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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청년의 ‘문화 향유권’ 보장을 위해

송영신(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사회복지학 박사)

청년의 ‘문화 향유권’ 보장을 위해

사람들은 흔히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을 한다. 유난히 우리나라는 유행에 민감한 터라 불과 2~3년만 지나도 유행하는 옷, 음식, 놀이문화 등이 빠르게 변화하여 그 속도를 맞추려면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으면 금세 ‘촌스러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 되기에 십상이다. 그래도 시절 지난 스타일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돌아오곤 한다. 소심하게 ‘아, 우리 학창 시절에는 OO가 최고였는데’라고 ‘라떼(나 때)’를 외치는 세대들도 20~30년 전 즐기던 것들이 다시 유행하게 되면 왠지 모르게 어깨를 으쓱하게 된다.

‘레트로(retrospective)’의 조용한 습격

극장가에 약간의 소강상태가 보이던 연초, 마땅히 볼 영화가 없던 차에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슬램덩크’가 영화로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관을 찾았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라는 제목으로 필자의 학창 시절 한참 인기를 누렸던 농구를 주제로 한 만화, 애니메이션이 영화로 재등장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요즘 시기에 조금 ‘뜬금없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영화를 누가 볼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영화관에서는 이벤트로 슬램덩크를 추억할 수 있는 소품도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개봉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구입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미 개봉 첫날에 소진되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가격대가 조금 높은 편이었는데도 하루 만에 완판 되었다니…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니 예상외로 관객이 많았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수칙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영화관의 관객 수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자리를 채운 사람들의 연령대는 대강 보아도 거의 30대 이상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관객들의 영화 몰입도는 상당히 높았다. 어떤 이들은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또는 훌쩍이는 이도 있고, 어떤 장면에서는 모든 관객이 숨죽이고 집중하기도 했다. 30여 년 전 유행하던 애니메이션 하나가 대체 뭐라고, 영화관에서 이런 ‘덕후’스러운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30대를 넘어 40~50대의 이런 반응은 스스로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개봉 약 50여 일 차, 이 영화는 누적 관객 수 300만 명을 넘어섰고, 아직도 영화관에서 상영 중이다.

문화적 욕구 : 관객의 유희본능

우리는 지난해 4월 약 2년 1개월 만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본격적으로 ‘위드 코로나(with COVID)’ 시기를 살고 있다. 그간 얼어붙었던 사회, 경제, 문화 영역에서도 해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움으로 지친 사람들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특성을 드러내는데, 바로 문화 영역, 그중에서도 영화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완화 시기와 맞물려 개봉한 <범죄도시 2>는 대중의 문화적 욕구 분출을 보여줬다. 누적 관객 수가 약 1,269만 명으로 2019년 <기생충> 이후로 3년 만에 ‘천만 영화’ 기록을 세웠다. 흥행의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이 흥행성적이 그동안 억눌려있던 관객의 유희본능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목격하면서 개봉을 망설이던 영화산업 관계자들은 앞다투어 스크린 개봉일을 정하고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그래서 작년 여름은 그야말로 국내·외 대작들이 쏟아져나온 시기였다. 국제영화제 경쟁작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수상까지 한 <브로커>, <헤어질 결심>, <헌트>와 <외계+인 1부>, <한산 : 용의 출현>, <탑건 : 매버릭>, <토르 : 러브 앤 썬더> 등 국내‧외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줄지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의 작품성, 제작 규모, 수상 이력 등이 개봉한 모든 영화의 흥행을 보장해주지는 못했다. 다만, 작년 12월에 개봉한 약 5천억 원의 제작비가 투여된 <아바타 : 물의 길>만이 흥행하며 천만 영화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대중(大衆)이 향유하는 한국 영화

우리 영화가 이른바 ‘천만 영화’의 타이틀을 얻게 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르와 새로운 기법들이 시도되었던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2003년 개봉된 <실미도(강우석)>, <올드보이(박찬욱)>, <살인의 추억(봉준호)>, <클래식(곽재용)>, <장화, 홍련(김지운)>, <황산벌(이준익)>이 있다. 199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겨나면서 영화관람뿐 아니라 쇼핑, 외식 등 그 주변 문화까지 경험할 수 있는 이곳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로써 영화는 문화 향유의 가장 큰 분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한국 영화계는 ‘한국 영화는 재미없다’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며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대중들의 발길을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이어 흥행에 성공하며 ‘천만 영화’ 시대를 도래하게 했고, 이로써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위기

그러나 우리나라 영화산업은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등장하면서 한순간에 위기를 맞이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며 영화관은 침체기에 빠졌다. 이제는 100만 명만 넘어도 흥행에 성공했다고 여길 정도이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외출이 제한된 사람들은 영화관 대신 자신의 안방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안방극장은 ‘유튜브’, ‘넷플릭스’, ‘티빙’, ‘왓챠’, ‘웨이브’ 등 바로 ‘OTT(over-the-top media service)’를 통해 제공되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작품의 완성도, 투자 규모 등 질적 수준 또한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것만큼 높아졌다. OTT는 무엇보다 전 세계인들에게 영상 콘텐츠를 동시에 동일하게 제공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 점이 대한민국의 영화 및 드라마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돌풍을 일으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관객의 발길이 뜸해진 사이 영화관은 입장료가 조금씩 올라가더니 현재 주말 기준으로 티켓 한 장에 만오천 원까지 되었다. 이렇게 영화관람료가 오르면서 개봉 전 시사회에서 약간의 혹평이라도 나온다고 하면 그 영화는 관객에게 바로 외면당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 영화관을 찾는 관객 수와 매출액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5년간 그 추이를 살펴보면 코로나 대유행 이전인 2019년 대비 2020년 연간 매출액과 관객 수 모두 1/3 수준으로 급감하였고, 2022년 다시 증가세를 보였으나 이전의 60% 정도밖에는 회복하지 못했다.

 

청년들의 문화 향유권을 허하라! 

이와 같은 영화산업의 위기 또는 침체 현상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애니메이션 영화로서 예상치 못하게 조용히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 흥행을 견인하고 있는 세대는 30대 후반 이상의 연령대 즉,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세대가 추억을 되살리며 주요 문화적 소비층이 되고 있다. 비싼 영화관람권 가격에도 과감하게 주머니를 열고 있다. 그러나 청년 세대(20~30대)에게 ‘만오천 원’의 티켓 가격은 관객이 영화관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큰 장벽이 될 수 있다. 이는 또한 최근 걷잡을 수 없는 물가상승과 함께 청년들의 ‘문화 향유권’을 더욱 침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결국, 영화 관객의 외면은 영화산업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다시금 대중의 문화 향유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20~30년 후에, 현재 청소년‧청년들의 문화적 경험과 추억을 소환하며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이들의 문화적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 이 글은 아키스브리핑(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예술지식정보시스템) 제319호 – ‘영화관을 벗어난 영화: 위기와 기회(송영신‧위지웅, 2022)’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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