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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정치하는엄마들 “‘저출산 정책’ 용어부터 바꿔야 한다”

엄마들의 정치 참여를 도모하는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상희 부위원장을 만나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 대해 쓴 소리를 쏟아냈다.

정치하는엄마들 회원 8명은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 북카페에서 김 부위원장을 만나, 지난 6월 단체 출범 후 회원들 간의 토론으로 벼려왔던 정책 이슈들에 대해 거침없이 의견을 제시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노동 문제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양육 환경과 양육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선결돼야 할 제1 과제로 칼퇴근법 통과, 노동 시간 단축 등 노동 환경 개선을 꼽아왔다.

조성실 공동대표는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보육체계를 계속 바꾼대도 정책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고 저출산 문제 해결은 요원해질 것”이라며 “칼퇴근과 노동 시간 단축 등 노동 현안의 해결 없이는 엄마들이 행복한 삶의 질을 누릴 수 없고, 후배들 역시 아이 낳겠다는 결심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선영 활동가는 “조직의 규모나 직종,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며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도 의무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대대적으로 제도를 손질해 출산율을 반등시킨 독일의 정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고은 공동대표는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을 살펴보면 프리랜서와 탄력근무 등 다양한 형태로 노동을 이어 간다”며 “다양한 노동 형태를 인정하고 해당 기업에는 강한 인센티브, 양육자에게도 실질적 혜택이 주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섭 활동가는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취업성공 패키지 사업은 결과적으로 민간 사설학원을 지원하는 구조이고 재취업을 원하는 구직자를 지원하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이런 예산을 중소기업이나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재취업하고자 하는 여성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 정책에 이어 보육 정책에 대한 의견도 제기됐다.

백운희 활동가는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국공립 유치원 확대 첫해인데 벌써부터 삐걱대는 것 같다”며 “단계적으로 연차별 계획을 수립하고 약속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고은 공동대표는 “생애주기별로 보육 정책들이 많지만 이용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수요에 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이 적다”며 “아이돌봄 서비스처럼 좋은 정책도 많지만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기에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남매의 엄마인 김윤희 활동가는 “다자녀 가정을 위한 자녀장려금 제도가 있는데, 소득과 무관하게 전문 직종은 혜택을 못 받는다”며 “당사자가 필요한 제도의 혜택을 못 받는다는 것은 제도에 맹점이 많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노동과 보육 문제 외에도 아이 키우는 데 필요한 사회·문화적 인프라 확보가 절실함을 강조했다.

김윤희 활동가는 ‘마더 센터’ 등 양육자들의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집, 학생을 위한 학교, 노인을 위한 노인복지회관이 있지만 부모들을 위한 교육 기관이 없다”며 “부모들이 아이들을 잘 돌보는 방법, 육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방법, 아이 키우며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 등을 배울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성실 공동대표는 “아이 키우면서 가장 힘든 것은 공동체가 없다는 것”이라며 “큰 건물이 구 단위로 하나 있는 것보다 마을 단위로 점 조직 형태로 (커뮤니티 공간이) 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공간이 생기면 엄마들이 훨씬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선 모든 공공기관부터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부모 되는 법, 아이를 민주시민으로서 키우는 법 등 돌봄 과정에서 필요한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정수원 활동가는 “엄마가 되는 과정, 아이를 돌보는 일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며 “공교육 내에서 돌봄과 관련한 교육을 진행한다면 아이 키우는 일이 모두의 일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등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덕 활동가도 “부모들부터 아이를 어떤 존재로 바라봐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며 “민주시민으로서 우리에게 인권, 행복추구권 등 어떤 권리가 있는지 부모들부터 교육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문화를 개선하려면 공교육 내에서 성평등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김정덕 활동가는 “성평등 교육은 학교, 가정, 사회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며 “아이들이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도 (성평등 문화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희 부위원장은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특히 공감했다.

김 부위원장은 “남녀 관계,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성평등 교육과 부모 되는 교육, 아이는 엄마 아빠가 함께 키우는 것이라는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맘충’ 현상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조성실 공동대표는 “엄마가 되면서 순식간에 소수자가 되고 벌레가 된다”며 “부모권, 양육자 권리 등에 대한 인식이 낮은데 지금처럼 개인이 다 감당하는 형태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고은 공동대표는 “대학 4학년생이 맘충 관련 과제 때문에 찾아왔는데 20대 친구들이 결혼과 임신, 출산을 아예 미래에 ‘불가능한 일’처럼 여기기 때문에 무관심하다고 하더라”며 “청년 세대의 문제로 인해 인구 절벽은 더 가팔라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했다.

황선영 활동가는 “‘저출산’이라는 용어 자체가 과거 국가가 개입하여 인구감소 정책을 편 것처럼 국가가 개입해 인구를 조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용어”라며 “저출산 정책이 아니라 ‘가족 정책’의 틀 내에서 일하는 부모의 노동권은 물론, 부모가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부모권, 아이가 양질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아동권이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덕 활동가는 “‘저출산’이라는 용어가 여성의 출산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남성이 배제됨은 물론 인구감소의 다른 여러 사회적 원인을 고려치 않고 있다”며 “‘저출산’보다 ‘저인구화’로 개념을 바꾸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김상희 부위원장은 ‘저출산’이라는 용어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김 부위원장은 “출산율 몇 %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하고 선택하면 잘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사회의 의무”라며 “관점을 사람 중심, 사람의 행복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철학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고 이름이 바뀐다”며 “저출산이 여성의 역할만 강조하는 문제점이 있어서 인구 정책과 고령사회 등을 포괄하는 이름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문제 당사자들이 직접 정책 디자인에 참여하고 감시하는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고은 공동대표는 “엄마들이 조직화되기 어려운 것은 아이들의 생애주기에 따라 관심 사안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며 “현장의 의견을 바로 바로 수혈할 수 있는 정부 정책 수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성실 공동대표 역시 “정부 단위의 큰 기구에서 의견을 취합해 진행하는 것보다도 당사자들이 모니터링하고 심의하고 권한을 갖고 참여하는 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희 부위원장은 “좋다는 정책은 모두 입법을 해서 이미 있지만 재정이 작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실행해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면서 “재원 배분은 (정부 및 정치권의) 결단이 문제인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당사자들이 많이 움직이고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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