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참사 피해자 지원 매뉴얼’을 만드는 이유
피해자는 권리의 주체
재난과 참사가 있을 때 많은 이들이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가슴 아픈 사연에 눈물 흘리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사안이 수습되기를 기다린다. 재난과 참사에서 피해자들은 고통을 호소하거나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주로 나타난다. 그런데 과연 피해자들은 그런 모습만 갖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는 이들이 ‘진상 규명’을 외쳤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사회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는 것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진상 규명을 외치는 피해자들을 공격했다. 그만큼 진상 규명을 외치는 피해자는 매우 낯선 모습으로 비쳤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이후에도, 많은 피해자들은 진실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노력으로 사회는 조금씩 안전해졌다. 씨랜드 화재참사의 유가족들이 어린이 안전재단을 만들었고, 인하대 봉사단의 유가족들이 재난에 대한 강원도 조례를 만들었으며,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이 끈질기게 싸웠기 때문에 헝가리 참사 당시 정부가 신속하게 수습에 나설 수 있었다. 원진레이온의 피해자들이 산업안전보건을 위한 틀을 만들었고, 삼성반도체 직업병의 당사자들과 유가족들이 직업병의 원인을 밝혀냈다. 김용균 씨의 유가족이 원청업체의 책임을 묻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와 유가족 등 피해자들을 단지 고통받는 이들로서만이 아니라, 진실규명을 위한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이 권리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재난 참사 피해자 지원은 말 그대로 물질적 피해의 일부 지원에 머물렀을 뿐, 피해자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생명안전 시민넷과 4.16재단, 4.16연대 피해자지원위원회 등에서 피해자지원 매뉴얼을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단지 고통받는 사람인 것만이 아니라, 진실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주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년 6개월간의 작업을 통해 피해자 지원 매뉴얼 초안을 만들었고, 이후 이것을 다듬어서 2020년까지 실질적인 매뉴얼로 만들고자 한다.
공동체 회복을 위한 피해자 정의의 확대
우리 사회는 그동안 재난과 참사로부터 제대로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흔적을 지우고, 침묵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동일한 재난과 참사가 반복된다. 그리고 연관된 공동체는 파괴되고,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언제 자신이 다시 재난과 참사의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상태로 무심히 지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과 참사의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재발방지를 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모든 공동체를 제대로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의 핵심이 바로 재난 참사 피해의 광범위함을 인정하고 권리의 주체를 넓히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민간인 잠수사들, 진도 어민들, 그리고 안산시민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서 함께 싸웠던 많은 시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의 피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문제는 단지 이들의 피해를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사안을 축소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고, 광범위하게 피해를 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구조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역주민들을 갈라치기하거나 진실을 은폐하는데 일부 시민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피해자 지원 매뉴얼에서는 피해자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했다. 당사자와 유가족만이 아니라, 연관된 공동체의 여러 사람들, 그리고 피해자를 지원하고자 하는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지역주민들도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재난과 참사의 피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에 이들을 간접적인 피해자로 규정하고자 했다. 그것은 재난과 참사의 여러 문제에 공감하며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 모두에게 ‘권리’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진상 규명과 치유·회복에 이들 모두가 힘을 합할 때 공동체가 더욱 튼튼해지고, 재발방지 대책도 제대로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와 언론의 책임
피해자 지원 매뉴얼이 피해자의 ‘권리’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그 권리를 부여해야 할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 말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재난과 참사는 늘 사회적이다. 설령 자연적인 재난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피해가 누군가에게 집중되는 사회적 조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난과 참사에서 정부는 수습의 주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할 주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피해자 지원 매뉴얼은 정부나 지자체 등 재난과 참사의 책임 기관들이 피해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해야 할 역할과 의무를 규정하고자 했다.
이것은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들은 ‘보도 참사’라고 부를 만큼 왜곡보도와 선정적인 보도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다른 참사에서도 진실 보도보다는 정부의 보도자료를 베끼기 바빴고, 피해자의 인권에 대한 존중감 없이 피해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진실규명을 외치는 이들을 ‘돈’을 바라는 이들로 매도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들도 많은 반성을 통해 ‘재난 참사 시에 언론 보도 준칙’을 만들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재난 참사에서 언론보도 준칙은 ‘피해자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수준을 넘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데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재난과 참사가 없기를 바라지만, 인간의 존엄이나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재난과 참사는 쉽게 발생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대부분 사회적 자원이 없는 이들에게 집중된다. 재난과 참사에는 정부나 기업의 책임이 뒤따르는데 그동안 그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들을 침묵시키는 데에 공을 들여왔다. 이제는 피해자가 권리의 주체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예방과 수습과,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전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존중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단지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라’는 당위적인 주장이 아니다. 피해자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함을 통해서 안전한 사회를 위한 일관된 의지를 가질 수 있으며,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단초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4.16재단과 생명안전 시민넷 등에서 만들고자 하는 피해자지원 매뉴얼은 ‘안전사회를 위한 피해자 권리 매뉴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