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지산업협회, 성추행 임원 2억원대 퇴직금에 재임용 시도까지
그동안 산업부 감사 한번 안 받은 ‘복마전’ 한국전지산업협회
지난 5월 내부고발로 직장 내 괴롭힘, 성추행 알려져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시정지시, 권고사항 이행지시 받아
문제 일으킨 임원진은 그동안 무리한 분원 확장으로 직원들 퇴직금도 못 챙겨줄 경영난 초래
구자근 의원,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협회를 내적으로 곪게 만들어”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 온 등 이차전지 산업을 주도하는 회원사를 두고 있는 한국전지산업협회가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경북 구미시갑,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은 한국전지산업협회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공개하며 “한국전지산업협회는 직장 내 괴롭힘, 회전문 인사, 부실한 경영까지 문자 그대로 ‘복마전’ 양상”이라며 비판했다.
■ 직장 내 괴롭힘으로 결국 퇴사.. 가해자에 2억원대 퇴직금 주고 전문위원으로 복귀 가능여부 까지 확인해
구자근 의원실로 제출된 내부 자료와 근로감독관 등의 진술에 따르면, 협회의 전무이사로 재직한 구 모 총괄본부장은 2018년 회사 워크숍 중 부하직원의 뺨을 때리고, 같은 팀 여직원을 성추행했다. 이 사건은 협회 내부의 조직적인 함구 분위기와 은폐시도로 묻혀졌다가 내부고발을 통해 시작된 외부 노무법인의 조사로 사실로 밝혀졌다.
협회는 가해자에 대한 중징계 요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징계절차 전 제출한 사직서를 수리했고, 가해자는 이를 통해 2억 6천만원에 달하는 퇴직금을 수령했다. 이 과정에서 협회는 법률자문을 의뢰해 ▴본부장이 사직서를 제출시 수리해도 문제가 없는지, ▴상근임원 해임 후 연구전문위원 등으로 위촉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등 사실상 가해자를 두둔하고 심지어 재임용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한번이라고 경험했다는 답변, 무려 ‘48.8%’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협회에 대한 근로감독을 시행해 근로기준법 제43조 연장근로수당 일부 미지급, 동법 제74조 임신 중의 여성 근로자 시간 외 근로 등 총 5가지 법조항 위반사항을 지적하며 시정지시서를 발송했다. 또한 이후 전 직원 및 최근 1년 이내 퇴사자를 대상으로 조직문화 설문조사를 시행해 협회 내부에 직장내 괴롭힘이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시정권고를 내렸다.
조직문화 설문조사결과, 협회 직원들이 “지난 1년간 직장내 괴롭힘을 한번이라도 경험하였다”고 답변한 비율은 전체의 48.8%였고, 심지어 “욕설을 듣거나 위협적인 말을 들었다”고 답한 직원도 16.3%에 이르렀다. 괴롭힘의 가해자(복수응답)는 간부/임원이 100%였고, 이어서 직속 상사(54.5%), 선임직원(45.5%) 순이었다. 또한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직원들은 대부분 혼자 참는다(77.8%)라고 답변했는데, 그 이유로 대응해봤자 해결이 안되기 때문(58.3%), 회사 내 가해자의 영향력 때문(33.3%)라고 덧붙였다.
■ 고인물 임원진의 경영성과는 ‘F’, 하지만 산업부 감사는 ‘0건’
문제를 일으킨 구 모 본부장이 협회 근속기간만 10년이 넘는 등 오랜기간 협회의 자리를 지킨 임원진들은 비단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조직문화만 자리잡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임원진들은 최근 5년간 제주, 나주, 광주, 광양까지 제주·전라도에만 4개의 분원을 설립하는 등 확장을 서둘렀다. 이 때문에 2018년도 1억6천만원 정도였던 협회의 부채는 올 6월 11억 9천 8백만원까지 약 7.25배 증가했고, 같은 기간동안 직원들의 퇴직금 재원으로 확보되어야 할 퇴직연금 적립액은 법정 최소적립비율인 90%에 약 13.6% 모자란 76.4%까지 부족하게 되었다. 매년 12억원에 달하는 협회 회원사들의 회비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확장으로 협회 사무국 운영에도 차질이 예상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편 제주·전라 지역에만 쏠린 분원의 설치 등 기형적인 협회 운영도 비판을 받고 있다. 정순남 상근부회장은 전 지식경제부 지역경제정책관, 등을 역임한 산업부 전관 출신이나, 지난 2018년 고향인 전라남도 나주시장에 나서려고 더불어민주당 공천경선에 도전하나 현직 시장에 밀려 탈락한 후 그해 협회 상근 부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쪽으로 쏠린 분원 확장의 이유가 상근부회장의 출신이력 때문이 아니냐고 분석하고 있다.
이렇게 직장 내 괴롭힘과 방만한 경영이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감독 의무가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는 감사를 단 한차례도 시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및 그 소속 청장 소관 비영리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 제8조(법인 사무의 검사·감독)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협회의 관리 감독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협회의 자율적인 운영에만 힘을 실어주었다. 심지어 구자근 의원실이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관련 사안들을 확인하자(10.2) 산업부는 제출 자료를 통해 노무 법인에 의뢰한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입찰비리 의심 제보가 있었음을 구두로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구자근 의원은 “IRA 대응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협회가 이렇게까지 ‘복마전’ 양상을 띄게 된 것은 ‘아무도 나를 감시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도록 만든 산업부의 업무태만 때문이었다”고 비판하며, “철저한 감사를 통해 가해자가 응당한 처벌을 받고, 협회가 정상화 될 수 있도록 건실한 경영관리를 이끌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