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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9000톤 규모의 해양 구조물 이동 작업 중 발생한 사고 현장. 지난 2024년 2월 12일 이 사고로 하청 노동자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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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 솜방망이 처벌 후 사망사고 반복… ‘중대재해는 반복, 책임은 집행유예’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9000톤 규모의 해양 구조물 이동 작업 중 발생한 사고 현장. 지난 2024년 2월 12일 이 사고로 하청 노동자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9000톤 규모의 해양 구조물 이동 작업 중 발생한 사고 현장. 지난 2024년 2월 12일 이 사고로 하청 노동자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울산 동구의 거대한 도크에서는 선박이 자라나지만, 그늘에는 유가족의 시간이 멈춰 섰다.

HD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2020년의 죽음들에 대해 대법원은 14일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확정했다.

■ 잇단 사망에도 결국 집행유예

법인에는 벌금 5000만 원, 조선사업부 대표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특수선사업부 대표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각각 확정됐다.

앞서 2020년 2월 LNG선 조립 중 하청노동자 추락 사망, 4월 수중함 발사관 정렬작업 중 정규직 협착 사망, 5월 SUS 파이프 용접 중 하청노동자 질식 사망 등 3건의 사고가 이번 재판의 대상이 됐다.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전에 발생한 사고로, 노동계가 요구한 것과 달리 형량이 높아지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부터 시행돼 원청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의무를 강화했다.

이번 사건에 현행 법이 적용됐다면 형량 상향과 경영책임자 처벌 가능성이 확대됐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노동계는 “중대재해가 반복돼도 가중처벌이 전혀 없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김경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사업주가 비용을 들여 안전 개선을 할 유인이 없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법은 판결로 마침표를 찍었지만, 현장은 이후에도 쉼 없이 부고를 기록했다.

2021년 철판에 깔려 숨진 노동자, 도장공장 지붕에서 떨어진 외주 노동자, 굴착기 바퀴 아래 쓰러진 하청 노동자(2021), 패널공장의 폭발(2022), 9,000톤급 블록의 전도(2024), 메탄올 탱크의 질식사(2024), 그리고 트레일러와의 충돌(2025). 사망은 계절처럼 되풀이되었다.

■ 종이 위에 갇힌 법, 반복되는 비극

원청의 책임은 집행유예로 사실상 법망을 피해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부터 시행되며 원청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의무가 강화됐지만, 이는 ‘종이 위에서만 강해진’ 법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밀폐공간 질식, 대형 블록 전도, 고소작업 추락 등 과거의 사고 유형이 같은 방식으로, 같은 유형의 하청·외주 노동자를 덮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2월 FPSO 블록 전도 사고와 10월 메탄올 탱크 내부 질식은 2020년의 참사를 떠올리게 했다.

경영진은 “안전투자 확대”와 “새 안전보건체계”를 약속했지만, 결과는 통계가 말하고 있다. 동일 사업장에서 추락, 질식, 협착, 전도 등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이어진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시스템의 근본적 결함이다. HD현대중공업이 진정으로 ‘안전 최우선’ 경영을 실천하기 전까지, 유가족의 멈춰선 시간은 결코 다시 흐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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