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에게도 따뜻한 명절이 오길
설 명절이 지났다. 이제야 한숨을 돌린다. ‘아직도 취업 못했니?’, ‘결혼은 언제 할래?’, ‘연봉은 얼마니?’ 등등,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묻는 척하며 비수를 꽂는 각종 질문들을 쏟아내던 친척들과 헤어질 시간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되어 버린 명절의 만남
할머니, 할아버지, 큰 집, 작은 집 등 친척들이 몇 달에 한번 얼굴을 보는 명절들이 청년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지 오래다. ‘고용 절벽’이라 불리는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그나마 찾은 직장조차도 자랑스레 얘기하기에는 불안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결혼은커녕 연애도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친척들에게 걱정거리(라고 포장된 사실상 안줏거리)를 제공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온라인 취업 포털 ‘사람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 명절 최대의 스트레스로 ‘잔소리, 불편한 친척과의 만남’ 등 정신적 부담이 1위를 차지했다. 세뱃돈에 대한 금전적 부담이나 며느리 증후군이라 불릴 만큼 고된 음식 준비, 손님맞이, 차례 준비 등 명절 노동보다 모처럼 즐거워야 할 친척과의 만남이 가장 큰 스트레스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친척들의 잔소리를 센스 있게 극복한다는 ‘잔소리 대처법’, 잔소리와 눈칫밥으로부터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명절 대피소’까지 등장했다. 잔소리 때문에 고향에 가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팍팍한 취업난이 명절날 가족과 친척들 간의 정까지 메마르게 만드는 모양새다.
끔찍한 청년 취업난의 실태
그러나 명절날 잔칫상의 안줏거리 정도로 삼기에는 우리나라 청년 취업난의 심각성은 상상초월이다. 정부의 공식 실업률 통계에 따르면 15세~29세 청년 실업률은 2016년 현재 9.8%이다. 정부의 공식 실업률 지표가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청년들을 실업자 수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실업자를 제한적으로 정의함으로써 많은 취업 준비생, 공무원 시험 준비생 등을 제외시켜 과소추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년째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역대 최고를 또 다시 갱신한 것이다.
따라서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고용한파의 바람은 더 매섭다. 정부는 체감 실업률을 나타내는 ‘고용보조지표3’을 연령별로 추계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정부의 공식적인 청년 체감 실업률은 알기 어렵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 8월 기준으로 34.2%에 달한다고 한다. 2016년 공식 실업률이 높아졌음을 고려하면 체감실업률 수치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적어도 청년 3명 중 1명은 실업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이 극명히 드러난다.
청년들의 구직 현황을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직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고용률 지표를 사용한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청년 고용률은 42%로 청년층의 절반도 고용되어 있지 않다. 이는 OECD 35개 국가 중 30위로 국제 비교에서도 상황이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청년 실업이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라고 해도 우리나라 청년들이 유독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년 취업난의 진짜 원인
도대체 우리나라 청년들이 취업난으로 유난히 더 심하게 고통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간 쌓여온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노동·교육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이 이제 막 사회적 출발점에 서서 새로운 주체로 진입하려는 청년층과 맞닥뜨리면서 충돌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즉, 청년 일자리 문제는 단지 청년층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우리 사회의 모순이 극단적으로 폭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시장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극소수에 불과하다.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한 일자리이다. 즉, 노동시간 대비 적절한 임금과 안정적인 노동조건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공무원이나 공기업 등의 공공기관이 선호되는데, 문제는 이런 일자리의 수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공부문 일자리의 비중은 7.6%로 OECD 평균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적은 일자리 수는 치열한 경쟁과 다수의 패배자를 만들어 낸다. 2016년 10월 지방직 공무원 7급 공채 경쟁률은 122대 1에 달했고, 공기업의 경우 최대 264대 1을 기록했다. 극소수만이 관문을 통과하고 나머지는 계속해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취업 준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민간부문은 더 암울하다.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나날이 악화되어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53.5%)에 그친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과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무려 3배까지 벌어졌다. 복지 격차도 마찬가지다. 정규직은 거의 100% 사회보험이 보장되지만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10년째 30%대에 머물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10명 중 고작 2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꽉 막힌 사회에서 청년들은 시간과 돈, 노력을 더 투자해서 대기업 정규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을 갖고 버틴다.
셋째, 사회안전망이 매우 부실하다. 우리나라 사립대 등록금 평균은 2015년 기준 연평균 667만 원이다. 국가장학금 수혜자 비율이 40%에 불과한 상황에서 절반 이상의 대학생들이 스스로 등록금을 충당해야 한다. 주거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공공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들은 10명 중 1~2명이며, 나머지는 약 40~50만 원의 월세도 부담해야 한다. 취업을 위한 토익, 자격증 응시료, 원서 접수비, 학원비까지 포함하면 입학에서 졸업까지 평균 8,510만 원이 필요하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시기에 져야 하는 이런 부담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갚아야 하는 빚이 되고, 이것이 직장을 구할 때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이 중요한 조건이 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넷째, 교육 및 사회 시스템이 개인의 흥미와 적성을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학벌 중심주의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입시 위주로 짜인 교육과정은 청년들에게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시간 낭비’로 보고 막아버렸다. 게다가 스스로 깨우치고, 이것을 발전시켜 직업으로 삼더라도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제반 조건이 보장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렵기 때문에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즉, 교육 및 사회 제도와 그것의 영향을 받은 주관적 판단이 일자리를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일자리를 찾는 데 있어서 임금과 노동조건 등 외부적 요소가 주요 판단기준이 되면서 한정된 양질의 일자리를 놓고 끝없이 경쟁하게 돼 버렸다.
청년 취업난을 극복할 정책 방향과 대안
앞서 살펴보았듯이 청년 일자리 문제는 단순히 노동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 시스템의 문제이다. 그래서 대안 역시 모든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의 노동, 교육, 기타 사회적 제도들은 사회의 출발선에 서 있는 청년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청년 실업의 끔찍한 현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 정책은 단지 ‘실업률과 고용률’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청년들을 인턴, 영세중소기업, 해외 저임금 취업 등 단기·저임금 일자리로 몰아넣으려고 한다. 일자리의 질은 어떻든 일단 ‘일은 하고 있는’ 상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청년 실업 문제가 왜 이렇게 발생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정책적 행동이다. 그 결과 매년 1~2조 원씩 예산은 몽땅 투입되는 데 청년 실업률은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따라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런 복합적인 상황에 대해 총체적인 이해가 선행된 후에 각 원인별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먼저 양질의 일자리 수를 절대적으로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공공부문 일자리 수는 OECD의 1/3 수준이기 때문에 조금 더 늘릴 여지가 있다. 특히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소방, 경찰, 사회복지,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 공공서비스와 사회서비스 부문에 재원을 적극 투입하여 일자리의 수를 늘리고 노동조건을 개선하여 질적 수준도 동시에 개선해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고 일자리의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지금 6,470원인 최저임금을 현실화하여 7~8천 원의 생활임금 수준으로 올려 임금의 격차를 줄이고 기업복지의 영역을 공공복지로 흡수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복지 격차를 극복해야 한다. 인턴과 같이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여러 비정규직을 축소하고 공공기관부터 인턴의 정규직 전환 의무를 준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또한 청년내일채움공제와 같은 청년·중소기업 지원 제도를 경쟁력 있는 유망 중소기업 위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개편하는 동시에 기한과 금액 등을 확대하여 유망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함으로써 중소기업과 청년이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산업 생태계의 개편도 필요하다.
사회안전망 확충 역시 필요하다. 가입 기간에 따라 노후에 받는 금액이 달라지는 국민연금의 경우, 취업이 늦어져 가입을 못하고 있는 미취업 청년들에게 보험료를 대납 혹은 선납해주거나 크레딧 제도를 활용하여 가입기간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실업급여의 기간을 늘리고 고용보험의 미가입자인 청년들에게 구직과의 연계될 수 있는 전문적인 서비스와 구직 기간 동안 생계의 어려움이 완화되도록 청년의 ‘고용’과 ‘소득’ 보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청년고용소득보장제도 또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논의해 봄 직하다. 일자리 안전망에 한정하기보다는 학업 과정에 있는 청년들이 학업과 미래를 위한 준비에 열중할 수 있도록 등록금 인하, 교통비·통신비 지원, 주거비 지원 등이 제공될 필요도 있다.
그리고 중앙정부의 차원에서 청년 범정부적 기구를 설립하여 다차원적인 관점에서 청년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부처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동시에 자문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한 청년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 청년 실업은 노동의 영역만이 아니라 노동, 주거, 교육, 사회복지 등 여러 차원의 문제이기에 범정부적 기구에서 청년 실업의 원인과 이에 대한 대책이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청년들이 휴일뿐만 아니라 명절 때에도 도서관이나 학원에서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취업을 못했냐고, 언제 시집·장가를 가려는지 걱정된다고 하는 걱정들이 이들을 위축시키고 고개 떨구게 만든다. 그렇잖아도 가정과 학교의 울타리로부터 벗어나 사회의 출발선에 홀로 서서 막막한 청년들이 명절 때라도 마음 놓고 가족의 따뜻한 품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