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필드

노동·인권 전문지

청년을 빚쟁이로 만드는 사회

정초원(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

최근 한 언론사의 기사가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77만원 세대, 현실로 왔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청년 비정규직 문제로 인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가 벌어들이는 돈이 월 78만 원으로 뚝 떨어져 이제는 ‘88만원 세대’에서 ‘77만원 세대’의 출현이 머지않았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가 발표되자마자 통계 자료를 왜곡한 자극적 보도라는 비판과 함께 그만큼 청년의 삶이 어려워졌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섰다.

‘77만원 세대’ 논란의 본질

엄밀히 말하자면, 두 입장 모두 맞는 말이다. 먼저 저 기사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30세 미만 청년 가구의 노동시장에서의 위치, 근로시간 등을 제시하지 않은 채 절대적인 수치로만 비교하고 있다. 특히 10명 중 7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현실을 고려하면 학업 중이라 전일제로 일하기 어려운 대학생이 상당 수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취업난 속에서 구직을 준비 중이라 소득이 없는 청년들도 다수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저임금 노동으로만 원인을 단정 짓는 것은 무리다. 또 동 기사에 인용한 자료인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대상 30대 미만 청년 가구 중 소득 1,000만 원 미만 가구는 8.1%에 불과하기 때문에 77만원 ‘세대’라고 청년 세대 전체를 일컫는 것도 지나친 과장이다.

또한 77만 원과 88만 원의 기준은 다르다. ‘88만원 세대’를 지칭하는 88만 원은 2007년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평균임금 119만 원에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20대 평균임금 비율인 74%를 곱한 금액이다.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2017년 비정규직 평균임금 156만 5천원(*1) × 71%(*2) = 111만1천 원이다. 물론 ‘평균’을 기준으로 할 경우 격차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1분위에만 주목하여 ‘77만원 세대’라고 단언하는 것 역시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런 여러 측면을 보면 비정규직 문제라는 단순한 이유로 소득하위 20%에 속하는 청년 가구 1분위 소득만을 기준으로 해서 ‘77만원 세대가 출현했다’라고 단정 짓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과장하지 않아도 청년의 삶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동 조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다른 데이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빚의 수렁에 갇힌 청년들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는 청년 가구의 부채가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 조사에 따르면 30세 미만 가구의 부채 보유액은 2,385만 원으로 전년대비 무려 41.9%나 폭증했다. 30대도 16.1%가 증가하여 전체 가구의 평균 부채 증가율 4.5%에 비해 약 3배가량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청년들의 빚이 급증하는 것은 1년 사이의 일이 아니다. <표1>을 보면 2010년 조사 이후 7년 사이에 30세 미만 청년의 부채 증가율은 154.8%, 30대 청년들도 72%로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세대에 비해 절대적인 액수는 적지만 부채 증가율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이렇게 청년들의 빚이 늘어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생활하는 데 지출하는 비용이 과다하며, 이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소득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지출과 소득의 문제이다.

(1) 사적 지출 비용의 과다함

우리나라 청년들은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지출들이 많다. 먼저 OECD 국가들 중 4번째로 높은 등록금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대학 등록금은 사립대 기준으로 약 926만 원, 국·공립대 기준으로 약 517만 원이다. 국가장학금 제도가 있지만 10명 중 4명밖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수준이라 청년 개인들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대학생들의 부담이 등록금에만 그치는 것도 아니다. 입학금, 계절학기 비용에 더해 취업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도 막대하다. 스펙을 쌓기 위한 학원 수강, 자격증 응시 비용, 원서 접수비 등 약 35만~50만 원에 이르는 취업 준비 비용은 청년들에게 큰 부담이다.

주거비도 만만치 않다. 수도권 대학가의 월세는 평균 49만 원, 보증금은 약 1,378만 원에 이른다. 그나마 기숙사비가 저렴한 공공기숙사 수용률은 10명 중 1명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나머지 9명은 비싼 월세를 부담하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2) 감당할 능력의 부족: 소득 부족

반면 지출을 감당하기 위한 소득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최근 3년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 미만 청년들은 2013년 이후 가처분 소득이 계속해서 감소한 유일한 세대이다. 청년들의 소득 중 80~90%는 노동을 통한 소득이다. 따라서 노동 상태가 불안할수록 소득 확보가 어렵다. 그러나 현재 청년들은 노동시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들어가더라도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청년들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사상 최고를 갱신하고 있다. 지난 6월 청년실업률은 10.5%로 18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체감실업률도 23.4%에 이른다. 수년째 많은 청년들이 아직도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구직 준비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니트족의 비율도 OECD 최고 수준에 계속 머물고 있다. 취업난 속에서 구직 자체를 포기하는 청년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 비정규직 및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는 청년들
그렇다고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들의 상황이 그다지 나은 것도 아니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한 노동 지위와 저임금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표2>는 저임금 근로자(중위임금의 2/3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는 근로자)의 비중을 연령별로 나타내고 있다. 동 표에 따르면 다른 연령대에는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반면 15~29세 청년층의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30% 안팎에 머물러 있으며, 최근에는 조금씩 증가해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청년층의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전체 평균보다 항상 높은 수준이며, 2015년 기준 60세 이상 다음으로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높은 연령대이다.

이 같은 사실은 노동시장에 진입해 있는 청년들이 충분한 소득을 벌어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이유로는 30%대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는 청년층 저임금 근로자의 비율, 여전히 근절되지 않은 ‘열정 페이’ 문제, 학업과 병행해야 하는 청년들의 근로 가능한 시간적 제한 등의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이처럼 우리나라 청년들은 생활에 필요한 개인적 지출 규모가 상당히 크지만 주요 소득 확보 통로인 노동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정도에는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빚을 내게 되고, 청년 부채의 급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즉, “생활비 지출 증가 ? 노동소득 부족 ? 청년 부채 증가 ? 지출 증가 및 소득 부족 ? 청년 부채 증가”의 악순환이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청년 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지출과 소득 부문을 동시에 조정해야 한다. 학업 과정에 있는 청년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 수준에서 등록금이나 취업 비용, 주거비 등이 책정되어야 한다. 나머지 비용은 사회가 제도를 통해 공동 부담하는 형태로 해결돼야 한다. 예컨대, 등록금 수준의 현실화, 정부의 고용서비스 강화, 청년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확대 등의 방식으로 사회적 소득 보조를 통해 청년들이 개인적 지출 규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거나 대학에 다니는 학생,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 등 청년의 지위는 청년 스스로 선택했다기보다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부여된 것이다. 그런데 그 지위로 인해 오늘날 청년들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너무나 과도하다. 예컨대, 대학생은 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수업을 듣기도 빡빡한데 수천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스스로 감당하는 것이 합리적인 상황인가?

또한 노동시장에서 일자리의 질도 개편되어야 한다. 일자리 질 개편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이동 비율이 10%대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계속 구직 상태에 머무르는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과 열정 페이라는 저임금 구조 속에서 착취당하는 청년들의 고통을 완화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 새해를 알리는 몇몇 언론사들의 첫 기획 기사는 ‘부들부들 청년들’,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등 불공평한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를 담은 기사들이었다. 청년의 삶에 대한 지표들이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된 것을 보면 올해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높은 지지율을 뒷받침하는 주요 연령대가 20~40대라고 한다. 그러니, 올해만큼은 청년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들이 만들어지기를, 그래서 청년들이 우리 사회에서 희망을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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