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호소 하루 만에’… 북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북, 문 대통령 대화 제의 하루 만에…남북관계 ‘최대 성과’ 파괴
문 대통령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 북한에 “대화창 닫지 말 것을 요청”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 협력 메시지를 낸 지 하루 만에 북한이 대북전단을 문제삼아 문 정부의 대표적인 대북 성과인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청와대는 공식입장을 자제하는 동시에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 상임위원회를 소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북한은 16일 오후 2시 50분께 연락사무소를 사전 통보 없이 전격적으로 폭파했다. 폭파는 대규모 화약을 동원해 건물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13일 담화에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며 건물 폭파를 예고한 지 사흘 만에 속전속결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오전 “이번 사태와 관련해 남조선 당국의 태도를 보면 속죄나 반성의 기미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통일부를 내세워 모순적이고 허무맹랑한 소리만 늘어놓던 청와대가 뒤늦게야 삐라(전단) 살포에 대한 엄정 대처방안이라는 것을 들고나온 것을 놓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신문은 2면에 게재한 논설 ‘투철한 계급투쟁 의지를 만장약한 우리 인민의 혁명적 풍모’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폭파 전날 남북관계를 과거 대결 시대로 되돌리려 하는 북한을 향해 문 대통령은 “오랜 단절과 전쟁의 위기까지 어렵게 넘어선 지금의 남북관계를 다시 멈춰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 만큼, 일각에선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화답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왔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정세를 획기적으로 전환하고자 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과 노력을 잘 알고 있다. 기대만큼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나 또한 아쉬움이 매우 크다”는 공감의 말을 건네면서 두 정상 사이 ‘훈풍’이 불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뒤로하고 거론했던 계획들을 직접 실행에 옮긴 만큼, 청와대는 다시 대응책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북한의 폭파 약 1시간 뒤인 오후 4시께 관련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통일부를 통해 “북한이 14시 49분에 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라고 밝힌 것이다.
북한도 즉각적으로 관련 사실을 공개하고 나섰다. 관영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통신은 오후 5시께 긴급 보도를 통해 “개성 공업지구에 있는 공동연락사무소를 완전히 파괴하는 조치를 진행했다”라고 밝혔다.
북한의 이 같은 행동 이후 청와대는 오후 5시 5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를 긴급 소집해 1시간 30분가량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가 끝난 뒤 김유근 NSC 1차장은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경우 우리는 그에 강력히 대응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하자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후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시설을 철거하는 것이 다음 수순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상황을 아주 안 좋게 보고 있다”며 “제일 우려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120여곳에 달한다.
이들은 2016년 2월 북한의 핵실험을 이유로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개성에 기계설비와 제품 등을 남겨두고 남쪽으로 서둘러 넘어왔다.
북한이 개성공단 내 자산을 동결 조치했지만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다시 돌아가 공장을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북한이 16일 오후 2시49분 폭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05년 문을 연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를 개·보수한 건물이다.
지상 4층, 지하 1층으로 이뤄져 있고 연면적이 4498.57㎡에 이른다.
연락사무소 건물 1층에는 교육장과 안내실이 있었고 2층과 4층에는 각각 남쪽, 북쪽 사무실이 따로, 3층에는 회담장이 마련돼 있었다.
남과 북의 상주 인원들은 각자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다 면담 등이 필요할 때는 중간층에서 만나 대화했다.
2005년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 시공 당시 80억원이 들었고 2018년 연락사무소로 새단장을 할 때는 개·보수 비용으로 97억8천만원이 들었다.
토지 자체는 북한 소유이고 건설비와 개·보수 비용은 남쪽 당국이 댔다.
지난 1월30일 코로나19 확산 위험 때문에 연락사무소에 상주하던 남쪽 인력 58명(당국자 17명, 지원인력 41명) 전원이 철수했고 그 뒤 연락사무소는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