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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충은 유토피아도 포퓰리즘도 아니다

이상이(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9일 서울 반포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이번 발표가 지난겨울 촛불을 높이 들었던 국민들의 마음속에 있는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나와 가족의 삶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간절한 열망’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바라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국민이 아픈데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 의료비 부담으로 가계가 파탄 나는 나라, 환자가 생기면 가족 전체가 함께 고통 받는 나라, 이건 나라다운 나라가 아닙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것은 피눈물이 나는 일입니다. 아픈데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환자와 가족의 눈물을 닦아드리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우수성 입증된 국민건강보험: 한 가지 결함은 낮은 보장성

우리는 이런 ‘나라다운 나라’의 사례를 이미 서구의 선진 복지국가들에서 충분히 보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을 하나의 공적 보험자에 포괄한 보편주의 원칙의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 형태는 매우 선진적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모든 나라들 중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이런 모범적인 의료보장 제도를 확립했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은 우리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공적 제도로서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부러워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우수한 의료보장 제도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우리나라의 보편주의 의료보장 제도를 매우 부러워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은 제도의 틀이 이렇게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큰 문제이자 숙제를 가지고 있다. 바로 보장성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대다수 국민들이 의료비 불안을 갖게 되었고, 이에 대해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대응함으로써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게 형성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전체 의료비 중에서 국민건강보험이 제도적으로 부담하는 보장성의 수준이 63%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OECD 국가들의 평균인 81%에 한참 못 미치고, 멕시코와 터키 정도를 제외하면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문다. 그리고 우리 국민의 의료비 본인부담률은 OECD 국가들 평균의 두 배나 된다. 이에 비해, 주요 선진 복지국가들은 의료보장 제도의 보장성 수준이 85~90%를 넘나든다. 결국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이렇게 낮다 보니 국민 대다수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다. 서민 가계의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이중의 보험료 부담을 지고 있다. 그래서 거시적으로 비효율적이다.

‘2015년 의료패널 심층 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전체 가구의 77%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있고, 가구당 평균 가입 개수도 4.8개나 된다. 또 가구당 월 평균 민간의료보험료는 28만8천 원이다. 보편주의 원칙의 공적 의료보장제도를 가진 나라들 중에서 민간의료보험 가입 비중이 이렇게 높은 나라는 전 세계의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와 양식 있는 정치인들이 지속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충을 요구해왔다. 이번에 나온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은 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미 있는 화답이다. 그런데 이번 대책에 대해 일부 야당들은 문재인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으로 유토피아적 발상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보장성 확충의 두 가지 핵심: 보수정당들이 지지해야 할 결정적 이유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 대책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이를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그리고 바른정당은 유토피아적 발상이라며 비판했다. 만약 이들 보수정당들이 스스로를 시장만능주의를 옹호하는 강경 우파 정당으로만 규정한다면 논리적으로 이런 입장을 충분히 표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들 정당은 스스로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고 결코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번에 발표된 보장성 강화 대책은 그 내용의 대부분이 ‘서민을 위한 의료보장 정책’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리고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지난 대선 당시 ‘중부담-중복지’를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방향성과 주요 내용에서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반대할 어떤 명분도 없다.

이번에 나온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 대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비급여의 급여화’이고, 다른 하나는 ‘취약계층의 의료비 부담 경감’이다. 먼저,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로봇수술, 2인실 등 그동안 환자가 100% 부담해야 했던 3800여 개의 비급여 진료 항목들이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보험에 적용돼 환자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다음으로, 당장 내년부터 하위 30% 저소득층의 연간 본인부담상한액을 100만 원 이하로 낮추고, 올해 하반기 중으로 15살 이하 어린이 입원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현행 20%에서 5%로 낮추며, 중증치매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10%로 낮춘다. 아울러 지난 정부에서 4대 중증질환에 한정했던 재난적 의료비 지원 제도를 확대해 소득하위 50% 환자에 대해 최대 20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이렇게 해서 취약계층의 의료보장이 획기적으로 강화될 전망이다.

의학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는 것도 보편주의 원칙이 적용되지만 사실은 취약계층에게 가장 큰 혜택이 돌아간다. 고소득층이나 중산층들은 그동안 민간의료보험을 통해 대부분의 비급여 의료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었던 데 비해 저소득층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비급여 의료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의료에 비해 소득계층 간 의료이용의 불평등이 훨씬 더 심했던 것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 대책은 모든 것이 저소득층을 포함한 취약계층의 의료보장을 강화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짜인 것이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은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며 유토피아적 발상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보수정당들이 그동안 늘 강조했던 ‘서민 정책’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보수야당들은 정치적 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더 이상 비난해선 안 될 것이다. 만약 앞으로 계속 포퓰리즘이니 유토피아적 발상이니 하면서 정치적 비난을 이어간다면, 보수정당들이 서민의 이익을 배반하는 소수 부자들만을 위한 특권층 정당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부자와 특권층만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면 어떤 정치세력이라도 서민과 취약계층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정의로운 복지 정책에 대해서는 흔쾌히 찬성하고 지지해주는 게 옳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유럽 복지국가들에서는 상식에 해당한다.

비급여 항목의 전면적 급여화가 중요한 이유

이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의 핵심은 역시 의학적 필요가 있는 모든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 조치이다. 미용이나 성형처럼 명백한 비급여를 제외한 MRI와 초음파 등 치료에 필수적인 비급여 항목들은 물론이고 소위 ‘3대 비급여’로 불리는 간병·특진비·상급병실료도 급여화된다. 일부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비급여 항목들은 현행 50%와 80%인 본인부담률을 30~90%로 바꾸어 ‘예비급여’로 지정하고, 3~5년 뒤 평가를 거쳐 급여화 여부(급여, 예비급여, 비급여)를 결정한다.

현재 일부에 대해서만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는 MRI와 초음파는 향후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 모두 급여가 적용된다. 정부는 내년까지 간·심장·부인과 초음파와 척추·근골격계 질환 MRI 등 체감도가 높은 항목들을 우선적으로 건강보험 급여로 적용한 뒤 2020년까지 완전 적용을 목표로 우선순위에 따라 단계적으로 급여화를 확대할 계획이다.

2000년부터 시행된 선택 진료는 완전 폐지된다. 선택 진료는 환자가 특별한 경우 자격 취득 10년 이상인 전문의의 판단에 따라 건강보험 기준 이상의 진료를 받는 특진을 말하는데, 최대 50%(처치·수술의 경우)의 추가비용을 징수할 수 있게 돼 있다. 이 제도의 폐지에 따른 의료기관 손실은 의료 질 향상 수가를 통해 보상한다. 상급 병실은 내년부터 2·3인실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1인실은 중증 호흡기 질환자나 출산 직후의 산모 등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한 경우를 검토해 2019년까지 적용 여부를 확정한다. 다만 이들 병상은 상급병실 쏠림 현상을 고려해 4~6인실(본인부담율 20%)보다 본인부담율을 높게(20~50%) 적용할 예정이다.

고가 항암제의 경우 현재는 가격 대비 효과성이 입증된 경우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환자 본인부담률을 탄력적으로 적용해(30~90%) 급여화한다. 가령 대장암을 앓고 있지만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암제가 듣지 않은 환자가 본인부담 100%인 새 항암제를 쓰는 경우 한해 4590만 원의 약값을 내고 있지만, 이번 대책으로 이 항암제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되면 이 환자는 30%만 내면 된다. 이럴 경우 이 환자는 한해 약 3200만원을 건강보험에서 지원받게 되므로 본인부담 약값은 4590만원에서 1380만원으로 줄어든다.

전립선 암으로 로봇수술을 받은 환자의 경우, 입원비 등의 진료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됐지만 로봇수술 자체는 비급여 항목으로 환자가 전액을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병원비 총액 1612만 원 가운데 1202만 원을 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 로봇수술에 대해 예비급여 형태로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환자가 내는 총 병원비는 628만 원이 돼 기존의 절반 정도로 떨어질 예정이다.

그렇다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모든 비급여 항목이 급여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거나 환자의 특별한 편의나 안락함을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까지 모두 급여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로봇수술도 일부는 급여로 적용되지 않는다. 위 또는 갑상선 암의 경우 로봇수술은 안전성과 유효성 측면에서 기존의 내시경 수술이나 전통적 수술 방식에 비해 우수하다는 근거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환자가 전액을 부담하는 비급여 행위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의학적 가치나 의미가 미약한 일부 약제나 기타 편의 증진 서비스 등도 여전히 비급여 항목으로 남을 것이다. 부족한 건강보험 재정을 이유로 과거 정부들에서 제한적으로 시도됐던 비급여의 일부 축소나 점진적 축소는 비급여의 비중을 줄이는 데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기존의 점진적 보장성 강화 대책은 새로운 비급여 치료 방법이 개발되는 소위 ‘비급여의 풍선효과’로 인해 실효성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보장성 확대 조치 이후 지난 10년 동안 ‘총 진료비 중 비급여 진료비의 비중’은 지금의 17% 수준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므로 비급여의 ‘전면적 급여화’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반드시 점령해야 할 고지이자 OECD 평균 수준의 보장성 달성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의학적 비급여의 전면적 급여화’ 조치를 실천적으로 선언한 것은 촛불 시민들이 기대하는 거대한 개혁의 시작이자 우리나라 의료보장의 획기적 확충을 위한 큰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이 가구당 월 평균 28만 원씩이나 되는 큰돈을 민간의료보험에 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비급여’ 진료비 때문이다. 그리고 영리적 성격이 강한 민간의료기관들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 중의 하나가 바로 이들 ‘비급여’ 진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급여의 전면적 급여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이런 구조적 측면의 문제들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보수진영의 정치인들과 일부 논객들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는 ‘비급여의 전면적 급여화’ 조치가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다며 난색을 표하거나 거센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들은 ‘비급여’ 앞에 붙은 ‘의학적으로 인정되는’이라는 말을 애써 읽지 않으려고 한다. 이들은 마치 문재인 정부가 미용과 성형을 제외한 모든 비급여 서비스를 앞뒤 가리지 않고 급여화하려는 것처럼 상황을 호도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비급여 서비스는 급여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비급여 서비스가 의학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또는 없는지, 이에 대한 권위적 판단을 내리고 관련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이는 비급여 서비스 시장의 판매자인 의료공급자가 할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에서 비급여를 자유 시장에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던 것의 결과가 어떤 지를 보라! 수많은 의료기관들은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것과 무관하게 ‘돈이 되는’ 다양한 비급여 서비스를 개발해서 정부의 간섭과 통제가 없는 ‘자유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국민 대다수는 민간의료보험 기전을 통해 이들 비급여 서비스를 거의 무분별하게 구입하고 있다. 보건경제학에서 말하는 ‘의사-환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의료 시장은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거대한 낭비와 비효율이 조장되고 있음에도 지난 보수정부들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이런 실패한 의료 시장에서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앞 다투어 민간의료보험 상품을 구입했고 비효율적 민간보험 시장만 거대하게 팽창했다.

그런데 아직도 보수진영은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면 의료수요가 폭발적으로 팽창한다는 허망한 논리를 펴면서 문재인 정부의 급여화 전략을 비난한다. 이것은 거대한 거짓말이다. 의료보험 가입을 통해 의료이용 시점에서 이용자가 지불하는 비용이 낮아지면 의료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까먹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의 비급여 항목을 이미 민간의료보험이 급여화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가구의 약 77%가 다양한 종류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전체 국민의 약 66%에 해당하는 3300만 명이 실손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다.

실패한 의료 시장에서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남용되는 ‘비급여’ 상품을 그대로 방치하자는 게 우리나라 보수진영의 논리라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경우, 정부의 개입을 통해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게 옳다. 이게 보건경제학의 기본적 상식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급여화 전략은 정당하며 시장실패에 대한 올바른 개입 조치이다. 오히려 민간의료보험을 통해 과도하게 남용되고 있는 현재의 비급여 서비스를 정부의 ‘급여화 조치’를 통해 적정하게 통제할 수 있으므로 기존 비급여 분야의 불필요한 수요를 줄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우리 국민들이 민간의료보험에 내는 돈의 일부만을 국민건강보험으로 돌려도 충분할 것이므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높여 내수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문재인 정부의 ‘비급여의 전면적 급여화’ 조치가 도덕적 해이와 의료의 남용을 초래한다는 보수진영의 논리가 우리 국민의 66%에 해당하는 실손 의료보험 가입자가 아닌 ‘가입하지 못한’ 국민의 의료이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면, 이는 더 큰 ‘인식 상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 항목을 부족한 건강보험 재정 문제 때문에 제때 급여화하지 못함으로 인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가난한 국민들이 의료이용의 제약을 받았다면, 이는 정부가 나서 의료이용이 가능하도록 이런 제약을 풀어줘야 할 사안이다. 이것이야말로 헌법상의 권리인 국민 건강권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간의료보험이 담당하고 있던 비급여 영역 중에서 의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비급여 항목들을 전면적으로 급여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전략은 논리적 타당성뿐만 아니라 시장실패를 교정해 거시적 효율성을 높이는 조치로도 옳은 것이다. 이에 더해 이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충을 가능하게 하는 관제고지로서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그동안 의학적 필요성이 인정되는 비급여 서비스를 아예 이용하지 못했던 저소득계층의 의료이용이 가능케 함으로써 소득계층 간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줄인다. 이제 보수진영은 선진 복지국가들의 경험에서 함께 배우고 지난 대선에서 공감대를 이룬 ‘중부담-중복지’의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면서 함께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게 정치가 올바르게 서는 첩경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

우리나라는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을 통해 모든 국민에게 의료보험증을 나눠준 이후 의료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의료이용의 경제적 장벽이 낮아진 덕분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보장성 수준은 40%대에 머물렀다. 본인부담 수준이 지나치게 높았던 것이다. 소득수준이 중상층 이상인 국민들에게는 큰 도움이 됐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의료이용의 높은 장벽을 실감해야 했다. 그 결과, 소득계층 간 의료이용의 불평등이 매우 컸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뤄낸 개혁이 바로 2000년 7월 출범한 통합의료보험 제도인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출범이었다. 이후 조합주의 방식의 한계를 벗어난 덕분에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었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는 65%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느라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충을 방기했고, 박근혜 정부는 4대 중증질환에 국한된 보장성 확대에만 머물러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여전히 63%에 머물러 있다. 이런 조건에서 민간의료보험은 매년 시장의 규모를 획기적으로 팽창시켰으며, 우리나라는 보편주의 원칙의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적 의료보장 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체 가구의 77%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이상한 나라로 전락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기한 현상이다. 이제 이런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의 대선 후보들이 공히 약속했던 국가 비전인 ‘중부담-중복지’로 나아가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63%에 그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앞서 언급했던 비급여의 비중이 전체 진료비의 17%나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둘째는 여전히 높은 법정 본인부담의 비중(4대 중증질환 등의 특별한 예외를 제외한 입원은 급여 진료비의 20%, 외래는 의료기관 종별에 따라 30~60%)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일부 보수진영은 ‘중부담-중복지’ 국가로 가자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OECD 평균 수준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달성하기 위해 63%에 머물고 있는 지금의 보장성 수준을 높이자는 말에는 이상하게도 이런 저런 비난을 쏟아낸다. 이들이 주로 하는 논리적 비판은 보장성의 확충이 도덕적 해이와 의료이용의 급증을 초래할 것이므로 우리 사회가 소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체 의료비 100 중에서 17은 비급여 영역이고, 20은 법정 본인부담이고, 나머지 63은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한다. 결국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37%를 민간의료보험이 사업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민간의료보험이 사업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영역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영역으로 포괄하는 것은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거시적 효율성 제고 조치이며, 소득계층 간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줄이는 형평성 제고 조치이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 조치는 거시적 효율성과 의료이용의 형평성을 모두 높이는 것이므로 지금의 일부 ‘밑 빠진 독’을 제대로 수리해서 국민의료비의 효율적 이용과 의료이용의 국민적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거대한 개혁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200여 개의 종합병원으로 신포괄수가제도를 확대하겠다는 것은 진료비 지불방식을 기존의 행위별수가제(FFS)에서 포괄수가제(DRG)로 전환하겠다는 것인데, 이것 또한 매우 중요한 개혁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지불제도의 개편으로 적어도 종합병원 입원의 경우 포괄수가제를 통해 ‘풍선효과’를 차단해 또 다른 비급여 항목의 개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추진키로 한 ‘비급여의 전면적 급여화’와 ‘진료비 지불제도의 개편’은 장차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충이 획기적으로 진전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그리고 현 정부의 임기인 2022년까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70% 수준으로 확충하겠다는 것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현실적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목표로 삼고 있는 ‘중부담-중복지’ 수준의 복지국가를 달성하겠다는 취지에 맞게 OECD 평균 수준인 80%의 건강보험 보장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제도적 준비가 요구된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의 조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라야 제대로 된 획기적 보장성 확충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런 조건을 갖추는 데는 적어도 2~3년의 물리적 시간도 필요하다.

‘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을 달성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설정한 정책 기조가 차기 정부로까지 이어지고, 그래서 OECD 평균 수준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달성하려면 이에 대한 국민적 동의와 공감대의 확산이 요구된다. 이렇게 볼 때, 현 정부가 목표로 설정한 건강보험 보장성 70%는 최종적 목표치가 아니라 최소한 이 정도는 달성해야 한다는 일종의 기본선으로 봐야 한다. 또한 이런 보장성 확충 개혁의 효과는 현 정부 시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기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 국민적 동의 속에 건강보험료의 인상이 가능하도록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중부담-중복지’가 의미하는 OECD 평균 수준인 80%까지 보장성을 확충할 추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끝으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70%를 달성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 대책이 적절한지, 이에 대한 논란을 잠시 살펴보자. 결론적으로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매우 개방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현재 63%인 보장성을 70%로 높이기 위해서는 건강보험료율의 10%포인트 인상이 요구된다. 정부는 건강보험료율을 매년 3.2%씩 높일 예정인데, 이것을 1.2%와 2%로 분할해보자. 매년 2%씩 5년간 누적하면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에는 10%포인트가 된다. 이것으로 2022년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70%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매년 1.2%포인트의 건강보험료율 인상만으로 건강보험 의료비의 자연증가에 소요되는 지출 규모를 충당할 수 있느냐, 이 부분이다. 현재의 건강보험료율은 소득의 6.12%이다.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건강보험료도 늘어난다. 명목소득이 5% 늘어나면 건강보험료 총량도 5% 늘어난다. 문제는 의료비 지출의 증가 속도가 명목소득의 증가율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특히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에서 이런 경향은 더 심하다. 그래서 1.2%포인트만큼의 건강보험료율 인상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세 가지이다. 첫째는 기존 적립금의 절반인 약 10조 원을 사용하는 것이고, 둘째는 국고지원을 크게 확대하는 것이고, 셋째는 보험료 부과기반을 확대하고 재정의 누수를 막기 위한 제도의 개선이다. 여기서 첫 번째는 한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므로 장기적으로는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두 번째는 매우 중요하고 유익한 조치이지만 세금에 기반을 둔 정부의 재정은 다른 곳에도 용처가 많다는 한계 때문에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되긴 어렵다. 그래서 세 번째가 매우 중요하다. 건강보험료의 부과기반을 크게 확대하고 거시적으로 낭비 요소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에 더해 앞으로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인상 및 정규직의 확대 등으로 인해 건강보험료를 내는 인구와 건강보험료 수입이 더 늘어날 개연성이 크다.

여기서 우리가 세 번째 대책을 효과적으로 잘 추진한다면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정이 부족하다면 국민적 동의를 통해 건강보험료율의 인상 수준을 조금 더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재정 문제에 있어서는 국민과 늘 소통하는 자세로 보다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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