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태안화력 故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김충현 노동자의 사망이 “외주화된 구조와 무책임한 안전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기자간담회는 1차 사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대책위는 이번 사고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발생했음을 명확히 했다.
사고 당시 김 씨는 태안화력 내 KPS(한전KPS) 정비동 공작실에서 기계공작 업무를 수행하던 중 고속 회전하는 범용선반에 신체가 감겨 사망에 이르렀다. 1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고에 사용된 기계는 2010년대 생산된 NARA6020 수동선반으로, 회전속도가 780rpm에 달했다. 저속 설정이 가능했음에도 고속으로 작업이 이루어졌고, 법적으로 의무화된 방호덮개조차 회전부에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원형 공작물에 적합한 고정 장치인 ‘3본연동척’을 사용했지만, 사고 당시 사용한 부품은 양면이 밀링 처리된 타원형 형태로, 고정이 어려워 작업 시 큰 회전반경이 발생했다. 더욱이 이 선반에는 작업자가 접근하는 방향에 비상정지장치가 없어, 손과 몸이 감긴 뒤에는 기계를 멈출 수 없는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
■ 관리 부재 속 위험 방치
고인의 작업은 계약상 담당 업무인 경상정비와 무관한 10호기 오버홀 공정 부품 제작이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는 1차 하청인 KPS의 작업을 2차 하청인 한국파워O&M 노동자에게 구두로 지시한 명백한 구조적 위법 상황이다. 작업지시서나 위험성 평가, TBM(작업 전 안전회의) 또한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졌고, 실질적인 감독자 없이 홀로 작업하는 상황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태안화력 내부에는 방호울 설치와 같은 물리적 안전장치부터, 작업지시서 발행, 사전 위험성 평가, TBM 회의 등의 관리적 안전조치가 분명히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1차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조치들은 현장에서 형식적인 문서 절차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실제로는 고용 불안과 하청 구조 속에서 무력화되어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특히 그가 작성한 TBM 문서는 반복 출력된 사본에 날짜만 바꿔 기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작업자나 관리자 모두가 작업 내용의 구체성과 위험 요소를 제대로 인지하거나 논의하지 않은 채, 단지 ‘있어야 할 문서’를 채우는 방식으로만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조사위원회는 이를 통해 “시스템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있어 위험이 숨겨졌다”는 판단을 내렸다.
■ 예측 가능한 사고, 반복되는 책임 회피
최진일 대책위 상황실장은 “김충현 노동자가 사용하던 선반에는 방호장치가 없었고, 부적절한 척 사용과 고속 회전 설정으로 인해 말려들어가는 전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사고가 발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해당 작업은 위험성이 높아 단동척과 저속 설정을 했어야 하나, 현장에는 단동척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고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 실장은 또한 “KPS는 사고 직후 ‘작업 오더에 없던 작업’이라며 책임을 회피했지만, 재해자는 실적 관리를 위해 작업 의뢰서를 작성하고 한전KPS 소장이 서명한 접수대장을 통해 업무에 착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용균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임의 행위로 몰고 가려는 시도가 반복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 외주화가 심화시킨 위험
권영국 김용균 특조위 전 간사(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김용균 이후 만들어진 대책들이 2차 하청에는 작동하지 않았다”며 정부와 발전사가 안전 시스템을 외주화로 넘겨 책임을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위험은 더욱 아래로, 더 취약한 위치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사고 당시 김충현 노동자가 수행하던 작업이 애초에 재해자 소속 업체의 계약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원청인 한전KPS가 비공식적으로 부품 제작을 의뢰한 것이며, 따라서 “원청의 구조적 책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또 “작업 절차, 위험성 평가, TBM 문서 등 안전 관리 시스템 전반이 형식적으로 운영되며 재해를 방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재해자의 위험성 평가 항목에서 ‘회전체 감김’ 위험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됐던 점을 지적하며, “위험이 시스템 속에서 은폐되고 누적되는 구조적 문제”라고 규정했다.
대책위와 유족은 이번 사고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원·하청의 공식 사과와 배·보상, 그리고 하청 노동자의 직접 고용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발전소 폐쇄를 이유로 안전과 인력을 방기하지 말고, 모든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권영국 대표는 “김용균 특조위 권고에서 2차 하청 노동자까지 포함해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라고 명시했지만, 정부는 이를 사실상 무시해왔다”며 “이번 사고는 그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 반복되는 죽음, 시스템의 문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벌어진 김충현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은 단순한 작업 중 사고를 넘어선다. 이는 안전 시스템이 문서로만 존재하고, 원청의 지시가 하청에 떠넘겨지는 구조 속에서 발생한 비극이다. 노동자들은 매년 업체가 바뀌는 고용 구조 속에서 숙련도는 축적되었지만 책임은 사라진 시스템 속에서 반복되는 ‘시스템에 의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김용균 사고 이후 6년이 지났음에도, 사고 현장의 컨베이어벨트에는 방호울이 설치되었지만, 감김 사고가 더 빈번한 선반에는 아무런 안전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외주화는 더욱 심화되었고, 위험은 더 취약한 노동자에게 전가되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정규직 전환, 발전소 총고용 보장, 공공 안전 시스템 강화가 대책위와 유족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내용이다.
대책위는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과 책임자 처벌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MBC, 참여와혁신, 매일노동뉴스, 프레시안 등 기자들의 질문과 답변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진행되면서 기자회견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