발생한다. 차기 정부의 임기 말쯤 되면, 우리나라의 노인인구 비중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 때문에 OECD 국가들 중 최상위에 속할 것이며,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초저출산으로 인한 생산연령인구의 급속한 감소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잠식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장차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재원은 장기요양보험료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부담금, 수급자의 본인부담금으로 조달된다. 장기요양보험료는 건강보험료에 장기요양보험료율을 곱해 산정하는데, 2019년 장기요양보험료율은 8.51%이다. 2020년엔 10.25%로 인상되는데, 세대 당 1만1천 원 정도다.
지속 가능한 노인 돌봄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 도출해야!
이제 우리 사회는 지속 가능한 노인 돌봄·수발을 위해 진솔한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새로운 사회계약을 도출해야 한다. 그것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첫째, 돌봄의 탈가족화 기조 위에서 가족의 돌봄 부담을 줄이고, 지역사회의 참여를 적극 장려해야 한다. 가족 해체의 위기 속에서도 개별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배우자와 자녀들의 돌봄·수발 노력을 적극 지지하고,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장기요양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장기요양보장의 재가서비스가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가족, 지역사회, 주간보호센터 및 소규모·다기능 시설 등을 활용할 제도적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노인 커뮤니티 케어를 이끌어갈 기초지방정부의 책임성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둘째, 노인장기요양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 요양서비스의 성격 상, 이들 서비스의 질은 요양 종사자의 자세와 전문성에 주로 달려 있고, 이는 처우와 관련성이 높다. 그러므로 요양보호사 등 요양 인력의 급여와 고용 여건이 지금처럼 매우 열악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이들의 처우를 크게 개선해야 하는 바, 이를 위해 공급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통제하면서 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한 적정수가를 보장하는 정치사회적 대타협이 요구된다.
셋째, 시설 인프라의 공공성 확충이 요구된다. 2017년 요양기관 2만377곳 중에서 국·공립 시설은 207곳으로 1% 수준에 그친다. 개인 사업자 시설은 1만6천375개(80%)에 달하고, 나머지는 법인이다. 그런데 법인도 모두 민간 시설이므로 수익 추구 성향에서는 개인 사업자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국·공립 시설의 비중을 높이고, 민간 시설의 질 향상과 공공성 확충을 위한 평가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국·공립 시설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고, 이미 민간 시설이 많기 때문에 민간 시설의 공공성 강한 재편을 이루는 것 또한 합리적인 접근이다. 결국, 엄정한 평가와 함께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넷째, 양질의 요양 인력을 공급해야 한다. 요양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장차 장기요양 분야가 첨단과학기술이 접목된 일자리의 블루오션이 돼서 청년들에게 보다 친화적인 일자리가 되도록 과감한 재정 투자를 해야 한다. 독일 등 유럽 복지국가에서 가능한 일이 우리라고 안 될 법은 없다. 요양 인력의 전문성과 자질 기준을 높이고 합당한 처우가 이루어진다면, 독일처럼 우리나라도 청·장년들이 요양 인력이 되고자 몰려들 것이다. 이는 결국 양질의 요양서비스로 연결되고, 국민은 더 많은 장기요양보험료를 낼 용의를 가지게 된다. 전문적 요양 인력과 양질의 요양서비스는 국민의 만족도를 높이게 되고, 이는 더 높은 ‘비용 지불용의’로 연결된다. 이것도 일종의 선순환 구조다.
다섯째, 장차 요양서비스에 필요한 재원을 더 많이 마련해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는 장기요양보험료율을 높이는 것인데, 이는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세대 간 돌봄의 선순환 구조가 단절된 상황에서는 한계가 뚜렷해진다. 즉, 장기요양보험료를 주로 내는 사람은 소득을 발생시키는 경제활동인구인데, 주로 청·장년들이다. 생산연령인구의 비중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노인 돌봄·수발 비용을 모두 부담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초기 노인에 속한 고령자들은 더 길게 일을 해야 하고, 더 많은 재정적 기여를 해야 한다. 또, 지불 능력이 있는 노인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본인부담률이 높아지는 상황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식의 복지국가 ‘돌봄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초고령사회에서 양질의 노인장기요양보장이 지속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내용의 사회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며, 이를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