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필드

노동·인권 전문지

사회·경제 주요 기사

‘오징어 게임’ 연극계 원로배우 항소심 무죄…피해자·단체 “성폭력 진술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등 관계자들이 2025년 11월 11일 수원고등법원 앞에서 연극계 원로배우 성폭력 항소심 무죄 판결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등 관계자들이 2025년 11월 11일 수원고등법원 앞에서 연극계 원로배우 성폭력 항소심 무죄 판결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출연해 ‘깐부 할아버지’로 알려진 연극계 원로 배우 A씨가 성폭력 혐의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관련 단체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해당 판결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수원고등법원은 지난 11일 A씨의 강제추행 혐의 항소심에서 원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은 한 시립극단이 공연을 준비하던 시기 발생했으며, 피해자 측은 극단 내 위계 차이에 기반한 성적 언동과 신체 접촉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는 연극단에서 계약직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A씨는 특별 초청된 주연배우였다.

A씨는 2017년 여름 연극 공연을 위해 지방에 머물던 중, 산책로에서 피해자를 껴안고, 피해자 주거지 앞에서 볼에 입맞춤하는 등 두 차례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피해자는 2021년 A씨가 다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공식 절차를 진행했으며, 검찰은 1·2심 결심 공판에서 A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 1심 유죄 뒤집은 항소심, 진술 신빙성 공방

1심 재판부는 당시 진술과 정황 등을 종합해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나, A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에서 변호인단은 피해자의 사후 행동, 문자메시지, 기록물 등을 근거로 진술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1심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분석 자료를 제출하며 재검토를 요청했다.

재판부는 “동료로서 포옹인 줄 알았으나 평소보다 더 힘을 줘 껴안았다는 피해자 주장은 예의상 포옹한 강도와 얼마나 다른지 명확하게 비춰지지 않아 포옹의 강도만으로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피해자 주거지 앞에서 볼에 입맞춤 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선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입증할 만한 수사가 이뤄진 게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양측이 제출한 자료를 모두 검토한 뒤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하며 “해당 진술만으로 범죄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피해자 측 “재판 과정이 2차 가해로 변질”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판결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 진술의 특성과 맥락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고 우려를 표했다. 단체는 이번 결정이 향후 사건에서 상담 기록과 진술 평가 기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며, 문화예술계 내 구조적 위계와 관련한 제도 개선 필요성도 제기했다. 반면 A씨 측은 항소심 판결로 혐의가 해소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 측 변호인 김예지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항소심 과정이 2차 가해에 해당했다고 평가했다.

변호인은 피해자가 사건 직후 감정을 억누르며 일상생활에 적응하고, A씨에게 존경이나 친근함을 표현할 수 있었음에도 재판 과정에서 계속 이상하게 평가됐다고 주장했다. 또 피고인이 오래전 들은 지인의 진술까지 문제 삼으며, 1차 피해와 직접 관련 없는 내용까지 논쟁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재판이 피고인 유·무죄 판단보다 피해자의 신빙성 입증 과정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변호인은 “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하더라도 참으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남겼다”며, “항소심 판결이 향후 사건에서 피해자의 용기를 제한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결과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성폭력 사건에서 진술 신빙성 판단 기준과 공연예술계 위계 구조 논의를 다시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향후 유사 사건에서 어떤 기준이 적용될지, 제도 개선 논의가 어떻게 이어질지가 주요 관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LEAVE A RESPONSE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