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필드

노동·인권 전문지

영리병원 허용인가 공공의료 확충인가

이상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제주도 지사가 ‘불허 권고’로 의견을 모은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의 영리병원 개설을 허용했다. 이에 대해 원희룡 지사는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고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이기 때문에 ’의료 공공성 약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많은 제주도민들과 시민단체들은 거리로 나서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촛불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이런 논쟁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짜증이 나고, 다른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하다.

영리병원 허용 주장의 문제점

원희룡 지사는 영리병원 개설을 허용한 것은 감소세로 돌아선 관광산업 재도약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경제적 필요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이미 투자된 중국 자본에 대한 손실은 민사소송 등 거액의 손해배상 문제, 한국과 중국 간의 외교 문제로 비화될 우려, 그리고 외국 자본에 대한 행정 신뢰도 추락 우려도 심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관계에 대한 심각한 왜곡과 더불어 중요한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영리병원이 허용되어도 실질적으로 영리병원 때문에 제주도를 찾는 추가적인 관광객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관광객들이 영리병원이 없다고 제주도를 덜 찾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외국의 관광대국들의 사례들을 보면 안전하고 저렴한 공공의료가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라이거나 관광객들의 자국 의료보험 체계에서도 서비스 적정성을 인정해 주는 신뢰성 있는 나라, 해외 관광 중에 발생한 사고나 질병을 저렴한 비용으로 잘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들을 관광객들은 더 선호하고 있다.

관광객들을 포함한 외국인 진료의 필요성 때문이라면 영리병원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공공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외국인들이 이용하기에 훨씬 더 편리하다. 이렇게 공공의료가 잘 발달돼 있는 나라에서는 관광객들이나 외국인들 모두 개인 비용이 아니라 자신이 가입한 각종 보험이나 국가의 의료보장 제도에서 치료비를 지급해 주므로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공공병원이 많이 확충된 나라가 관광객 유치나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더 유리하다.

둘째, 보건의료가 산업 측면에서 대규모의 생산 유발과 고용 창출을 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므로 영리병원을 통해 의료서비스 산업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날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좀 미약하다. 보건의료가 대규모 생산 유발과 고용 창출을 할 수 있는 영역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의료산업이라고 하면 의약품, 의료기기, 의료소모품 등이 주요 영역이고, 이들 분야는 영리병원의 허용과는 별 상관이 없다.

셋째, 영리병원이 허용되어야 의료서비스 산업이 발전된다는 주장도 근거가 별로 없다. 고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서 외국 환자를 끌어오거나 신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의사 개인이나 의료법인의 자금만으로는 부족하고 외부의 투자를 끌어와야 하는데, 이들의 투자로 인한 이익을 합법적으로 배당하기 위해서는 영리병원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유럽 의료기술 선진국이나 의료산업이 발전된 나라들은 오히려 공공의료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나라들이다. 따라서 외국인 투자 유치나 의료서비스 산업의 활성화 등을 이유로 영리병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객관적인 증거가 별로 없는 것이다. 영리병원의 유무가 관광객 유치나 의료산업 발전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넷째, 원희룡 제주도 지사가 주장하는 생산 유발 효과와 고용 창출 효과도 사실상 의문이다. 실제로 영리병원은 고용 창출 효과는 극히 낮은 경우가 많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원을 감축하고 정리해고를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영리기업들의 행태인데, 이윤과 경영의 논리가 적용되는 영리병원에서 고용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미국 등의 영리병원들에서는 공공병원에 비해 오히려 고용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의 영리병원 허용이 초래할 문제들

반면 제주도에 외국인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발생할 문제점들은 분명하고도 확실하다.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제주도의 발표와 달리 실질적으로는 내국인 진료를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원희룡 지사는 조례 제정을 통해 영리병원의 허가 조건으로 내국인 진료를 금지한다고 발표했지만, 이미 그것이 법률 위반이라며 당사자인 녹지병원 측에서 반발하고 있다.

현행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과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에는 외국 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 금지에 대한 조항이 없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법률이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조례를 적용할 법적 근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내국인이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도 처벌을 할 수 없으며, 또 내국인의 진료 요청을 거부할 법적 명분이 없다. 우리나라의 의료법에서는 환자의 진료 요구를 의사가 거부할 수 없도록 해놨기 때문이다.

검은 머리 외국인을 어떻게 감별한 것인지, 영주권을 가지고 있거나 이중 국적 보유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응급환자가 발생한 경우 내국인이지만 진료를 해야 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등 현실적으로 내국인과 외국인의 구분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같이 병원 입구에 여권을 검사하는 인력을 제주도에서 배치하는 것도 도민의 세금으로 특정 병원의 영업을 도와준다는 논란이 일 수 있다. 근본적으로 내국인이 이용할 경우 처벌하는 조항이 없으므로 의도적으로 몇 명의 내국인들이 조직적으로 이용할 경우 제주도는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없으므로 영리병원 허용에 대해 “우려가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또한 제주도에서 영리병원이 시작되면 동일한 논리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충북, 동해안권 등 총 8개의 나머지 지역으로도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제주도에서 유사 성격의 법률로 허용된 사안을 경제자유구역법에 다라 지정된 타 지역에서 추진할 경우 형평성 문제도 있고, 중앙정부와 생각이 다른 지방정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추진할 경우 중앙정부가 규제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이들 타 지역에는 인구도 많기 때문에 제주도와 달리 기존의 국내 의료 체계에 영향을 크게 미칠 개연성이 크다.

영리병원 허용이 위험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의학적으로 필요하고 타당한 영역을 넘어서는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사무장 병원이 문제가 되는 것은 과잉진료나 불법진료 등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이들 병원을 현장 조사하면 거의 대부분 수십 억 원의 부당청구나 과잉진료 등이 행해진 것이 밝혀진다. 그런데 의료윤리나 의학적 필요성 보다는 수익의 극대화와 투자금의 조기 회수가 목적인 사무장 병원과 같은 곳을 국가가 법적으로 합법화하는 것이 바로 영리병원인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영리병원은 진료를 받는 환자들에 대한 보호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 제도에 따라 우리나라의 모든 의료기관들에서 행해지는 진료는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되고, 따라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건강보험 급여비용을 청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의료기관들은 진료의 내용이나 진료의 적정성 등에 대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가기관에 의해 심사와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영리병원인 녹지병원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만 하게 되니 가벼운 질환에 대해서도 높은 진료비를 내야 한다. 또 진료의 적정성이나 타당성 등을 보장하는 것도 어렵다. 최악의 경우 의료사고가 발생해서 형사사건으로 고발되거나 환자가 소송을 통해 민사사건으로 고소되기 전에는 진료의 내용에 대해 외부에서 관여할 방도가 없다. 의료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공급자 유인수요 등 일반적인 경제학적 원리와 다르게 작동하는 부분이 있는데, 제주도 영리병원에서는 공급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이들 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이다.

영리병원 허용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과도하게 발전된 민간보험회사들이 진출하는 통로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외국계 보험회사들이 많이 진출해 영업을 하고 있다. 국내의 거대 보험회사들이 외국 기업을 앞세운 우회 투자로 영리병원을 설립하고, 자신의 보험에 가입한 분들을 이들 병원을 이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미국은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라는 방식으로 보험회사에서 직접 병원을 설립하는 것이 발달돼 있다. 이 경우 의학적 근거가 없는 과잉진료의 위험 외에도 필요한 진료를 하지 않는 과소진료의 위험 등에서 환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많은 부담을 지게 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GDP의 17%를 국민의료비로 지출하면서도 국민의 건강수준과 의료만족도가 극히 낮은 미국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해결 방안

이미 외국인 영리병원이 제주도에서 허가가 되었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부정적인 효과는 불가피하다. 물론 병원이 제주도에 한정되어 있고, 규모도 작기 때문에 제주도 자체의 보건의료 체계에 그리 큰 변화나 유의미한 영향을 유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제주도를 넘어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고, 또 불필요한 정치사회적 갈등과 논란을 유발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안을 단순히 제주도만의 문제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제주도 의회가 먼저 원희룡 지사의 독단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에 대해 필요한 견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제주도민들은 이미 제주도 조례에 따라 공식적으로 운영된 공론화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무시한 도지사에 대해 영리병원 거부 서명 운동과 지사 소환 운동을 시작했다. 추운 겨울 날씨에 도민들을 거리에서 떨지 않도록 민주당이 다수인 제주도 의회에서 지방자치의 원리에 맞게 행정부에 대한 적절한 견제를 해야 한다.

둘째, 보건복지부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제한할 경우, 의료기관 입장에서 허가 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내국인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지 않는 것이 진료 거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회신한 보건복지부는 승인한 조건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의혹이 있을 경우에는 승인 취소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그 외에도 감염 관리의 이행 여부나, 위생 사항 준수 여부 등 환자 안전을 위해 실제적으로 행정권을 통해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권한이 없어서 견제를 못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또 제주도 영리병원 허용이 이전 정부 때 국민의 의사에 반해 행해진 결정이라면 투자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하더라도 영리병원 허용으로 인해 국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화해치유재단에 일본 정부가 출연한 돈을 국민의 정서와 반하는 결정이었기에 번복하고 국고를 활용해 돌려주기로 한 선례가 있다. 중국과의 외교 분쟁이나 투자자에 대한 보호 등이 국민이 건강과 안전보다 우선시 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결국 국회가 나서야 근본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과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의 적절한 개정(외국인 환자만 진료할 수 있도록)을 통해 우리나라 보건의료 제도와 건강보험 제도를 지키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이 문제는 제주도에 한정된 사안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대할 사안이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적폐 해소의 일환으로 영리병원 문제에 대한 국회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

촛불혁명의 여망을 안고 출범한 새 정부는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국민의 건강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더 이상 영리병원 허용과 같은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순 없다. 

LEAVE A RESPONSE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