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의 해법, ‘서민금융 전용차선제’로 달려보자
적극적인 가계부채 관리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첫 가계부채 종합대책이 당초 예정보다 다소 늦어진 9월 중순 발표된다고 한다. 이번 대책에는 14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안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는 흔히 가계신용이라고 하는데,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으로 구성된다. 가계가 은행과 제2금융권 등 각종 금융기관에서 직접 빌린 돈이 ‘가계대출’이고, 신용카드회사나 할부금융회사를 통해 신용카드나 할부로 물품을 구입한 금액이 ‘판매신용’인데, 이 둘을 합한 것이 가계부채이다. 한마디로 사채를 제외한 가계의 모든 빚이 바로 가계부채인 것이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경제 성장률의 4배를 넘는 부채 공화국
한국은행은 8월 23일 가계신용 잔액이 지난 6월말 현재 1천388조 원으로 2분기 동안 29조2천억 원이 늘었다고 밝혔다. 가계신용 잔액은 한국은행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2년 이후 최대 규모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7월 가계부채 증가액 9조5천억 원 등과 통상 8월의 경우 계절적 요인으로 신용대출 증가세를 감안하면 8월 하순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천400조 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은 11.7%로 경제 성장률(2.7%)의 4배를 웃돌았다. 빚이 소득보다 4배 이상 빠른 속도로 증가한 셈이다. 2004년 이후 가계부채 증가율은 매년 10% 안팎씩 고공행진을 했지만 가구소득과 민간소비는 주로 0~2%대에 머물렀다. ‘가처분소득 대비 개인금융부채’의 비율도 지난 10년간 가파르게 상승해 작년에는 178.9%로 급등했다. OECD 평균인 129.2%와 정부 목표인 155%를 넘어선 지 오래다.
국제결제은행(BIS)은 ‘GDP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이 75%~85%면 경제 성장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92.8%나 된다. 형식상 중소기업 대출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가계 대출이나 마찬가지인 ‘자영업자 대출’을 포함하면 우리나라의 가계 대출 규모는 연간 GDP를 크게 뛰어넘는다. 한국신용정보원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732조6400억 원에 달한다.
가계부채의 질은 더 나빠져 6월 말 기준 비은행 금융기관의 여신 잔액은 764조 원에 달했다. 한국은행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3년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 규제로 자영업자 대출이 또 다른 풍선효과의 온상이 되고 있는 데다 경기불황의 여파로 생활자금 대출 수요가 많아진 중‧저신용자들이 대거 제2금융권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은행권에서 돈을 빌리는 차주들이 신용도가 낮고 부채상환 능력도 떨어져 가계부채의 가장 약한 고리로 꼽히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분위가 낮을수록 가계 대출에서 비은행권의 비중이 높아 은행보다 고금리를 부담하며 금리 상승기에 저신용‧저소득자는 ‘이자 폭탄’을 맞을 수 있다.
‘무이자 30일’의 덫을 아십니까?
이사를 앞두고 급전이 필요했던 회사원 A씨는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한 달 안에 갚으면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30일 무이자’ 대출 서비스를 이용했다. 적금 만기일이 주택계약일보다 뒤였고, 돈을 빌리더라도 한 달 안에 확실하게 갚을 수 있으니 마이너스 통장보다 이득이라 생각했다. 나중에야 A씨는 자신의 신용등급이 1등급에서 4등급으로 하락했음을 알데 됐다. 2016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무이자 30일 이벤트를 통해 48만7천 명이 1조6천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30일 이내에 빚을 갚고 빠져나온 채무자의 비율은 단지 5%에 불과했고 95%는 30일 기한을 넘겼다. 2016년 대출자인 경우 적용 금리는 법정 최고금리가 27.9%였고, 미상환 대출 잔액의 비율은 82%에 달했다.
A씨처럼 30일 안에 빚을 갚고 빠져나왔다고 해도 이들은 2~4 등급 이상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향후 은행권의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 버린 셈이다. 하위등급 보다는 상위등급일수록 신용도의 하락폭은 더 커진다. 국회는 대형 대부업체와 저축은행 대표들을 증인으로 채택했고, 업계는 작년 10월 ‘무이자 대출’ 행사를 종료했지만 그 여파는 아직도 길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의 고금리 대출을 받은 적이 없어 건전한 신용등급을 유지하던 차주들이 무이자의 함정에 빠졌고, 이용자의 53%인 26만 건이 1~6등급의 중‧고신용등급자들이었다. 고금리 대출은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여서 시중은행의 대출 문턱을 넘기 힘든 이용자들이 찾는다는 이전까지의 공식이 깨졌다. 대부업체와 저축은행들이 저신용자는 물론이고 고신용자들까지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동안 업계는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대부업체의 대부잔액은 지난해 12월말 현재 14조7천억 원이고, 약 250만 명이 빚을 지고 있다.
공부할수록 가난해진 청년 부채 세대의 아픔
B씨는 대학 입학부터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11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학자금 대출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난해 학위를 취득하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지금, 최저임금 소득에서 학자금 원리금의 상환은 결코 녹록치가 않다. 현금서비스를 받아 학자금 대출의 연체를 갚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의 신용등급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대학에서 학자금 대출로 이미 빚을 지고 있는 청년층은 취업까지의 공백 기간 동안 필요한 돈을 또 다른 대출로 마련한다. 빚이 다시 빚을 부르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부업체와 저축은행의 고금리 대출 상품 이용자 중에는 20~30대 청년층이 많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이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학자금‧생활비 다중채무자 ‘부채세대’가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된 것이다.
빚내서 대학 다닌 청년 세대가 빚내서 집 산 부모 세대보다 더 비싼 등록금과 더 비싼 학자금 대출 금리를 감수하며 학교를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어떤 안정적인 직업이나 수단도 없이 취업준비생으로 남아 있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청년들이 많은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등록금 부담,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 세대의 부채, 학생과 청년 세대에게 빚을 권하는 사회, 빚에 얽매인 채 마이너스에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 세대의 현실에 대한 복합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가계 빚의 숨은 뇌관 자영업자 대출, 어떻게 할 것인가?
작은 호프집을 운영하는 C씨의 월 평균소득은 100만 원이다.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데 생활비와 가게 운영비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것도 힘든 형편이다. 그래서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현재 채무총액은 4,436만 원이고, 월 변제금은 20만 원씩 1,200만 원, 27%를 변제하고 원금 3,236만 원은 감면과 이자면제를 받았다.
개인회생 신청 자격은 일정한 소득이 있는 급여소득자, 영업소득자, 일용직, 아르바이트 등에 종사하는 자로서 현재 과다한 채무로 지급불능 상태인 경우 개인회생 제도를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이자는 100% 면제되고, 원금은 최대 90%까지 부채의 탕감이 가능하다. 기존에 신용회복위원회의 지원 제도나 배드뱅크에 의한 지원 절차를 진행 중인 채무자, 개인파산 절차나 화의 절차가 진행 중인 채무자도 신청할 수 있다.
가계 대출 길이 막히자 사업 자금 용도로 돈을 빌린 뒤 생활 자금으로 사용하는 개인사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저축은행들의 올 3~4월 자영업자 대출 증가율은 4.9%로 1~2월 증가율인 2.0%보다 2.5배나 높았다.
소멸시효 완성 채권 소각으로 200만 명에게 기회 제공
소규모 음식점을 운영하던 D씨는 IMF 외환위기 시절 장사가 어려워지면서 늘어난 빚과 생활고로 20년 가까이 힘들게 지냈다. 몇 년 전 甲대부업체에서 발송한 ‘일부 선납금만 납부하면 원금을 대폭 감면해준다’는 안내장을 받고 기존 채무에 대한 선납금을 납부한 후 감면된 금액의 채무이행 각서를 작성했다. 이후 甲업체는 D씨에게 다시 강한 추심을 재개했다.
소멸시효 완성 채권은 금융채권의 상법상(상법 제64조) 소멸시효인 5년이 경과한 채권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채무자는 합법적으로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추심업체가 법원의 지급 명령 등을 통해 시효를 15~25년 연장시켜 관리해왔다. 또한 소멸시효가 완성됐더라도 채무자가 일부 빚을 갚으면 채무가 부활한다는 점을 악용해 채무자에게 채무상환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일부 선납금만 납부하면 원금을 대폭 감면해 주겠다고 유혹해 소멸시효를 무력화하는 편법도 사용했다.
금융위원회는 국민행복기금과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소멸시효 완성 채권 21조7천억 원, 123만1천 명의 장기소액 연체 채권을 전부 소각하고, 연내 민간금융회사의 4조 원, 91만2천 명의 채권 소각도 유도할 방침이다. 전체 대상자는 2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선진국의 서민금융 지원 사례에서 배울 것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담보대출 조정 프로그램 등 강력한 가계부채 감축 정책을 실시했다. 대출금 상환액이 총소득의 31%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고 대출 금리도 2%까지 낮췄다. 2008년 135%였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로 떨어졌고, 개인 소비지출 증가율은 상승했다. 미국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대규모 장기연체 채권을 소각하고 비소구 대출을 통해 부실 리스크를 상쇄했다.
미국은 비소구 주택담보대출(유한책임대출) 도입으로 인해 주택 가격이 떨어져도 가계의 소비 여력이 유지되고 집이 없는 서민들이 생활비까지 은행에 묶이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도 가계부채 해법에서 비소구 주택담보대출의 확대를 제시했고, 실효성과 도덕적 해이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회사가 여신 심사를 강화하는 등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와 영국은 가계부채 문제가 불거지기 전 조기에 부채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실시해서 경제위기를 벗어났다. 영국은 2009년 주택 압류의 가능성이 높은 가계에 대해 주택 가치를 초과하는 대출 금액을 상환 유예하거나 경매 주택을 정부가 매입한 후 해당 가계에 임대하는 부채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담보 주택이 일종의 공공임대주택 역할을 하는 셈이고, 주택 가격과 대출 금액의 차액은 돌려받아 소득과 소비가 늘어나는 기능도 있다.
은행은 전당포가 아니라 ‘금융 주치의’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문자 문맹은 생활의 불편을 가져오지만 금융 문맹은 그 사람의 생존이 달려 있다’고 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OECD 산하 국제금융교육네트워크(INFE)에서 제정한 기준에 따라 만 18세~79세 성인 1,820명을 대상으로 ‘전 국민 금융 이해력 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의 금융이해도는 OECD가 정한 최소 목표점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이해력이란 일상적인 금융 거래를 이해하고 금융 지식을 실제로 활용하며 금융 선택에 따른 책임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금융 이해력 수준(66.2점)은 OECD 국가 중 중위권이고 성인의 절반 정도(47.7%)가 INFE가 정한 최소 목표점수(66.7점)에 미달하는 등 미흡한 실정이다. 원리금 계산과 복리 계산 점수는 각각 52.0점과 34.8점을 맞아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70대 노령층의 점수는 54.4점으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낮았고, 심각한 건 20대 청년층의 금융 이해력이 62점으로 60대의 점수보다 낮았고, 금융지식, 금융행위, 금융태도 등 모든 영역에서 INFE의 최소 목표점수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금융교육은 어려서부터 학습하고 실천하고 체득하는 과정을 통해 습득되는 것이므로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원리금 계산과 복리 계산을 학습하고 부채관리와 신용관리, 금융사기 피해 예방 등의 ‘금융 지식’을 학습해야 할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금융 교육이 공교육의 비중 있는 영역으로 자리 잡아야 할 때다.
무엇보다 금융 정책은 효율적인 채무조정 방안을 조기에 도입하고 서민의 재산 형성과 경제적 자립에 초점을 맞춘 후속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서민금융 지원으로 한계 상황이 잠시 주춤하는 듯해도 금융 이해력이 향상되지 않으면 개인의 금융위기는 반복적으로 재연되기 때문이다. 서민 금융은 수익성이 아닌 정책 금융 공공서비스이며 대출자에 대한 개별 맞춤 교육과 금융 컨설팅을 동시에 지원해야 실효성이 있다.
프랑스의 경우 ADIE라는 마이크로 파이낸스 기관을 설립하여 은행과 제휴해 청년‧농촌여성‧고령층 등을 대상으로 창업을 지원하는 저금리 소액 대출을 지원하고 은행 퇴직자를 자원봉사자로 고용해 대출 이용자에게 부채관리와 재정관리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취약 차주에 대한 일회성 대출 지원책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 영업점마다 ‘금융 주치의’를 운영하여 서민 금융 상담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서민 금융 지원 관련 사전 컨설팅, 대출 실행 후 사후관리, 부채관리와 신용관리 등 취약 차주별 1:1 ‘금융 주치의’ 서비스가 필요하다. 금융 현장에서 오랜 기간 노하우를 익힌 베테랑 금융 전문인들이 자원봉사나 재능기부 형식으로 취약계층, 취약지역, 연령별, 업종별, 금융업권별로 다양한 공공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게는 전담 ‘평생 금융 주치의’를 배정하고, 찾아가는 금융 교육 컨설팅을 실시할 수 있다. 취약계층에게 가구별로 사회복지사, 의료서비스, 금융주치의가 패키지로 제공되는 통합 컨설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빚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해야
가계부채는 민간소비를 위축시키고 금융안정을 훼손하는 위험 요인이다. 문재인 정부는 가계부채 해결을 위해 일자리와 가계소득을 늘려 소득 주도 성장 정책, 체계적인 가계부채 총량 관리제, 빚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 구축 등의 3대 근본 대책과 7대 해법을 제시했다. 가계부채 문제의 근본 해법으로 ‘소득 주도 성장’과 안정적인 부채관리 방안을 어떻게 구체화할 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즉, 부채총량 관리로 빚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려는 정책이다.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150%를 넘지 않도록 제한을 둬 가계 빚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가계 빚 1400조 원, 1인당 평균 빚 2,700만 원, 이렇게 급증한 가계의 빚은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누적된 가계부채가 올해 가계소비 증가율을 0.6%포인트나 떨어뜨릴 것으로 전망했다. 빚을 갚느라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소비자들의 지갑은 얼어붙어 내수가 위축되고, 기업은 고용과 투자를 줄이면서 경기가 침체되고, 다시 소득과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연결고리의 시발점인 주거비용을 낮추고 금리부담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가처분소득이 늘어나서 소비가 늘고 경기가 살아난다. 특히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 증대는 가계 소득의 확충, 소비 심리의 회복, 경제의 선순환을 유도하는 첫 걸음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소득 증대의 대안 없이 인위적으로 가계부채를 줄이는 방안은 가계부채의 질을 떨어뜨리고 소비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사업이나 생계자금 대출에 대한 규제를 하면서 총량만을 줄일 경우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에 내몰릴 수 있다. 제2금융권의 가계 대출, 미등록 대부업체, 비제도권 대출로 이전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고,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의 비율이 40%를 초과하는 한계가구는 지난해 말 181만 가구로 전년 대비 14.7%가 늘었다. 나이스 평가 정보에 따르면, 6월말 기준 총부채 원리금 상환비율(DSR)이 100%를 넘는 차입자는 118만 명으로 추정됐다. 매년 갚아야 할 빚이 소득보다 많은 차입자는 최근 3년 새 64%나 급증했다. 소득에서 최저생계비를 뺀 나머지를 모두 동원해도 원리금을 감당할 수 없는 한계가구, 소득을 모두 털어도 빚을 갚지 못하는 초한계가구, 자력으로 빚 감당이 안 되는 취약계층에 대한 가계부채 해결이 시급하다. 세계적 금리 상승 기조 위에 금리인상의 직격탄은 다중채무자와 저신용자에게 폭탄이 되고 있다.
복지국가의 포용적 금융: ‘서민금융 전용차선제’로 실현 가능
서민금융 전용차선제는 저신용자, 다중채무자,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정책 서민금융을 확대해서 금융비용을 경감시켜 사회적 비용을 낮추고 가처분소득을 증대시키자는 것이다. 버스 전용차선제에서 버스가 타 교통편보다 빠르게 운행할 수 있도록 버스 전용차로가 존재하듯이 서민을 위한 서민금융 전용차로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 기업들에게 정책금융 혜택을 집중했듯이 이제는 서민가계에 정책금융 배려를 할 때다.
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미친 전세와 미친 월세를 언급했듯이 전‧월세 가격의 상승으로 생계형 대출이 급증하고 렌트푸어가 양산되고 있다. 가계부채의 소용돌이 속에서 2016년 말 현재 787만 명이 신용등급 6~10등급이다. 이들의 가족을 포함하면 국민의 상당수가 서민금융 대상자인 셈이다.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빚을 진 다중채무자는 6월 말 기준으로 390만 명이나 된다. 그리고 이들이 보유한 부채는 총 450조 원으로 1인당 1억1529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다중채무자의 총부채 원리금 상환비율(DSR)은 63%로 평균 3748만 원의 연간소득에서 2300만 원 이상을 빚 갚는 데 쓰고 있다.
저신용자와 다중채무자에게는 한시적으로 원금의 상환을 유예하고 고금리 부담을 완화하고 지연배상금을 유예하면, 재기의 기회를 주게 되고 부채 탕감 등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게 된다. 무주택 실수요자에게는 DTI, LTV 운용 비율과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우대 적용하고, 렌트푸어에게는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해 주거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된다. 또,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임대료 경감, 젠트리피케이션 대응과 우대 수수료율 적용으로 부담을 완화하자는 것이다. 하우스푸어가 경매에 몰리게 된 경우 주택금융공사 등에서 장기 임대차계약을 체결해 그 집에 거주토록 함으로써 공공임대주택을 보급하는 셈이 된다.
경매 대상 담보물건 사용, 지연배상금과 원금 상환의 유예 등은 산업화 시대부터 우리 사회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을 살리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제도들이기도 하다. 서민금융 전용차로에서 우선 시행이 가능한 부분은 정책 서민금융 확대다. 정책 서민자금 공급,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우대금리 대출 확대, 청년‧대학생 금융 지원, 청소년 한 부모‧조손가족‧다문화가족 금융 지원 확대,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천만 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 채권 소각, 민간금융회사 보유 소액 장기 연체 채권 선별적 소각, 죽은 채권 시효 연장 및 매각 금지, 영세‧중소가맹점 범위 확대, 수수료 등 상품서비스 가격 규제 등은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금융 정책의 방향이기도 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은 손쉬운 가계 대출로 눈을 돌려 전당포식 영업을 해왔고, 역대 정권은 가계부채 문제에 눈을 감고 부채에 의존해 성장해 왔다. 이제 문재인 정부와 금융회사들이 서민의 가계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을 함께 고민할 때이다. 따뜻한 금융, 포용적 금융은 ‘서민금융 전용차선제’의 도입으로 실현이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서민의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들면 결국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고 내수의 진작으로 이어진다. 나는 경제의 이런 선순환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금융 복지국가 시대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