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자회사 콜센터직원 ‘극단적 선택’… 녹취록 직장내 괴롭힘 정황 드러나

LG전자 자회사 콜센터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 직장내 괴롭힘 정황이 나타나는 육성 녹음 파일이 공개됐다.

그동안 사측은 자체 조사결과 직장내 괴롭힘은 없었고, 사인도 ‘실족사’라고 밝혔었다.

경찰 조사 결과 사인은 자살로 확인됐다.

이 회사는 작년에도 한 상담원이 상사의 폭언 섞인 괴롭힘을 고발해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유족들은 고인의 휴대폰 기록을 복원한 결과 고인과 직원간 통화 내용 중 “연세도 있으시고 그러시니까 조용히 사시죠” “나를 죽이기 위한 그런 쪽으로만” “나를 X 미친놈으로 볼건데” 등 회사 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화 내용이 상당 수 기록돼 있었다.

19일 고 임균택 노동자의 배우자 이연실 씨와 형 임경택 씨,금속노조는 LG전자 하이텔레서비스 본사 앞(서울시 금천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노조 등에 따르면 고인은 2011년 1월 3일 (주)하이텔레서비스의 수리직군(출장 엔지니어)으로 입사, 2018년 10월까지 수리직군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2018년 10월17일 회사 추계행사에 참여해 회식을 마치고 귀가했고, 다음날 광주센터에 출근 후 교통사고를 발생시켜 면허가 취소돼 같은해 12월 상담직군으로 전환됐다.

하이텔레서비스 콜센터는 서울(가산동), 평택, 부산 세 곳에 위치해 있는데 고인의 근무지는 광주B2B센터이고 조직도상으로는 평택콜센터 소속이다.

이 때문에 광주센터에서 상담직은 고인 혼자였다.

광주센터 다른 직원들은 모두 B2B출장직원(수리기사)이었기에 출근부터 퇴근까지 거의 혼자 상담업무를 해야 했다.

징계처분에 따른 상담직 업무 전환으로 고인에 대한 업무 지시·관리는 평택에서 했고, 광주센터 수리직군의 업무 지시·관리는 광주센터 소장이 했다.

고인은 상담직으로 전환되면서부터는 점심 도시락을 싸와 혼자 먹었고, 회식자리에 참여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센터 직원들과 고인 사이 업무 관련 의사소통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센터 내 별도의 상담실이나 독립된 상담 공간은 없었고, 전화상담을 따로 진행하는 자리배치만 돼 있었다.

오랫동안 기술직군(출장 엔지니어)로 일해 왔던 그는 갑작스런 직무 전환으로 직무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 때문에 회사로부터 고객만족도 평가 ‘매우불만(0점)’에 대한 개선방안 제출을 지시받고 야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9년 4월 그가 전국금속노동조합(서울지부 하이텔레서비스지회)에 가입하자, 5월 회사 A모 팀장(관리자)이 갑작스럽게 평택에서 광주광역시까지 내려와 고인과 면담을 진행했다.

이 면담 과정에서 A 팀장은 고인에게 “연세도 있으시고 그러시니까 조용히 사시죠”라고 말했다고 고인이 지인과의 통화내용에 기록돼 있다.

2019년 10월17일 고 임균택 씨와 직원간 녹취록을 살펴보면 “5월에 나한테 (모 팀장이) 왔다 갔다니까. 경고가 왔다니까. 조용히 살으라고. 내가 니기(민주노총 금속노조 하이텔레서비스지회) 밴드(네이버에서 운영하는 SNS) 괜히 탈퇴한 거 같아. 여기서 (누가)찌른거야. 그래가지고 5월에 갑자기 온 거야. 나한테 그러는 거야. 연세도 있으시고 그러시니까 조용히 사시죠.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래가지고 내가 그 이후로 이 사람들(광주센터 직원들)하고 말을 한 마디도 안 섞어. 아예 말 자체를 안해버려”라고 기록돼 있다.

고인은 이 사건 이후 배우자와 (광주센터를 제외한)동료들에게 “광주센터 내에서 믿을 사람이 없고, 평택에서 모 팀장이 내려와 면담을 진행한 이후 직원들과의 관계를 멀리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2019년 10월31일 고인과 직원 김 모씨와의 통화 녹취록을 살펴보면 “솔직히 광주에 여기 있지만 평택 소속이지만 평택도 아니고. 사무실은 광주 쓰지만 광주도 아니고. 말할 사람 한 명도 없어요. 무슨 말하면 막 위로 이상하게 전해지고 (그래서)아예 말도 안 해요”라고 기록돼 있다.

이어 “나 7시 20분 되면 사무실 출근해요. 아침에 메일 20분 동안 열심히 보고 사무실 나가요. 계단에 앉아 있다가 9시 2분 전에 들어와요. 말 듣기 싫으니까”라며 “팀장이 나 오월에 찾아 온 이후로 이 사람들 하고 말 섞는 것 자체가 싫어요. OOO(팀장)가 갑자기 찾아온 이후로 나는 진짜 깜짝 놀란거야. 이 회사가 과연 진짜 이런 회사인가 동료가 이런 동료인가”라고 말했다.

또 “잠깐 스쳐지나가 점심시간 때 잠깐 이야기하고 쉬는 시간 때 잠깐 이야기 하고 그런 것 밖에 없을 거잖아요”라며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이 전해졌다는 거야. 그중에서 톡톡 찍어서 다 편집 돼서 자기들한테 유리한 그런 쪽으로만 나를 죽이기 위한 그런 쪽으로만” 등 직장내 집단 괴롭힘 정황이 담긴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에 고인은 2019년 11월 경부터 사망 직전까지 회사 측 담당자에게 본래의 기술직군으로 직무변경을 요청했으나 좌절됐다고 유족 측은 주장하고 있다.

이후 2020년 3월 17일 오후, 회사에 출근해 업무 중 반차를 낸 후 연락이 두절됐고, 다음날 광주광역시 광산구 모처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19일 고 임균택 노동자의 배우자 이연실 씨와 형 임경택 씨,금속노조는 LG전자 하이텔레서비스 본사 앞(서울시 금천구)에서 고 임균택 엔지니어 사망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확인 결과 사망 전날 고인은 B 모 파트장으로부터 발음 문제를 지적받았다.

고인은 치과 치료 중임을 이야기했고, B 파트장은 그의 업무를 중단시키고 스스로 상담녹취를 들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고인은 반차를 쓰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B 파트장은 “반차 개시 전까지 남아있는 시간에 상담녹취를 들으라”고 다시 지시했다.

이 일이 발생한 직후 고인은 반차 사용 후 연락이 두절됐다.

나중에 유가족들은 B 파트장이 당일 연차휴가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파트장이 휴가 중 고인에게 왜 굳이 직접 전화를 해서 업무 지시를 했는지 의문점이 남아있다고 유족 측은 전했다.

올해 6월12일 유족은 고인의 사망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회사에 “망인이 평소 업무상 어려움 호소나 직무 전환에 대한 요청이 있었나”고 물었고, 회사는 “그런 적이 없으며 적응을 잘했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6월 말 경, 유족이 고인의 휴대폰 기록을 복원해 보니 회사의 주장과 달리 임씨가 회사 생활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수차례 확인된 것이다.

유족 측은 “연락이 두절되기 직전 가족들과 한 전화통화에서도 고인은 회사 생활과 직원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통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이에 유족은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회사에 직장동료와 상사 등이 함께 자리하는 추가 면담과 사망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는 현재까지 거부하고 있다.

LG전자는 100% 자회사인 하이텔레서비스의 홍보, 언론 대응 등을 맡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LG전자 관계자는 “회사는 고인의 유족 및 노조 측의 요청을 적극 반영해, 고인과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을 망라해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면밀히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난 7월29일까지 고인과 함께 근무한 평택 CIC2팀 및 광주서비스 소속 총 11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고인의 생전에 고인에 대한 직장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있었는지, 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결과, 고인에 대하여 생전에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출장 엔지니어 직무 수행에 필수인 운전면허가 취소된 이후에도 회사는 고인의 가장으로서의 입장을 배려해 콜센터 직무로 발령 조치하고, 콜센터 근무지(평택)로의 이동이 어렵다는 고인의 요청까지 배려해, 고인이 희망한 광주 서비스내에서 상담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업무환경을 지원했다”고 전했다.

특히 LG 측은 “고인은 회사의 공식적인 창구(조직책임자 및 직무개발서)나 직속 조직책임자를 통해 직무전환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며 “고인이 ’19년 12월 직접 작성한 직무개발서에도 ‘현재업무만족, 이동불필요’라고 기재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LG는 “생을 마감했던 날, 회사 관리자가 고인을 업무적으로 압박했는지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결과 고인은 오후 휴가를 신청한 당일, 오전 한 시간 가량 사전보고 없이 자리를 비우고, 술 취한 듯한 목소리로 고객, 관리자 등과 횡설수설하는 내용으로 통화한 것이 확인됐다”며 “관리자는 고인이 이 날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고인의 건강 상태도 확인해야 할 것으로 보여 고인에게 휴가를 권유했고, 고인도 회사에 피해를 주는 것 같다며 스스로 휴가를 신청해 오후 반차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또 노조 가입한 이후 관리자들이 고인을 압박했는지 여부에 대해 회사나 회사 소속 인원이 고인에 대해 노조가입을 이유로 압박을 가한 것으로 볼만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해명하며, LG 관계자는 “유족 측이 허위 사실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경우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직장내 괴롭힘 금지는 근로기준법에 지난해 1월 신설, 같은해 7월부터 시행됐다.

이 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등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이를 위반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