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

윤호창(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임이사)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민심이 악화되고 있다.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에 의해 직접적으로 촉발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미 몇 해 전부터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정책 실패에 대해 민심이 바닥에서 끓고 있다가 폭발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번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었다면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스무 번도 훨씬 넘는 각종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었지만, 서울의 집값은 82%이나 올랐다(2021.1.14. 경실련 발표). 이에 시민들이 분노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봐야 한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빈곤한 한국 사회

지난해 코로나19 방역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K-방역’이라는 국뽕 비슷한 분위기도 형성됐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을 차지하고, 방탄소년단이 빌보드가 선정한 2020년 최고의 스타를 차지하면서 ‘K-컬쳐’라는 신조어를 비롯해 다양한 이름의 ‘K-00’이 파생되었다. 한국 사회가 세계사의 주역으로 떠오를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세계가 바라보고 국민들이 체감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지난 3월 20일은 세계 행복의 날이었다. 세계의 다양한 기구에서 세계 시민들의 행복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UN 자문기구인 지속가능개발해법네트워크(SDSN)에서 조사·발표하는 것이 점점 더 권위를 얻어가는 모양새다. 2021년 행복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0년 행복 순위는 조사 대상 95개 국가 중에서 50위를 차지했고, 최근 3년간(2018~20) 합산 순위에서는 149개 국가 중에서 62위를 차지해서 지난해보다 1단계 내려갔다. SDSN은 보통 3년간의 합산 순위만을 발표하지만, 지난해 1년 동안 계속됐던 코로나의 특수 상황을 반영해 지난해 순위도 함께 발표했다.

행복 순위 1위는 4년째 핀란드가 차지했다. 그 뒤로 아이슬란드, 덴마크, 스위스, 네덜란드,  스웨덴, 독일, 노르웨이, 뉴질랜드, 오스트리아가 10위 안에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두고 분열과 대립이 심했던 미국은 14위, 코로나로 국가 기능이 상당기간 마비됐던 이탈리아는 25위를 기록했다. 동아시아 국가 중에선 대만이 19위로 순위가 가장 높았고, 일본은 40위, 중국은 52위, 홍콩은 66위에 올랐다. 국뽕에 빠진 국민들은 다소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와 중국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2012년부터 매년 같은 항목으로 조사하고 있는데, 조사 항목은 매년 해당 국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대수명, 사회적 지지, 관용, 내 삶을 선택할 자유, 부정부패 등 6개 항목이다. 대한민국은 기대수명과 GDP에서는 비교적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나머지는 하위권이고, 특히 내 삶을 선택할 ‘자유’ 부분은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지난 3년간(2018~20) 내 삶을 선택할 자유의 평균 순위는 148개 국가 중 128위였다. 우리 바로 위에는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콩고, 세네갈 등이 있고, 바로 아래에는 이란, 이라크, 예멘 등이 있다. 대한민국의 행복 평균 순위를 결정적으로 낮추고 있는 부분이 바로 ‘내 삶을 선택할 자유’라는 항목이다.

내 삶을 선택할 자유를 ‘왜’ 느끼지 못하는가?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자유가 만개하고 있는 것 같지만, SDSN 지표를 보면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실질적 자유는 부재한 것으로 보인다. 후진국처럼 경제적으로 빈곤하지 않고, 전체주의 국가처럼 언론과 사상의 자유도 통제받지 않고 있는데, 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지 못할까? 필자가 보기에는 크게 2가지 요인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허약한 자아’다. 2017년 3월 박근혜 정부를 탄핵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려고 할 때, 김누리 교수는 한 신문에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는 글을 썼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속절없이 무너진 것은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는 형식적인 민주주의 제도만 있지, 강한 자아를 가진 민주주의자는 드물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필자도 공감한다. 

우리나라는 제법 배부른 사회는 됐지만, 강한 자아와 건강한 정신을 가진 시민들을 양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서열화된 대학 체계의 상층부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과 정해진 답을 찾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학교 교육은 건강하고 강한 자아를 가진 시민을 양성하는 데는 관심이 별로 없다. 학생부 종합평가니 정시니 하면서 작은 차이에만 이전투구를 할 뿐이지, 어떤 학생과 어떤 시민을 양성해야 할지에 대한 교육철학과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건강한 자아를 가지지 못한 사회의 비극은 현대 독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약한 자아를 가진 시민들은 히틀러의 등장을 묵인했고, 많은 평범한 독일 시민들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 참혹하게 죽인 홀로코스트에 죄의식 없이 동참했다. 이 비극에 대해 통절한 반성을 했던 독일은 연방정치교육원을 설치하고, 좌·우파들이 함께 민주주의와 시민정치 교육의 철학과 방향을 담은 ‘보이텔스바흐 협약’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냈다. 연방정치교육원과 16곳의 주정부가 연간 수천억 원의 예산을 사용하며 강한 자아를 가진 시민들을 양성했기에 독일의 홀로코스트 역사와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한 행동 등을 부끄러워하는 독일 시민을 가질 수 있었다.

약한 자아와 부실한 민주주의를 가진 우리 사회의 병폐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UN의 SDSN 조사에서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관용, 부정부패, 사회적 지지 등의 지표도 우리 사회의 약한 자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에 불거진 LH 직원들의 부정한 부동산 투기 역시 약한 자아와 관련이 있다. 허술한 법과 제도도 한몫을 했지만, 공적 기관에서 일하면서도 빈약한 윤리 의식과 약한 자아가 그런 일들을 죄의식 없이 했다고 볼 수 있다.

강한 자아를 가진 시민을 양성하는 데 현 정부와 교육부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독일 정부는 연방정부의 700억 원이 넘은 예산을 비롯해 16개의 주정부들도 그와 비슷한 예산을 쓴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는 서울시를 비롯한 몇몇 뜻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겨우 몇 억 원을 쓰면서 겨우 흉내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년 동안 시민사회는 ‘민주시민교육법’ 제정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민주당이 과반을 훨씬 넘긴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제정된다는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약한 자아의 시민을 가진 사회는 보다 근원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그 사회를 병들고 썩게 만든다.

심각한 불평등과 취약한 복지가 ‘자유’의 적이다!

내 삶을 선택할 자유를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또 다른 것은 심각한 불평등과 취약한 복지다. 이것은 민주주주와 시민교육을 통해 강한 자아를 가지도록 하는 것에 비해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다. 교육을 통해 시민들에게 강한 자아의 필요를 느끼도록 할 수는 있겠지만, 미국이나 우리나라처럼 강한 불평등과 약한 복지를 가진 사회구조 하에서는 웬만한 강한 자아도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패자부활전이 없고, 한번 낙오하면 회복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강한 자아를 가진 시민을 양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강한 자아는 불평등과 불공정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힘이기는 하지만, 새가 양 날개로 나는 것처럼, 강한 자아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와 함께 동반 성장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부재한 것은 민주주의 교육의 부재와 함께 보편적이고 역동적인 복지국가가 턱없이 약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포용적 복지국가’를 주창하면서 추진하고는 있지만, 속도는 느리고 유능한 청사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6년에 『VISION 2030』을 통해 2030년까지 OECD 평균 수준의 복지국가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의지와 속도로는 여전히 백년하청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부동산 정책에서도 비전과 청사진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참여정부에서 2017년까지 부동산 보유세의 실효세율을 1%로 높이고,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15%까지 확대하겠다는 뜻과 비전을 이번 정부에서 분명한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계승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부동산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실효세율 1%를 장기 비전으로 제시했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동산 실효세율은 0.16%(2018기준) 내외로 거의 비슷하며, 공공임대주택 비율도 거의 늘지 않았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비전과 원칙을 가지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치기보다 소소한 기능적 핀셋 정책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예기치 못한 불법 투기 폭탄을 맞고 시민들의 분노를 초래했다.

행복 사회를 만들려는 새로운 움직임들

행복한 삶은 모든 시민들의 최고의 희망이자 목표이지만, 시민들의 희망과 욕구를 충분히 수렴하지 못하는 현재의 체제와 정치에서 이것이 쉽게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시민들의 일상적 삶과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혁신을 지향하는 지방자치단체(지방정부)가 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37곳의 지방정부가 참여하고 있는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주민들의 행복 욕구를 수렴하고 지역의 행복지표를 개발·실현하려는 노력은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예산과 권한 등에서 지방정부가 가지는 한계는 있지만, 주민들과 함께 행복도시 실현이라는 공동의 비전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한다면 혁신적인 지역 모델도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엘리트 기득권들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대의제의 한계를 인식하고, 주민들의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행복을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눈여겨볼 만하다. 직접민주주의연대, 직접민주주의뉴스, 제주민회, 강북민회 등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시민단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국네트워크 구성을 시작했다. 시민들이 보다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기존의 대의민주주의가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직접 행동으로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적어도 경제력 수준에 상응하는 행복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의 분발을 촉구하고, 지방정부의 혁신적 모델을 기대한다.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주민들과 함께 행복 사회의 역동적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과감하게 지원하고, 민주시민교육 등을 통해 강한 자아를 가진 시민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시민들도 자립과 자치의 원칙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풀뿌리 지역민회를 만들고 전국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간다면 북유럽 복지국가 수준의 행복 사회도 거저 꿈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