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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2020년 1인가구 생계급여 1만 5천 원 인상, ‘포용적 복지국가’의 길 포기한 것인가

<칼럼 : 홍정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국가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기초생활 보장제도의 향방은 매년 8월 1일 직전에 결정된다. 올해도 법정 시한을 겨우 이틀 앞둔 7월 30일, 내년 기초생활 보장제도의 기준 중위소득과 급여별 최저보장수준이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의결됐다. 기준 중위소득은 기초생활 보장제도의 급여별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되며, 최저생활보장의 핵심인 생계급여의 액수를 결정한다. 2020년 기준 중위소득은 올해보다 2.94% 인상된다. 기준 중위소득에 따라 책정된 1인 가구 생계급여는 2019년 기준 월 51만 원이기에, 2020년에는 월 1만 5천 원 오르는 것이 전부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활동가들은 도대체 이 사실을 어떻게 당사자들에게 전달해야 할까, 죄책감이 깃든 고민에 빠졌다. 차마 그 충격으로부터 회복하기도 전에, 북한이탈주민 가족이 기초생활 보장제도를 신청해보지도 못한 채 아사로 추정되는 이유로 숨졌다는 보도에 비탄에 잠겼다. 한국 사회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문재인 정부 내 결정된 생계급여 인상률, 박근혜정부보다 낮아

‘2.94%’라는 숫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세 번째로 결정된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이었다. 그보다 앞선 2018년은 2.09%, 2017년은 1.16%로 결정되었다. 한가로운 시각에서는 인상률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3년간 기준 중위소득의 연평균 인상률은 2.06%로, 박근혜 정부 4년간 결정된 기준 중위소득(최저생계비도 포함)의 인상률 3.37%보다도 낮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이 2018년 실시한 기초생활수급자 가계부조사에 따르면 51만 원 수준의 생계급여는 인간이 겨우 굶어죽지 않을 수준에 불과하다. 필자가 만난 당사자도 매일 한 끼 이상을 라면으로 때워야 하는 현실을 살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분명히 ‘포용적 복지국가’를 표방한다고 했다. 포용적(inclusive)이라는 단어는 그 어떤 사람도, 정치적 대변자가 없어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사람도 배제하지 않는 상태를 지향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표2-1] 2014년 이후 결정된 연도별 기준 중위소득 (4인 가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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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정부가 포기하지 않는 가계동향조사에 대한 집착

2018년 초부터 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감소했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두고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작년부터 촉발된 논란은 가계동향조사를 폐기하기로 한 정치적 결정이 번복되자, 표본을 교체하면서 나타난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는 해석으로 귀결되는 듯 했다. 불행하게도 통계청은 2019년 1/4분기도 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1인 가구를 포함할 경우 통계청 발표와는 달리 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전년보다 증가한 결과가 나타난다며, 이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성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국가통계위원회에서 2017년 말 공식소득분배지표 자료로 가계금융복지조사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마당에, 아직까지도 불완전한 분기별 표본조사를 두고 일희일비하는 소모적인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빈곤 지표 중 상대적 빈곤선이라는 개념이 있다. 대체로 상대적 빈곤선은 전체 가구에서 나타나는 중위소득의 50%로 지칭되며, 상대적 빈곤율은 전체 가구 수 대비 가처분소득이 상대적 빈곤선 이하에 있는 가구 수가 된다. 공식소득분배지표인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7.4%로, OECD 국가 평균인 12.2%에 비해서도 높은데다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가계동향조사에서 나타나는 2016년 기준 가처분소득 기준 상대적 빈곤율은 13.8%인데, 행정자료가 결합된 가계금융복지조사보다 과소평가되고 있다. 가계동향조사에서 상대적 빈곤선 이하에 놓인 가구가 과소 추정되고 있다는 뜻은 무엇일까. 2015년부터 상대적 빈곤 개념이 도입된 기초생활 보장제도에서는 가계동향조사가 근거자료로 활용되고 있는데, 가계금융복지조사를 근거자료로 사용했을 때보다 급여의 대상자 수와 생계급여의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림2-1] OECD 국가의 상대적 빈곤율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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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OECD(2019),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IDD#

주: 한국은 가계금융복지조사(2017)를 사용했고, *표시된 국가는 2016년 이전 자료를 적용함. 가처분소득(Poverty rate after taxes and transfers)의 상대적 빈곤선(Poverty line 50%)을 기준으로 함.

2017년 소득조사를 기반으로 작성된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중위소득은 4인 가구 기준 월 486만 원이다. 이는 현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중위소득을 계산하는 방식을 적용하여 산출한 값이다. 정부는 2017년 4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을 447만 원으로 고시했는데, 기준 시점이 같은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나타나는 중위소득보다 약 8.8% 낮은 것이다. 단순히 그 수치만으로는 체감하기 쉽지 않지만, 조사자료 차이로 인해 생계급여 수급자격을 얻지 못한 가구의 규모는 최대 34만 가구에 이른다는 점은 그 심각성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교육급여 기준선으로 비교할 경우,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중 어느 하나라도 수급자격을 얻지 못한 가구의 규모는 최대 44만 가구로 나타난다.

[표2-2] 조사자료 차이로 인해 수급자격을 얻지 못한 가구 규모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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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법정 시한이 닥쳐서야 열리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본회의에서 의결되는 숫자는 마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서 결정되는 것처럼 포장된다. 하지만 기준 중위소득은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재정권력의 입김이 미치는 테이블에서 대단히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당장 보건복지부는 매년 중앙생활보장위원회 결과를 발표하는 보도자료에서 차년도 기준 중위소득이 결정된 근거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한다. 2020년 기준 중위소득의 인상률이 2.94%로 정해진 이유도 가계동향조사의 가장 최근 시점 3년간 나타나는 연평균 중위소득 증가율(1.66%)과 가계금융복지조사의 가장 최근 시점 3년간 나타나는 연평균 중위소득 증가율(4.21%)의 중간값이기 때문이다.

내년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이 축소된 것도 문제이지만 [표2-2]에서도 확인했듯, 가계금융복지조사라는 국가의 공식소득분배지표에서 나타나는 결과와 기준 중위소득 사이에 큰 격차가 발생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2017년 소득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나타나는 중위소득을 2020년 시점으로 보정하여 정부가 고시한 2020년 기준 중위소득과 비교할 경우 두 값의 차이는 4인 가구 기준 약 82만 원, 1인 가구 기준 약 30만 원에 이른다. 보도자료에는 담겨있지 않지만, 올해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종료된 이후 보건복지부의 설명에 따르면 인상률 자체는 가계동향조사와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간 수준에서 결정된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인상률에 의해 결정된 2020년 기준 중위소득은 가계동향조사와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간값보다도 낮은 수준이며, 가계금융복지조사와의 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빠졌다.

[표2-3] 가계동향조사, 가계금융복지조사상 중위소득과 기준 중위소득 비교 (2020년 기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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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중앙생활보장위원회 구조는 재정권력의 입김에 좌지우지되고 있어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20조 제3항에 따르면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위원장이 되며, 위원장이 전문가, 공익위원, 차관급 고위공무원을 각각 5명 이내로 위촉·지명하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올해부터 새로운 임기를 시작한 총 16명의 위원 중 정부 측 위원은 9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 소속 전문가가 ‘공익’위원으로 지명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이처럼 기울어진 중앙생활보장위워원회 구조에서는 현행 기초생활 보장제도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그 어떤 노력도 ‘재정적 보수주의’로 무장한 세력이 결사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예산의 문제로 귀결된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기초생활수급자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20대 국회에도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법안이 이미 제출되어 있다. 국회가 임기 종료를 앞둔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는 법이다. 국회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압력이 필요하지만, 국가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걸린 문제는 류이근 <한겨레21> 편집장의 표현처럼 “결코 가볍지 않은 이슈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무 논란 없이” 지나쳤다. KBS, MBC, SBS, JTBC 방송4사 중 그 어느 곳도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결정을 메인뉴스에서 다루지 않았다. 현실을 제대로 비추지도 않으면서, 적어도 그 현실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영화 <기생충>에 열광했다는 사실에 다시 참담하다.

포용적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현 정부에게서 17.4%에 달하는 심각한 상대적 빈곤율이 개선될만한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객관적인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결정되어야 할 기초생활 보장제도의 기준은 재정권력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정치적 결정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 그 기준과 더불어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수많은 문제들이 기초생활 보장제도에 산적해있지만 그 중 시민사회, 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은 부양의무자 기준조차 올해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올해 4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강한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관련한 논의는 전부 내년으로 미뤄졌다. 가난한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는 기나긴 시간 동안 소리없이 박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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