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인권, 교육, 노동, 문화, 보건의료, 소비자 단체를 포함한 22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8일 오전 10시 30분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기자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인공지능발전과 신뢰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이하 인공지능기본법)’ 시행령안 등 하위법령안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2024년 1월 23일 공포되어 2026년 1월 22일 시행을 앞둔 인공지능기본법의 하위법령(시행령안, 고시안, 가이드라인안 등)은 9월 17일 공개됐다. 이 중 시행령안은 11월 13일 일부 조항이 수정되어 입법예고됐으며 12월 23일까지 국민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
시민사회는 인공지능기본법이 사람의 잠재의식에 영향을 주는 AI 금지 규정 부재, 협소한 고영향 AI 사업자 범위, 미흡한 사업자 책무, 권리 구제 조항 부재 등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단체들은 법률의 한계로 인해 하위법령에서 시민의 안전과 기본권을 보호할 보완 조치가 필요했으나, 현재의 하위법령안은 오히려 보호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거나 법률에 없는 유예 사항을 추가해 사업자 책무를 약화시켰다고 주장했다.
■ 고위험 AI 규제 사각지대 지적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대표는 법률이 고영향 AI 추가를 시행령에 위임했음에도 시행령안이 이에 대해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오 대표는 이로 인해 공공장소 얼굴인식, 직장과 학교의 감정인식 등 위험한 AI가 규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병원, 채용회사, 금융기관, 뉴스사업자 등 업무 목적으로 AI를 이용해 타인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업자를 모두 ‘이용자’로 규정했다고 언급했다. 이로 인해 이들의 위험관리 및 딥페이크 표시 의무 등 ‘이용사업자’의 책무가 일체 배제된 것은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하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위원장은 고영향 AI 사업자 책무 중 주요 사항에 대해 시행령안이 침묵하고 권고사항인 고시나 가이드라인에만 기재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 권리 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반드시 시행령에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시행령안이 법률 위임 없이 사실조사 면제를 규정하거나 계도기간을 운영하도록 한 것은 위임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시민 안전보다 기업 민원을 중시하는 태도라고 반문했다.
■ 부문별 AI 위험, 제도적 장치 시급성 강조
각 부문별 우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노동계를 대표해 김현주 공공운수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 지부장은 AI 도입으로 콜센터 노동자들이 해고, 감시, 책임 공백, 고객 안전 위험 등 심각한 피해를 겪고 있는 현실을 소개했다. 김 지부장은 AI로부터 영향을 받는 상담사들과 고객들을 보호할 법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비판했다.
교육 분야의 최선정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 소장 겸 대변인은 정부의 AI 인재양성 정책이 교육을 산업 수요에 종속시키고 학생과 교사의 권리 및 교육 공공성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 소장 겸 대변인은 기술의 윤리적 문제를 통제할 수 있는 ‘비판적 AI 시민’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화예술계의 하장호 문화연대 정책위원장은 AI 산업에 편중된 정부 정책으로 인해 문화예술 분야가 생존권 위협과 노동권 침해, 사회적 문화 토대 붕괴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하 정책위원장은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대책 마련이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보건의료 분야의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검증되지 않은 AI가 무분별하게 의료 현장에 도입되면서 오진, 안전 위협, 비용 부당 청구 등의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 정책국장은 인공지능기본법이 이를 규제하지 못해 의료 분야를 사실상 무법지대로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AI 도입으로 인한 챗봇 응대 불편과 사람이 대면할 권리 침해 문제를 거론했다. 정 사무총장은 AI 피해 발생 시 소비자가 입증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며, 사회적 약자 보호와 소비자 참여권을 제도화하는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성장중심적인 ‘AI 강국’이 국정 최우선 과제인 상황에서 AI 위험으로부터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인공지능이 시민의 생명과 안전, 민주주의에 가져올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임을 재차 확인했다.
이날 참석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기자설명회 직후 인공지능기본법 하위법령안에 대한 일차 의견서를 제출했으며, 향후 노동, 교육, 문화예술, 보건의료, 소비자 등 부문별 의견서 제출을 이어갈 예정이다.
정부는 인공지능 산업 진흥과 규제 사이에서 균형 있는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를 시민사회로부터 받고 있다. 하위법령안에 대한 시민사회의 폭넓은 우려 제기는 향후 입법 과정에서 중요한 검토 사항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