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과 적폐
제천과 밀양, 연이은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벌써 칠십 명을 넘어섰다. 지난 연말에는 경기도 용인, 평택 건설현장에서 크레인이 무너지면서, 건설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포항에서는 밀폐공간에서 작업 중 4명이 질식으로 사망했다. 겨울철 화재, 건설현장 크레인 전복, 밀폐공간 질식 등 모두 처음 겪는 사고들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아니 매년 똑 같은 모습으로 계속 반복하여 겪는 사고들이다. 이렇게 사고로 인해 사망하는 한국의 모습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며, 특히 산재사망은 산재통계가 작성된 이후 매우 높은 수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아직도 선진국의 2~5배에 달하고 있다. 언론에서 다루어질 때마다 정부는 중대재해조사 혹은 특별점검을 대책으로 내세우지만, 연이은 화재와 반복되는 전복이 보여주듯, 문제는 그대로만 있다. 결국 ‘안전불감증도 적폐로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언론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안전불감증이 대통령의 한마디로 이제는 고쳐질까? 지금까지 우리는 정부부처의 이름에 안전이 들어가거나, 심지어 독립된 안전관련 부처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기도 하였으나, 단순한 행정조직 변화로 안전이 달성되지 않는 것 또한 보았다. 마찬가지로 국회에서 수많은 안전관련 법률을 만들었으나, 규제완화와 함께 무용지물이 되는 것도 보아왔다. 단순히 행정이나 법률을 통해 안전이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구태의연한 정책이 바뀌지 않고, 그 수립과 집행을 담당하는 사람의 시각이 바뀌지 않고, 그들의 경험 내지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안다. 왜냐하면 안전은 태어나면서부터 경험하고 그를 통해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바뀌기 위해서는, 먼저 행동이 바뀌고 그에 따라 안전에 대한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지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행동이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안전인식을 다르게 갖으라 하는 것은 단지 정부명칭을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이 바뀌는, 즉 삶이 바뀌면서 얻어지는 경험을 다시 체계화시키고 인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있지 않는 한, 아무리 법이 바뀌고 조직이 바뀌어도 실제 그 내용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행동이 그리고 삶이 바뀌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뀐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우리 주위에서 실제 그 사례를 보기도 한다. 특히 사고로 죽을 뻔 하였던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경험은 단 한 번 만에 행동과 인식이 바뀌었던 경험으로서, 그들의 경험을 우리가 활용할 수 있다면, 매우 중요한 변화의 톱니바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위험에 희생된 사람들을 못본척하거나 혹 관심을 갖더라도 단지 보상 도모에 그치는 동정에 그쳤다. 그들의 경험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어떻게 정말 피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 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안전불감증이 치료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처방과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여기서의 처방은 단지 캠페인이나 구호가 아니라, 실제 행동을 통해 얻어지는 경험에 바탕을 두고, 안전의 근본원인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인식과 가치변화이어야 한다. 문화가 변화한다는 것은 조직의 측면에서는 담당하는 역할과 관계가 바뀐다는 것이며, 개인의 측면에서는 행동이 바뀌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가치관 특히 특정 사안에 따라 떠오르는 감정, 연상, 패턴 등의 뇌 반응이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계가 계속 다시 만들어지면서, 이를 성찰/확인하는 작업을 추동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추동이 한 번만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라, 일정 변화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즉 책임질 수 있는 사회적 단위를 중심으로 행동과 성찰이 관계의 변화로 표현될 수 있는 되먹임을 계속 만들어내는 사회적 역할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안전은 단지 전문가의 영역이고, 재해자와 피해자들은 단지 소모품으로서, 전혀 변화를 위한 추동의 중심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안] 국민안전기본법 제정을 통하여, 재해, 피해, 당사자의 역할을 만들어 내는 일
1. 피해자의 피해를 극복하는 과정 (행동, 인식, 배움의 과정 – 교육 및 재활과정)
피해의 내용을 들여다 보는 작업
피해의 원인을 찾아보는 작업
피해의 원인을 바꾸어내는 작업
대안적 조직/사회를 만들어 내는 작업
2. 단계별로 그 기전과 과정을 확인하도록 함
실천적 행동/성찰/교육
이론적 행동/성찰/교육
현장 행동/성찰/교육 및 제도(체계)화 교육
3. 이를 바탕으로 일부 피해자, 재해자, 당사자가 직접 역할을 맡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함 – 기본적으로 기존 위치로 복귀, 그 외의 역할들
시민사회단체
옴브즈만
대안컨설팅회사
정부기구
교육기관(초등학교, 중학교, 등등)
회사에의 복귀
(모두 단기적이며, 실제 변화에 따라 평가받도록 함)
4. 이러한 모든 과정을 기획, 집행, 되먹임, 그리고 확산시키는 기본 단위를 법적 근거를 갖고 정부주도로 만들도록 함
재해, 피해, 당사자와 다른 사회주체들이 함께 융합하는 과정을 갖도록 함
정부의 정책평가 및 수립과정, 예산편성, 정책모니터링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도록 함
아직 우리 사회에서 추동의 중심을 담당하는 어떠한 조직도 역할도 그리고 인식도 없는 상태이지만, 이제는 국민안전기본법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재해자들에게 재해를 극복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재해자가 단순히 보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재해의 극복에 아니 더 나아가 재해의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면, 재해에 지불되는 비용은 훨씬 더 큰 이득이 되어 돌아 올 것이다. 재해자가 단순히 사라지고 사회 뒤편에서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재해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다른 재해자들을 지원하고 재해를 예방하며 더 나아가 재해가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사회를 이번에는 만들어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