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를 위한 문화예술 정책
미술가들은 작품으로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표현한다. 음악이나 연극 등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작품이나 공연을 통해 자신의 뜻을 표현한다. 나 역시 지난 40여 년을 그렇게 살아왔지만, 최근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만나면서 우리 예술인들의 고민과 아픔을 국민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것을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정책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여러 정책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지난 1년 간 노력한 끝에 <예술인 복지에서 삶의 향유로>라는 이름의 “예술 정책서”를 내게 되었다.
헌법에 보장된 문화예술 향유권!
국민의 기본권으로 문화 향유권이 있다는 이야기는 다소 생소할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헌법은 전문에 ‘국민의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9조에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문으로 “문화예술 향유권 보장”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또 문화예술진흥법 등 관련 법률을 통해 헌법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국가는 온 국민이 기본 권리로서 문화예술을 누리도록 해야 하고, 그를 위해 필요한 지원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난이 가득했을 독립운동 기간 동안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각자들께서 “내가 꿈꾸는 나라는 문화가 찬란하게 꽃 피는 나라”라고 밝혔듯이, 제헌의회에서 헌법을 제정할 때 공화국 대한민국이 추구할 궁극적인 가치의 하나로 국민의 문화 향유권 보장을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 제대로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당장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기 때문에 문화예술은 일부 상류층이나 부자들이 누리는 사치품이거나, 선진국의 국민들이나 누리는 사치스러운 것으로 치부된다. 심지어 ‘국가가 그런 것 까지 챙겨주어야 하느냐?’라는 목소리까지 다양한 반응이 있다.
사실 문화 향유권이 헌법에는 규정돼 있지만 유명무실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강제 조항이라든지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 있게 추진되지 않고 있다. 또한 관련 법률에 부수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실행 부분에서 구체적인 규정이 없으니, 현장에서는 방향이나 목표를 규정하는 데 불과한 허울만 좋은 사문화된 조항으로 치부된다.
문화예술의 향유라는 헌법에 규정된 목표의 추구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장 높은 단계의 기본권이자 지향점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들은 매우 미비하다. 그래서 나는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문화 향유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선거에서 공약했고, 지난 3년의 임기 동안 좀 더 구체화시킨 내용을 모아 이번에 다시 책으로 정리하게 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게 된 ‘문화 향유권 보장의 가장 근본적인 수단’은 예술인 복지를 구현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의 공급자인 예술인의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으면, 결코 다수의 국민들은 제대로 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인이라고 해서 일반 국민들과 다를 수 없고, 다수의 저소득 취약계층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예술인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분들이 많기 때문에 현실과 잘 타협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즉, 자신이 하고 싶은 창작 활동을 못하게 되면 시름시름 아프면서 작품 활동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심지어는 자살하는 경우도 접하게 된다. 몇 년 전에 굶어 죽었던 최고은 씨는 나의 한국예술종합학교 후배였다. 그 분야의 우수한 인재로 선발되어 국가가 예산을 투입해서 양성한 인재가 현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것을 보면서, 또 알고 지내던 능력 있는 미술인 부부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같이 생을 마감했다는 부고를 전해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내가 미술인이고 문화예술인이지만, 단순히 우리 직능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하는 말이거나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열악한 문화예술 창작 환경을 바꾸는 것이 곧 문화예술의 향유자인 우리 국민 모두를 위한 일이다. 그리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창작하기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작품이 생산될 수 있고, 그 작품을 향유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도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문화예술의 향유를 통해 풍요로운 삶의 향유로 나아갈 수 있다.
국민의 문화 향유권 보장 방안
나는 전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마다 공공 수장고와 미술관을 만들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공립 어린이집과 도서관, 실내 체육관과 수영장, 그리고 노인정과 지역사회 커뮤니티 센터 등 10종류의 생활 SOC 확충에 올해부터 3년 동안 36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공공 미술관과 음악 공연장, 연극을 할 수 있는 무대 등 문화예술 시설을 생활 SOC에 포함시키는 조치만으로도 전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마다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에 다양한 문화예술 시설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그런 주장을 하면, 이미 있는 사립 미술관들도 대부분 경영이 어려운데 공공으로 200여 개를 더 만들면 대부분이 적자에 허덕이면서 국민의 세금을 부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나는 역으로 되묻고 싶다. 그것이 왜 안 되는지를! 적자를 메꾸기 위해 세금을 붓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학교나 도서관처럼 미술관도 공공재이기 때문에 국비와 지방비를 들여서 건설하고, 운영비도 공공적 방식으로 조달되도록 해야 한다. 누구나 비용 부담 없이 시간이 날 때 아이들과 같이 가서 그림을 볼 수 있는 나라가 복지국가다.
한 달에 한 두 번은 미술관에 가고, 또 공연장에 가서 음악도 감상할 수 있는 나라, 별도의 비용을 들이거나 수십 만 원을 들여 지방의 유명 관광지에 가지 않아도 편하게 쉬면서 문화와 예술로 휴양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복지국가다. 정치인들이 짜증나는 모습으로 싸우는 것을 뉴스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논쟁을 온 국민이 관심 가지고 방송에서 지켜볼 수 있는 정도의 분위기가 되어야 선진국이 되고 일류 국가가 될 수 있다.
예술인도 노동자다!
나는 학생 때부터 운동을 해서 그런지, 노동자라는 표현이 낮 설지 않고 어색하지도 않다. 그리고 진보진영에 있는 사회 참여적인 작가가 아니어도 젊은 예술인들은 스스로를 문화예술 노동자라고 규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 한국미협 회원들 중에는 원로도 많고 나이대가 지긋한 분들이 많으신데, 어르신들은 미술인을 노동자라고 호명하면 마치 자신의 예술작업을 격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몹시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프랑스의 예술인 지원 정책인 ‘앵테르 미탕’ 제도는 ’공공재’로서의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적 공감과 더불어 예술가 스스로 ‘노동자로서의 예술가 권익’에 대한 인식 때문에 가능한 제도였지만, 프랑스에서도 이런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얻기까지는 무려 10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다양한 노동자 지원 정책들이 확대되고 있다. 미술을 포함하는 예술인들이 노동자로 인정받게 되면, 예술창작 행위는 노동으로 인정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성과물인 미술품이나 공연, 전시와 저작물도 법적 재화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창작 활동 중 사고를 당해도 산재보험 혜택은커녕, 정규적인 수입이 없다보니 민간보험에서도 노동력 상실로 인한 부분을 보상 받을 길이 없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하게 되면 불시에 당하는 사고도 산재보험을 통해 치료받을 수 있고, 일이 없어 쉴 때는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나이가 들어 창작 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는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소득 보장의 혜택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노년유니온이나 청년유니온 등 고용주가 없는 노동조합이 설립 인가된 사례들이 있다. 심지어 연금 가입자 유니온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으로도 안 될 이유가 없다. 이런 다양한 혜택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예술인들의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조합 가입을 늦출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예술인들도 세금을 내야 한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병역 의무나 교육 의무는 우리 예술인들도 이행하고 있지만. 세금 납부의 의무는 고정적인 수입이 없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선진국에서는 세금으로 납부할 수 있는 동산(動産) 중에 미술품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공공연하게 미술품 재테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실제로 세금 포탈 사범의 재산을 압류할 때 예술 작품이 포함돼 있는 것을 보면 안 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미술품으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조세 물납제>를 이제는 구체화시켜야 한다.
우리나라 미술인들도 미술품으로 세금을 납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여러 차례 국회에 청원을 했고. 입법조사처 전문위원이나 전문적인 입법지원기관에서도 긍정적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같은 국가기관에서도 그 필요성과 실질적인 당위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에 국세청에서도 이런 방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가난한 미술가들이 만일 자신의 작품으로 세금을 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현재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혼자서 작업을 하거나 판매를 하다 보니 자영업자나 다름없다. 그러다 보니 세금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고, 낼 기회도 적다. 그런데 자신의 작품으로 세금을 낼 수 있다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미술인들이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세금을 낸다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공민권을 인정받는 것이다. 미술인들도 근로소득세, 주민세 등 세금을 납부하고 자신의 창작 활동만큼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 같은 4대 보험료를 내고 그에 대한 권리와 혜택을 부여받아야 한다.
자신의 작품으로 세금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예술인들의 노력과 성과를 국가가 가치로서 인정해 주는 것이고, 그러면 금융권에서도 담보 가치에 대한 법적 지위를 부여받게 되어 부수적인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또 세금을 미술품으로 낼 수 있다는 것은 국세청에서 미술품의 담보 능력을 인정해 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동시에 은행에서도 작품의 경제적 가치나 담보물로서의 가치가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버나드 쇼가 필요하다!
영국 국민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와중에 전후 새롭게 건설할 복지국가를 꿈꾸며 이를 견뎌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영국을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페비안 소사이어티’의 창립자이자 열렬한 회원 중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작가인 버나드 쇼가 있었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작가이기도 하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가슴에 남는 묘지명으로도 유명하지만, 복지국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소설과 희곡으로 만들고, 연극과 뮤지컬 공연으로 올리는 역할을 통해 영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정책 내용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영국의 버나드 쇼와 같은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술인 복지가 곧 국민의 문화 향유권 보장이라는 등식에 대한 동의와 인식의 확산이 있어야 한다. 나는 책을 통해, 내가 종사하고 있는 미술계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계에 새로운 역할과 기능을 제시하고 싶었다. 국민들에게는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힘들어하는지를 좀 더 알게 하고 싶었고,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스스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를 말해주고 싶었다. 이제 예술인 복지를 넘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복지국가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