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건강보험 미지급 국고지원금 약 4조원… “건강보험 재정 안정적인 국가지원돼야”
# 1989년 경기도 용인군 농민들은 가구당 평균 5320원의 의료보험료가 새해 들어 68.4%나 오르자 의료보험 거부 운동에 돌입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의료보험증을 불사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늘어나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누가 떠안을 것인지 정부와 노동계·경영계가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에 건보 혜택을 급격히 늘린 ‘문재인 케어’까지 겹쳐 내년 건보 지출은 76조7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정부는 “건보료율을 올려 개별 국민과 기업들이 건보료를 더 부담하자”는 입장이고, 노동계·경영계는 “그러지 말고 정부가 국고 지원금을 늘리라”는 입장이다.
다음해 건보료율은 보통 6월쯤 정해지는데, 올해는 양측의 대립으로 아직 내년 건보료율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자 노동계 등은 건강보험 재정 국가책임 정상화 및 확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지난 13년간 미지급된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은 약 25조원이다.
이에 당해 미지급한 건강보험 국고지원금 3조7,031억원은 즉각 지급하고,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안정적인 국가지원을 기반으로 보장률을 높이고, 국민의 의료비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편집자 주]
민주노총과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은 7일 오전 11시 서울역광장에서 건강보험 재정 국가책임 정상화 및 확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주최측에 따르면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 우리나라의 의료보장률은 65% 수준이다. 그러나 OECD 국가 평균 80%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지난 7월 2일, 전국민건강보험 3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에 전체적인 보장률을 70%까지 높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 보건의료 정책 행보를 살펴보면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등은 의구심을 자아냈다.
규제샌드박스법과 원격의료, 영리유전자검사, 건강관리서비스, 바이오 헬스 등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추진한 의료영리화 조치를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건강보험 보장체계 구축에 꼭 필요한 지불 개편과 일차의료 중심의 의료서비스 체계 구축, 공공보건의료 시설 확충과 강화 정책들은 등한시하고 국민의 동의도 없이 보험료를 인상해 재정만 충당하려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본격 시행되면서 건강보험 재정이 8년만에 적자로 전환되었다.
비급여의 급여화를 통한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의 시행으로 건강보험 지출이 늘어나 적자에 이른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는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건강보험 재정 20%에 대한 국가책임을 규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의 모호한 지원규정과 이를 빌미로 축소 지급되고 있는 국고지원금 때문이다.
정부가 건강보험에 지급하지 않고 있는 국고지원금은 최근 13년간(2007년~2019년) 무려 24조5,37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부터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에 따라 해당연도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14%는 국고지원, 6%는 담배부담금으로 조성된 건강증진기금)을 지원해야 함에도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있다.
실제 2007년~2019년 국민이 부담한 건강보험료의 20%에 해당하는 100조1,435억원을 지원해야 하지만 정부가 낸 국고지원금은 75조6,062억원으로 이 기간 법정지원액 기준(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에 크게 부족한 평균 15.3% 정도로만 지원해왔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직장 가입자들은 매년 4월 건강보험료 연말정산을 한다.
지난 4월에도 직장가입자 1,400만명의 60%인 840만명이 평균 13만8000원의 건강보험료를 추가 납부했다.
지난 12년(2007년∼2018년)간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들이 추가 납부한 연말정산 건강보험료는 약 21조2,000억원이다.
지난 13년간 각 정부가 24조5,374억원의 국고부담금을 미납한 상황에서 가입자인 국민만 법적 책임을 다한 것이다.
정부에서 미지급한 국고지원금 24조5,374억원은 2018년 전 국민이 납부한 건강보험료(53조8,965억원)의 46%수준이며, 이는 전 국민이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약 6개월 치의 건강보험료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험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들의 국고지원 비중을 보면 네덜란드 55.0%, 프랑스 52.2%, 일본 38.8%, 벨기에 33.7%, 대만 22.9% 등 높은 비중으로 건강보험을 지원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9년~2016년 의료비 실질증가율이 OECD 35개국 평균(1.4%)의 4배가 넘는 5.7%로 가장 높은 편이다.
이에 대해 주최측은 “올해는 우리나라의 전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시행된 지 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로 사회안전망의 주축인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원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며,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책임 20%의 이행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인 인구의 증가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상황에서 향후 의료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여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재정안정 지원방안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