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학교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교권 확대가 교사를 지키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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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에서 한 초등 교사의 죽음이 알려진 이후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호소가 이어졌다. 과중한 교사의 업무량과 학급당 학생 수,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교원 수, 계속 줄어만 드는 교육 예산, 외부 민원과 상급자의 업무 지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이 교사 개개인이 알아서 모든 일에 책임져야 하는 현실 등이 드러났고, 사망한 교사를 추모하는 자리에서는 “나 역시 겪은 일이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고백이 줄을 이었다. 교사들이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고백은 곧 ‘안전하게 일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고발이었으며, 이에 수많은 공분과 지지가 모였다.
서로 의심하고 견제하는, 각자도생의 학교
학교는 이미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 있다.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가 혹시나 녹음기를 숨기고 있거나 아동학대로 신고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학부모는 학교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전전긍긍하며 더욱더 민원과 신고를 협상의 수단으로 삼게 되며, 학생들은 문제 그 자체로서 ‘무서운 요즘 애들’이자 ‘교권 침해 가해자’라는 자리에서 움직일 곳이 없다. 이는 악의를 가진 몇몇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며 견제하는 각자도생의 학교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공교육의 위기라는 진단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의 도입 이후 수십 년간 공교육 체계의 문제와 위기가 지적되어 왔으며, 지속적인 교육 예산 감축으로 인해 교육 환경은 열악해졌지만 교육의 시장화와 서열화는 점점 심화되었다. 입시 경쟁 속에서 각자의 자본과 정보력에 따라 학생 간 격차는 벌어지고, 그만큼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떨어진다. 겉으로는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집단 간 갈등으로 드러나는 문제와 어려움의 구조적 배경이다.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단일하지 않다. 젠더, 계층, 나이, 연차, 장애, 인종 등에 따라 구성되는 계급과 취약성이 있으며, 이는 학교 안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취약한 사람들은 학교 안에서 더욱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서초구 초등 교사를 포함해서 최근 드러난 피해 교사들은 주로 신규-저연차-여성이었다. 이러한 교사들에게 주로 NEIS 담당과 저학년 담임 등 기피 업무가 주어졌고, 그로 인해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렸음에도 이러한 교사들을 위한 지원이나 관리자의 개입이 부재했다는 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드러난 문제들을 ‘안하무인 학생’과 ‘악성 민원인 학부모’로 인해 ‘취약한 교사’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식의 ‘집단 간 갈등’으로만 사건을 인식할 때, 취약성을 구성하는 조건은 가려지게 된다.
각자도생의 학교에서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서 다시 모두가 억울해진다. 살아남기 위한 자원이 이미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2012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조치 사항을 기재하기 시작한 이후 이러한 불평등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고위공직자가 자녀의 학교폭력을 무마하기 위해 고소고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문제, 대학 진학 시기까지 생기부 기재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소송을 지연시키는 문제 등 학교의 사법화가 심화되며, 학교 구성들 간 갈등에 대해서 교육적으로 접근하거나 조정과 화해를 시도하는 대신 사법 절차를 통한 해결만 자리 잡고 있다. 자원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이용하고, 자원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억울해하며 다시 민원을 넣거나, 그조차 못한 채 학교의 주변부나 바깥으로 밀려난다. 사회의 차별과 폭력이 학교에서 재현되는 방식이다.
‘집단 간 대립’이라는 왜곡된 인식
사건이 알려지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와 교육 당국은 곧바로 ‘학생인권의 과도한 보장이 교권을 실추시켰다’고 말하며 ‘교권 강화’를 대책으로 제시했다. 교육부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를 위한 방안’ 국회 공청회에서 교권과 학생인권의 균형을 맞추고 교권 및 교육활동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어서 발표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서는 수업 중 휴대전화를 압수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생활지도권’ 강화, 생활지도 불응을 교육활동 침해 행위로 보며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교권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해서 아동학대 처벌 면책 조항을 도입하거나, 학교 관리자와 교육공무직으로 민원 전담 부서를 설치해 교사를 악성 민원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등의 대책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인권 보장 때문에 교권이 추락한다는 식의, 낯설지 않은 주장이다.
교사들은 민원이 제기되고 아동학대로 신고 받을 경우 교사 개개인이 알아서 민원과 소송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 조사 과정에서 교장감 등 상급자나 교육청으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점 등을 지적해왔다. 그러나 현재 제시된 교육부 대책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 ‘적절한 교육 활동에 대해서 아동학대 면책조항 신설’은 신고 자체를 막는 대책이 아니며, 현행법상으로도 ‘적절한 교육 활동’에 대해서 아동학대죄가 적용되는 경우는 없다. 이러한 대책으로는 신고에 대한 불안도 사라지지 않으며, 신고 이후 교사가 감당해야 할 몫도 달라지지 않는다. 생활지도권 강화 역시 교사에 대한 지원과 교육활동을 보장하는 대책이 아니라, 개개인의 권한으로 알아서 교육 활동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응하라는 식이다.
모두가 안전하지 않은 학교에서 교사의 권한만 확대하는 식으로는 아무도 안전해질 수 없다. 민원과 고소고발이 넘쳐나는 지금의 학교 현장은 정부 당국의 말처럼 학생인권을 ‘과도하게’ 보장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학생과 교사를 포함해 그 누구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해온 결과이다. 갈등을 만들어내는 학교 현장에 대해 질문하지 않은 채 교사에게 갈등 방지와 해결을 위한 권한을 부여할 때, 서로를 의심하고 견제하는 각자도생의 구도는 변화하지 않는다. 현재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처럼 교사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미봉하려 할 때, 정부나 학교 관리자의 책임은 가려지게 되며, 일선 교사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교사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교사가 모든 걸 혼자 다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학교에서 드러나는 문제를 집단 간 대립으로 바라보며 특정한 집단의 편을 드는 대책이 아니라, 분절화된 학교의 구조를 바꾸기 위한 질문이 필요하다.
학교와 사회를 바꾸는 동료가 되기 위해
고인의 사망 이후 수만 명의 교사들이 매주 모여서 고인에 대한 추모의 뜻을 모으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집회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추모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집회를 위한 교사들의 연가 투쟁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9월 4일 고인의 49재에 참여하기 위해 연가를 내거나 재량휴일을 활용하면 해임까지 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직전까지 학생인권을 문제 삼았던 교육부 장관이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전문직이니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파업은 불가능하다”며 다시 학생의 학습권을 소환하고 있다. 이렇듯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파업권’을 대립 구도에 놓으며 교사들의 단체 행동을 탄압하는 교육부는, 결국 학교 구성원의 권리는 뒷전에 놓은 채 ‘학생의 학습할 의무’, ‘교사의 순종할 의무’만을 강요한다. 학생인권과 교사의 권리 그 어느 쪽도 보장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교사들은 학교 현장의 변화를 촉구하며 ‘혼자 책임지게 두지 말라,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체계와 시스템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대책은 학교를 힘싸움의 장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의 취약성을 고백하며 그럼에도 평등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의심하고 견제하는 ‘전쟁터’같은 학교를 위해서는, 서로를 적군이 아니라 교육의 동료로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대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각자도생의 학교와 사회를 바꾸려는 우리가 동료가 될 수 있을 때, 학교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도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