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에선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합의해야 한다!

박재영(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여주시의원)

촛불시민혁명이 국정농단의 죄를 물어 박근혜 정부를 퇴출시키고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킨 지 3년이 되는 시점에 국회의원 선거를 맞이하니 기대하는 바가 남다르다. 제대로 된 보수도 아니면서 보수라는 이름 하의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민생 경제는 추락하고 민주주의는 역주행을 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촛불정신을 실현할 임무를 부여받은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통해 암울한 과거를 깨끗이 씻어냄으로써 상식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의 의의’를 되새겨야

사실 이명박-박근혜의 반민주적·반민생적 통치는 민주주의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렸고, 민생을 외면한 채 가진 자들만의 경제적 성장을 추구했다.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기회로 삼아 성취될 수 없는 장밋빛 공약을 대선공약으로 남발하여 집권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선거 때 약속했던 복지 공약을 반성과 사죄의 말도 없이 슬그머니 폐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들을 포함한 소수 가진 자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몰두했다.

4대강 죽이기로 건설업자들의 배를 불리고, 눈 가리고 아옹하듯 자원 외교를 빌미삼아 국고를 탕진했고, 결국 자신과 동업자들의 배를 불린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촛불시민혁명으로 퇴진한 박근혜 정부 때까지 9년 동안은 집권을 위해 공약(空約)을 남발했을지라도 당선되고 나면 ‘게 눈 감추듯’이 공약을 폐기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현실로 인해 깨어 있는 시민들은 분노를 억누르며 대한민국의 저급하고 씁쓸한 정치를 곱씹어야 했다.

보수정권 9년 동안의 반민주적·반민생적·반평화적 국가 운영은 결국 전 세계가 놀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열정적이었지만 평화롭기 그지없었던’ 촛불시민혁명을 불러왔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이런 거대한 참여는 국정농단의 주역들을 끌어내림으로써 촛불정신을 실현할 의무를 짊어진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켰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정치적 이합집산

촛불정신을 실현할 문재인 정부가 3년의 임기를 보내고 있고,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정당은 ‘정치적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이다. 따라서 정당의 1차적 목표는 집권이고, 궁극적 목적은 이상(가치)의 실현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권과 가치 실현을 위한 정치활동은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4년마다 있는 국회의원 선거는 그 다음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한 정치 지형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정당들은 총선에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한다.

‘가치의 정치’를 통해 정당이 유권자 속에 든든하게 뿌리를 박고, 당원과 유권자의 활동으로 ‘정파 정치’가 실현된다면 미래를 예측하는 정치가 가능하겠지만, 유권자와 정당이 기름과 물처럼 서로 따로 노는 상황에서는 시민들의 축제여야 할 선거는 정당들만의 잔치가 되고 만다. 여기서 유권자는 단순한 ‘표’로 기능할 뿐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역사가 길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생존’을 위한 이합집산을 되풀이하게 되고, 선거가 끝나면 또 다시 마주하게 될 이합집산을 준비한다. 처량한 모습이 가련하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정당인 정의당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분주하게 이합집산에 몰두하고 있는 형국이다. 유권자들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자기들만의 생존 논리에 따라 정당에 대한 정의도, 가치의 정치에 대한 이해도 모호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웃지 못 할 이합집산은 정당 정치의 코미디화로 인해 유권자로부터 된서리를 맞지 않을까 싶다.

민생을 외면한 채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당정치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임기를 시작한 국회의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의 이기적 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민생 외면의 정치’가 일상화된다. 민심을 배반한 정치는 결국 다가올 선거에서 매서운 심판을 받게 되고, 민심의 지지를 상실한 정당은 쓰라린 패배를 마주한다. 진정한 보수와 진보가 정치권에 자리매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들만의 보수-진보-중도 논쟁을 반복하며 정치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당리당략에 매몰되어 식상한 정쟁을 반복함으로써 정치혐오와 정치외면을 조장하는 모습이 대한민국 정치판의 초라한 자화상이다.

‘가치의 정치’도 사라지고, 그로 인해 가치에 기반을 둔 정책 중심의 희망적인 경쟁도 발현되지 않는다. 그저 답답하고 분노만 치밀게 하는 ‘죽음의 칼춤(정쟁)’만이 난무한다. 이에 시민이 정당정치를 걱정해야 하는 기괴한 현상이 창출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정치판이다. 소란을 피우거나 악명을 떨쳐서라도 정치인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향후 정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민심의 기대를 짓밟는 저급하기 짝이 없는 야만의 정치가 여전히 활보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사람이 정치인이고,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가장 밑바닥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정치활동이 민생을 외면한 채 당리당략에 매몰되거나 자신들이 속한 계급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과정을 4년 동안 반복하다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니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방법을 찾게 되고, 그것이 각 정파의 이합집산과 인재영입이라는 웃지 못 할 대안으로 귀결된다.

요즘 각 정당에서 인재영입이라는 미명 하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끌어들였거나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그 결과물들을 보면 ‘인재’에 대한 기준이 매우 왜곡되어 있다. 두 거대 정당에서 생각하는 인재는 명문대를 나와 학벌 좋은 명망가이거나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가방끈이 길은 전문가이거나 공직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퇴직한 행정가들이라고 생각하는 듯하고, 그들 중에서 자기들의 이념(가치)에 근접한 사람을 인재로 영입하고 있다.

좀처럼 수긍하기 쉽지 않다. 깨어 있는 시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교수나 학자, 법조인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정치를 권유하는 것이 모욕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웬만한 명성을 쌓으면 너도 나도 정치권에 진입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기이한 모습이 나타난다. 전문가는 전문가의 영역을 지키면서 정치권의 필요에 의해 능력을 제공해주면 된다. 정치권에는 각계각층의 이해를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사람들을 영입해서 합당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보여주기 식의 이미지 정치에 매몰되어 인재라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어떤 활동을 해왔으며,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검증하지 않고 정치권에 영입하다가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 될 것이다. 나아가 법조계에서 잔뼈가 굵은 법조인이나 학자, 나아가 퇴직 공무원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비판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고, 국회의원을 퇴직 공직자들의 노인일자리로 전락시키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저지르지 말기 바란다. 진정한 인재는 생활정치 또는 민생정치를 통해 성장한 풀뿌리 민주주의 정치가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촛불정신에 기초해 국회의원의 진정한 역할 고민해야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 ‘한국인들은 누구나 정치학 박사’라는 생각이 짙어진다. 정치가 생활이므로 단 한 순간의 삶도 정치와 분리될 수 없기에 대한민국에서는 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아주 많은 정치적 사건들로부터 얻어진 정치적 식견이 자연스럽게 아주 많은 정치학 박사(?)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특히나 짧은 기간에 이뤄낸 경제적 부흥과 정치적 민주화로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 대부분이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정치적 세파에 시달리게 되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정치적 견해를 형성할 풍부한 ‘정보’를 접해왔다. 하지만 체계적 교육과정을 통해 획득된 논리적 정보가 아니기도 하고, 각자가 처한 다양한 존재 조건 속에서 때로는 편협하고 때로는 단편적이며, 때로는 부정의한 정치집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를 피동적으로 접하다보니 합리적이지 않은 ‘정치학 박사’가 수두룩하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서민들은 계층 상승의 지상과제를 수행하려는 생존 노동 외에 정치를 비롯한 다른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하는 정보들로 인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평범한 시민들인 무늬만 정치학 박사들에게 형성된 왜곡된 생각이 충분히 이해되는데,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직업으로 정치를 선택한 사람들도 민초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왜곡된 정치적 생각을 지닌 채 유권자의 심판을 받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선거법을 비롯한 공수처법 등 개혁 법안들이 통과되는 과정에 국회는 대화와 타협이 종적을 감춘 ‘동물 국회’를 재현시켰고, 시민들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 갈라짐으로써 나라 전체가 종교적 갈등에 비견될 만큼 완전히 둘로 쪼개져버렸다. 마치 상대를 죽여야만 끝날 것 같은 상황은 한 나라에 두 개의 민족이 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첨예한 갈등 속에서도 개혁을 열망하는 다수의 국회의원들에 의해 시대적 과제를 담아내려는 개혁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했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개정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에 의해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걸음마 단계를 갓 넘기고 있어 대한민국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아직은 성숙된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직업적 정치인의 부류가 다양함에도 각각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아 국회의원 선거임을 깨닫지 못하게 할 정도의 혼란스러운 공약을 아주 당연한 듯이 제출하고 있다. 시민의 행복 구현이 정치인들의 공통된 임무라서 지역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발 벗고 나섰기 때문에 초라하면서도 우스운 상황이 반복되는데, 정치인이라면 각각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해야 마땅할 것이다.

다가올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이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지만, 지역의 다양한 민원을 국회의원의 임무로 착각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은 극복돼야 한다. 정치가들은 자신의 역할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각각의 역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라야 나라 전체가 안정적으로 운영된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이유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대한민국이 정의로운 자주 독립국가로 거듭나도록 법과 제도를 어떻게 세우고, 그것들이 순리적으로 집행되도록 예산 편성과 집행을 책임 있게 돌아보는 것, 그리고 땀 흘려 일하는 민초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국정 전반을 세세하게 살피는 것이 국회의원의 역할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촛불시민혁명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므로 ‘촛불정신’에 대한 깊은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3년을 돌고 있지만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라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보편적 복지국가 실현 위해 신발 끈 다시 매야!

모든 정치활동의 목표는 ‘시민의 행복 구현’이다. 복지는 생활이고, 복지는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므로 촛불정신은 대한민국을 보편적 복지국가로 거듭나게 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보편적 무상급식’을 시작으로 ‘보편적 아동수당’이 제도적으로 도입되었고, ‘고교 무상교육’이 시작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흡하지만 혁명적 변화를 잉태하듯이 복지 제도가 차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인간 세상이 진보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지만 정의로운 변화조차 항상 ‘이익’을 중심으로 반대 세력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대한민국에서는 일부 보수 세력이 여기에 해당한다.

김대중–문재인 정부 10년 동안 민주주의와 복지가 진전을 이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의 세월이 민주주의를 포함한 정의로운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았다. 이제 다시 촛불시민혁명에 의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신을 담아 보편적 복지국가 이행의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시민들이 이제 겨우 복지의 참맛을 보기 시작할 시점이고, 선진 복지국가에 비해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것임에도 ‘과잉복지’라거나 ‘복지망국론’ 또는 ‘좌파정책’ 등을 들먹이며 보편적 복지국가로의 이행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집권 3년 동안 정치·사법적 적폐청산 과제에 집중하느라 보편적 복지국가로의 이행에서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주도 세력이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최근 들어 더 커지고 있다. 따라서 다가올 총선의 과제는 적폐청산의 완성과 더불어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이다. 복지국가가 바로 촛불혁명의 본질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지국가 건설 과제를 전면적으로 수행할 ‘인재들’을 국회로 진출시켜야 한다. 그래야 촛불국회가 된다. 아직 발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한 복지국가의 길을 한사코 반대하는 기득권 보수 세력의 반대를 극복할 보편적 복지국가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시민의 행복 구현을 위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너무도 멀고, 확대되고 뿌리내려야 할 복지국가의 과제가 산적한데, 마치 대한민국에서 보편적 복지가 실현된 것처럼 ‘과잉복지’에 동화된 듯이 새로운 과제를 찾아나서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이제 촛불정신을 되돌아보고 다시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깨어 있는 시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내야 한다. 시민의 삶의 질을 높여 행복 구현의 과제를 이행하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을 보편적 복지국가로 거듭나게 하는 일이다. 그것이 적폐청산의 과제를 함께 이행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