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대파 가격이 고공 행진하는 이유와 해결 방안
지난해 8월부터 옥수수, 대두(콩), 밀 등 국제 곡물가격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최근 6개월 동안에도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 덕에 국내외 농산물 펀드가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인 경기부양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농산물을 포함한 원자재펀드가 각광 받고 있다. 게다가 이상 기후 현상까지 한몫하고 있다.
기후위기, 식량위기, 그리고 소비자 밥상의 빨간불
기후위기는 ‘식량이 무기이고 곧 돈인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징조가 우리나라에도 나타나고 있다. 작년 겨울 한파로 겨울 대파 가격이 고공행진이다. 이상 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대파’를 ‘금파’라 부르고, ‘파테크’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지수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농축수산물 물가는 13.7% 올랐고, ‘파’는 305.8%나 급등했다. 대파는 지난 4년 동안 작황이 좋아 가격 폭락을 겪은 바 있다. 경작 면적도 10%가량이나 줄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대파 출하량은 지난해보다 1/2가량 줄었고, 출하 면적은 30% 정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대파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수입을 늘리는 방안도 강구되었지만, 이마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최근 불거진 비위생적인 중국산 김치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불신이 커져 수입 대파가 시장에서 외면 받고 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가락시장에 반입된 수입 대파 물량은 12톤(전년 동기 물량은 7톤)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가격에 비해 많지 않은 양이다.
이렇듯 소비자 밥상에 빨간불이 켜졌다. 소비자가 농산물 가격으로 지불한 돈의 대부분이 생산자에게 돌아간 것도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피해를 보고 있는데, 도대체 누가 이득을 취했을까?
농산물 가격의 급등락 문제, 왜 발생하는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제교역이 불안정하고 이상 기후까지 지속된다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갈 게 뻔하다. 가락시장 경매제, 대규모 출하자, 출하 물량 조절이라는 3박자를 갖추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당일의 반입 물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가락시장 경매제는 롤러코스터처럼 가격 변동성이 크다. 농산물 펀드 조직이 대규모 포전 거래(일명 밭떼기 거래)로 사재기를 해놓고 도매시장 출하 물량을 조절하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작년 12월부터 가락시장에 겨울 대파를 출하하기 시작한 신규 농업회사법인의 행보를 보면, 농산물 펀드의 움직임을 짐작할 수 있다. 1월에는 서울청과(22톤), 동화청과(110톤), 한국청과(92톤), 대아청과(59톤)에 총 283톤, 2월에는 서울(12톤), 동화(205톤), 한국(180톤), 대아(283톤)에 총 679톤, 3월에는 물량이 월등히 증가하여 서울청과에 61톤, 동화청과 257톤, 한국청과 238톤, 대아청과에 453톤 등으로 총 1,009톤을 출하했다. 1월~3월에 출하한 금액은 약 85억 원 규모로, 이 시기에 출하된 대파 총 거래금액(약 844억)의 약 10%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일반 농산물 유통 경로(2018년 농산물 유통 실태 조사)를 보면, 생산물의 36.9%가 생산자(농민)와 산지유통인(밭떼기 상인) 간의 포전 거래로 유통되고, 이 중 17.2%는 도매시장으로 출하된다. 생산물의 49.4%는 생산자단체가 담당해, 그 중 24.4%가 도매시장으로 출하된다. 대파의 사례가 아니라도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농산물 투기 예방이 더욱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유통체계를 재점검하는 한편, 생산자들의 현장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는 유통정책이 필요하다. 대파 생산 농민들은 도매시장에 출하할 수 있는 기반이 작목반 중심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 때문에 농촌은 일손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농산물 수확 및 포장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동화 기계 및 시설 보급이 선행돼야 하고, 나비 모양의 단 묶음을 요구하는 관행도 철폐돼야 한다.
지금, 공공식료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
농산물 가격의 급등락 문제를 방치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공익을 우선으로 하는 건전한 유통체계를 다시금 세워야 한다. 소비지인 가락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에 따라 수입을 늘리거나 산지 폐기 정책을 펼치는 개발도상국가 식의 농업정책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공공의료처럼 공공식료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산지정책과 소비지정책이 긴밀하게 연결되고, 유통 주체들의 다자간 협력을 견인하는 공공 유통체계의 구축이 시급하다.
2020년, 코로나19로 모든 국민이 고통 받고 큰 어려움을 겪은 시기에 가락시장 도매법인들은 사상 최고의 순이익을 가져갔다. 과거에는 정보의 비대칭, 통신의 미발달로 인해 가락시장에서 경매제도에 의한 농산물 기준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유효했으나, 지금은 유통 환경이 180도 달라졌다. 농산물 이력 추적이 가능한 블록체인을 위시해, 빅데이터, 오픈소스, 프로토콜 경제, 스마트마켓 등, 4차 산업혁명시대의 신기술을 활용한 물류의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가격을 얼마나 받을지도 모른 채, 전국 각지에서 가락시장으로 올려 보낸 농산물은 여전히 그날그날의 물량에 따라 사후에 가격이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선진 농업 국가들에서 보는 것처럼 생산지에서 농산물의 가격을 결정하고 소비지로 분산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한살림, 두레, 아이쿱 등의 생활협동조합처럼 소비자의 필요량을 반영하여 생산자단체와 가격협상 및 계약재배를 해서 소비지에 보내는 것도 아니다.
해마다 그랬듯이, 가락시장 경매가격 급등락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산지에서 폐기되는 농산물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롤러코스터 가격 급등락을 완화하고 밥상 물가도 안정시킬 수 있는 방안은 경쟁체제의 구축뿐이다. 이는 공익을 위한 상생 방안이기도 하다. 협업 구조 속에서 생산자, 소상공인, 소비자 편익을 키울 수 있는 공익형 시장도매법인(직거래도매상)을 한시라도 빨리 가락시장에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경쟁체제가 갖춰진다. 도매시장법인(경매회사)의 독과점 체제를 혁신하는 일이다.
공공출자법인과 공익형 시장도매인제, 왜 중요한가?
광역 지자체가 참여하는 여러 공공출자법인이 출범한다면, 이를 기반으로 공익형 시장도매인제는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유리한 계약재배의 비율을 높일 수 있다. 가격심의위원회를 두어 주요 채소류에 대한 최소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또한 소비지에서 결정된 가격만 바라보며 농산물 폐기정책(2019년 전남도의 경우 약 300억 원 투여)을 펼쳤던 생산지정책을 소비정책과 연결함으로써 능동적인 농업정책을 펼칠 수 있다.
시장도매인제는 경매제보다 두드러지게 큰 이점을 가진다. ‘시간이 곧 돈’인 시대에 체류시간은 1.5~7.5시간이나 절약된다. 단위면적 당 거래금액은 3.7배, 팔레트 처리율은 1.8배 높은 유통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는 보다 신선한 농산물을 적정 가격에 구입하게 되고, 생산자는 생산 계획을 세워가며 가격결정권을 가지고 제값을 받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라인 상거래가 가속화되고 있는 유통 흐름에 맞춰 거래는 온라인(광역지자체 온라인 농산물 거래센터 구축)으로 하고, 가락시장을 허브앤스포크(HUB & SPOKE) 물류기지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가락시장 내의 광역 지자체 물류기지는 지역 내에서 생산되지 않은 농산물(구색 갖추기에 필요한 물량)을 수급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더불어 지방도매시장도 활성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코로나19로 소비자들의 의식도 많이 달라졌다. 환경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친환경농산물을 더 많이 구입했다. 접근성을 높이고, 청년들의 삶 속으로 녹아들 수 있는 친환경농산물의 보편화를 위한 방안도 필요하다. 2020년에 5조 원의 농산물이 거래되었던 가락시장에 친환경농산물거래소가 마련되면 친환경농업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 백혜숙은 서울대학교 천연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도시 농업, 사회적 경제, 농수산물 유통을 두루 경험한 농업·농촌 전문가로서 현재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