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모녀 사망 사건과 복지국가의 역할

이상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최근 또 다시 생활고에 시달리던 여성이 4세 된 딸과 함께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충북 증평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의 보도를 접하면서 13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참여정부 때인 2004년, 내가 청와대 정책실의 행정관으로 근무할 때 가난한 부모가 아이를 굶겨 죽도록 방치한 ‘대구 어린이 벽장 아사 사건’이 발생하고, 연달아 전남에서 방학 중 급식 지원이 안 되어 대신 도시락을 지급했다가 아동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보고를 받은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무척 진노하며 특단의 대책을 지시하셨다.

연이은 아동 사망 사건에 진노한 노무현 대통령

당시 공무원 정원을 담당하던 행자부뿐만 아니라 예산을 담당하던 기획예산처와 균형 재정을 주장하는 재경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현장에서 근무할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6,000명을 증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당시 관련 부처와 어렵게 협의를 해서 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러 갔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류에 사인을 하시기 전에 “이렇게 하면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는지”를 다짐 받듯이 물으셨다. 그때 나는 ‘우선 사인을 해 주시면 답을 드리겠다.’고 말씀드려 먼저 재가를 받은 후 “사실은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라고 사실대로 보고했다. 사회적으로 복지에 대한 수요는 폭증하고 있는데, 동사무소 공무원은 여전히 이전에 하던 일들을 하고 있고, 복지 분야는 담당 인력이 없는 상태라서 중앙정부에서 아무리 법률을 만들고 예산을 통과시켜도 현장에서는 집행이 되지 않는 문제들을 보고 드렸다.

대통령께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모두 바꾸어 새롭게 요구되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사회복지 전달체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시작했다. 이후 나는 대통령 비서실에서 나온 후에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과 함께 사회복지 전달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연구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230여개 시·군·구에 보육, 교육, 의료, 주거, 일자리, 노후 등 8가지 주민생활 지원서비스를 통합하는 주민생활지원국을 만들고 동사무소를 주민생활지원센터로 개편하는 작업에 힘을 보탰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니, 그런 사업들은 제대로 진전이 되지 않았다. 동사무소의 간판만 바꾼 채 흐지부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이후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추가적인 인력 확충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신규로 임용된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의 업무가 너무 과도해 6명이 연달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해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과 유사한 점, 그리고 다른 점

처음 언론을 통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 사건도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또 하나의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4년 쯤 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엄마가 팔을 다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남은 돈을 집 주인에게 밀린 월세로 남기고 자살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우리나라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 문제를 드러낸 계기로 주목을 받았다.

이번 증평 모녀 자살 사건도 가족의 생계를 담당하던 남편이 자살로 사망한 이후 고정 수입이 없이 생활하다가 빛 독촉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딸과 함께 동반 자살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사건도 사망에 이르는 과정이나 사망한 지 한참이나 지나서 발견된 ‘고독사’라는 점은 송파 자살 사건과 많이 유사했다.

사망한 여성의 여동생이 사망자의 인감증명서를 대신 발급받고, 도장과 핸드폰을 가져가 무단으로 SUV 차량을 팔고 해외로 도주했고, 시신의 인수도 거부하면서 귀국하지 않고 있어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등 범죄 관련 의혹이 있다는 점도 송파 사건과 다른 점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정부의 대응 자세가 이전과 달라진 것이다.

촛불 혁명 이전에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에서는 정부의 대응이 무척이나 느리고 대책도 미온적이었던 데 비해, 이번 사건은 발생하자마자 주무 부서인 보건복지부가 즉각적인 대응을 하면서 추가적인 보완 대책을 발표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이전의 정부와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국민들의 반발과 나라다운 나라를 원하는 국민의 염원으로 출범한 정부답게 사건의 본질에 대한 파악도 빠르고, 곧바로 근본적인 대책을 발표하는 등 대응도 적절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사회보장 정보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았는가?

보건복지부는 4년 전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발견할 수 있도록 ‘행복e음’이라는 이름의 사회보장 정보 시스템이 구축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한전, 상수도 사업소, 도시가스 관련 기관, 교육부 등 관련 14개 기관의 27종 빅데이터를 활용해 연간 35만 명의 사각지대 위기 가구를 발굴해서 대상자들이 거주하는 지방자치단체로 2개월마다 통보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장기간의 전기 요금 연체로 인한 단전(한국전력공사)이나 단수(상수도사업본부), 단가스(도시가스공사), 건강보험료의 장기 체납(국민건강보험공단), 기초수급 탈락 또는 중지(보건복지부), 금융 연체(신용정보원), 초·중·고 교육비 지원을 위한 학교장 추천(교육부) 관련 정보를 취합해서 대상자가 거주하는 시·군·구청에 통보하면 읍·면·동의 담당자가 현장을 방문해 생활 실태를 조사하고, 지원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매우 유용한 시스템이 이미 구축돼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범죄 피해(경찰청), 화재 피해(소방청), 재난 피해(행정안전부), 주거 위기(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 고용 위기(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자료까지 보완돼 있어서 매우 정교하게 긴급 복지 지원 대상자들을 발굴하는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한 지 몇 개월 동안이나 증평 모녀의 문제가 발견되거나 보고되지 않은 데 대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은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정부 철학의 문제가 더 중요한데, 아직 새로운 정부의 이념과 철학이 세부적인 부분에까지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사망한 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정부의 복지 지원이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은 사망자의 경우 임대 아파트이기는 하지만 보증금 1억3천만 원이 있고 1,500만원 보증금의 상가도 있고, 차량도 3대나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등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채가 1억5천만 원으로 자산보다 더 많고, 차량도 채권자에게 가압류된 상태라서 처분할 수도 없었지만, 일단 등록된 자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

또, 사망자는 소득과 재산 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신청하면 바로 지원하는 월 10만 원의 가정양육수당을 신청해서 수급한 이력 외에는 기초생활보장 등 그밖의 복지 급여를 신청한 사실이 없었다. 그래서 신고를 해야 지원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하는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는 관할 행정기관에서도 미처 생활 실태를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사기 사건으로 고발돼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우편함에 각종 고지서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는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아무리 경찰이라도 남의 가정에 수색 영장이 없는 상태에서 무단으로 진입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냥 돌아가야만 했다. 이것도 일종의 ‘사각지대’에 해당한다. 결국, 두 모녀의 시신은 아파트 관리비 연체가 심해지자, 관리사무소에서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발견된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새 정부의 보건복지부는 이 사건 이후 즉시 현재 시행하고 있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및 전달체계 전반에 대해 재검토하기로 했다. 그리고 복지 사각지대 개념을 저소득 취약 가구뿐만 아니라 급격히 생활이 어려워진 가구까지 확대해 가구주가 사망한 유가족 등 위기 가구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복지 지원이 찾아갈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기 가구로 분류되는 복지 사각지대의 범위를 ‘저소득 생계 곤란 가구’뿐만 아니라 가구주 사망 및 소득 상실 등으로 인해 ‘생활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어 긴급히 복지 지원이 필요한 가구’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즉, 긴급복지 지원 대상자를 확대하여 ① 가구주의 사망 또는 일정 기간 이상의 실업, 휴업 등으로 주 소득원이 상실된 경우 해당 가구의 ‘금융 부채 또는 연체 정보’ 등을 조사하여 위기 가구를 발굴하고, ②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 연체금액 기준을 현재의 10만 원에서 5만 원으로 낮추고 연체기간을 현재의 6개월 이상 연체에서 3개월 연체로 조정하여 문제 가구가 조기에 발견될 수 있도록 했고, ③ 임대료 체납 정보 제공기관을 확대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관리비 체납 신고를 통한 정보 연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국가의 자살 예방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았는가?

이번 사건은 국가의 자살 예방 시스템이라도 제대로 작동했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 중의 한 명이 자살한 ‘자살 유가족’의 경우 연이어 자살할 위험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유의하게 높다. 남편의 자살 후 반년 가까이 두 모녀는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고, “남편이 먼저 떠나고 난 후 혼자 살기가 너무 힘들다.”라는 유서를 남기기도 했으나 우리 사회에는 지난 6개월간 모녀가 도움을 요청하며 내민 손을 잡아준 사람이 없었고, 가족도 이웃도 국가도 그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자살 유가족에게 관련 지원 사항을 안내하고 1인당 140만 원 수준의 자살 유가족에 대한 심리 상담과 정신 건강 치료비 지원 사업이 있다. 그리고 심리 부검 및 유가족 상담 등 심리 지원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살한 증평군의 모녀에게는 이런 사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지난 1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발표된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18.1.23.)을 통해 자살 예방 게이트 키퍼 양성을 위해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과 중앙자살예방센터 전담 강사 지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재 전국 243개소의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중심으로 자살 유가족 상담 프로그램과 자조그룹 지원 사업이 있다. 지난번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지역사회 자살 고위험군 발굴체계를 보다 촘촘하게 구축하기 위해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복지 통·이장 등 지역사회 풀뿌리 조직에 대한 자살 예방 게이트 키퍼 100만 명 양성 교육을 이제야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증평군의 모녀는 그 이전에 사망한 것이다.

복지국가 위한 근본적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실제로 위기 가구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굴된 위기 가구에 대해 지자체를 통한 생활 실태 확인 및 필요한 지원이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충북 증평군 증평읍의 경우 복지 공무원 1인당 복지 대상자의 수가 1,251명으로 전국 평균(553명) 대비 2배가 넘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조건이 되어 조기에 발견이 됐다고 해도 제대로 된 지원이나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보건복지부는 금년 말까지 전국 3,505개 읍·면·동의 ‘찾동(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지자체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2022년까지 1.2만 명 증원하고, 간호직 공무원 3.5천 명 확충도 병행해서 보건·복지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가 전체적으로 이런 위기 가구의 상황을 공유하고 같이 대책을 세우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사회 위기 가구 발굴 및 복지 지원 연계 활성화 방안으로 시·군·구 및 읍·면·동 내 민관협력기구인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현재 시·군·구와 읍·면·동에는 3,700개의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구성돼 있고 위원들 약 87,000명이 활동하고 있다. 또 ‘좋은 이웃들’이라는 이름의 한국사회복지협의회의 자원봉사자도 3만 명이나 있고, 전국 450여 개소의 사회복지관 종사자 8천여 명, 복지통장과 복지이장 95,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돌봄이 필요한 위기 가구에 대해 지역사회가 책임성을 갖고 보건‧복지서비스를 연계·확충해 나가도록 ‘커뮤니티 케어’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관련 예산과 인력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권 교체가 조금만 일찍 되었어도 불행한 자살은 막을 수 있었고 필요한 인력과 예산이 조금만 일찍 확보되었어도 불쌍한 모녀가 자살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뿐만 아니라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야당은 철밥통을 늘릴 수 없다는 이유로 국민의 삶에 꼭 필요한 인력의 확충에 반대했고, 여전히 이런 일들은 곳곳에서 재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할지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대책이 수립되지 못한 것은 과거 정부의 철학이 복지 지원 대상을 최소화하는 ‘복지의 효율성’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부정 수급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산이 일정 수준 이상 되면 무조건 긴급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본인이 신고를 하지 않으면 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신고제로 운영하는 속에서는 낭비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는 줄어들겠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거나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등 복지 정책의 ‘효과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런 일을 하려면 추가적인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예산 심의를 할 때 반대했던 야당들은 이제라도 입장을 전환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지만, 복지 정책까지도 그래야 하는지 안타깝다. 0416의 날, 세월호 300여 명의 희생으로 우리는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 증평 모녀 자살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이러한 가슴 아픈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이제 복지에 돈을 써야 한다. 필요한 현장 공무원들은 확충되어야 한다. 여당이나 야당을 떠나, 이제 국가가 역할을 다하지 못해 국민이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복지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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