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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복지 확대에 종교시설을 활용할 수 있을까

이상구(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겸 운영위원장)

겨울이 다가오자 코로나19 다시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은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000만 명을 돌파하면서 바이러스의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2차 봉쇄조치(lock down)를 발령했다. 언론의 근거 없는 독감 백신 부작용 보도 때문에 코로나19 재확산과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의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전파는 1918년 창궐했던 스페인 독감의 규모를 넘어 전 세계적인 대유행(팬데믹)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실제로 접종되고,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빨라도 내년 하반기는 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백신이 보급돼도 완전히 코로나19 유행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에 우리 주변에 자리를 잡고 공생하면서 가끔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기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 ‘With Corona 시대’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심화되는 불평등

코로나19 대유행과 이에 대응하는 세계 각국의 강도 높은 봉쇄조치로 세계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 및 일자리 충격을 겪고 있다. 일자리 감소와 고실업 상태가 지속되면 구직 단념과 훈련 부족 등으로 노동시장 이력현상이 발생해 위축된 고용이 경기회복 후에도 개선되지 않거나 이전 수준으로 복귀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OECD, A systemic resilience approach to dealing with Covid-19 and future shocks, 2020.4).

또한, 이번 위기는 경제 전체에 골고루 충격을 불러온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리, 그 피해가 취약계층에 집중된 ‘불균등한(Uneven)’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OECD의 분석에 따르면, OECD 회원국 국민의 36%는 무소득 기간이 3개월에 달하면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 재무적 취약계층에 해당하며, 특히, 낮은 보호 정도와 높은 사회 접촉도로 이들에 대한 타격이 더욱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왔던 선진국들조차 코로나19로 악화된 불평등을 극복하고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우리나라보다 앞서 특고·프리랜서 및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노력을 추진해 왔다. 이탈리아는 2015년 3월부터 우리나라의 특수고용 노동자와 유사한 준종속 노동자들에 대해 고용보험을 의무 적용하는 법을 제정했다. 프랑스는 2018년 9월부터 임금노동자 외에 자영업자도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으로 변경했다.

우리나라도 한국판 뉴딜을 계기로 고용보험 가입 대상을 일하는 모든 국민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예술인의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이미 국회를 통과했고(5.20),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정부는 2020년 말까지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마련해 고용보험 가입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2차 고용안전망인 국민취업지원제도도 내년부터 도입하고,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2022년), 한국형 상병수당의 구체적 도입 방안 마련 등의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력도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지난 7월 14일 발표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은 안전망 강화에 2025년까지 약 27조 원을 투자하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판 뉴딜의 사회안전망 강화 계획으로 ‘고용·사회안전망’을 더욱 두텁게 해서 실업 등 고용 충격으로부터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소득격차 완화 및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도모하고, 동시에 혁신의 토대인 사람 중심 투자를 통해 미래형 인재를 양성해 디지털·그린 일자리로 재배치를 지원할 계획을 밝혔다.

코로나19 유행을 새로운 발전의 계기로 활용

역사적으로 보면, 대규모의 경제 위기는 “일자리 재배치(reallocation of labor)”를 수반해 왔다. 실제로 코로나19도 대유행으로 인해 산업구조의 변화를 가속시키면서 기존의 일자리는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동시에 늘리고 있다. 인터넷과 홈쇼핑 등 비대면 구매의 증가는 기존 대형 할인매장의 몰락을 가속화하면서 새로운 디지털 구매시장과 배달시장의 폭발적 증가를 불러오고 있다.

이번에 인류가 맞고 있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전문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빠른 일자리 재배치”를 야기할 것이라고 전망한다(“COVID-19 Is Also a Reallocation Shock”, 시카고大 Becker Friedman Institute). 특히 디지털과 그린 경제로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신기술‧신산업 분야에 대한 기업들의 고용 수요는 오히려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의 고용통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임시직과 일용직 근로자 등 고용 취약계층에서는 큰 폭의 감소가 이어진다. 이들의 고용은 2020년 4월 78.3만 명 감소, 5월에는 65.3만 명 감소했다. 그리고 6월과 7월엔 각각 49.4만 명과 43.8만 명이 감소했다. 

반면 최근 대졸 신입사원 채용 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의 37%가 채용 규모를 줄이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기업의 절반이 넘는 51.8%는 AI와 데이터 분야 등의 경우 디지털 직무 채용을 예년보다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2020년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트렌드, 인크루트). 즉, 신기술과 신사업 분야에 종사하는 상용근로자 수는 2020년 4월 40만 명, 5월 39.3만 명, 6월 34.9만 명, 7월 34.6만 명 등으로 코로나 대유행 이전인 전년 동기와 비교해도 (증가율은 약간 낮아졌지만) 안정적인 증가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 출생아 수가 줄어들고 생산연령인구도 감소하면서 동시에 기존 인구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는 해외 이민을 통해 산업을 육성하는 미국이나 과거 피식민 국가의 인력을 데려다 쓰는 유럽 나라들과 달리 외국인 근로자들을 유치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신사업 분야에 맞춘 교육과 훈련을 받은 준비된 인력을 구하기는 더 어렵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은 기존 인력에 대한 적극적 재교육과 훈련을 통한 신산업과 신기술 분야 재배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우리나라의 교육구조가 너무 경직돼 있고 사회안전망은 너무 취약하다. 저소득 취약계층을 넘어 중산층까지 포함하는 다수의 국민들에게 적극적 복지가 제공돼서 기존의 직장을 그만두어도 생활의 지장이 없이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고,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에 취직해도 소득보장과 노후보장이 되는 보편적 사회보장이 없으면, 산업구조의 변화에 부응하는 인적 자원의 효율적 재배치는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 정책안에 그런 내용을 담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경제‧사회구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일시적으로 낙오하는 사람을 빠짐없이 품어주고, 이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혀 다시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을 사회구조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구체적인 입법과 예산 배정 등 이 분야의 적극적 정책 추진을 담당하기 위해 사회안전망 뉴딜위원회(위원장 김민석 보건복지상임위원장)가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사회복지 예산 규모가 OECD 평균의 30% 수준에 불과하고 공공부문 일자리 숫자가 인구 대비로 OECD 평균의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역으로 사회서비스 분야 등 향후 이 부분의 확대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복지 확대를 위한 종교시설 활용 방안

민주당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이 우리나라의 낙후된 복지체계를 확대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입학생과 재학생 숫자가 줄어들면서 기존에 추진되는 생활SOC 확충 정책에 더해 학교 시설을 아동 돌봄이나 커뮤니티 센터, 그리고 도서관과 체육관 시설 등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전국 11,300여 개의 초·중·고등학교는 주 5일을 사용하고 주말에만 공간이 비게 되지만, 교회 등 종교시설은 일요일 하루만 사용하고 6일이 비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이들 시설을 활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특히 종교시설은 신부님이나 목사님, 그리고 스님들이 운영하면서 상대적으로 상업적 부분이 적고, 지역주민들이 이용하기 좋은 도심 한가운데 주로 자리를 잡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 그리고 이미 신도들이 이들 시설을 활용하고 지역주민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으므로 이들 시설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우리가 처음으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독일 등에서는 200여 년의 역사적 경험과 다양한 시도, 그리고 국가적인 준비를 통해 보편화된 정책으로 시행하고 있다. 헬라어 디아코니아(διακουια)는 예수님이 <섬기는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며,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하나님 나라와 연관해 성경에는 “섬김, 섬기다, 섬기는 일, 섬기는 종” 등의 뜻을 가지고 모두 100여 회 사용되었다고 한다. 디아코니아(diaconia)는 한국 교회에서는 <기독교 사회봉사, 교회 사회봉사, 사회선교, 기독교 사회복지, 교회 사회사업 등>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즉 섬기는 행위는 자립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나약한 사람들의 사회적 생활에서 영적·물질적·정신적으로 실제적인 도움, 돌봄, 치유, 상담, 위로, 화해, 회복, 구원 등의 의미를 내포한 이웃사랑의 실천 행위이며, 기독교 교인들이 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삶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에는 이미 200여 년 전부터 디아코니아 운동을 벌이고 있고, 역사적인 상황에 따라 흥망성쇠와 부침이 있지만 독일 통일 이후 기독교민주당(CDU)이 출범하면서 디아코니아가 사회 시스템의 하나로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있다.

현재 독일의 디아코니아 기관은 약 31,000개이고 약 45만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또한 직원 외에도 약 70만 명 정도의 자원봉사자 등 약 115만 명 정도가 이 사업에 참여해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 중 전일 근무자는 196,000명이고, (독일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없으므로 우리나라와 같은 일용직이나 임시직의 개념은 아니고, 전일제 근무가 아닌 시간제 근무를 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실무자는 253,104명 정도로 총 450,000명에 이르고 있다. 즉 교회가 45만 명 정도를 고용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 평균 이들 기관과 종사자들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상자는 약 110만 명 이상으로 디아코니아 실천 운동은 거대한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독일의 디아코니아에서 운영하는 시설은 유치원 8,953개, 병원 696개, 중독 등의 증세를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상담소 2,500개, 일반 상담소 700여 개 정도로 추산된다. 즉, 독일 전체 장애인 시설의 1/2, 유치원의 1/4, 병원의 1/10이 디아코니아 기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는 디아코니아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과 기관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국가 복지체계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독일 내부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디아코니아 운동이 동유럽 등 해외에서 진행하는 사업으로 청소년복지 11,042 개소, 위기적 상황에 있는 이들에 관련된 복지 4,812 개소, 노인복지 4,501 개소, 장애인복지 3,612 개소, 병자복지 1,505 개소, 가족복지 1,350 개소, 그 외 1,311 개소 등 사회복지 관련 시설 총 28,132 개와 자조그룹 3,400 개소를 합해 총 31,532 개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사회복지 서비스의 제공 방식에 있어 독일의 기민당은 기존의 교회 시설과 인력을 활용하면서 1)인프라 구축 비용을 절감하고, 2)상업성을 배제하며, 3)교회가 가진 목회자와 신도 등의 인력과 경험을 활용하고, 4)이미 구축돼 있는 지역사회 관계망을 활용해 많은 호응을 얻고 있었다. 특히 통일 이후 사회복지 서비스 인프라가 없는 동독지역에 서독과 같은 수준의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상태에서 기존의 교회를 활용한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디아코니아 현장 방문단, 박혜원 목사).

물론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이러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부가 금지하는데도 광화문 집회를 강행해 코로나19의 확산을 초래한 특정 목사 등의 문제 행위가 없을 때에도 교회 내부에서는 교회의 대형화와 상업화, 그리고 목사직의 세습 등 <한국 교회의 세속화>를 우려하면서 이들에게 예산을 지원하거나 정부 사업을 맡기는 것을 반대하는 다수 국민의 정서가 존재한다. 기독교 내부에서도 신앙생활을 우선으로 해야지 사회사업을 교회가 벌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한국기독교 목회자 협회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 신자의 증가율이 2004년을 기점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으며, 그 원인을 사회의 요구에 눈을 감고 있다고 분석하는 분들이 있다. 한국 교회의 문제점으로 지나친 양적 성장이나 목회자들의 자질 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교가 문화 및 습관과 같이 생활화되어 매주 예배를 보는 것에 안주하거나 현세 구복적으로 입학이나 취직·재물을 달라고 기도하는 데 치중하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교인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자신의 헌금이 기본적인 교회 운영과 더불어 사회봉사 및 구제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비율이 각각 26%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었다(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2013년). 즉, 목사님들이나 신도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신앙을 직접적으로 실천하는 게 부족한 것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를 쇠퇴하게 만들고 있다는 내부의 반성과 함께 그 부분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교회가 사회복지 확충과 제공 사업에 참여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의지가 있는 교회와 다양한 종교 시설들이 참여할 기회를 열어주는 것은 매우 유용한 사회복지 인프라 확충의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복지 확대 예산을 시설 건축과 공간 확충 등에 투입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프로그램 운영비나 종사자들에 대한 인건비로 지출하도록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종교시설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극복을 넘어 4차 산업혁명 기술 등의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에 기반을 둔 신산업을 육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사회보장과 적극적 복지정책이 요구된다. 복지국가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복지국가는 우리가 살아남고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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