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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명심할 것들

이상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지난 5월 31일부터 전국동시 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가로변에는 현수막들이 걸리고, 골목마다 후보자들을 알리는 벽보들이 붙었다. 선거 공보물이 집집마다 배달될 것이고, 8일과 9일에는 사전 투표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광역 지자체장에 나온 후보들의 TV 토론방송은 시청률이 낮다. 각 지역의 판세를 분석하고 당 지도부와 후보자들의 동향을 중심으로 하는 선거보도도 국민의 관심에서 밀려나 있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북미정상회담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므로 뉴스의 전면을 차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4년간 우리의 삶을 좌우할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이렇게 무시돼도 좋다고 할 수는 없다.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챙겨보아야 할 지방선거의 이슈는 무엇일까? 광화문 촛불혁명을 시작으로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대한민국을 복지국가로 만드는 과정이 되기 위해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또 무엇인가? 우리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이 부분에 대해 냉정하고 차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거의 굳어진 선거판이 가지는 명암들

압도적인 지지율은 여권의 경우 당내 경선이 곧 당선으로 인식되면서 좋은 정책을 개발하고 준비된 공약으로 대결해야 할 정치적 필요성을 낮추고 말았다. 과거의 지방선거에서 등장했던 무상급식 같은 여야가 대결하는 뚜렷한 공약이나 전국적인 중심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야권은 이미 특정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패배가 예상되면서 네거티브 선거 전략을 쓰고 있다. 또 분열과 당내 갈등 등으로 야권이 지리멸렬한 양상을 보이는 것도 공약 대결이 없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가 지난해 5월의 대통령선거에 이어 또 하나의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바로 세워진 세월호의 참담한 잔해를 보면서 국민들은 또 다시 분노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을 매개로 사법부와 대통령 간의 거래를 시도한 증거들이 나오면서 암울하고 참혹했던 시기의 책임자들과 범법자들에 대한 단죄의 요구가 지방선거에서 야권 심판으로 반영되는 것은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여당인 민주당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를 얻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유리한 판세가 형성되는 데 안주하여 지방선거의 공약 개발과 정책 논쟁을 등한시 하는 것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그리고 선거 과정에서 다리를 건설하고 도로를 넓히는 일보다 지역 주민들의 구체적인 삶을 개선하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분명하게 선언하지 않으면 실제로 선거 이후 추진이 불가능해진다. 이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홈페이지에 게제 된 각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해보면 과연 민선 7기가 지난 24년의 지방정부들과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중앙정권의 교체에 이어 지방정권의 교체를 내세우고 있는 민주당은 구체적으로 지방정권을 바꾸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전 지방자치 단체장이나 의원들의 적폐를 비판하거나 없애겠다는 구호를 넘어, 지방정부의 정권교체를 통해 무엇을 바꾸고 새롭게 할 것인지를 구체적인 공약으로 밝혀야 한다. 높은 대통령 지지도에 안주해 선거를 치르면 선거에서는 이기겠지만, 취임 후 추진해나갈 지방개혁의 동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되고,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를 추진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될 것이다.

이미 구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높았던 지역에서는 선거 승리를 위해, 구 여권 인사를 입당시켜 공천하거나 캠프에 기득권 세력의 대표들이 기웃거리는 일이 흔해졌다고 한다. 포용과 화합의 일환으로 그런 전략을 가져가는 것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특정 지역의 토호 세력에게 각종 이권을 몰아주던 정책을 반복하거나 대다수 지방정부의 재정을 토목·건설 사업에 투입하는 행태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정치적 포용과 정책적 개혁은 별개라는 점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지방선거를 제2의 촛불혁명으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중요 국정과제들의 차질 없는 추진과 더불어 세부적인 보완과 관리를 요청했다. 최저임금의 산입 범위를 규정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는데, 그 의미와 법안 개정의 취지에 대해 국민들이 아직 잘 모른다는 사실을 지적했던 것이다. 노동계의 주장대로 단순히 기업의 요구를 반영한 개악인지, 아니면 실제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저소득층 근로자들에게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구체화의 과정인지, 이 부분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통령 공약으로 추진되는 국가적 과제를 구체화하는 데 대한 정당들의 관심과 논의 과정의 공론화도 문제지만, 지방정부가 이런 중앙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해 보완하고 지원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논의 자체가 실종되었다. 중앙정부의 보편적 복지 정책에 더해 영세 사업장이나 중소기업의 근로자들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내 복지를 보완할 수 있도록 지역의 상황과 개별 기업들의 사정을 더 잘 아는 지방정부에서 맞춤형으로 이들 기업들과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훨씬 효과적인 측면도 있다.

지역의 산업단지에 근로자 건강센터를 설치하여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역 상품권을 노인들이나 청소년들에게 지급하여 재래시장과 골목의 영세 상인들의 매출을 높여서 실질소득의 증대를 보장하는 일은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영역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그런 구체적인 공약들이 정당 차원에서 제시되어 전국적인 공통공약으로 확산되는 게 보이지 않는다.

올해 7월부터 적용되는 근로기준법의 개정에 따라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버스 운전사들의 근로시간 정상화로 신규 버스 기사들을 채용해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기사를 구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정부와 버스운송사업자조합연합회, 자동차노동조합연맹 등 노사정 3자가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노사정 선언문’에 합의하면서 동시에 버스 운송사업 부분은 법의 시행을 1년 연기했다.

하지만 법안 통과에 따른 후속조치는 중앙정부만 하는 게 아니다. 지방정부에서 미리 알고 대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경기도는 개정 근로기준법의 시행으로 부족하게 된 1만2,000명의 운전기사를 확보하기 위해 올해부터 2020년까지 모두 8,800명을 양성하기로 하는 대책을 이제야 발표했다. 당장 올해 7월부터 순차적으로 12,000명의 버스기사를 신규 채용할 수 있었는데, 사전 대응과 준비를 하지 못해 그 일자리가 날아간 것이다. 물론 지금이라도 대책이 마련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청년실업과 일자리 부족이 심각한 경기도에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친 것도 안타깝고, 버스기사들의 장시간 근무와 피로로 인해 경기도민들의 안전 이슈가 앞으로 몇 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점도 문제라 하겠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명심할 것들

선거 과정에서는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다고 약속하고 모든 일을 다 할 것처럼 말한 후보들이 선거가 끝나면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소연 한다. 지방정부는 예산도 없고, 공무원 증원도 못하고, 정책 권한도 중앙정부에게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후보들에게는 투표하지 않는 게 좋다.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실제로는 많은 권한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첫째, 중앙정부가 국가 전체 예산의 42%를 지출하는 데 비해 지방정부는 지방교육 예산까지 합하면 58%를 사용하는 등 실제로 중앙정부보다 더 많은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의 삶을 바꾸는 데 더 중요하고, 또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다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의 절대 액수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특히 신규로 취임하는 광역과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당선자들은 중기재정계획을 살펴봐야 한다. 올해 사업을 포함해 자신의 임기 동안 집행해야 할 5년간의 중기재정계획을 보면, 고정사업과 더불어 추가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사업의 내용과 예산의 규모가 명시되어 있다. 이 중에서 어느 사업을 축소하고, 어떤 사업을 변경할 것인지를 분석하면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둘째, 예산의 절대 금액은 많지만 대부분 중앙정부가 위탁한 지정사업을 집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권한이 없어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이 없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서울특별시가 가장 높고, 시·군·구로 갈수록 낮다. 하지만 직접 수입인 지방세와 세외 수입 외에 지방교부세와 조정교부금, 보조금 등 중앙정부의 각종 보조금을 합해 가용 재원이 형성되고, 이들 가용 재원에 대한 재정 자주도는 평균 70%나 된다. 가장 가난한 전남과 강원이 1인당 세출액, 즉 예산 집행액은 가장 많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권한이 없어 못한다는 것은 자신이 무능하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과감하게 포기하고 축소하고 조정하면 돈과 권한을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다.

셋째, 지방정부는 보육, 교육, 의료, 주거, 노후보장, 일자리 등 지역 주민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많은 사회서비스를 직접 집행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의 체감 만족도는 지방정부의 역할에 따라 좌우된다. 따라서 지방정부가 어떻게 하는 지가 주민들의 실제 생활에서는 더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를 공약으로 제시한 것도 사실은 중앙정부만으로는 이 나라를 이끌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해야 나라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재정 권한과 정책 관련 자율권도 얼마든지 부여하겠다.”라며, 지방분권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어렵게 이룩한 정권교체가 실제적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지방권력의 교체를 구체적으로 이루어내야 한다. 지방정부의 집권세력을 바꾸고, 도지사와 시장과 군수, 그리고 지방의원들을 더 나은 세력으로 교체하는 것을 넘어, 지방정부의 역할과 기능 등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지방정부가 무능하고 나태해서 지역 주민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방정부의 선출직 단체장이나 의원들의 비리로 직접 손해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정말 많다. 이제 바꾸어야 한다. 지방정부는 건설 시행사가 아니다. 토목과 건설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너무 어려워진 보통사람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도 지방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주민생활 지원으로 바꾸어내야 한다.

지역의 시민사회 운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이 부분에 대해 지방선거의 후보자들이 분명한 입장을 발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지역신문 등 언론들도 후보 초청 토론회나 기획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신이 당선되면 지역 주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질문하도록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이번 지방선거를 어떻게 ‘남는 선거’로 만들 것인가이다. 이대로 있으면, 6월 13일의 선거는 또 한 번의 ‘별 것 없는 지방선거’로 마무리될 것이다. 홍보 유인물을 꼼꼼히 살펴보고, 누가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후보인지 판단해보자. 우리는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야 한다. 너무나 힘든 보통사람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계기를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이 이번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우리 보통 유권자들이 명심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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