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혁명 100년, 이제 복지국가 혁명이 필요하다!

윤호창(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정명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이라는 것이다. 운동과 혁명의 차이는 무엇인가? 운동이 기존의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움직임에 그치는 것이라면, 혁명은 기존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을 말한다. 기존의 3·1운동을 3·1혁명으로 이름을 바꾸자는 정명론자들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3·1운동과 3·1혁명

첫째, 3·1운동의 내용과 성격에 관한 것이다. 20세기 초 한국 사회의 과제는 전근대 사회를 근대 사회로 바꾸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제국주의에 의해 빼앗긴 주권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3·1혁명은 이 두 2가지를 동시에 찾으려는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독립선언서의 첫 문장인 ‘吾等은玆에我朝鮮의獨立國임과朝鮮人의自主民임을宣言하노라.’에서 자주민은 주권자로서의 선언적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에 대한 결과는 1919년 4월 11일 발표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민중이 자유, 평등, 평화, 민주주의의 주권자로 등장했으며, 이전까지 독립운동 중에 일어났던 ‘왕정과 공화정’ 사이의 논란이 일단락되었다고 한다. 1910년 황실과 양반 지배층이 지켜내지 못했던 국가를 3·1혁명을 통해 민중이 처음으로 주인으로 등장했으며, 제국의 시대를 끝내고 민국의 시대를 처음으로 열었다는 것이 3·1혁명론의 근거다.

3·1혁명론 덕분에 해방 이후에 민주공화국으로 하는 것은 당연시 되었으며,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다른 나라에서 흔히 있었던 왕정복고파와 민주공화파의 갈등과 혼란이 없었다. 역사상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경험이 없었는데도, 수천 년 간 전제왕권과 35년간의 천황제를 경험한 국가에서 좌·우파를 막론하고 민주공화정 이외에 다른 정치체제를 주장한 이들이 없었다는 것은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3·1혁명이 제국주의에 대항한 독립운동임과 동시에 역사상 처음으로 민국으로 전환을 촉발시키고 근대 시민을 등장시킨 마중물 역할을 했기에 마땅히 혁명으로 이름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3·1혁명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명칭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헌헌법에서 현행 헌법까지 3·1운동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제헌헌법 이전까지 3·1운동은 3·1혁명으로 불렸고, 제헌헌법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 않은 채 3·1운동으로 명명되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헌장(1944)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 국가가 강도 일본에게 패망된 뒤에 전 민족은 오매에도 국가의 독립을 갈망하였고 무수한 선열들은 피와 눈물로써 민족자유의 회부에 노력하야 삼일대혁명에 이르러 전민족의 요구와 시대의 추향에 순응하야 정치, 경제, 문화 기타 일절 제도에 자유, 평등 및 진보를 기본정신으로 한 새로운 대한민국과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건립되었고 아울러 임시헌장이 제정되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3·1혁명’은 ‘3·1’, ‘3·1운동’, ‘3·1(대)혁명’, ‘독립선언’, ‘만세운동’, ‘기미운동’, ‘기미독립운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으며, 특정한 이름이 확정적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3·1운동이 대중적으로 많이 불리긴 했지만, 독립운동이 조직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3·1운동이 3·1혁명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특히 임시정부와 항일투쟁단체를 중심으로 3·1혁명으로 불렀다. 

해방이 되고 1948년 5·10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국회는 제헌헌법을 만들기 위해 30명의 의원으로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했고, 유진오 안을 중심으로 헌법기초위원회에서 만든 헌법 초안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3·1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전문이 들어 있었다.

유진오의 회고에 따르면 전문의 ‘3·1혁명’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문제제기가 없었다고 한다. 제헌의원의 합의에 의해 ‘3·1혁명’이 헌법 초안의 전문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조헌형이 제안한 ‘기미 3·1운동’으로 명칭을 변경하자는 안건에 이승만이 기존의 입장을 바꿔 동의하게 되면서 제헌의회에서 토론이 생략된 채 표결을 진행했다. 이로 인해 우리 역사에서 3·1혁명이란 말이 공식적으로 사라졌다고 한다고 한다. 이처럼 3·1운동의 성격이나 용어의 역사성을 볼 때, 이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사회시스템 전환의 근본적인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에 3·1혁명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3·1혁명 100주년의 ‘지금, 여기’ 

백 년 전에 만들고자 했던 민주공화국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민주공화정을 채택한 해방 이후에 1960년 4월 혁명,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민주화항쟁, 2017년 촛불시민혁명 등 독재와 전제를 하려는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민중이 주도하는 운동과 혁명이 있어왔지만 여전히 민주주의와 공화국은 미완의 상태다. 완전한 민주공화국은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이상향에 가까울지 모르지만, 복지국가 스웨덴을 만든 비그포르스의 말처럼 잠정적인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근래에 촛불시민혁명은 민주공화정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좋은 헌법과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더라도 현재의 정치경제적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독재와 전제로 회귀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독일 바이미르 공화국의 역사와 히틀러 등장, 제2차 세계 대전이 그 사실을 증명해준다. 우리 사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 촛불시민의 혁명으로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았지만, 현재의 사회경제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세계적으로 등장하는 극우주의 세력이 우리 사회라고 비켜갈 리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헬 조선’이란 불명예가 붙은 것은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제도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성취했지만, 실질적·경제적 민주주의의 진전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어 세계 최저의 출산율,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라는 불명예를 지난 20년 동안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불명예를 극복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국가로의 제대로 된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는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복지국가를 위한 증세 문제’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좀처럼 꺼내지 않고 있다.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경제 문제, 특히 일자리 문제다. ‘지속 가능한 경제 없이는 한결같은 마음이 있을 수 없다(無恒産, 無恒心)’라고 맹자가 설파했던 것처럼, 한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는 먹고사는 경제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지만, 우리 사회의 집권 세력과 진보 세력도 경제 문제의 해결에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경제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기업들을 만나 고용과 투자를 유도하고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의 온전한 모습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하지만 지난해 후반기부터 친기업적 행보를 자주 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가 변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진보적 시민들이 보기에 필요한 것은 자본과 노동 간의 공정한 관계를 만드는 경제민주화의 확립이지 재벌 대기업 규제완화 등의 친기업적 방식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 간의 문제는 마치 우리 사회의 부동산 문제와 비슷하다. 우리 사회는 이미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었지만, 서울 시민의 절반이 자기 집을 가지지 못한 것은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소유와 분배의 문제인 것이다. 이런 구조 하에서 아무리 주택 공급을 늘려도 다주택자들의 소유만 늘어날 뿐 일반 서민들의 주택 소유율을 높이기는 어렵다. 대기업의 투자도 이와 비슷하다. 이미 국제적으로 보더라도 국내 총투자율은 이미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투자를 더 유도하더라도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이 진보적 경제학자들의 지적이다.

[표 1] GDP 대비 국내 총투자율 / 2017년

새로운 100년, ‘복지국가 혁명’이 필요하다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인 복지국가 담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은 OECD 평균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회복지지출 수준은 GDP 대비 10.2%로 OECD 평균인 19%의 절반 조금 넘는 수준(53.7%)에 그쳤다. 프랑스(32.0%)나 스웨덴(26.3%), 독일(24.9%)에는 비할 바가 못 되고, 심지어 신자유주의 국가인 일본(21.9%)과 영국(21.6%)에 비해서도 절반에 못 미친다. 사회복지지출이 낮기 때문에 국민들이 부담하는 정도 또한 낮은 상태다. 2015년 기준으로 GDP 대비 국민부담률은 25.2%로 OECD 평균인 33.7%에 크게 미치지 못 하면서 32위에 머물렀다.

복지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장기 투자, 경제 활성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수행하기에 공공분야에서 복지에 대한 보다 과감한 투자와 고용 창출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공공서비스 분야의 고용 비중이 선진국의 1/2, 심지어 1/3 수준에 그치고 있다.

[표 2] 주요 국가의 보건·사회 서비스 고용 비중 / 2013년, 단위: %

우리의 교육 환경을 둘러봐도 교사 인력이 여전히 부족함을 알 수 있다. 교사 1인당 아동 수가 OECD 평균에 비해 초등학교는 7.1명, 중학교 9.7명, 고등학교 6.9명이 많아 OECD 국가들 평균 교사 수의 6~70%에 그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교사 1인당 담당하는 아동 수가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이며, OECD 평균을 기준으로 한다면 13만 명 이상의 교사 충원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교사들이 담당하는 행정까지 합하면 교사들이 아동들에 대한 섬세한 교육과 지도가 어려운 상황이다. 학생부 종합전형과 같은 선진국 시스템과 하드웨어는 도입했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운영해나갈 휴먼웨어, 소프트웨어를 갖추지 못했기에 원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다양한 문제와 부작용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표 3]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교사 인원

교육 부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린이집과 같은 아동보육시설에서 종종 교사 폭력이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하지만, 5세 아동을 기준으로 우리의 교사 1인이 감당해야 할 아동이 평균 25~30명인데 비해 유럽연합은 5명에 불과하다. 유럽 기준으로 맞춘다면 최소한 5~6배의 정원 확대가 필요한 셈이다. 적은 보수에 5,6배나 많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우리 사회의 보육교사를 노동 환경을 고려하면 아동 폭력은 예상 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국가가 제공하는 국공립 보육시설에 다니는 아동 수는 2018년 기준으로 13%에 불과해서 그동안 육아를 민간시장에 내팽겨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육아와 교육에 대해 엄마와 가족들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에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출산 파업이라는 결과를 맞고 있다. 이런 문제는 육아와 교육뿐만 아니라 노동과 노후 등 생애주기별로 모든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에 세계 최저 출산율, 세계 최고 자살률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합계출산율 1.0이라는 것은 한 세대가 지날 때 인구가 절반으로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계적으로 보자면 한국 사회는 집단적으로 ‘국가 소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시민 사회를 중심으로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꾸자는 정명론이 일자,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도 공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지난 100년 전의 사건을 제대로 정리하고 명명하는 역사작업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이다. 지금의 경제사회적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독일 바이미르 공화국의 무력한 길을 가거나 극좌·극우의 극단적인 시대가 전개될 것이다. 1919년 3·1혁명을 통해 민주공화정의 단초를 열고, 지난 100년 동안이 민주공화국의 틀을 만드는 시간이었다면, 다음 100년은 복지국가 혁명을 통해 실질적인 민주공화국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3·1혁명 100주년은 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한 새로운 100년의 청사진을 만들고 실행 계획을 구체화시킬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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