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하기 어려운 복지국가와 기본소득
재난지원금이 전국민에게 지원된다. 경기도에서는 재난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도민 모두에게 10만 원씩 지급되었다. 기본소득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같은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으로 선별적 복지에서 벗어나 보편적 복지국가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마치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이고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는 선별주의인 것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크나큰 오해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완성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복지국가를 약화시킨다. 복지국가의 원리와 기본소득의 원리가 상충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이번 칼럼에서 이런 본질적 질문에 대한 답을 원리를 중심으로 찾아볼 것인데, 그 핵심은 필자의 신간 <복지의 원리>에서 따온 것임을 밝혀둔다.
복지국가는 기본소득과 달리 거대한 공적 보험 시스템
현대 복지국가는 거대한 공적 보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납부한다. 그러나 복지급여는 필요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실직자(실업급여), 노인(연금), 출산과 육아로 일을 못하거나(출산전후휴가 및 육아휴직급여), 아이 키우느라 생활비가 더 드는 사람(공보육, 아동수당), 아파서 치료비가 필요한 사람(건강보험), 소득활동은 하지만 수입이 너무 적어 기초적인 생활이 어려운 사람(기초생활제도의 생계급여 및 EITC)에게 각종 복지급여가 지급된다.
전문용어로 사회적 위험(social risks)에 빠진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욕구(needs)가 있는 시민에게 급여가 제공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급여의 크기는 위험이나 욕구에 비례하게 해 적절한 수준을 만들고자 한다. 누구나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냈더라도, 자동차 사고가 난 소수의 사람에게, 또 사고의 정도에 따라 보상금을 주는 것과 원리상 동일하다. 필자가 복지국가는 거대한 공적 보험 시스템이라고 한 이유이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았어도 모든 사람에게 매달 보상금을 나눠주자는 논리이다. 위험이나 욕구의 발생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문제는 사고가 안 난 사람에게까지 기본 보상금을 다 나눠주고 나면, 현실적으로 보험회사는 사고가 났을 때 충분한 보상을 해 줄 수가 없다는 점에 있다. 사고 보상금도 종전처럼 그대로 다 주고, 여기에 사고 안 난 사람에게도 매월 기본 보상금을 나눠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자면, 자동차 보험료를 크게 올리는 수밖에 없다. 보험료를 올리는 게 기본소득을 주는 것만큼 환영받고 쉬운 일일까? 결국에는 기본소득 주기 위해 사고 보상금을 줄이거나, 아니면 회사채를 발행해서 영업적자를 매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기본소득 때문에 복지국가를 발전시킬 수 없다고 단언하는 이유이다.
혹자는 기본소득 받은 것으로 사고가 났을 때 쓰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치 않다. 기본소득은 위험과 욕구를 불문하고 모든 국민에게 돈을 주겠다는 것이기에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 월 1만 원씩만 5,200만 국민에게 줘도 연 6조2천400억 원이 소요된다.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수준이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에 비해 떨어지지만, 실업수당(구직급여)이 최대 9개월 동안 월 198만 원까지 지급된다. 여기에 2018년에 6조7천억 원을 지출했다. 대략 월 1만 원씩 국민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돈으로, 실직자에게 월 198만 원까지 보장해 준 것이다. 역으로, 만약 실업급여 지급에 쓰는 6.7조 원을 전국민 기본소득에 써버리면, 실직자는 월 1만여 원만 받는 게 된다. 위험과 욕구가 있는 곳에 집중하는 공적 보험 시스템이 기본소득 시스템보다 보장 수준이 월등히 높을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에서 얘기하는 보편주의와 행정비용의 문제
위험과 욕구가 있는 사람만을 가려서 복지급여를 주는 것은 선별주의 아닌가? 기본소득 주창자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이 주장하는 보편주의는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적으로 모든 이가 급여를 받아야 성립한다. 반면에 복지국가의 보편주의는 ‘보편적’ ‘보장’을 뜻한다. 내가 건강하다면, 직장생활을 계속 한다면, 아이도 없다면 당장 복지혜택을 못 받는다. 그러나 아플 때, 실직했을 때, 아이가 생겼을 때 누구든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보편주의가 성립한다. 그런데 위험과 욕구가 발생해도 저소득자여야 복지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선별주의가 된다. 무상급식 논쟁을 상기해 보자. 저소득 가정 아이들에게만 급식이 제공되면 선별주의지만, 모든 학생들에게 급식이 제공되면 보편주의가 된다. 학생이 아닌 모든 국민에게까지 급식을 제공해야 보편주의가 되는 게 아니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대명사 스웨덴을 위시해 모든 복지국가의 복지급여는 위험과 욕구 판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크기를 따진다. 작은 위험이나 욕구에 대해서는 개인이 감당하게 하고, 큰 위험과 사회적으로 소망스러운 욕구(예컨대, 아이 출산)에 복지급여를 집중한다. 가벼운 접촉 사고는 보험 처리가 안 되더라도 큰 사고에 보상 수준을 높게 해주는 게 좋은 자동차 보험이듯이 말이다. 감기 치료하러 종합병원 가면 본인부담금이 높고, 암 치료 때는 95%까지 국가가 비용 처리를 해주는 이유다.
물론 위험과 욕구 판정에 행정비용이 발생한다. 기본소득 원리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현금 지급을 하면 행정비용이 훨씬 적게 들 것이다. 그러나 이윤을 쫓는 민간의 자동차 보험회사도 행정비용을 아끼기 위해 사고 판정 없이 무조건적으로 보상금을 지급하지는 않는다. 다소 행정비용이 들더라도 사고 판정을 하고 보상금을 지급한다. 이렇게 해야 한정된 보험료 수입으로 최대한의 보장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국민의 혈세를 거둬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는 국가에게는 더 정확한 위험과 욕구 판정이 요구된다. SOC 건설 사업이 방만하게 운영되지 않도록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조건 재정을 아끼자는 게 아니다. 이래야 진짜 필요한 SOC사업에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있다. 사회보장 효과가 미미한 기본소득으로 복지재원이 낭비되지 않아야, 사회보장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이다. 행정을 효율화해서 관료제 비용을 최소화해야겠지만, 복지행정에 필요한 비용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플랫폼 노동자와 사각지대 문제는 복지국가의 원리로 해결 가능
사각지대에 빠져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플랫폼 노동자를 위해, 또 자산이나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5200만 국민 중에 이들은 소수이다. 이들을 기존의 사회보장제도에 포괄하려는 노력을 펼치는 게 맞지, 이들 소수 취약계층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나머지 다수 국민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지급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기본소득 지급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 때문에,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취약계층을 사회보장체계로 포용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건강보험을 보자. 사회보험이지만 사각지대는 없다.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도 건강보험의 혜택을 변함없이 누릴 수 있다. 왜 그런가? 사업체 가입자 외에도 일반 국민들을 인별 관리하기 때문이다. 또 저소득자들은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건강보험 혜택뿐만 아니라 본인부담금도 면제받을 수 있게 일반재정에서 의료급여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회보험도 건강보험처럼 하면 된다.
고용보험도 사업장 관리에서 인별 관리로 전환하여 가입율을 높이고, 그래도 발생하는 사각지대의 노동자는 일반재정으로 운영하는 실업부조제도를 통해 보호하면 된다. 최근 정부에서 추진하기로 한 전국민고용보험제도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덴마크가 그렇게 하고 있다. 자영자든, 15시간미만의 단시간 근로자든, 배민 라이더든 모든 소득자는 8%의 노동시장세(Arbejdmarkedsbidrag)를 납부하고, 실업으로 또 질병으로 인해 일을 못하게 될 때 실업급여를 받는다. 직업훈련 비용도 여기서 나온다. 소득이 없다고 청년이라고 직업훈련과 훈련수당에서 배제되지도 않는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는 기초연금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는 자산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화로, 저소득자의 부족한 소득은 근로장려세제(EITC)의 강화로 해결하는 게 가능하다. 사회보험이 안 되면 일반재정이 투입되면 된다.
취약계층을 기존의 사회보장체계로 포용할 수 있는 사회보장적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이 아닌 대다수 국민에게도 기본소득을 매월 줘야 취약계층이 보호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앞서 지적했지만,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면 그 비용이 엄청나다. 월 10만 원씩이면 62조4천억 원, 월 20만 원씩이면 124조8천억 원이 필요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의 1/2에 불과한 월 30만 원씩만 잡아도 187조2천억 원이 소요된다. 이는 2018년 의료, 연금, 보육, 실업, 기초생활보장제도, EITC 등 모든 복지사업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쓴 205조 원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2020년 사상 최대 수퍼예산이라는 500조 원의 약 40%에 달하는 큰돈이다.
이번에 전국민 대상 재난지원금 14조 원을 마련하는 데에도, 북한 핵 위협 속에서도 국방비에서 1.5조 원을 삭감하고 국채까지 발행하였다. 경기도도 재난지원금(재난기본소득) 지급에 필요한 1조3천6백억 원을 마련하기 위해 재난관리기금, 재해구호기금, 지역개발기금을 모두 털어 쓰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소액금융지원 500억 원도 삭감해야 했다. 10만 원, 20만 원, 30만 원짜리 기본소득을 위해 매년 62조, 124조, 187조 원을 마련해야 한다면, 과연 무슨 공공사업과 서비스가 축소당할까? 사회보장사업은 삭감을 피할 수 있을까?
혹자는 국토보유세를 도입해서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2018년 부동산 보유세와 거래세까지 포함한 모든 재산세수가 60조 원이다. GDP 대비 비중으로 보면, 이미 OECD 평균의 두 배에 가깝다. 이런 재산세를 두 배, 세 배, 네 배 늘려야 10만 원, 20만 원, 30만 원짜리 기본소득 예산 소요를 충당할 수 있다. 부작용은 차지하고 이게 실현 가능한가? 결국에는 이번 재난지원금이나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의 경우에서 보듯, 국민들에게 현금 쥐어주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공공서비스 축소하고 국채를 발행하는 식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보장 강화는 언감생심이다.
책임보험에서 종합보험 수준의 복지국가 건설이 가야할 길
자동차 보험에 비유하자면, 한국은 의료보장을 제외하면 아직 책임보험 수준의 복지국가이다. 이를 종합보험 수준의 복지국가로 만들어 가야 한다. 차 사고도 없고 차량을 도난당한 것도 아닌데, 가입자들에게 모두 소액이나마 ‘기본 보상금’을 매월 지급해 버린다면 책임보험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책임보험이라도 유지하면서 ‘기본 보상금’을 지급하자면 보험료를 대폭 인상해야 할 것이다. 사고가 나도 도움이 안 되는 기본 보상금은 포기하고, 책임보험을 종합보험 수준으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게 어떨까?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수준에서 보험료를 조정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서구의 앞선 복지국가들처럼 말이다.
민간 자동차 보험은 사고의 위험이 낮은 가입자에게는 보험료를 깎아 준다. 그러나 복지국가에서는 오히려 복지가 필요 없을 사람들에게 세금도 보험료도 많이 떼어 간다. 내기만 하고 받는 게 별로 없어 억울했는데, 기본소득을 준다니 반가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본소득에는 상부상조와 사회적 연대의 정신이 담겨 있지 않다. 나도 언젠가는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우리 자식들이 그럴 수 있다. 뜻하지 않게 장애를 갖고 태어날 수도, 사고로 장애를 가질 수도 있다. 건강해 보이다가 큰 병에 걸리기도 하며, 코로나 때문에 멀쩡한 기업에서 실직을 당하거나 무급휴직에 처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보다 충분한 보상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당장 위험에 빠지지도 욕구가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나도 세금을 냈으니 받아야 한다며 기본소득을 챙겨 놓으면, 정작 위험에 빠진 우리 이웃과 어쩌면 미래의 나와 내 자식은 어찌해야 하나? 상부상조와 사회적 연대성에 기반을 둔 복지국가를 탄탄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선택이 아닌가 한다.
※ 기본소득과 복지국가의 원리 상충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양재진의 저서 「복지의 원리: 대한민국 복지를 꿰뚫는 10가지 이야기」 (2020, 한겨레 출판)의 8장(기본소득)과 2장(복지국가의 철학과 정책)을 참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