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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21세기 국부론, 복지국가로 ‘자유 시장 경제’를 구축할 때다!

조재형(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사회복지학 박사)

최근 소득주도 성장의 성과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다. 특히 최저임금에 대한 우리 사회 주류의 비판이 그렇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고, 대부분의 부가 대기업과 부동산 소유주, 주주배당, CEO와 정규직 노동자, 정부 고위 관료들에게 분배되는 나라에서 전체 GDP의 1%도 채 되지 않을 최저임금의 상승효과를 놓고 학계와 관련 전문가들이 온 에너지를 쏟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 경제의 하강 추세가 뚜렷하고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을 하는 통에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기대에 못 미칠 전망이다.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정략적 발목잡기로 인해 산업의 구조개혁을 포함한 경제와 복지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소중한 시간이 하염없이 지체되고 있다.

막대한 비효율과 거대한 획일주의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와 복지 체제에서 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역시 <사람들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부동산 투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 빈곤의 위협 등 다양한 사회문제들은 결국 ‘생활비가 비싸지니 임금 경쟁력이 떨어졌고, 모두 안정적 일자리만 선택하려고 하니 다양성과 혁신성이 떨어졌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저임금·불안정 노동과 위험의 외주화 등을 통해 사실상 ‘노동자의 삶’을 위태롭게 함으로써 쉽게 돈을 버는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엄청나게 비효율을 낳고 있는지, 꼼꼼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한국에는 빈곤 때문에 지식과 기술의 습득보다 알바를 선택하고, 일자리 불안 때문에 과학자, 철학가, 예술가 대신 공무원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엄청나게 많다. 이로 인한 청년들의 스트레스와 출산 기피까지 고려한다면 그 비효율은 짐작할 수조차 없을 만큼 크다. 이렇듯 빈곤의 위협이야말로 미래 성장의 동력이 될 다양성과 혁신 가능성을 말살하고 물질적 획일주의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거대한 비효율 덩어리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필히 공멸할 수밖에 없다.

선진 복지국가들은 어떻게 다양성을 추구하는가?

스웨덴 등 노르딕 모델을 채택한 나라들은 바로 위와 같은 관점에서 배울 점이 매우 많다. 이들 국가는 보편주의 복지국가 시스템을 이용해 결과적으로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을 형성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Self-interest)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스웨덴 모델을 정치적으로 실현한 사회민주노동당의 당수이자 1946년부터 23년 동안 수상을 역임했던 타게 에를란데르의 ‘자유 선택 사회론’이다.

이들의 자유관은 ①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주의 ② 무제한적 소유가 아닌 제한적 소유 ③ 물질주의적 획일화가 아닌 탈물질주의적 다양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을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한다면 <세계관: 인간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연관: 인간과 자연은 동등하며, 각자가 소비에 필요한 만큼만 소유할 때 모든 사람들이 고르게 소유할 수 있다>, <인간관: 인간은 물질적 인센티브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자기 관심(적극적 자유)에 따를 때 가장 효율적이다>라는 말로 바꿔볼 수 있다. 세계관, 자연관, 인간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자유에 관한 논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진보적 학자들에게 자유와 빨갱이는 금기시되어 온 단어였다. 수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빨갱이라는 이름하에 생명과 자유를 위협 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적 가치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설득하는 현실 정치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지 레이코프가 주장한 것처럼 ‘자유에 대한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과거 손학규 후보의 캐치 프레이즈였던 ‘저녁 있는 삶’의 경우, 공정한 룰을 만들어 저녁 시간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국민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었다. 이런 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빨갱이 사상’, ‘자유의 억압’이라는 프레임에 대항하여 세련되고 매력적인 ‘자유 개념’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소위 ‘진보적 자유’와 ‘보수적 자유’ 개념의 핵심적인 차이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자유를 추구해야 하는가? 이 부분을 살펴보는 것은 향후 우리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장차 어떤 식으로 자유의 프레임을 구성해야 하는지를 고려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관, 자연관, 인간관을 중심으로 이 차이를 살펴보자. 다음의 표는 보수적 자유와 진보적 자유의 핵심 개념을 간단히 도식화한 것이다.

보수적 자유관에 따르면, 개개인은 모두 분리된 존재이며 얼마든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근거는 이성에 있다(영원한 영혼과 사라질 육체의 은유). 또한 인간의 행위 동기와 효용은 돈이다. 예를 들어, 수요·공급 이론에 따르면 최대다수는 사람, 수량(x축)으로, 최대행복은 돈(가격, Price)으로 측정된다. 이를 통해 “부는 신체적 학대라는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이기에 정당하다”라는 등식이 성립되며 따라서 “더 많이 노력할수록 더 많이 가져야 한다”라는 단선적(Linear)인 사고를 갖게 한다.

이에 비해, 진보적 자유관은 인간과 자연은 동등하며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고에 기초한다. 인간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신체적 학대 대신에 전인적 발달과 사회성 함양, 자신의 관심과 흥미 발굴에 관심을 갖는다. 누군가 극단적으로 많이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생태계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고, 불평등이 크게 발생하지도 않는다.

어느 것이 ‘완전 경쟁 시장’에 더 가까운가?

그렇다면 둘 중에서 어느 것이 자유 시장 경제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두 나라 중 어느 나라가 완전 경쟁 시장에 더 가까운 형태인지를 통해 비교해보자. 그간 시장주의자들은 ‘완전 경쟁 시장’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동질적인 상품에 대해 ① 다수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존재하고 ② 거래비용이 낮으며 ③ 자유로운 시장의 진입과 퇴출이 가능해야 한다.

보수적 자유관을 따르는 나라들은 경제적 불평등을 최대한 용인하기 때문에 부자들은 구매력을 갖지만, 다수 빈자들의 욕구(Desire)는 구매력을 갖춘 수요(Demand)로 발전하지 못한다. 또 경제사회적 신뢰의 수준이 낮아 거래비용이 높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경제 주체들이 도전하기 어려운 여건에 처하게 된다. 시장실패에 대응하는 국가의 개입 방식도 ‘1차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2차적으로 경쟁력 없는 기업이나 빈민에게 보조금을 주는 방식(가격체계 교란)이기 때문에 경쟁력 없는 기업이 제때 퇴출되지 못하고, 빈민들은 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로 계속 머물게 된다. 실제로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경쟁력 없는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진보적 자유관을 따르는 나라들은 평등 그 자체를 통해 엄청난 효율을 발휘한다. 불평등한 나라에서는 수요가 부자와 빈자로 구분되기 때문에 부자를 위한 사치와 낭비 혹은 빈자를 위한 질 낮은 제품(패스트 푸드, 패스트 패션)이 발달하는 반면, 평등한 나라에서는 합리적인 제품들이 시장에서 선택받는 결과를 낳는다. 또 일반적으로 부자들은 고가의 외국산 상품 구매에 많은 비용을 쓰고, 결국 내수 진작 효과가 작다. 그런데 스웨덴은 수출로 외화를 벌고, 이 과정에서 누진적으로 세금을 걷어 내수에 쓰기 때문에 외화의 낭비가 일어나지 않고 국부를 유지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 등 노르딕 국가들은 신뢰 등 사회적 자본도 세계 최상위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복지 시스템은 빈민에게 보조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효율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생활비를 낮추고 실업으로 인한 불안을 해소하니, 기업은 저임금 기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되고, 해고 시의 부담도 경감된다. 말 그대로 합리적인 시장 진입과 퇴출이 이루어지며, 결과적으로 시장 가격이 잘 작동한다.

복지국가 건설,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위와 같은 논의는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세계적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졌던 내용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에 대해 오해와 편견이 심하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혁신적 경제, 공정한 경제,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의 융합·통합적 실천을 통해 자유 시장 경제가 더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21세기에 걸 맞는 국부론’을 펼치자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기조는 매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위와 같은 인식 변화는 세계관, 자연관, 인간관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미 개인주의, 물질만능주의, 신체 학대가 노력이라는 환상, 개인과 사회·경제와 복지가 상충한다는 대립적·이분법적 사고 등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이를 제대로 실현해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친복지국가 세력과 깨어 있는 국민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친복지국가 세력은 복지국가가 21세기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어떤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는지를 국민 다수에게 제시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셰리 버먼 등을 포함한 연구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실제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성공 요인도 ‘자유 선택 사회론’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잠정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끊임없는 설득 과정에 있었다.

그것을 가능케 해줄 핵심이 바로 세련되고 매력적인 자유 프레임이며, 따라서 이제는 자유의 개념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복지와 자유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주의 방식으로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제도들은 모두 인간의 자유와 능력의 확대로 표현할 수 있다. 육아로부터의 자유(아동수당), 일할 수 있는 나라(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 다칠 염려 없이 일할 수 있는 나라(산업안전 보장) 등은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제공해주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해준다.

이런 원리는 사회정책의 근본적인 개혁에도 도움을 준다. 육성해야 할 분야에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자유”를 주되, 그에 따른 잘잘못은 개인이 시장가격에 따라 받게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실적이나 성과에 따라 경제적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정책들이 많다. 이렇듯 관료가 자의적으로 분야를 선정한 뒤 지원하는 방식을 택할 경우, 우수 기업이나 기관을 평가하느라 심사비용이 낭비되고, 예산 투입에 대한 결과를 평가하기 때문에 감사비용도 지출될 수밖에 없으며, 무엇보다도 관료와 기업·기관 간의 유착관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하지만 북유럽에서는 예산의 상당 부분을 보편적인 정책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지출하기 때문에 심사·감사 과정이 생략된다. 북유럽 국가들이 청렴도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하는 데는 이런 시스템이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국민들 역시도 이런 변화가 단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개인주의와 물질적 획일화>에 대한 믿음은 수십 년 간 지속되었지만, 이를 <공동체주의와 탈물질주의를 통한 다양화>로 바꾸려는 노력은 고작 몇 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것도 촛불혁명 이후 입법부·사법부·행정부·경영계·언론계 등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직 행정부의 몇 명만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특히 집권 중반기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몇몇 집단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과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섣부른 비난성 평가보다는 힘이 들더라도 정책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보다 민주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나는 이런 분들이 바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깨어 있는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사람들과 함께, 상충적·공멸적 시스템이 아닌 상호보완적·공생적 사회에 대한 수준 높은 고민이 지속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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