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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29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서울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폭염 실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기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실질적인 휴식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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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건설현장, “죽지 않을 만큼만”…생존권 위협에 건설노동자들 호소

29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서울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폭염 실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기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실질적인 휴식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29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서울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폭염 실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기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실질적인 휴식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29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폭염기 건설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폭염 실태 기자회견’을 개최하며, 건설현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했다.

한 타설 노동자는 설문조사를 통해 “이 무더위에 그늘막도 없이 땡볕 쏟아지는 슬라브에서 도시락 먹고 타설하는 중”이라며, “CCTV로 본사에서도 슬라브를 본다며 안전에 위해되는 행동하지 말라는데, 대충 가져온 도시락 먹으면서 쉼 없이 타설하는 건 안 보입니까? 우리도 사람입니다”라고 절규했다. 이들의 목소리에는 단순히 뜨거운 환경을 넘어선 생존권의 문제가 담겨 있었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의 폭염기 건강장해 예방 의무가 강화되었고, 올 7월 17일부터는 산업안전보건 규칙이 시행되어 사업주는 매 2시간마다 정기휴식을 조치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권고에 불과했던 정기휴식이 의무화된 덕분에, 지난해 18.5%에 불과했던 정기휴식 준수율이 올해 42.7%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건설노조는 이러한 수치에 대해 반기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침으로 존재할 당시 1시간 단위로 10~15분 휴식을 가지던 것과 비교해 매 2시간마다 휴식을 갖는 것은 건설현장에 만연한 참시간 관행과 맞물려 실질적인 휴식 보장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건설노동자들은 ‘죽지 않을 만큼’이 아니라 ‘적절한’ 휴식을 요구하며, 설문조사에서도 “2시간은 너무 길다. 1시간마다 쉬어야 한다”는 답변이 다수를 이뤘다. 특히 폭염에 가장 취약한 타설 작업을 정기휴식 예외 직종으로 거론한 것은 입법 취지와 맞지 않다고 보고 있다.

■ “군대보다 못한 건설현장”…현실 외면하는 대책 비판

강한수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며 “노동부가 건설현장의 타설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옥외작업을 하고 있는 건설노동자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직접 와서 한 번만이라도 보면 답은 나온다. 그렇게 대책을 마련하고 법제도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는 탁상공론식 정책 마련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으로 해석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형틀목수와 철근공 또한 폭염기 건설현장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철근공 이욱순 조합원은 “어찌 보면 건설현장과 가장 비슷한 군대보다도 대한민국 건설현장은 못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전투훈련보다 작업을 더 많이 하는 그곳도 50분 작업을 하면 10분의 휴식 시간을 주고, 폭염 관련 특보가 발생하면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 체력이 가장 좋을 20대 초반의 군 장병도 혹시나 온열질환이 발생할까 지휘관들이 전전긍긍하는데 건설현장은 그렇지 않다”고 토로했다.

항상 건물 최상층에서 작업하며 작업 공간 확보 때문에 인위적으로 그늘을 만들 수 없는 철근 작업은 후속 공정 때문에 언제나 속도전을 강요받는다는 것이 그의 고발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어지러움, 과도한 땀, 메스꺼움이나 두통 등 온열질환 증상에도 불구하고 건설노동자들은 작업 중단을 요구할 수 없다고 설문조사를 통해 답했다. 그 이유는 바로 ‘현장에서 쫓겨날까 봐’였다.

■ 기후 위기가 초래한 생계 위협…임금 보전 대책 절실

건설 경기 침체 속에서 “더워 죽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게 무섭다”는 건설노동자들은 폭염, 폭우 등 기후 위기가 초래한 생존권 위협에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기후 위기로 인한 건설현장의 문제는 노동자의 실질적인 생계 문제로 직결되고 있다. 폭염을 비롯해 폭우로 인해 일을 하지 못하는 사이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의 일당은 반토막 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지난 6~7월 폭우로 인해 6일 이상 쉬었다고 밝힌 노동자가 30.8%에 달하는 등, 폭염과 폭우가 겹치는 7~8월은 건설노동자의 한 달 수입이 극도로 줄어드는 시기이다. 건설노동자들은 기후 위기로 인해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 대해 임금 보전 등 대책이 시급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형틀목수로 일하는 김훈 조합원은 “요즘 같은 폭염기 건설현장에서는 오전만 하고 집에 가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건설노동자는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는 추석까지도 더웠는데, 폭염과 장마, 태풍으로 일을 못 해 수입이 반토막 났다. 그래서 일부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아등바등 무리해서라도 일을 한다”며,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노사정이 모여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염원했다. 건설노조는 폭염 규칙의 실질적인 정착을 위해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적극적인 활동을 요구했다.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의 관리 감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에 도급이 있는 한 적절한 휴식은 없을 것”이라는 건설노동자들은 ‘불법 도급, 물량 도급 등 폐지’가 폭염 대책 정착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고 있었다. 이를 위해 명예산업안전감독관과 노동조합이 건설현장을 관리 감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건설노조는 폭염기 건설현장에 대한 지속적인 설문조사와 고발이 어느 특정 건설사를 망신주기 위함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노동조합은 “폭염은 민주적이지만, 재난은 위계적이다. 2016년부터 6년간 전 산업에서 29명의 노동자가 폭염기 온열질환으로 산재 사망했다. 그중 20명이 건설노동자”라면서, “이들의 생계와 삶이 걸린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정부가 해야 할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역할이다. 새 정부에서는 건설노동자가 쌓아 올린 소금꽃의 키높이에 걸맞은 폭염 대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건설현장의 열악한 환경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드러났다. 정부와 기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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