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쉴 수 없는 건설노동자… “원인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
폭우, 폭염 그리고 코로나까지 건설노동자들은 3중고를 겪고 있다. 당장 역대급 장마가 쏟아지던 지난 7월 한달간 건설노동자들은 평소의 반도 일을 하지 못했다.
반면, 건설노동자들이 폭염 등을 비롯한 안전 규정대로 일할 것을 요구하면 현장의 반응은 “지킬 것 지키면 공사 못한다” “당신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다” “내일부터 나오지마라” 등이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폭염특보 발령 시 야외작업 노동자들이 1시간 주기로 10~15분 이상씩 규칙적으로 쉴 수 있게 한 ‘열사병 예방 3대 기본 수칙’을 마련해놨다.
예를 들어 폭염주의보(33도 이상)가 발령되면 매 시간당 10분씩, 폭염경보(35도 이상) 발령 시에는 15분씩 노동자의 휴식 시간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실제 건설현장에서는 폭염특보 발령시 노동부 기본 수칙에 따라 규칙적으로 쉬는 현장은 열 군데 중 두 군데(24.77%)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463명을 상대로 실시한 폭염기 건설현장 설문조사 결과 이같이 조사됐다.
폭염 경보시 가장 더운 시간대인 오후 2~5시 긴급작업을 제외하고는 작업을 중단 또는 단축하도록 돼 있는데, 건설노동자 10명 중 8명(83.1%)은 폭염이어도 작업을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노조 설문 결과, 충분히 쉴 곳이 마련돼 있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하다. 그늘막은 없고(41.5%), 손 씻을 곳도 마땅찮은(76%) 실정이다.
건설노동자들은 폭염기 대책으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등 폭염 관련 제도를 제대로 이행 ▲출근 시간을 1~2시간 당기고 무더위 시간을 피해 일찍 퇴근 등을 꼽았다.
이들은 폭염 관련 요구와 고용노동부 대책이 실현되려면 폭염 등 재난에 대비해 적정 공사기간 및 공사비용 산정과 추가 공사시 발주처가 공사비 부담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적정 공사기간과 적정 공사비가 보장돼야 건설노동자 역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실질적으로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현장에 불법임에도 관행으로 굳어버린 불법다단계하도급(건설산업기본법으로 재하도급 금지) 때문에 적정공사비와 적정공사기간을 확보할 수 없는 현실이다.
20일 오후 1시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이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건설현장 폭염 실태 폭로 및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30년 이상 경력의 용접공 서재훈 씨는 “저희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청, 하청, 다단계 하도급 작업 현장 구조는 노동자들의 쉴틈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늘 맨밑바닥 관리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며 “다단계 하도급을 중단하고 노동자들이 제대로 쉴 수 있는 환경, 알아서 일을 해도 훌륭한 물량이 나오는 현장으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단가가 약해 죽는 것이 아니라 뜯어먹는 곳이 많아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최근 다단계 하도급으로 근로자 임금이 깎이지 않도록 ‘적정임금제’를 정부의 공공건설 사업에 적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건설 노동자 고용 개선 5개년 계획(2020~2024년)’에는 다단계 도급 과정에서 건설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지 않고 직종별로 시중노임단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적정임금제 제도화 내용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