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대응TF, ‘검찰 세월호 특수단’에 성역없는 수사 촉구 의견서 전달

대검찰청 산하에 2019년 11월6일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이 설치됐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부실 대응과 구조 지연 의혹에 대해 전면 재수사키로 한 것이다.

특수단은 임관혁 안산지청장을 수사단장으로 서울고등검찰청 청사에 꾸려졌고, 대검 반부패강력부가 지휘하고 있다.

검찰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별도 특수단을 구성한 것은 이번 처음이다.

이에 세월호 유가족 측은 ▲ 대통령, 청와대 책임자 ▲ 현장구조, 지휘세력 ▲ 세월호참사 조사방해세력(국회, 정부 관계자 포함) ▲ 세월호참사 전원구조 오보 보도 관련자 ▲ 세월호참사 피해자 비방과 모욕 관련자 ▲ 기무사 관계자 ▲ 감사원 관계자 등을 특수단에 고소·고발했다.

그러나 특수단은 현재까지 해경 지휘부 일부를 기소했을 뿐, 나머지 세월호참사 책임자들과 핵심 의혹들에 대해서는 ‘깜감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편집자 주]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세월호참사대응TF는 26일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에게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세월호 유가족 측은 특수단이 규명해야 할 12가지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발표 이후 관련 의견서를 특수단에 직접 제출했다.

12가지 수사요청사항은 ▲AIS 진위·조작여부에 대한 수사 ▲DVR 조작여부에 대한 수사 ▲조타실 및 기관실 선원 핀셋구조 경위에 대한 수사 ▲이준석 선장의 1시간 행적에 대한 수사 ▲양대홍 사무장이 스즈키복을 입은 채 수습된 이유에 대한 수사 ▲경빈군을 외면한 구조세력에 대한 수사 ▲참사 당일 청와대 NCS 기록 및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행적에 대한 수사 ▲2014년 검찰 수사에 대한 외압에 대한 수사 ▲1기 특조위 강제 해산 등 진상규명 방해자에 대한 수사 ▲국정원의 선원 심문 여부와 그 내용에 대한 수사 ▲사참위 요청 수사 과제에 대한 수사 ▲세월호 선체 인양 과정에서의 범행 의혹에 대한 수사 등이다.

세월호 유가족 측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원인과 관련해, 세월호 AIS 데이터는 3차례 걸쳐 누락구간이 복원됐는데, 그 과정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AIS 데이터의 진위·조작 여부의 최종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도 AIS 항적 등에 관한 조사 한계를 인정하고 정밀검증 필요성을 지적했다.

또 DVR 수거 과정 조작 의혹 수사는 CCTV 녹화영상 편집·조작 여부 및 편집·삭제된 내용을 밝히는 수사로 이어져야 한다고 세월호 유가족 측은 요구했다.

세월호 승객구조 과정과 관련해 123정과 선원간에 사전 연락이 없었다고 구조 관계들은 주장하고 있는데, 정확히 조타실과 기관실 선원들만 핀셋 구조한 이유와 과정을 재수사해야한다고 요구했다.

이같은 이유는 세월호가 급격하게 우회전했고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무책임하게 탈출했으며, 123정의 세월호 조타실 접근 후 선원들만 구조한 정황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여러 의혹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감사원, 검경합동수사본부와 세월호 제1기 특조위 청문회 과정에서도 123정장이 세월호 조타실로 접근해 선원들을 먼저 구조한 것과 관련한 수사 및 조사는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 등은 26일 법원삼거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조타실 접안 당시 또는 직후, 123정장과 승조원들이 123정으로 옮겨탄 사람들이 세월호 선원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어 명백히 밝혀야 된다”고 말했다.

세월호 조타실 접안 당시 또는 직후, 123정장과 승조원들이 123정으로 옮겨탄 사람들이 세월호 선원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어 명백히 밝혀야 된다는 것.

이준석 선장의 사고 신고 후 탈출한 09:45분까지 한 시간 동안 행적도 재수사 요청 사항이다.

선박의 해상 사고 시 구조 관련 기본 절차는 △승객들 여객구역 대기 △선장 “총원 퇴선명령” △선원들 비상 부서 배치표 임무수행 △승객들 비상대피구역 이동 △해상으로 퇴선 순이다.

그러나 사고 당시 퇴선 안내방송도, 퇴선 조치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이 없었다. 이 선장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급히 빠져 나왔다.

09:24분경 라이프링을 착용시켜 탈출해야한다는 둘라에이스호 선장 요청도 묵살됐으며, 09:25분경 진도VTS가 탈출 결정을 내리라고 요구할 때도 선장과 선원들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선원들은 08:52분경 조타실에 모여있었고, 08:55분경 제주VTS에 구조요청을 한후, 이 선장이 탈출한 09:45분경까지 조타실에서의 선장과 선원들의 대화와 조치 사항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된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 등이 09:19분 YTN 보도 후 세월호 사고를 최초 인지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세월호 유가족 측은 전했다.

세월호 사고 당일인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30분경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렸다.

당시 NSC 사무처장과 외교, 국방, 통일부 등 관계 부처 차관과 국정원 1차장 등이 참석했다.

09:05분경 해경본청은 세월호 상황보고서를 접수했다. 해경본청은 위기 대응 메뉴얼에 따라 국가 안보실에 보고토록 돼 있다.

09:06분경 경찰청 산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안산단원경찰서, 고잔파출소도 세월호 사고를 인지했다.

이 때문에 참사 당일 오전 소집한 청와대 NSC 내용과 관련 기록을 찾고, 당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무엇을 했는지 재수사 해달라고 세월호 유가족 측은 요구했다.

이날 세월호 참사 고소·고발 대리인단 단장인 이정일 변호사는 “12가지 요청사항이 갖는 의미는 세월호 특별수사단의 수사의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며 “수사결과 발표시 이 내용과 관련해 철저히 규명되지 않는다면 특수단의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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