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필드

노동·인권 전문지

전태일을 추모할 수 있을 때

김진희(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노무법인 벽성 대표)

인간은 과거의 역사를 끝없이 되돌아보며 산다. 왜 그럴까. 먼저 간 종족의 삶을 기리기 위해서일까. 맞기도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를 꿈꾸고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 과거라는 거울이 필요해서다. 그 역사적 거울이 종종 미래지향성 대신 자기 만족감을 위한 허영심으로 소환될 때도 있다. 그리 멀지도 않은 50년 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자살한 노동자 전태일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 자주 소환되고 있다. 이유는 어느 쪽일까?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변화해온 노동 환경

인간은 분명 기계일 수 없지만, 인간 노동이 상품으로 거래돼 온 역사는 대체로 16세기로 거슬러간다. 18세기 증기기관의 발명은 영국의 섬유공업을 거대산업으로 이끌었다. 19세기말 20세기 초가 되면 전기에너지가 공장에 공급되고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면서 대량생산 체제로 이행된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20세기 후반에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지식정보 혁명이 산업을 질적 혁명의 시대로 이행시킨다. IT 기반의 초국적 글로벌 플랫폼의 공룡 기업들이 생겨났고 초지능과 초연결 사회로 이끄는 4차 산업혁명이 산업구조를 또 다시 혁명적 수준으로 바꾸고 있다. 불멸의 삶을 꿈꾸는 생명공학과 우주시대 프로젝트 사업들에 막대한 자금도 흘러 들어가고 있다.

3차례의 산업 혁명기를 거치면서 노동력 활용 방식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 인간은 신분제의 예속된 삶에서 다시 독립적 존재이자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지만 자신의 노동을 상품으로 팔아서만 살아갈 수 있는 의존적 생존 조건에 놓인다. 기계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노동은 분업화, 세분화된 생산 공정에서 조립품화 되었으나 인공지능의 스마트 공장체제로의 이행으로 그 역할조차 빼앗기고 있다.

그렇다면 1일 8시간 노동은 어떻게 쟁취해낸 것일까? 자본주의가 시작된 영국에서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환경으로 아동·여성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그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가 위기일 정도에 이르고서야 공장법이 제정되었고 1847년 여성과 연소자의 주 10시간 노동이 규정된다. 8시간 노동제는 1817년 ‘로버트 오언’의 ‘8시간 일하고 8시간 쉬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는데, 이후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럼에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8시간 법제화가 시작됐을 정도로 그 과정은 더뎠다. ILO(국제노동기구)가 1호 협약으로 ‘8시간 노동제’를 권장하게 된 것도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19년이 되어서였다.

이처럼 노동의 역사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저항의 역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주 35시간 노동이 법제화된 프랑스나 주 4일제 근무를 실시하는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의 유럽 국가들에서 노동시간은 최소한의 생존 기준을 넘어 좀 더 인간적이고 여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기준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1970년 22살 청년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죽어간 후 50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논쟁이 한창이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 주 52시간제라는 말이 상용화되고 있지만, 사실 이는 법적 용어가 아니다.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에 12시간은 당사자 간의 합의 사항이지 고정된 근로가 아니다. 휴일근로까지 감당하며 장시간 근로가 많았던 노동 현실과 국민 정서를 감안해 최소한 52시간까지는 제한하겠다는 취지로 선거 공약이 되었고,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급변하는 노동 형태, 방치되는 노동 현장

그러나 이 52시간제 외침조차 다른 세상의 얘기인 노동자 군이 있다. 이른바 노동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사각지대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다. 과거엔 골프장 캐디, 레미콘 운전자, 학습지 교사 등이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의 증가세는 대부분 IT 기반의 플랫폼 기업에서 양산된다. IT 기반의 유통시장 재편과 함께 과거의 노동자들도 개인 사업자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법이 정한 ‘근로자성(노동법이 정한 근로자 기준)’을 갖추지 못해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도, 혹은 실업 상태에 이르러도 기본적인 노동 보호를 받지 못한다.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 형성된 원·하청 관계의 말단 기업 노동자들도 위험한 노동 현장을 몸으로 떠받쳐온 사람들이다. 이들도 플랫폼 노동자들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먹이사슬 구조의 하단에 위치해 있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복잡해질수록 노동의 형태도 전형적인 형태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으니, 기업은 인건비 절감을 위한 새로운 노동 형태를 끊임없이 창출해내기 마련이다. 노동 정책이 이런 변화의 과정을 감당해내지 못할 때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게 드러난 사회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의 높은 ‘산업재해율’이다.

우리나라의 한해 산재 사망자는 2,020명, 산업재해자는 109,242명(2019년 기준)에 이른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산업재해를 당하고 연간 2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재 사망 세계 1위 국가다. 숫자에 잡히지 않는 약 230만 명의 특수고용 노동자들과 이들의 사고까지 더하면 재해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주 71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다 사망한 택배·배달 노동자들의 잇따른 사고는 예견된 것이었음에도 대비하지 못한 불행한 사고들이다. 현실은 계속 변하고 있는데, 법이 새로운 형태의 노동관계와 노동자 개념을 채 담아내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사이 기업들은 ‘유사노동자’라는 노동 형태를 빌어 위험한 노동 현장에 대한 책임과 사회보험 등의 안전망 비용을 개인이나 사회로 떠넘기고 있다. 수십 년 간 싸워온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모순된 논리에 노동자들이 안전망 비용 대신 인간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셈이다. 효율성 중심의 사회 분위기에 개인들의 처절한 실상은 늘 사회적 문제가 되고서야 드러나곤 한다.

사회 안전망,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어찌됐건 지금은 대부분 국가에서 복지를 핵심 정책으로 다룬다. 말 그대로 인간의 행복한 삶, 안정된 삶을 지향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안정된 삶은 고용 안정성, 그리고 실업 시 생활 지원의 양 축이 기반이다. 산업화 초기,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각자도생의 삶을 살고 있을 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유럽의 복지 인식에 놀란 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영국 노동당에서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국가가 국민을 안전하게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사실 산업사회의 복지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비스마르크가 사회주의 이념을 방어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했다. 당시 사회주의자들로부터 노동자를 격리하고 생존권을 보상해줌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사회주의 이념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중요한 사회보장제도인 산재보험법도 1884년 제정되어 전체 산업으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도 1963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제정된 이후 노동 현장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왔다. 그럼에도 재해의 대비 방식은 여전히 기존의 산업재해 관련 법령의 범주를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상품 노동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의 시작은 한국전쟁 이후인 60·70년대부터다. 어찌 보면, 지금의 노년층과 중년층은 유럽의 수백 년 산업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경험한 세대다. 한여름 밤의 꿈인 듯 서구 자본주의의 긴 발자취가 몇 십 년 동안 변화무쌍하게 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노동의 형태도, 노동의 현장도 급변해 왔지만 노동 정책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고, 과도기 현장에서 야기되는 사고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건강한 청년 택배 기사의 과로사, 벨트에 끼어 사망한 김용균, 매년 평균적 숫자를 유지하는 삼성반도체의 암 사고들, 이들의 죽음이 그저 정기적 통계 수치쯤으로 인식되는 한 지속되는 인재를 멈출 수 없다.

‘생존을 위해 생명을 바쳐야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와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발의된 지 3년을 넘기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를 둘러싼 노동계와 경영계의 치열한 논쟁에서도 ‘합법적인 과로사회’로 가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주장하며 과로사 기준까지 무시되는 일도 발생했다. 인명 피해를 줄이고 보완해가야 할 건강한 문제의식이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위험한 인식에 늘 압도되어 왔다.

시대의 결과물인 노동법, 보다 유연한 사고가 필요할 때다

사실 노동 보호의 역사는 인간보다는 자본주의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수많은 노동자, 어린이들이 불결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채 장시간 노동하다 쓰러져 갔던 영국에서 인류 최초의 노동법인 공장법이 제정된 계기는 노동력 감소로 인한 자본주의의 위기감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축적 시기로부터 근 300년의 고단하고 긴 시간이 지나서였다. 살인적인 노동 현장에서 절규했던 전태일 시절에서 8시간 노동시간을 말하고 있는 지금이 오기까지 우리의 노동 현장에도 고단하고 힘든 시간이 흘렀다.

노동의 재생산 개념에서 시작된 복지제도는 이제 거의 모든 국가의 관리시스템이다. 인간다운 삶과 안전한 노동 환경을 위한 기준이 법제화되기까지 길고도 험난한 과정을 지났고,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안정된 상시 체제로 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급변하는 노동 환경의 속도를 따라갈 운영 체제의 정비다. 새로운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처하진 못하더라도 환경의 변화를 바짝 따라갈 정도의 지원 체제가 필요한 때다. 급격한 변화의 과도기에서 위험에 노출되는 범위가 더욱 넓어졌고 희생의 대가도 커지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한 사업장과 실업 지원 제도는 노동 환경을 안전하게 지켜낼 변함없는 두 축이다. 해마다 10만 명이 넘는 재해자에 2천 명이 넘는 사망자 수가 변함없이 지속되는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에도 여전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사각지대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규는 안전한 노동 기반을 취약하게 만들 뿐이다. 법이 보호해야할 대상은 사람 일반이지 법규 안에 갇힌 ‘노동자’가 아니다. 법은 그 사회의 현실이 반영된 규율인 만큼 필요할 때 개정하라고 존재하는 것이지 오래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최근 ‘전 국민 고용보험’ 이슈가 사회를 달구고 있다. 늦었지만 전 국민 고용보험 정책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이슈는 우리의 노동 환경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이끌 것이라 기대한다. 

시민과 함께 정책 실험으로 풀어가자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정책이 실시간으로 요구되고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당장 유럽과 무역 분쟁으로 갈 수도 있는 ILO 핵심 협약의 비준과 노동법 개정 문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전 국민 고용보험 등 중요하고 묵직한 정책들이 산적해 있다. 정책 실험을 통해 정책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시카고대)는 주장한다. “정부의 역할이 확장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확대된 재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므로 정책을 소규모로 시행하면서 실험을 통해 효과를 검증해가며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는 과거처럼 정책을 결정한 뒤 모두에게 바로 시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규모로 시행하면서 과학적으로 평가한 뒤 조금씩 변화시키며 확대하는 게 시대에 맞는 정책 개발 방식이라고 말한다(한겨레, 2020.11.24.).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인 리빙 랩(living Lab)은 이미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시민 참여 제도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주민이 직접 지역의 문제를 발굴하고 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과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지역문제의 해결 플랫폼’이라는 민관 협업 체계도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다. 새로운 정책이 필요할 때마다 이해 당사자들의 대립에 막히거나 재정 문제 등의 이유로 폐기된다거나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채 실행한 후에 드러나는 문제점들로 곤혹스러웠던 정부 정책들에도 민관 공동의 실험 체제로 실패율을 극복해갈 다양한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거대한 전환’의 저자 ‘칼 폴라니’는 종획운동(enclosure)으로부터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전환기를 처참한 광란의 시기였다고 말한다. 변화에 대한 맹목적인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경제 성장이 무의식적 방향으로 벌어져도 결국 스스로 치유하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맹목적 믿음이 사회를 엄청난 희생으로 몰아갔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의 삶이 급변하고 있는 지금,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 지도 모른 채 막연히 시간에 기대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당시의 거대한 전환기와 닮았다.

지금의 변화 역시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은 오판이다. 기술을 지배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도 인간이 조절해갈 수 있다. 변화의 방향에 우리를 내맡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며 노동 환경을 개선해가야 한다. 망자가 빈소에서까지 ‘왜 택배가 오지 않느냐’며 빗발치는 고객 문의를 들어야했던 오늘의 노동자를 전태일이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노동운동을 촉발시켰던 50년 전 전태일 정신을 그저 묘지 참배나 기념사진 용도로 추모할 것이라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 과거가 현재를 변화시킨 거울이었다는 자부심을 당당히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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