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필드

노동·인권 전문지

토지공개념, 토지를 ‘삶의 기반’으로 되돌리는 것

김진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노무법인 벽성 대표)

전한 시대의 사마천은 ‘천금을 가진 부잣집 자식은 저잣거리에서 죽는 법이 없다.’며 인간 세태를 꼬집었다. 그는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 배의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며 천금의 위력을 풍자하기도 했다. 생산력이 충분치 못했던 사마천 시대(기원전)다. 부자의 토지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부’는 단순한 소유를 넘어 지배의 수단이었음을 간파한 것일까?

그 사마천의 통찰력이 빗나간 사건이 있었다. 가진 거라곤 작은 사업장이 전부인 한 자영업자(궁중족발 사업자)가 건물주인 임대인과의 갈등 끝에 망치를 휘두르다 살인 혐의로 법정까지 가게 된 것이다. 사마천의 만 배 법칙을 적용해보자면 이들은 노예와 주인과 같은 관계다. 생존의 다급함 앞에서는 만 배의 법칙도 소용이 없었던 것일까?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격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나타나는 본능적 행위다.

부자의 주위를 배회하는 진짜 노예들

궁지에 몰릴 일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본의 노예를 자처하는 경우도 익숙한 뉴스거리다. 불법파견을 알고도 조직적으로 은폐해주는 노동부 관료들, 고의적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나서서 삼성을 변호하는 학자들, 재벌기업의 노조파괴와 관련한 각종 유착 관계, 암묵적으로 지원하고 변호하는 사법·행정부 사람들, 이들은 자신의 굴종을 넘어 국가가 부여한 권력이나 사회적 명예와 영향력까지 동원한다. 그 대가로 사익(돈이나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이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일까? 뭔가 상호작용이 있어 가능한 굴종이다. 진정한 만 배 부자의 위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더 이상 주고받을 게 없는 빈궁한 자영업자야 쫓아내는 게 상책이었을 것이다. 권력을 등에 업은 관료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시켜가며 부자를 위한 역할을 이토록 충실히 수행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폭력과 조아림의 두 극단적인 행태가 교차하는 요즘, 살만한 여건임에도 부자의 노예를 자처하며 굴종을 택하는 이유가 여전히 궁금하기는 하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돈의 위력이 어떻게 발휘되는지는 늘 보고 있는 터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나라의 최고책임자도 내놓고 돈 모으기에 혈안이 되지 않았던가. 권력은 유한해도 돈의 위력은 영원하기 때문일까? 실제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없는 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다. 불법행위를 감독하고 처벌해야할 국가의 관리들조차 자신의 역할을 내팽개친 채 삼성 돕기에 앞장서지 않는가. 국민의 돈인 국민연금까지도 내놓고 재벌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돕는 데 활용하는 충실한 관료들이다. 그 많은 연금 손실금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

이처럼 돈은 국정 시스템까지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부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이와 같은 비상식적 행태는 더욱 확대되어 상식인양 행세한다. 잠시 사람들을 분노하게 할 뿐 어느새 순응하거나 그 대열에 가담하게 만드는 사회다. 무섭다. 비상식도 상식인양 받아들이게 하는 양극화 사회, 과연 그 양극화를 주도하는 주범은 무엇일까? 바로 토지다. 양극화 문제는 토지로 시작해 토지로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토지를 빼앗긴 자본의 노동자

인간은 본래 토지에서 태어나 토지의 생산물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토지에서 밀려나 도시 변두리의 작은 집, 그것도 내 소유가 아닌 타인의 집을 빌려서 살기 시작한다. 인간으로 두 발 딛고 잠자고 먹을 최소한의 땅조차 모두 누군가에게 빼앗긴 상태다. 기웃기웃 땅 주인의 눈치를 보며 시작된 더부살이다. 우리 사회의 생산능력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다. 총 생산력으로 따지자면, 사마천 시대처럼 굶거나 생존을 걱정할 일이 전혀 없는, 오히려 풍족한 시대다. 그럼에도 여전히 빈자와 부자가 존재하고, 이들 간의 지배관계도 존속한다. 자본의 회전으로 부를 창출하는 자본가가 노동으로 먹고 사는 노동자를 지배하는 구조, 산업화와 함께 자본이 생산력을 독점하게 되면서 시작된 새로운 지배구조다.

기업화, 분업화로 생산 수단을 내준 사람들은 기업에서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대가로 돈(임금)을 받게 되고서야 비로소 기업이 생산한 생필품도 구입할 수 있다. 자립 생존을 위한 생산 수단(토지) 대신 추상적 가치(돈)가 주어지는 셈이다. 자신들이 생산한 생필품이지만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고서야 이를 구매할 수 있다. 즉 생존에 필요한 모든 양식이 기업으로부터 나오고 기업이 나를 구제(고용)해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다. 게다가 임금으로 받은 돈은 실물이 아니니 생존을 감당해줄 수준인지도 늘 의문이고 불안하다. 이런 불안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자본, 그리고 불확실성으로 더욱 자본에 의지하게 되는 노동, 그래서 자본의 그늘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고착화된 환경, 그것이 토지에서 내쫓긴 인간 삶의 현실이다. 현대판 노예 시스템이라고 해야 할까.

노동은 한 발 더 나아가 주체적으로 경쟁하며 성과까지 내는 단계에 왔다. 물질적 풍요가 가속화할수록 기본적 소비를 넘어 불필요한 과잉 소비 단계로 이행된 결과다. 과잉 소비를 하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니, 결국 과잉 노동과 경쟁을 해야 한다. 직장에서건 직장 밖에서건 그들은 항상 누군가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자기개발에, 커리어 관리까지 능동적으로 나서게 된다. 이미 소비도 경쟁적인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과잉 노동, 과잉 경쟁의 착취에서 오는 ‘부’는 대부분 자본의 몫이다. 그야말로 자본이 원하는 완전한 시스템이다. 국가가 개입해 극도의 경쟁 체제를 어느 정도 규율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국가는 천하무적의 자본 논리를 제어할 유일한 수단이다.

다시 토지로 벌어들이는 ‘자본의 불로소득’

이렇게 자본의 논리로 구축해 온 우리 사회 양극화 바람의 정점에는 다시 부동산이 자리를 잡고 있다.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불로소득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자본은 노동력 착취 외에도 빌딩과 땅 등 부동산을 통해서도 이미 불로소득을 누려왔다. 부동산 가치의 상승으로 축적되는 부의 대물림은 어제 오늘일 아니지만 요즘은 아예 건물 임대업이 가업 승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고용의 기회를 잃고 궁여지책으로 자영업자가 된 5백만이 넘는 영세 상인들의 노동력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의 비율이 미국의 4배, 독일과 일본의 2.5배로 심각한 수준(25.4%)이니 건물 임대업의 기반으로 손색없는 시장인 것이다(미국 6.3%, 스웨덴 9.8%, 독일 10.2%, 일본 10.4%, 프랑스 11.6%). 건물 수십 채, 수백억대 이상 부자들의 임차인을 향한 임대료 폭탄, 상권 빼앗기, 각종 갑질 등 사례들은 잔인할 정도다. 만 배 부자의 알량한 아량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가진 것 없는 자영업자의 생존 기반은 무너진 채 또 다시 밀려나게 되고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할만한 새 임차인으로 교체된다. 결국 임대료 상승과 함께 건물 가치도 동반 상승하면서 양극화는 고공행진이다. 도대체 그 끝이 어디쯤인지 궁금할 정도다.

부동산(주택, 빌딩 등) 폭등과 건물 임대 행위로 인한 불로소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 활동 없이도 소득을 올리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고리대금이 연상되는 불로소득이지만 지탄하기보다 부러워하는 사회 정서, 이런 나라에서 당연히 미래는 어둡다. 달랑 집 한 채 가진 일반 서민들까지 그 부동산 투기 대열에 합류시키며 부동산 가격의 급등을 주도하는 기세도 등등하다. 결국 만 배 부자만 남을 뿐 모두가 죽는 길임을 잊은 채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면서 온 국민이 투기 열풍에 열공 중이다.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의 마지막 고혈까지 빨아들이는 형국이라면 과한 걸까.

성공이 아닌 ‘삶을 위한 노동’을 하자

과연 사마천의 통찰력은 2천년을 관통하는 진리였던가, 감탄할 일이다. 그렇다고 민주주의, 인권을 말하고 있는 우리가 그의 통찰력에 감탄만 연발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그의 통찰력은 지향할 목표를 분명히 할 이정표쯤으로 삼자. 그의 통찰력이 빗나가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양극화의 주범인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바로 노동력 착취 구조와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 문제다. 둘 다 인간의 노동력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고질적인 문제다.

우리는 모두를 경쟁하게 만드는 노동력 착취 구조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노동력 착취는 소비 구조와 맞물려 있다. 연중무휴 쇼핑몰, 총알 배송 전쟁, 과도한 소비 경쟁, 이젠 이런 문화의 진짜 실체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는 편리한 소비 패턴이 당장은 달콤하지만, 그 편리함 뒤의 희생자는 결국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도 어딘가에서 이처럼 연중무휴의 경쟁적 노동착취를 감당해야만 사회 전반의 편리함이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시급하다.

저임금, 야근, 경쟁 등 불합리한 노동착취 구조가 우리 사회의 전반에 깔려 있다. 바로 자본이 만든 생산과 소비 구조인 것이다. 그 자본의 구조를 이해해야만 새로운 구조로의 개선도 가능할 것이다. 극단적 경쟁 질서에서 승자의 이미지도 어쩌면 자본이 만든 허상 아닌가. 가만 생각해보면, 왜 우리가 꼭 이겨야 하는 건지 곱씹어볼 일이다.

토지는 ‘생존 기반’과 ‘생산 활동의 기반’으로 되돌려줘야

다음은 불로소득의 주범이 돼버린 토지를 본래의 기능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생산의 3대 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이다. 이 중 자본은 생산 시설을 돌릴 수 있는 기본 설비와 원자재 매입에 들어가는 돈이다. 노동은 원자재를 가공하는 능력이다. 토지는 이런 활동을 할 공간 개념(자연에서 나는 생산물과 자연 자원을 포함)의 기반이다. 인간도 토지에서 태어나 토지에서 자라나는 자연 생산물을 먹으며 생존을 한다. 토지는 그야말로 인간이 두 발 딛고서 먹고, 자고, 양식을 해결하는 기반이다. 토지 없는 인간을 생각할 수 없듯이 토지는 완전한 실존의 기반이자 가치다. 자본은 반복되는 생산과 소비의 과정에서 형성된 부가가치, 즉 화폐라는 추상적 가치이지만 토지는 다르다. 인간이 생존할 장소이자 생존할 양식을 공급받는 곳이다. 아무리 공공성을 강조해도 부족한 이유 아닌가.

나라가 온통 부동산으로 들썩이고 있다. 인간이 살면서 누려야할 모든 가치들은 실종된 채 오직 내 집값이 얼마가 되는지, 얼마여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비싼 집을 소유할 수 있는지, 온통 여기에 몰두해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고 집값이 안정되기만을 기다리던 세입자들은 땅을 치고, 임대료 폭탄으로 길거리에 나 앉게 된 궁중족발 사장님은 급기야 건물 주인에게 망치를 들고야 말았다. 천문학적인 가상의 가치로 부풀려진 부동산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삶의 시선이 오직 이 부동산 가격의 등락에 멈춰버린, 그래서 언제 길거리로 나 앉게 될지, 언제 범죄자가 될지도 모르는 우울한 세상이다. 부동산이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게 하는 거대한 신처럼 돼버린 것이다.

이제 되돌려야 한다. 토지(부동산)가 자본의 배를 불리는 도구여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괴물처럼 되었지만 실은 그 토지에서 우리는 태어났다. 어마어마한 가치로만 상상되는 그런 부동산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소생하고 사멸해가는 그 흙, 바로 그 땅으로서의 부동산이어야 한다.

보유세, 임대료 상한 규제가 단기 처방으로 그쳐서는 해결될 수 없다. 토지공개념의 현실화를 집값 잡는 수단 정도로 인식해서도 곤란하다. 이번 9.13 대책이 강도 높은 규제라고 말하지만 수억대의 가치 상승에 많아야 수백만 원의 종부세 인상 정도로 불로소득의 욕망을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 여부와 상관없이 토지에서 비롯되는 불로소득은 공익 목적에 사용해야 한다는 일반 원리에 따라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토지 공개념의 핵심이다(한겨레, 9.12). 지금의 부동산 대책이 일시적인 ‘집값 잡기’가 아닌 ‘삶의 기반 되찾기’에 초점이 맞춰진 대책인지부터 꼼꼼히 살펴볼 일이다.

17세기 프랑스의 문필가 라 로슈푸코는 ‘부를 멸시하는 사람은 매우 많으나 부를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빈자가 스스로 부자의 노예를 자처하는 것은 결코 부를 나누어줄 줄 모르는 부자의 속성을 에둘러 이해한 때문일까? 서민들 삶의 최소한의 기반이 되는 공공재 관리에 국가가 만전을 기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더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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