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오해와 편견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물론 세상 그 자체도 변화한다. 다만 변화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전략이 다를 뿐이다. 어떤 사회는 선제적으로 변화를 이끌어간다. 다른 사회는 선택의 여지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앞두고서야 변화를 선택한다. 그리고 가장 한심한 경우인데, 어떤 사회는 끝까지 변화를 거부하고 퇴행을 거듭하다가 끝내는 변화된 환경에 질질 끌려가면서 변화를 강제 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경우에 해당하며, 어떤 경우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 왜 ‘소득주도 성장’이 중요하며, 우리 사회가 이것을 반드시 성공시켜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패러다임 전환을 서두를 때다!
문민정부의 문을 열었던 김영삼 정부는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개발독재 체제의 관치경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길은 개방과 세계화를 내세우며 경제와 시장의 자유를 급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1997년의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이후 김대중 정부의 노력으로 외환위기는 수습됐지만 그 대가로 신자유주의 체제가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양극화 성장체제로 인해 격차사회가 되고 말았고, 심각한 불평등 때문에 더 이상의 성장이 버거운 상태에 처하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김영삼 정부 때 선제적으로 시장의 자유뿐만 아니라 경제의 민주화를 통한 공정한 시장까지 함께 추구하는 복지국가의 포용적 경제성장의 길을 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또 생각해보면, 노무현 정부 때라도 복지국가 건설을 국정의 전면에 내세우고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앞세우면서 연대적 복지국가의 길을 갔더라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다. 나는 이것을 당시의 시대적 한계하고 생각한다. 아무리 특출한 정치 지도자와 정책 설계자가 있었다고 해도, 선제적 변화는 개혁의 정치사회적 역량이 충분히 준비된 곳에서나 가능한 법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런 선제적 개혁이 가능한 정치사회적 조건이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 우리 사회는 “부자 되세요!”라는 유행어가 상징하듯 신자유주의와 성장 지상주의에 경도된 채 사회 공공성과 증세 보다는 자유롭고 큰 시장과 감세 정책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었다. 성장 지상주의를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 양극화 체제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그는 2008년 세계적 경제위기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거부했고, 재벌 대기업과 기득권 중심의 이런 불공정한 자유방임적 경제 질서는 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 결과, 보통사람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청년들은 절망했다.
‘한눈에 보는 기업가정신 2017’을 보면 신자유주의 방식의 한계가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노동자 250명 이상인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12.8%에 불과해 OECD 37개 국가 가운데 11.6%인 그리스 다음으로 가장 낮다. 게다가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의 41.3%에 불과해 OECD 37개 국가 중 멕시코를 제외하면 격차가 가장 크다. 대기업은 고용 없는 성장을 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임금 수준이 형편없이 낮다. 또 자영업은 과당경쟁으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는 부족하고, 보통사람들의 실질소득은 거의 오르지 않는다. 하위계층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줄어든다. 이런 상황은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 동안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 체제를 고집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저성장 상태가 지속됐다. 경제와 산업이 양극화되고,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고,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복지 안전망이 생산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기업가적 도전 정신과 혁신 동력이 부진해지면서 더 이상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매우 슬프다.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 1.05로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초저출산을 기록했다. 자살률은 OECD 평균의 2배를 넘고, 노인 자살률은 3배를 넘는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우리나라를 ‘집단 자살 사회’라고 칭했다. 국민이 불행한 나라, 이것이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비록 선제적 변화의 시점은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거대한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더 늦어지면, 그래서 때를 놓치면 모든 게 어려워진다. 그럴 경우, 복지국가의 문턱에서 성장도 분배도 모두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패러다임 전환의 새로운 방식으로 ‘소득주도 성장’을 제시했다. 그리고 지금, 바로 이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온갖 억척이 오가고 있다. 그런데 사실, 그런 논란은 본질적으로 오해와 편견에 기인한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란 무엇인가?
소득주도 성장의 개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해와 편견은 정말 심각하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비판과 비난을 퍼붓고 있는 보수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소득주도 성장’을 곧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이라며 사실상 양자의 등치관계를 규정해 버린다. 그래서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이 초래한 부작용은 곧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으로 간주되며, 곧이어 소득주도 성장의 폐기 또는 노선 변경을 요구하는 강경한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는 기본적으로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오해’에 해당한다. 더불어, 소득주도 성장은 기존의 보수적 관점에서 볼 때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이론적 ‘편견’이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득주도 성장은 무엇인가. 이는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그리고 공정한 경제의 구현을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들을 통해 안정적으로 포용적 성장을 이어감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혁신 성장의 기초를 제공하는 복지국가의 성장 전략이다. 보편적 복지는 자산조사를 통해 가난한 일부 국민을 선별하여 복지를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와 구분되는 개념으로 국민 모두에게 일생에 걸쳐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적극적 복지는 개개인의 창의성과 잠재 능력을 극대화하는 조치로 사람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통해 더 유능하고 창의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공정한 경제는 경제민주화와 노동체제의 개혁을 통해 공정한 경쟁과 노동권의 신장을 보장하는 복지국가 경제 질서를 의미한다.
먼저, 소득주도 성장의 첫 번째 요소인 보편적 복지를 살펴보자. 이는 일생에 걸쳐 제도적으로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선진 복지국가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소득보장’ 제도에는 사회보험과 사회수당이 있다. 그리고 ‘보편적 사회서비스 보장’ 제도에는 보육·교육·의료·요양이 포함된다. 복지국가는 근로능력이 있으면 누구라도 일을 해서 소득을 얻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복지국가는 최선을 다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완전고용을 위해 늘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소득 단절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보편주의 원칙의 사회보험 제도를 운영한다. 산업재해로 인한 소득 단절에 대해 산재보험이 작동하고, 회사의 폐업이나 해고로 소득이 단절된 경우 고용보험이, 질병으로 소득이 단절된 경우 질병보험이 작동한다. 그리고 노령과 은퇴로 인한 소득 단절의 경우는 국민연금이 작동한다. 이게 4대 사회보험이다. 또 사회수당 제도는 애초 근로소득을 얻기 어려운 일정한 특성을 공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부가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매달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것인데,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공적 보험료가 아니라 국가재정에서 조달한다. 아동수당, 장애인수당, 노인수당이 여기에 속한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4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불행하게도 아직 우리나라에 질병보험 제도는 없다.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은 모두 사각지대가 전체 대상자의 절반에 이른다. 그래서 이들은 해고되었을 경우 아무런 대책이 없고, 노령으로 은퇴할 경우 제대로 된 노후생활이 보장되기 어렵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두루누리 사업을 통해 저소득층의 사회보험 가입을 적극 독려하고 있고, 최저임금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안정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사회보험 가입을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편적 소득보장 제도의 다른 한 축은 바로 사회수당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인 아동, 장애인, 노인 등에게 보편적 방식으로 조세에 근거를 둔 정부재정을 통해 사회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분야를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적극 추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 정책은 원래 올해 상반기부터 실시하기로 예정됐으나 야당의 반대로 아동수당 제도의 실시와 노인수당 및 장애인수당에 해당하는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의 매월 5만 원 증액은 오는 9월부터 실시된다. 아동수당은 0세부터 5세까지 만 6년 동안 월 10만 원씩 지급된다.
이번에는 보편적 사회서비스 제도를 살펴보자, 여기에는 보육, 교육, 의료, 요양 서비스가 포함되는데, 이들 사회서비스는 경제학적 ‘가치재’에 해당한다. 그래서 사회서비스는 생애주기별로 누구나 이용해야만 하고, 또 국민들 모두가 이용하도록 국가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큰 이익이 되는 그런 경제사회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결국, 사회서비스는 국가의 보편적 책임 투자에 해당한다. 그래서 선진 복지국가들은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의 4대 사회서비스를 사실상 무상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차별 없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들 사회서비스 분야를 보편적으로 확대하기 지난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래서 4대 사회서비스는 외형상의 보편주의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점과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보육은 질을 높이기 위한 재정도 취약하지만 공급체계의 공공성이 여전히 부족하다. 교육은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의료와 요양은 보장성이 취약해서 여전히 압도적 다수의 국민들이 민간보험에 의존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통해 이들 분야의 공공성과 보장성 확충을 통해 실질적 보편주의를 달성하고자 집권 초반부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보육과 유아교육의 공공성 강화, 보편적 전인교육의 추진, 대학 등록금 부담의 최소화, 문재인 케어, 치매 국가책임제, 노인장기요양의 보장성 확충, 요양시설의 공공성 강화 등은 모두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전략의 일환이다.
다음으로, 소득주도 성장의 두 번째 요소인 적극적 복지를 살펴보자. 적극적 복지는 개개인의 창의성과 잠재 능력을 극대화하는 조치를 말한다. 국가가 사람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감행함으로서 국민을 더 유능하고 창의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것은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확대와 강화를 가져온다. 여기에는 맞춤형 특성화 교육 체계의 확립과 아동·여성·노인·장애인의 대상별 능력 개발 시스템이 특히 중요하다. 사회적 약자로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아동·여성·노인·장애인의 잠재 능력과 직업 능력을 강화하는 것은 자유 시장과 기업의 영역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일은 국가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사회투자의 영역이다.
아동은 미래의 인적 자본이다. 아동기의 차별 없는 성장 환경과 질 높은 교육의 제공은 미래의 경제성장을 위한 중요한 투자로 봐야한다. 여성 고용률을 높이는 것은 여성의 인권 향상과 합계출산율의 제고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노인과 장애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직업 능력을 중심으로 온 국민의 창의성과 잠재 능력을 극대화하는 적극적 복지 전략은 기초생계를 유지하도록 현금을 지급하는 데만 머무는 소극적 복지를 벗어나 지식 기반 경제에 능동적으로 조응하려는 경제와 복지에 대한 통합적 관점이자 미래 지향적 시도이다.
실업 상태에 처한 사람들에게 기초생계비를 지급하는 데 머무는 것은 소극적 복지인데, 적극적 복지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국가가 다양한 정책적 개입을 시도하는 것이다. 일자리는 경제성장이 일어나는 공간이자 적극적 복지의 목표 지점이다. 그래서 일자리는 적극적 복지의 관점에서 볼 때 경제와 복지가 만나는 지점이다. 특히 일자리를 매개로 경제와 복지를 유기적 통합체로 보는 복지국가의 적극적 개입주의 전략은 직업훈련과 평생교육 등을 포함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서 중요한 성과를 낳게 된다.
스웨덴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회적으로 설정된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기업은 도산하게 되고, 여기서 발생한 실업자는 복지국가 정부가 실업급여의 제공이라는 소극적 복지와 함께 적극적 복지의 차원에서 직업훈련과 일자리 알선을 수행하게 된다. 여기서 스웨덴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동시에 목격하게 된다. 직업훈련과 평생교육을 포함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전반적 과정을 통해 시대적 추세에 뒤떨어졌거나 낮은 기술 수준을 가진 노동자들의 직업 능력을 높여 더 나은 일자리로 유도하는데, 이런 사회경제적 계층 이동성(social mobility)의 증대도 적극적 복지에 포함된다.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 복지는 직업훈련과 평생교육을 포함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시행하려는 것인데, 이 일은 주로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적극적 복지는 인적 자본의 전반적 수준을 높이고 지식 경제에 부합하는 노동의 창의성을 제고하는 데 유리하다. 또, 협력과 신뢰에 기반을 둔 사람 중심의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일자리를 중심으로 사람에 투자하는 적극적 복지는 복지의 제도적 확충임과 동시에 경제의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성장의 중요한 기제이다.
마지막으로, 소득주도 성장의 세 번째 요소인 공정한 경제를 살펴보자. 경제 체제가 공정해지려면, 그래서 소득주도 성장이 가능해지려면, 경제민주화와 노동체제의 재편이라는 두 가지의 큰 개혁 조치가 필요하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묶어 공정한 경제라고 표현한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의 불공정 체제를 개혁하고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즉, 경제민주화는 경제와 시장의 자유화와 달리 책임성 강한 복지국가가 경제와 시장에 민주적으로 개입해 불공정에 대한 규제와 함께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조장을 통해 경제성장과 소득의 일차분배를 개선하려는 개입주의 전략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겠다. 첫째, 재벌 대기업에 대한 투명성 제고와 공공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재벌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 간의 공정한 관계를 구축하고 상생 협력 모델을 실천해야 한다. 셋째, 노사관계를 민주화해서 노동 친화적 성장을 추진해야 한다.
이번에는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내용으로 ‘노동체제의 개혁’을 살펴보자. 앞서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경제의 불공정 체제를 개혁해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정리했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노동체제의 개혁이 중요하다. 지난 20년 동안 노동소득 분배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고착화됐다.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고, 고용 불안과 취업 절벽은 해가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 결국 경제민주화의 본질적 목표인 공정한 경제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노동 체계의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노동체제 개혁의 기본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비대한 2차 노동시장을 축소하고 1차 노동시장과의 격차를 크게 줄여야 한다. 둘째, 우리 사회가 노동시장의 구조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수용해야 한다. 일방적이고 수량적인 유연화보다는 내부의 기능적 유연화에 초점을 맞추고, 2차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고, 노동자의 근무능력을 제고하도록 개혁해야 한다. 셋째, 저성장과 고령화 추세에 적합하도록 고용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 연장된 정년까지 길게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식으로 재설계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공정한 경제를 확립하기 위해 많은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다. 정규직을 확대하고,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 격차를 줄이려는 정책방향을 설정했다. 이와 더불어 앞서 언급된 경제민주화 조치들과 노동권 신장을 위한 조치들도 정책적으로 꾸준히 모색하고 단계적 실천을 추진했다. 그런데 집권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뜻대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보수언론과 정치적 반대자들은 매섭게 소득주도 성장을 비판한다. 심지어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정책으로 사회실험을 했다며 비난을 쏟아내기도 한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런데 이들 반대자들의 비판은 정당한가? 내가 볼 때 거의 대부분은 잘못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소득주도 성장의 개념부터 잘못 설정한 채,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니까, 오해에 기반을 둔 비판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소득주도 성장은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그리고 공정한 경제를 확립하기 위한 복지국가의 정책 수단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소득주도 성장을 반대하는 보수언론과 반대파 세력들은 ‘소득주도 성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을 반대하고 있을 따름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앞서 충분히 설명했지만, 다시 계층적으로 살펴보자면 이 전략은 논리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에 확실히 기여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충격적인 통계가 발표됐다. 5월에 나온 통계청의 1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가 그것이다. 가장 소득이 적은 1분위인 소득하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이 지난해 1분기보다 8.0%나 줄었다. 이는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이다. 그리고 가장 소득이 많은 5분위인 소득상위 20% 가계의 월평균 소득은 1년 전보다 9.3%나 늘었다. 그래서 소득 5분위 배율이 5.95배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장 먼저 충격을 받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통계를 보고 “많이 아프다”고 표현했다. 집권 1년이 지난 시점에서 포용적 복지국가를 위한 소득주도 성장 전략이 의도했던 결과와 많이 다른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니, 그 충격과 아픔은 충분히 이해된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전략을 지지하면서 포용적 복지국가를 기대했던 많은 국민들도 매우 당황했을 것이다. 반면, 보수언론과 정치적 반대자들은 월척이라도 낚은 것처럼 기뻐했을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근본 없는 엉터리 논리이며 기존의 신자유주의 성장 전략이 역시 옳다는 주장을 펼 근거를 마련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 이들은 그런 논조의 글을 엄청나게 쏟아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지난 5월 통계에서 드러난 소득 격차의 확대가 ‘소득주도 성장’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의 소득 격차가 발생한 것은 이 글의 초반부에서 검토했던 것처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사회에서 진행되고 고착화된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 탓이 가장 크다. 지난 보수정부 10년 동안 꾸준히 확대되어온 계층 간 소득격차의 추세가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이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에 영향을 주었을 개연성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러니까, 보수진영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유 시장 하에서는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이 되레 일자리를 줄이고 저소득층의 소득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소득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조치인 최저임금의 인상을 부작용을 빌미로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다.
소득주도 성장, 어떻게 할 것인가!
올해 1분기 가계소득 동향조사 결과에서 하위 1분위의 명목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 감소했다. 소득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졌다는 사실은 앞서 살펴봤다. 그런데 고용 상황도 매우 나쁘다. 지난 5월의 취업자 수 증가폭이 7만 명대로 떨어졌다. 통계청이 6월 15일 내놓은 ‘5월 고용동향’을 보면, 5월의 취업자 수는 2706만4000명으로 1년 전보다 7만2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3개월 연속 10만 명대에 머물던 취업자 수의 증가폭이 지난 5월에는 7만 명대로 줄면서 201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제시한 취업자 수 증가 목표치인 32만 명의 4분의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취업자 수 증가폭이 4개월 연속 20만 명을 밑돈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고용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진보 언론들은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고, 보수언론들은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를 공격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했기 때문에 고용대란이 벌어졌다는 게 보수언론과 정치적 반대자들의 주장이다. 백번 양보해서 이 주장의 일부가 개연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고용대란의 가장 큰 원인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더욱 강화된 기존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100대 대기업들은 최근 2년간 매출은 5% 늘었지만 인력은 2.7%나 줄였다. 대기업들은 ‘고용 없는 성장’의 길을 재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생산가능 인구(15~64세)가 감소하고 있고, 제조업·건설업·서비스업 등 주력업종의 고용 창출력이 떨어진 탓도 있다. 올해 적용된 최저임금 인상 이후 기간의 제약 때문에 아직까지 통계청의 공식 발표를 통해 밝혀진 것은 없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끼친 부정적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이 크게 인상될 경우, 자유 시장 하에서 특히 고령자나 근로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기존의 일자리에서 해고되거나 신규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더 낮아질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일은 제도 시행 전에 이미 충분히 예견된 것이다.
충분히 예견된 부작용을 방지하지 못했다면 이는 정책적으로 오류를 범한 것이다.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은 가장 취약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과 영세한 자영업자·상공인들을 곤경에 처하게 할 가능성이 이미 충분히 예견되었다. 그래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 및 영세중소기업의 경영 부담을 완화하고 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여기에만 머물고 말았다. 소득주도 성장 전략을 구성하는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의 구체적 정책들을 추진하는 데 있어 상대적으로 너무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 전략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축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권을 신장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확충하며, 보편적 복지 안전망의 확충과 동시에 사람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보통사람들의 삶을 질을 높이려는 전략이자 혁신 성장의 전제조건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여러 정책들이 개별적 수준에서 제각각 따로 그나마 미약하게 추진됐다. 그래서 최저임금 획기적 인상의 충격이 초래한 부작용을 방지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복지 확충과 함께 사회적 경제 등의 적정 일자리를 마련하고 연계를 확보하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인데, 이는 소득주도 성장 전략에 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한 것이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 1년이 지나자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생긴 일부 부작용을 빌미로 소득주도 성장을 폐기·수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지난 6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 개편을 단행했다. 청와대 정책실 경제라인의 핵심인 홍장표 경제수석과 반장식 일자리수석이 한꺼번에 교체됐던 것이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를 사실상의 문책 인사라고 평가했다. 대다수는 이것이 소득주도 성장 전략이 공격 받는 상황에서 나온 특단의 조처이며, 심기일전의 계기일 가능성이 크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6·13 지방선거 직후인 18일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1년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서툴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부턴 국민들이 삶의 질 개선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다시 소득주도 성장 전략을 전면에 내걸고 여러 부처의 정책들을 조율하면서 로마 군단이 체계적으로 목표를 향해 전진하듯이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를 유기적으로 엮어내면서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첫 1년 동안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와 복지 안전망의 확충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부분은 참으로 아쉽다. 만약, 이게 잘 되었다면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인 ‘소득하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이 지난해 1분기에 비해 8%나 줄어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최저임금이 획기적으로 인상되면 한계 상황의 어려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또 과당경쟁에 내몰린 영세자영업자들도 사업을 접을 퇴로가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들이 갈만한 적정 일자리의 창출이다.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고용 능력이 지금의 거의 2배에 달한다. 잘만하면 일자리 분야의 엄청난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복지국가의 큰 정부를 인정하고 적극적 재정정책을 펴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문재인 케어는 장차 제대로만 추진된다면 보건의료 분야에서 일자리를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치매 국가책임제와 노인장기요양의 보장성 확충 기획 또한 노인요양 분야에서 거대한 일자리의 보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국민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국민들이 사회보험료를 더 내야한다. 이게 사회 공공성을 강화하는 복지국가의 길이다.
사회보험뿐만 아니라 정부재정으로 일자리를 늘릴 복지 분야도 많다. 복지 공무원 일자리는 자유 시장에서 고용의 어려움을 겪는 한계 상황의 노동자를 위한 일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간병이나 장애인 돌봄 등의 복지 일자리는 일정한 교육과 훈련을 이수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일자리이다. 최저임금이 크게 인상될 경우 이로 인해 늘어나는 실업은 사회서비스 분야의 다양한 일자리들이 충분히 흡수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이런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정부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이들 분야로 끌어들이는 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장애인 활동보조인 일자리는 꼭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지역에서 1급 장애인 부모들이 활동보조인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그에 걸맞게 이들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전환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제대로 늘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분야의 일자리는 큰 공백을 만들었다. 다양한 종류의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적정 임금의 양질의 일자리로 바뀌어야 이들 분야의 서비스 질이 높아진다. 이럴 경우, 사회서비스 이용자인 국민들은 양질의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더 인상된 사회보험료를 낸 용의를 갖게 된다. 이게 바로 사회서비스의 선순환 구조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는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어던져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평가하고 비판해야 한다. 더 이상, 허상을 놓고 비난을 쏟아내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것은 소득주도 성장 전략을 구성하는 수많은 정책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부분은 보수언론과 문재인 정부의 반대자들이 들어야 할 이야기이다. 그리고 깨어있는 시민들이 정부와 여당에게 하고 싶은 부탁도 하나 있다. 소득주도 성장은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 없인 실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1년 동안의 소극적 수준을 파격적으로 넘어서는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해 문재인 정부 2년차가 소득주도 성장의 원년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