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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현장 공무원이 안전해야 국민도 안전하다

이금형(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전 부산지방경찰청장)

5월은 추운 겨울이 가고 신록이 무성해지기에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이렇듯 아름다운 시기지만 경찰이나 소방관, 그리고 방역요원 등 현장에 근무하는 분들에게는 다시 힘든 시즌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다양한 행사들이 곳곳에서 연이어 개최되고, 그 뒤에서 묵묵히 고생하고 있는 후배들을 보면서 경찰 등 현장 공무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돌아보게 된다.

경찰관들을 통해 본 현장 근무 요원들의 과로사와 건강 문제

정부의 필수 공공부분 인력 확충 정책에 따라 경찰관들의 숫자가 증가해서 11만 명을 넘었다. 경찰 1인당 치안 서비스 대상 인구는 최근에 약 450명 수준으로 이전 보다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미국(354명), 프랑스(300명), 독일(301명) 등의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경찰 1인당 치안 서비스 대상 인구수가 많음에도 높은 수준의 치안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장 근무 요원들의 업무가 과중할 수밖에 없다. 경찰뿐만 아니라 소방관, 각종 전염병에 대응하는 방역요원 등 전체적으로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현장 근무자들의 인력 부족과 높은 업무 강도, 그리고 장시간 노동은 다른 직종과 비교할 때 심각할 정도로 열악한 수준이다. 그러나 ‘공익(公益)’ 이라는 미명하에 이들 공무원들의 건강과 안전은 여전히 외면되고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업무 부담 등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경찰관의 자살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122명에 이를 정도로 최근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경찰백서). 그러나 이에 대한 대응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연 1회의 자살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데 그치고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우울증 환자를 발굴하거나 자살 위험이 높은 직원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는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살한 경찰관들을 근무 형태별로 나누어 보면, 파출소나 지구대 같이 국민들의 생활 안전을 책임지는 일선 현장에서 근무하는 지역 경찰들이 전체 순직자들의 38%나 된다. 그러므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현장 근무자들에 대한 자살예방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성공한(?) 자살에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만성적으로 심각한 우울증 상태에서 수시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는 일선 근무자들의 건강 상태도 심각한 것이다.

자살뿐만이 아니다.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도 전체 근무자의 55%가 현장 근무자들이다. 이들은 타 기능의 종사자들보다 그 비율이 훨씬 높다. 지구대나 파출소에 근무하는 지역 경찰들의 경우는 정보나 수사 등 타 기능 종사 경찰들의 경우보다 사망률이 높다. 게다가 이들의 사망 원인 중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경찰 내의 타 기능 종사자의 2배에 이르는 등 업무에 따른 차이가 매우 높아서 현장 근무를 기피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적절한 치안서비스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기 위해서도 이런 근무 조건의 개선과 함께 근무자들의 건강을 보장하는 대책이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 등 외국의 경우 현장을 조사하거나 사체를 검안하는 등 현장에서 강력 사건을 담당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의 우려가 있다고 보고 정기적으로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뇌심혈관계 질환 및 정신적인 스트레스의 실태 파악이 우선돼야

경찰은 현장 출동을 하지 않고 내근을 할 때도 항상 긴장 상태에서 대기해야 하고, 야간 근무, 잦은 출동, 긴급 상황 발생 등 업무 자체가 상시적인 긴장을 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전체적으로 현장 근무 요원들의 뇌심혈관계 발생률이 높은 것이다. 특히 야간 근무는 수면장애와 만성피로뿐만 아니라 교대 근무 부적응 증후군(SMS: Shift Maladaptation Syndrome)을 초래하여 뇌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는 경우 외에도 파출소나 지구대 근무자들은 각종 민원에 시달리며 심각한 ‘감정노동’에 종사하게 되고, 소진(burn out)된 상태에 이를 정도로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이로 인한 자살과 뇌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이 매우 높은 상태에 놓여있다. 과로와 장시간 근무는 민원인들에 대한 불친절이나 업무 효율의 저하 등으로 나타나지만, 구조적인 대책 없이 내부 감사나 징계만으로 예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산업재해나 작업 관련성 질환의 실제 유병율은 통상 신고율의 평균 10배 이상이므로 사실은 보고된 순직자 보다 업무와 관련해 사망이나 질환이 악화되는 경우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순직이나 장애인이 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나지만, 심각한 건강 문제에 대해서도 대부분은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혼자서 치료하고 있다. 특히 승진이나 보직 등의 불이익을 우려하여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혼자서 몰래 치료하거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협심증 같은 중증 질환으로 이행되는 등 사회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런 문제로 시달리는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체계적인 조사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이들 현장 근무자들의 평균 연령이 46세를 넘어 점차 고령화되면서 이런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직무 수행에 따라 발생한 질환이지만 치료는 대부분 개인적으로 하고 있으며, 경찰병원이 인접해 있는 강남구나 송파구의 경우에는 본인 부담 없이 치료가 가능하나 대다수의 지역에서는 그런 의료이용조차 비용 부담 때문에 용이하지 않은 실정이다.

지속적·체계적 관리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는 경찰관, 소방관, AI나 구제역 등 각종 전염병과 싸우는 방역요원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의 연이은 자살이나 과로사가 언론에 보도되었고, 최근에는 우편 배달원들의 사망과 자살이 이어지는 등 격무와 장시간 근로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었지만 체계적인 대책이 수립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것은 관련 법률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6조의 보건관리자의 선임 등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제1항에 보건관리자를 두어야 할 사업의 종류·규모와 보건관리자의 수 및 선임 방법을 구체적인 표로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 제2항에는 ‘각 호에 규정된 업무만을 전담하는 보건관리자를 두어야 한다.’는 조항도 명기돼 있다. 이들 조항으로 대부분의 노동자들에 대한 건강관리 책임을 사용자들이 지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사용자인 공무원들은 여기에서 제외되고 있다.

동법 시행령 제2조의2에서는 ‘법의 일부를 적용하지 아니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범위에 공공 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을 규정하고 있다. 이들 공무원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의무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원천적으로 배제돼 있는 것이다. 군인들의 경우 별도의 군 의료체계를 통해 건강관리를 하고 있지만, 공무원들 특히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는 현장 근무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다른 법률에서도 제대로 보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화재 진압이나 범죄자 검거 등 직접적인 업무 수행 과정에서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 보훈 관련 조항이나 공무원 신분 관련 법률에서 치료와 보상을 규정하고 있다. 또 선의에 의한 적극적인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재산상의 피해에 대해서까지 보장할 수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관련 법률의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현장 근무자들의 평상시의 건강관리에 대한 사용자인 국가의 책임이나 의무에 대해서는 ‘제외 한다’는 규정만 있고, 다른 보완 조항이나 법률은 없는 것으로, 그야말로 법률 미비 상태로 방치돼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문제의 종류와 크기, 그리고 심각성에 대해 국가가 공식적으로 조사하고 파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순직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어도, 각종 뇌심혈관계 질환에 이환(罹患)되어 있는 분들의 건강 위험과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시적으로 민원인들을 대하는 분들에 대한 감정노동의 실태를 조사하고 야간근무나 교대근무가 해당 직종 종사자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 가지 건강 위해 요소에 대한 파악도 필요하다.

현장 근무자들의 주민번호를 근거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가진 건강검진 기록을 확인하는 것은 비용도 적게 들고 간단하지만, 여러 가지 법률적 문제 외에 ‘직무 관련성’을 규명하는 것이나 ‘산재 인정’ 등의 다양한 문제와 각종 논란의 여지가 있으므로, 우선은 몇 개의 지구대와 파출소 등 현장 근무자들을 경찰서 단위로 표본을 선별해서 조사하는 것으로 이들의 건강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소방관이나 방역요원들은 직종에 따라 노출되는 위험이 다르므로 각각의 경우는 별도로 조사해야 한다. 일반적인 근로자들과 같이 정기적인 건강검진의 결과를 고용주에게 보고해 대책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작업 요건과 교대근무 실태의 파악, 특수검진 등을 통해 해당 업무 종사자들의 뇌심혈관계 위험도 평가를 하고, 이에 대한 맞춤형 관리를 하도록 하는 규정을 공무원들에게도 민간 기업들과 같은 수준으로 적용해야 한다.

둘째, 파악된 문제에 대한 대책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의 구축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찰의 경우 한국건강관리협회의 정기검진과 연 1회 정도의 자살예방 강의로 실질적인 건강관리와 뇌심혈관계질환 위험요소에 대한 관리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건강위험의 실태를 파악한 후 경찰청을 관할하는 행자부가 노동부에 협조 공문을 보내 현장 근무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건강관리를 요청하는 행정 절차가 필요하다.

노동부는 안전보건공단 등의 산하기관에 산업간호사, 산업보건위생기사 등의 보건관리자를 파견하거나 지역별로 근로자 건강센터 등 전문 인력과 시설들이 있으므로 이를 활용하여 지속적인 건강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경찰서나 지구대 단위로 산업간호사 등 보건관리자를 파견하거나 고정 배치해서 상시적으로 이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행자부와 노동부 간의 업무협약(MOU)를 통해 각 지역 산업단지에 설립돼 있는 근로자 건강센터 등을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대책이 될 수 있다.

셋째, 근본적으로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뇌심혈관계 위험요소를 파악했거나 질환으로 진단되었더라도 당사자가 승진이나 보직발령 등에 불이익이 있을 것을 우려해 적극적인 보고를 기피하고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경찰관들이나 소방관, 방역요원 등 현장 근무자들은 다들 너무 바쁘고 힘든 상태여서 개인이 알아서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야간 근무를 하는 등 3교대 근무가 일상적인 경찰, 소방관, 방역요원들의 경우 민간 기업체 소속이라면 당연히 특수검진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교대 근무에 따른 위험에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실제로 산업재해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질병은 ‘직업 관련성’이 상당이 높은 질환들이므로 보건관리자의 정기적인 건강관리와 위험요소 배제, 그리고 질환에 대한 치료 등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2012년 2월 민주통합당 백원우 전 의원의 대표 발의로 <경찰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안>과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그해 8월에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반영하여 ‘경찰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증진 제1차 기본계획’(2014-2018)도 현재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예산이 특별하게 늘어난 것도 아니고, 추가적으로 전담 인력이 배치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별로 실효성을 느낄 수 없는 실정이다.

별도의 법률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기존의 법률을 활용해 다른 민간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사용자인 국가가 이들의 건강관리를 책임지도록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정책이 집행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2조 제2항의 ‘법의 일부를 적용하지 아니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범위에 공공 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에 대한 규정을 삭제하거나 경찰, 소방, 방역 등 현장 공무원들은 제외하는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으로 법이 실효성을 가지도록 하는 게 가능하다. 이것은 법률이 아니고 시행령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국무회의를 통해 의결할 수 있다. 공무원들을 위해 특별하게 다른 분야보다 더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공무원이기 때문에 다른 민간 기업에 비해 차별받는 일은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장 공무원이 안전해야 국민도 안전하다.

이전의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공무원의 ‘갑질’이 만연했고, 이미 철밥통으로 인식되고 있는 공무원들을 위해 국가가 건강보장의 책임까지 져야 된다고 하면 반발하는 국민들도 있을 수 있다. 또 일반적으로 공무원이라고 하면 안정적인 연금뿐만 아니라 각종 휴가나 병가, 월차나 연차 등을 타 직종 보다 더 잘 챙길 수 있었기에 굳이 이런 조항을 두지 않아도 자신의 건강은 자기들이 알아서 잘 챙겨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촛불혁명의 힘으로 탄생한 제3기 민주정부에서는 더 이상 ‘철밥통’도 허용되지 않아야하고 ‘갑질’도 근절돼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사용자인 국가가 책임질 것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형평성이나 역차별을 해소하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는 모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상의 원칙에서 공무원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들에게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업무를 담당하는 현장 공무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말마다 다양한 행사들도 곳곳에서 개최되고, 억압됐던 집단적 의사 표현이 자유로워지는 등 국민들의 역동성이 살아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40년 동안 일선 현장에서 근무한 경험 때문에 한편으로는 우리 경찰들이 또 힘들어지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경비와 경호를 필요로 하는 중요한 일들도 많아지면서 일선 현장에 근무하는 후배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제 경찰과 소방관, 그리고 방역요원 등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분들을 위해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체계적으로 지킬 수 있도록 우리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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