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비위 터지자 ‘연금 감액제’ 도입한다더니, 이제는 안 한다는 법원
– 이탄희, 미국처럼 파면 사안은 국회로 통보해서 탄핵하고 연금도 감액해야
2016년 현직 법관이 뇌물수수 혐의에 연루된 ‘정운호 게이트’가 터지자 법원이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도입을 약속한 ‘비위 법관 공무원연금 감액 제도’가 6년이 지나도록 도입되지 않고 있다. 법원은 ‘헌법의 법관 신분 보장과 충돌한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법관 비리가 사회적 문제가 될 때는 급한 불을 끄겠다는 심산으로 약속했다가 여론이 잦아들자 슬그머니 거둬들이는 얄팍한 처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대법원은 비위 법관 공무원연금 감액 제도에 대해 “도입 여부를 검토했으나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관의 신분 보장과 충돌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직과 해임은 별개의 효과를 가지는 징계로 재복무를 전제로 하는 정직 등 징계처분과 신분 상실을 전제로 하는 공무원연금 감액 제도를 조화롭게 설계하기 곤란한 점 등을 이유로 도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비위 법관 공무원연금 감액 제도는 현직 판사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정운호 게이트가 터진 뒤 전국법원장회의가 내놓은 대책이다. 2016년 9월6일 법원장 33명은 회의를 열어 법관 윤리 강화방안 및 비위 대책을 논의했고, 그 중 하나로 금품·향응 수수 등 사유로 정직 6개월을 넘는 징계를 받으면 공무원연금을 감액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법관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현행 공무원연금법은 공무원이 징계로 파면되거나 금품·향응 수수와 공금 횡령·유용으로 해임되면 연금을 깎도록 돼 있다. 그러나 법관은 파면되거나 해임되지 않는다. 헌법이 독립된 재판을 위해 법관의 신분을 특별히 보장하기 때문이다. 법관징계법은 징계 종류로 정직·감봉·견책만 규정하며, 수위는 최고 정직 1년으로 제한한다. 법관은 파면·해임되지 않으니 큰 비위를 저질러도 연금이 깎이지 않는다.
이같은 법관 징계 제도가 비위 법관의 책임을 면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 점을 감안해 법원장회의가 도입을 약속한 것이 ‘비위 법관 공무원연금 감액 제도’이다. 법관 징계의 ‘특수성’을 감안한 제도인 셈인데, 이제 와서 대법원은 다른 공무원과 달리 법관만 정직처분시 연금을 깎는 것은 어렵다며 ‘도입 불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6년 당시 정직 처분이 사실상 최고 징계인 법관의 특수성을 감안해 이같은 방안을 내놓은 것”이라며 “제도만 정비되면 충분히 시행 가능한데 법원이 입장을 뒤집은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헌법이 규정한 법관의 신분 보장은 독립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위한 것이지 법관들을 위한 게 아니다”라며 “법원이 이 규정을 비위 법관들에 대한 ‘제식구 감싸기’에 악용하고 있다”고 했다.
법관 징계 수위는 여타 공무원들보다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탄희 의원실이 확보한 최근 5년 간의 법관 징계 현황 자료를 보면, 혈중알콜농도 0.184%로 음주운전한 판사는 정직 1개월을 받은 반면 비슷한 사안의 공무원은 파면됐다. 관내 변호사와 11회 골프를 친 판사는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았지만 건축사와 4회 골프를 친 공무원은 해임됐다.이탄희 의원은 “법원이 물징계를 고집하는 한 사법신뢰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처럼 파면 사안은 국회로 통보해서 탄핵하고 연금도 감액하는게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