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회 한·일YWCA협의회가 지난 7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일본 가나가와현 쇼난국제마을센터에서 나흘간 열렸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YWCA가 여성 청소년·청년에게 제공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란 무엇인가? – 인권·평화·이바쇼(safe space)’를 주제로 개최된 이번 협의회에서 양국 YWCA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한 사회적 현안과 YWCA의 실천을 공유하고 공동 행동을 지속할 것을 결의했다. 이번 협의회에는 조은영 한국YWCA연합회 회장과 사사베 마리 일본YWCA 부회장을 포함한 총 23명의 양국 활동가가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 한일 YWCA, 청년 안전 위협하는 사회 현안 공유 및 논의
한국YWCA는 국가 보고를 통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분단 및 독재로 인한 국가 폭력의 역사 속에서 젊은 여성들이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던 경험을 공유했다고 전했다. 특히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언급하며 정의로운 회복 없이는 안전한 공간이 성립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어 오늘날 청년의 은둔·고립 문제, 백래시로 인해 심화된 구조적 성차별과 온오프라인 젠더 폭력 등 여성 청소년과 청년의 안전이 위협받는 현실을 지적했다.
일본YWCA는 국가 보고에서 전쟁 책임을 둘러싼 역사 수정주의가 청년 세대 내에 확산하는 상황을 우려했다고 밝혔다. 전쟁 책임을 묻는 것은 과거 반성을 넘어 평화의 질서를 고민하는 과정이며 이것이 바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일임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여성 대상 성폭력 문제를 공유하며, 국가 간 권력 차이와 지역 간 차별이 여성들에게 구조적 폭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알렸다.
■ 지역 공동체 응답 사례로 ‘가와사키 사쿠라모토’ 주목

협의회 참가자들은 둘째 날 가와사키 사쿠라모토 지역을 방문해 재일대한기독교회 가와사키 교회와 사회복지법인 세이큐사를 중심으로 재일한국인 공동체가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워온 과정을 직접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이후 외국인으로 지위가 바뀌어 법적 권리를 박탈당한 재일한국인들이 취업 차별과 사회보장 배제 속에서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야 했던 과거를 공유했다. 이에 사쿠라모토 지역 공동체는 행정 차별 철폐와 정체성 보존을 위한 ‘생활권 운동’을 전개하며 지역 복지의 근간을 세워왔다고 전했다.
이러한 실천은 혐오에 맞선 평화운동으로 확장되었다. ‘도라지회’ 할머니들의 반전 시위 이후, 사쿠라모토 지역을 표적으로 삼은 혐오 발언 시위에 맞서 일본 국적의 청년들이 길거리에 누워 진입을 저지하는 등 공동체적 저항이 일어났다. 한 재일교포 여성은 혐오 발언 시위대에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와서 밥 먹자”라고 말하며 평화와 환대의 제스처를 보였다. 이러한 지역 기반 연대는 일본 상원의 차별철폐법 제정과 실질적 처벌 조항을 포함한 가와사키시 조례 제정으로 이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 YWCA, 지역사회 기반 ‘안전한 공간’ 사례 공유
셋째 날 양국YWCA는 청소년과 청년을 위해 지역에서 만들어가는 ‘안전한 공간’ 실천 사례들을 공유했다. 한국YWCA는 청년부회장, 청년이사제도를 통해 의사결정에 청년이 참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 사례를 소개했고, Y-틴 드림십 청소년국제교류 활동, 키다리학교 등 청소년·청년이 자기 주도성을 실현하는 사례를 공유했다. 일본YWCA는 교토, 나고야 등 여러 지역 YWCA에서 운영 중인 여성 청년 자립지원 홈과 일본어가 모국어가 아닌 어린이를 위한 학습 교실, 여성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카페와 키친 등을 사례로 들었다.
양국 YWCA는 청소년·청년 중심 공공도서관 ‘라이브러리 티티섬’과 위기 여성 청년과 함께하는 ‘BOND 프로젝트’ 사례를 모범 사례로 소개했다. 티티섬은 청소년의 감각과 경험을 존중하는 공간이자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또래와 연결되는 새로운 실험이다. BOND 프로젝트는 약물 과다 복용, 성착취, 주거 불안 등 위기 상황에 놓인 여성들을 동 세대 여성들이 SNS와 거리에서 직접 찾아 개별 상황에 맞는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 “여성 청소년과 청년이 자기다운 삶과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천과 협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양국 YWCA 활동가들은 이번 협의회와 현장 탐방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한 공간이 단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존엄과 연대가 살아있는 사회적 실천임을 확인하고 공동 행동을 결의했다. 향후 여성 청소년과 청년의 고통을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알리는 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협의회에서 참가자들은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향한 시민사회의 연대를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이들의 결의는 단순한 선언을 넘어, 각자의 지역과 일상에서 시작될 새로운 실천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고 분석된다.
“한·일YWCA협의회는 협의를 통해 여성 청소년과 청년이 자기다운 삶과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천과 협력을 지속해 나갈 것임을 결의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