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필드

노동·인권 전문지

삼성생명, 이사회가 OK하면 고객 돈 4,300억 집행…‘깜깜이 펀드’ 실태

삼성생명 서초사옥 전경.
삼성생명 서초사옥 전경.

삼성생명이 고객자산을 투자처조차 확정되지 않은 펀드에 수천억 원 규모로 집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본지가 확보한 공시자료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2025년 3월 이사회 승인을 거쳐 약 4,300억 원을 블라인드 재간접 펀드에 투입했다. 해당 펀드는 자산 구성조차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소비자에게는 어떠한 사전 설명이나 정보 제공도 없었다.

블라인드 펀드 구조는 대형 보험사와 연기금 등에서 오랜 기간 사용되어온 운용 방식이지만, 그만큼 투자 투명성과 설명 책임에 대한 문제는 반복 제기되어 왔다. 특히 생명보험과 같이 소비자가 수십 년에 걸쳐 납입하는 장기상품에서 이러한 ‘깜깜이 운용’이 이루어지는 구조는, 시대적 기준에 비춰보아 여전히 충분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블라인드 재간접 펀드’란?

블라인드 펀드는 투자 시점에 구체적 자산이 정해져 있지 않은 펀드로, 운용사가 나중에 투자 대상을 정한다. 여기에 재간접 구조까지 결합될 경우, 실제 최종 자산에 대한 통제권은 거의 사라지고 운용 정보는 여러 단계를 거치며 희석된다. 생명보험사는 책임준비금 운용의 효율성을 위해 이 구조를 활용하지만, 소비자에게는 설명조차 어려운 구조다.

■ 공시 하나로 4,300억…실제 투자처는 ‘불명’

2025.3.24 공시된 수익증권 투자 내역 / 자료=전자공시시스템
2025.3.24 공시된 수익증권 투자 내역 / 자료=전자공시시스템

삼성생명이 해당 구조로 투자한 사실은 2025년 3월 24일 공시에서 확인됐다. 삼성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삼성PD솔루션일반사모투자신탁 제2호’ 펀드에 신규로 4,341억 원이 집행됐으며, 해당 거래상대방인 삼성자산운용과의 전체 수익증권 거래 잔액은 7조 9,056억 원에 달했다.

이 수치는 삼성생명이 삼성자산운용을 통해 보유 중인 모든 수익증권과 펀드의 총 평가 금액을 의미한다. 즉, 삼성생명은 삼성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여러 개의 펀드에 고객자산을 반복적으로 위탁하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블라인드 재간접 구조로 구성돼 있다. 하나의 펀드에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구조인 만큼, 고객 입장에서 실질적인 자산 운용 내역을 파악하는 데는 큰 한계가 있다.

특히 ‘삼성PD솔루션 제2호’는 삼성생명이 직접 “블라인드 재간접 펀드”라고 밝힌 사례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제안서를 통해 섹터 범위는 파악한 뒤 투자하며, 구체적 자산은 향후 운용사 보고서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구조는 일반 저축성 보험, 연금보험 상품 등을 통해 유입된 고객 자산 중 일부가 사용되는 것으로 확인되며, 계약자 입장에서는 실제 투자처에 대한 사전 정보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 반복되는 유사 구조…공시 분석 결과 1.6조 원 규모 확인

본지가 추가로 확인한 2024년 12월부터 2025년 2월까지의 수익증권 관련 공시 자료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총 6건의 사모형·대체투자형 펀드에 반복적으로 투자한 정황이 드러났다. 사용자 제공 공시 파일 6건에서 확인된 집행액만 8,300억 원 이상이며, 2025년 3월 24일 공시 건을 포함하면 총 1조 6천억 원에 달한다. 대부분 삼성자산운용 또는 삼성SRA자산운용 등 계열사를 통해 위탁 운용되는 구조였으며, 일부 공시에는 운용 방식이나 투자처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 ‘블라인드 또는 유사 구조로 추정’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삼성PD솔루션 제2호’ 외의 펀드에 대해 삼성생명이 블라인드 구조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 고객자산 규모 및 투자 비중 현황

삼성생명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24년 말 기준 사업보고서(2025.3.12 공시)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고객으로부터 보험료 형태로 받은 돈 중 회사가 직접 운용하는 자산(일반계정 자산)은 총 308조 7,893억 원이다. 이 중 실제로 투자·운용에 쓰이는 자산(운용자산 총계)은 243조 3,163억 원 규모다. 그 구성은 유가증권 194조 6,257억 원, 대출채권 37조 6,194억 원, 부동산 등 유형자산 4조 6,579억 원으로 나타났다.

유가증권 내에는 채권과 주식 외에 수익증권·신탁형태 자산이 포함되며, 이들 세부 구성은 사업보고서 개별 항목에는 명시되지 않지만, 유사 구조로 구성된 공시 내역과 계열사 펀드 투자 건수를 감안하면 펀드·신탁 형태로 운용되는 자산도 상당할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공시 내용과 통화 확인을 통해 구조적 특성이 명확히 파악된 사례는 ‘삼성PD솔루션 제2호’가 대표적이다.

■ 총수일가 연관 우려는 부인…구조적 감시는 여전히 불가능

일각에서는 블라인드 구조 특성상, 간접적으로 총수일가 관련 자산에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비상장 부동산, 해외 프로젝트, SPC 등은 구조적 검증이 어려워 투명성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 측은 이를 명확히 부인했다. 회사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제안서 검토와 내부 심사를 거쳐 이사회가 승인한 구조이며, 실제 자산은 글로벌 전문 운용사를 통해 분산 투자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삼성생명 관계자는 “총수일가와의 연관성은 전혀 없으며, 금융감독원 정기 감사 과정에서도 해당 유형의 투자에 대해 지적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구조상 실제 최종 자산이 공개되지 않고, 여러 단계를 거쳐 위탁되는 구조인 만큼, 외부 감시자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검증이 어렵다는 점은 여전히 남는다.

■ 제도적 공백, 소비자 알 권리 강화 논의 시급

블라인드 펀드 자체는 수년 전부터 연기금, 보험사 등에서 광범위하게 운용되고 있으며, 법적으로 금지된 구조는 아니다. 그러나 삼성생명 사례는 보험사가 ‘내부 절차’만으로 수천억 원의 고객자산을 투자처도 정해지지 않은 펀드에 집행하고, 소비자는 그 사실조차 모른 채 장기 상품을 유지해야 하는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행 법제도 하에서는 보험사가 고객자산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설명할 의무가 없고, 투자설명서나 펀드 정보 역시 소비자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투자처에 대한 투명성 부족, 수익률 변동 시 책임소재 불명확성, 장기 상품의 설명 불충분 문제가 중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업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사례

블라인드 재간접 펀드처럼 투자처가 사전에 확정되지 않은 구조는 삼성생명 사례에서처럼 수천억 원 규모의 고객자산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집행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한다. 이 구조는 삼성생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험업계 전반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운용 관행이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를 낳는다.

단일 공시로도 4,300억 원 규모의 자금 운용이 확인됐고, 본지가 확인한 공시 자료 기준 유사 구조 투자만 약 1조 6천억 원에 달한다. 이처럼 대규모 자산이 투자처조차 명확히 공유되지 않은 채 집행되는 구조는 투자 투명성과 소비자 설명 책임, 외부 감시 체계 전반의 개선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LEAVE A RESPONSE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