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 현장의 고질적 문제였던 인력 부족과 과중한 노동 강도가 의정 갈등 장기화로 더욱 심화돼 의료 서비스 질 저하와 환자 안전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의료 현장의 인력난은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극심한 감정노동, 직장 내 괴롭힘, 그리고 높은 이직률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의정갈등 장기화, 보건의료 노동자 고통 가중
16일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최희선)에 따르면 최근 9만여 조합원 중 4만 5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지난 1년간 지속된 의정갈등 사태로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인력 부족으로 인한 극심한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으며, 감정노동과 직장 내 괴롭힘 문제도 여전히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의정 갈등이 단순히 의사 인력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보건의료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건의료노조는 6월 16일 오후 1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토론회를 개최하고 2025년 44,903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8개 영역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토론회는 보건의료노조와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전진숙, 김윤 국회의원, 진보당 전종덕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이수진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주4일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와 1인당 간호사 대 환자 수 제도화, 공공의대 설립 등 노조와 함께 정책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추가 노동, 연차휴가, 감정노동 등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병원 현장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윤 의원은 인력 문제를 가장 핵심적인 사안으로 꼽으며 “인력 기준이 없어 과중한 업무를 하고 그 피해가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건의료노조가 추진한 인력법이 인력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고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노조와의 협력을 약속했다.
전종덕 의원은 “보건의료 노동자가 행복하고 건강해야 환자도 건강하고 행복하다”며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개선 정책이 미흡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실태조사 결과를 담아 매년 토론회 및 투쟁을 진행하지만 정체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국회 차원의 법과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바뀌지 않는 노동 현실이 무척이나 안타깝다”며 높은 업무량과 노동 강도를 문제 삼았다. 최 위원장은 “인력 확충의 요구는 보건의료 노동자의 가장 큰 요구”라며 9.2 노정합의 완전한 이행을 촉구하고 7월 말 총파업을 예고했다.
■ 의료 현장, 연장 근무·이직 고민 ‘심각’… 인력 부족이 핵심
토론회는 이주호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좌장을 맡고 안종기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기획실장과 최복준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의 발제와 지정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안종기 실장은 이번 실태조사에 국립대병원, 사립대병원, 특수목적공공병원, 지방의료원, 민간중소병원 등의 조합원이 참여했으며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청소, 조리, 행정 등 다양한 직종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특히 안 실장은 연장 근무에 대해 모두 보상받는다고 응답한 조합원이 34.4%에 불과해 열 명 중 여섯 명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연차휴가 역시 44.5%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응답했으며, 근무 중 단 한 번도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고 응답한 조합원은 50.2%에 그쳐 절반 가까이가 식사를 거르며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직 태도 질문에는 63.4%, 즉 열 명 중 여섯 명 이상이 이직을 고려한 적 있다고 답해 충격을 안겼다. 이직 고려 사유로는 ▲열악한 근무조건, 노동강도(36.2%) ▲낮은 임금수준(27.5%) ▲직장문화 및 인간관계(괴롭힘 등, 8.7%) ▲건강상의 이유(8.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의료 현장에서 인력을 갈아 넣어 버티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 의정갈등 이후 업무량 증가, 폭언·폭행 등 문제 심화
지난 20여 년간의 실태조사 결과 분석에 따르면, 인력 문제, 노동 강도, 임금 수준 등에 대한 만족도 추이가 변화되지 않고 정체되고 있으며 업무 강도에 대한 만족도는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장기, 중단기적으로 단계를 나누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명확히 드러난다.
정년 연장 필요성에 대해서는 44.9%가 필요하다고, 17.5%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필요한 이유로는 안정적인 노후 준비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60.9%)가 가장 높았고, 불필요하다는 이유로는 신체적, 정신적 능력 저하로 환자 안전에 우려된다(26.4%)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특히 ’24년 2월 의정갈등 이후 내가 수행할 업무량이 늘었다’는 문항에서는 53.8%가 업무량 증가했다고 응답해 의사 인력 공백 심화로 기존 역할을 넘어선 간접적이거나 추가적인 업무가 증대된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1년 동안 폭언, 폭행, 성폭력 중 하나라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55.7%이며, 그 중 폭언이 55.1%로 가장 많았다. 폭언, 폭행, 성폭력 모두 환자가 주된 가해자로 나타났다.
■ 의료사고 위협 및 진료지원 업무 부담 가중
감정노동에 관한 6가지 문항에 대해 긍정 비율(매우 그렇다 + 그렇다)을 기준으로 살펴본 결과, ‘나의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는 79.5%, ‘퇴근 후에도 힘들었던 감정이 남아 있다’는 68.9%, ‘부당하거나 막무가내의 요구로 업무 수행의 어려움이 있다’는 49.0%의 응답을 보여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업무에 의한 감정적인 문제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2년 동안 유효 응답자(42,425명) 중 15.6%(6,622명)가 업무상 사고/재해를 한 번 이상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수의 유효 응답자(15,408명) 중 업무상 사고/재해 사례는 절단·베임·찔림·끼임(15.1%), 넘어짐·부딪힘(16.0%), 수면장애(18.8%), 근골격계 질환(29.0%) 등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업무상 사고/재해 원인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인력 부족(76.3%)이 꼽혔으며, 그 뒤를 이어 수면장애 및 피로 누적(68.6%)이 과반 이상의 높은 수준을 보였다.
조합원들의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인식은 83.9%(매우 부족 40.3%, 다소 부족 43.6%)로 매우 높게 나타났으며, 부족하지 않다는 인식은 16.2%(전혀 부족하지 않음 3.6%, 별로 부족하지 않음 12.6%) 수준에 불과했다. 의사 부족으로 발생하는 병원 운영상의 문제점으로 “의사 업무가 간호사 등 진료지원인력에게 더 많이 전가된다”는 응답이 34.6%로 나타났다.
또한 의사 부족으로 인해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서 발생하는 문제점으로는 의사와 연락이 잘 안된다는 응답이 17.7%, 의사 대신 면담 상담으로 항의 받음이 16.8%를 차지했다. 본 실태조사 응답자 기준으로 보건의료 노동자 중 진료지원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의 비중은 10.1%(총 응답자 44,903명 중 4,531명), 간호사 중에서는 14.4%(간호사 총 29,271명 중 4,211명)가 유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보건의료노조, 9.2 노정합의 이행 촉구 및 7월 총파업 예고
진료지원업무 담당자 중에서 관련 교육을 받은 비율이 56.1%, 받지 못한 비율이 43.9%로 나타나 업무의 성격을 고려하면 미교육 비율이 높은 편으로 응답했다. 이어 최복준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25년 실태조사 결과에 바탕한 보건의료노조의 주요 추진 과제]로 9.2 노정합의 이행협의체 복원으로 노정합의 완전한 이행,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제도화, 의대정원 확대,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설립,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보건의료산업부터 주4일제 도입, 공공병원 착한 적자 국가책임제, 공익참여형 의료법인 제도화, 산별교섭 제도화 등을 요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5월 14일 더불어민주당과 정책협약을 맺었으며 노조의 공약 요구가 이날 정책협약 내용에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최 실장은 “적정 인력 기준 제도화를 위해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서 의사 인력을 비롯한 간호사, 약사, 의료기사 등 보건의료 인력의 중장기 수급추계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의료법을 ‘보건의료인력 등의 1인이 담당하는 환자 수, 환자 안전, 의료의 질, 근무 여건 등을 고려한 적정 인력을 고려하여야 하며, 교대 근무 인력의 경우 근무 조절 실제 인력 대비 환자 비율을 기준’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6/18(수) 적정 인력 기준 제도화 의료법 개정 관련 기자회견이 국회 소통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최 실장은 24년 보건의료노조 실태조사 결과 75.6%가 주4일제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특히 간호사의 경우 80.4%의 압도적인 수치로 주4일제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5년 실태조사 결과 81.4%가 의사 인력 부족하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의정갈등 이전보다 14.9% 증가한 수치이며 실태조사에 응한 조합원이 의정갈등 이후 처방, 시술, 드레싱 등 업무 범위가 확대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29.5%가 의료사고 위협을 자주 느낀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진 지정 토론에는 신수진 이화여자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이혜인 경향신문 기자,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손연정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함께 했다. 신수진 교수는 “보건의료 현장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 속에 운영되고 있다”며 “간호사는 많으나 간호 인력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 전문가들 “의료 불균형 해소 위한 종합적 대책 시급”
이어 “우리나라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하며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비 2배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며 인력 문제 해결을 위한 직종별 인력 기준 제도화와 대체 인력 확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혜인 경향신문 기자는 “전공의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병원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필수의료 분야, 공공병원, 지역 거점병원 의사 부족 문제는 증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행 간호법은 진료지원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나눈 기준이 근거가 빈약하고, 법적인 보호도 분명치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며 의료법 개정 등 논의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건의료 현장에서의 폭언, 폭행,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발생률이 높고 사건 발생 시 대응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종합적인 대응과 예방 조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연정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간호사 교대제 개선 시범사업의 성공 요인으로 인력 충원을 통한 업무 강도 완화를 꼽으며, 보건의료 노동은 돌봄 노동과 정서적 노동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지만 시장에서 적정한 가치로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형병원과 중소병원, 수도권과 지방,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동 조건 격차 해소를 위해 임금과 노동 조건의 하한선을 제도화하고 산별교섭과 같은 집단적 조정 장치를 통해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직종별 인력 기준 제도화, 주4일제 도입, 산별교섭 제도화, 9.2 노정합의 이행협의체 복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공공병원 착한 적자 국가 책임제,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산별 중앙 교섭과 산별 현장 교섭을 진행하고 있으며, 교섭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7/2 산별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 7/8 동시 노동 쟁의 조정 신청, 7/24 산별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